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82)
#재능만렙 플레이어 682화
고래일족.
그들은 본래 태어난 김에 살아가는 존재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이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기만 하면 그 외에는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았다.
원래는 그랬었는데 고향을 잃고 나서 절실함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특히 딸을 키우는 나프탄은 더욱 그랬다.
“아빠!”
작은 고래의 모습을 하고서 유유히 헤엄치는 딸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예쁘구나.’
자신을 향해 헤엄쳐오는 나탈리의 모습을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저 아이를 잃을 뻔했었지.’
언젠가 한 번, 나탈리가 인간들의 싸움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강선일을 과연 인간이라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혁진과 강선일의 싸움이었다.
‘그땐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사실 나프탄도 김혁진과 강선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곳에 김혁진과 강선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고래일족은 계약에 따라 질서를 어지럽힌 자를 처단하기 위하여 움직였고, 그때 나탈리는 팔 한쪽이 잘렸었다.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나탈리는 위험했을 거야.’
그때 이후로 나프탄은 팔불출이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강대하고 풍족하게 태어나 절실함이 없던 그에게 절실함이 생겼다.
그러자 고래일족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도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삶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나프탄은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아빠, 아빠. 근데 우리가 이 세계의 위대한 질서를 지키는 종족이 맞아요?”
“그렇지. 우리는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
“만약에 그 질서를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돼요?”
“그럼 우리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지 않겠니?”
고래 일족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강하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 알고 있니?”
“네.”
나탈리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정신이 맑아지고 충만한 행복감이 가득해졌다.
천공의 마나 덕분이었다.
“우리는 이 세계의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이런 특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거란다.”
“운해에 있을 때는 그런 거 안 가르쳐줬잖아요.”
“그땐 우리에게 천공이 없었잖니?”
천공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사라지면서 고래일족의 사명도 함께 없어졌단다.
특혜가 없어졌으니 의무를 질 필요도 없다고 했다.
“아! 우리가 고향에 돌아오면서 사명이 다시 생긴 거네요? 우리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인 천공도 사라지는 거고요?”
“똑똑하구나.”
사실 똑똑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으나 본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한 법이었다.
“천공이 없어지면 우린 죽어요?”
“그렇겠지.”
“죽으면 안 되잖아요.”
사실 고래일족은 생존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었다.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고향으로 되돌아온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나프탄도 나탈리도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절로 삶이 살아지는 종족이, 이제는 삶을 살아내는 종족이 되었다.
“난 연애도 하고 싶고…….”
나탈리의 피부가 옅게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무엇을 상상했는지 인간의 모습으로 모습이 변했다.
20세 전후의 여자의 모습을 하게 된 나탈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혁진 오빠랑 결혼도 하고 싶…… 아니. 아니. 이게 아니라.”
나탈리는 말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혁진 오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도 하고 싶고.”
나프탄은 나탈리의 철없는 소리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딸이 연애나 결혼 얘기를 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짜증도 조금 났다.
감히 어떤 놈이 있어서 내 딸을 데려간단 말인가.
그런 기분이 들자 나프탄은 스스로도 신기했다.
고래일족이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그때, 나탈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서 물었다.
“근데 세계의 질서를 지킨다는 건 어떤 거예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지나봐야 알 것 같다.”
그리고 그때가 결국 왔다.
천공에 엘카라는 늙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여자는 피투성이였다.
그렇지만 천공의 마나가 도와 그녀를 치유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사명을 다해라.”
그러자 고래일족의 봉인되어 있던 기억이 깨어났다.
“진왕을 죽이지 않으면 너희들의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진왕이란 말을 듣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진왕은 바로 김혁진이었다.
* * *
천공의 왕 나프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뒤에 선 고래일족들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김혁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듯했다.
“그래야만 천공이 삽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김혁진은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천공 어딘가에 엘카가 숨어 있다는 것도 느꼈다.
천공이 이토록, 고래일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배타적이고 폭압적인 기운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천공이야말로, 엘카가 최후의 최후의 안배로 남겨놓은 곳이었어.’
심해가 아니라 천공.
동화권능과 백경지체의 힘이 아니라면 버틸 수 없도록 설계된 세상.
‘아무리 진왕으로 각성했다고 해도……. 아무런 준비 없이 왔다면 당했겠어.’
천공은 그런 곳이었다.
지금처럼 차원과 차원을 넘어, 그것도 심해에서 넘어오느라 많은 힘을 소모한 상태에서 천공에 오면 위험했다.
김혁진은 강선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강선일은 굳이 [천공]을 언급했었지.’
강선일이 이렇게 말했었다.
-“천공(天空)에서 기다리겠다.”
강선일은 본래 이렇게 친절한 타입은 아니었다.
어디서 기다리겠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줄 성격은 못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천공의 이름을 가르쳐주며 이곳에서 ‘동화 권능’을 얻게 하고 ‘백경지체’를 경험하게 했던 것은,
‘어쩌면 강선일도 오늘을 예비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잘 알겠어. 그러나 우리가 언약에 묶인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고래일족은 언약을 깰 수 없잖아.”
“그 대가로 저희는 죽게 될 것입니다.”
뒤에선 고래일족들도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저들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나프탄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천공을 지켜야 했다.
언약을 깨서라도 딸이 살아갈 터전을 지켜내야 했다.
“그거 알아?”
“무엇을 말입니까?”
“너희가 지키려는 질서와 법칙은 이미 깨졌어.”
이미 진왕이 태어났다.
진왕이 태어난 시점에서 고래일족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겔론이 너희를 호출했을 텐데 분명.”
근정전에서 겔론이 당황했던 것이 느꼈었다.
천공의 고래일족들이 겔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너희들의 세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을 거야.”
김혁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한에 가깝게 펼쳐져 있는 이 천공이 조금씩 조금씩 축소되고 있었다.
마치 심해가 그랬던 것처럼.
“네가 나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천공은 무너진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김혁진은 말을 하면서 엘카의 기운을 계속 느꼈다.
엘카의 생김새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엘카는 천공에서 회복하면서, 김혁진이 고래일족과 대적하고 체력을 소진한 때를 노릴 것이 분명했다.
‘내 힘이 빠졌을 때 나를 죽이려 하거나.’
사실 이것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다.
김혁진도 지쳤지만 엘카도 지친 상태였다.
엘카도 정면승부를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를 이곳에 가두고 도망치려 하거나.’
이쪽이 가능성이 높았다.
이곳이 심해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이곳에서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도 무(無)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두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려면 결국 고래일족과 싸우면 안 돼.’
이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결국 이들을 설득하여 더 나은 길을 찾아내야만 했다.
“너희들의 질서는 이미 무너졌잖아.”
“……그게 무슨 뜻입니까?”
“태어난 김에 살아가는 네가 삶을 갈구하고 있고, 고래일족에게 지켜야 할 대상이 생겼어.”
무명안에 보였다.
나프탄은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딸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쯤은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었다.
그는 고래일족임과 동시에 한 명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특별한 목적이 없던 너희들이,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지. 너희가 지키려던 세계의 질서는 이미 무너진 거야.”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나프탄은 믿지 않고 싶었다.
저 말을 인정하는 순간, 천공을 복구할 길이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래일족은 천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너도 느끼고 있을 텐데, 나프탄.”
“…….”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나프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믿어.”
이 세계의 천공은 무너진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너희들에게 새로운 천공을 열어줄게.”
김혁진은 새로운 천공에 대해 알고 있다.
신(新) 초월종 초롱이가 살고 있는 그곳.
새로운 고래일족이 탄생하며 새롭게 열린 세상.
그곳은 또 다른 천공이었다.
“제가…… 당신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까?”
지금 당장 증거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엘카가 손을 썼는지, 세니아의 채널은 강제로 닫혔고 외부에서 영상을 불러올 수도 없었다.
신 초월종의 존재를 알려줄 객관적인 자료는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하나뿐이었다.
“믿어라, 천공의 왕, 나프탄.”
겔론에게 그렇게 했듯, 나프탄의 이름을 불렀다.
진왕이 직책과 이름을 불러 진의(眞意)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성을 반쯤 잃은 고래일족의 수장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김혁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내가 먼저 보여줄게.”
믿음을 요구했다.
그래서 먼저 믿음을 보여주기로 했다.
김혁진은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신(新) 천공을 찾는다.’
신 초월종 초롱이의 차원을 찾아야 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초롱이를 느꼈다.
무턱대고 찾으면 찾기 어려웠겠지만, 초롱이의 존재를 매개체로 찾으면 훨씬 수월할 터.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 들어섰다.
누구라도 김혁진의 목을 얼마든지 베어낼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다.
나프탄의 귀에 환청이 들렸다.
-죽여.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잖아.
-죽여야 해. 그래야 천공이 살아.
-네 딸을 생각해야지.
나프탄의 머리가 아파 왔다.
그는 이 환청이 엘카로부터 온 환청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으나,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환상이 보였다.
환상 속에서 나탈리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나탈리!’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천공을 만들어낸 것이 나다.
-천공의 소멸을 막아줄 수 있을 거야.
-얼른 거짓된 왕을 죽여버려.
나프탄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어차피 나프탄은 죽음을 각오했다.
중요한 것은 딸이었다.
여지껏 큰 고민과 갈등 없이 살아왔던 나프탄이기에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다.
‘죽여야 해.’
김혁진을 죽여야 할 것 같았다.
그 기분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죽인다.’
그래야 천공이 산다.
천공이 살아야 나탈리가 살 수 있다.
그때, 김혁진이 입을 열었다.
“내 세상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아.”
여전히 그는 무방비 상태였다.
나프탄이 움찔하는 사이 김혁진이 의지 영창을 구현해내기 시작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볼 수 없는 것들의 증거니.”
진언을 머금은 구원의 영창이었다.
멸망을 마주한 천공과 고래일족 앞에 선 진왕의 입에서 ‘구원의 영창’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프탄이 움찔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 통성과 간구를 내가 들었음이며.”
“끝내 그 창날 같은 고난을 안식과 환희로 승화시키리라.”
“굳건한 믿음과 신뢰 위에 서서 내가 선포하리라.”
그제야 세니아는 왜 영창의 이름이 ‘구원의 영창’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늘을 위한 영창이었구나.’
기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