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83)
#재능만렙 플레이어 683화
나프탄도 김혁진의 영창을 들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그 순간, 그는 천공의 왕으로서 선택을 내렸다.
‘믿는다.’
믿어야 할 논리적인 이유나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혁진을 믿기로 했다.
“볼 수 없는 것들의 증거니.”
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김혁진은 아직 아무런 길도 보여주지 않았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 말이 나프탄에게는 구원으로 다가왔다.
김혁진은 아직 길을 보여주지 않았으나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가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엘카의 말은 악마의 유혹처럼 느껴졌다.
‘나는…….’
천공을 살려야 한다.
딸을 살려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함께 살고 싶다.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딸과의 행복을 원했다.
“그 통성과 간구를 내가 들었음이며.”
그 간절한 소망이 김혁진에게 닿은 기분이었다.
“끝내 그 창날 같은 고난을 안식과 환희로 승화시키리라.”
“굳건한 믿음과 신뢰 위에 서서 내가 선포하리라.”
나프탄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수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앞이 찬란히 빛나며 새로운 소망을 꿈꾸고 미래를 엿보았다.
“굳건한 믿음과 신뢰 위에 서서 내가 선포하리라.”
김혁진의 입에서 마지막 영창이 이어졌다.
[믿음을 가진 자여.] [내가 명령한다. 눈을 바로 떠 세상과 마주하라.]나프탄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거짓된 질서를 무너뜨린다.”
아니야!
엘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공을 가득 메운 그 것은 초음파의 형태로 고래일족의 정신을 괴롭혔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김혁진에게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순간, 나프탄에게는 과거의 모습이 보였다.
김혁진이 안서희에게 건네던 말과 행동들.
그때의 환상이 보였다.
-“서희야. 좀 아플 거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를 믿어.”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나프탄은 자신과 고래들이 해야 할 일들을 깨달았다.
‘믿어야 한다.’
진왕에 대한 강력한 믿음.
그것이 진왕의 권능을 강화시킬 것이었다.
“고래들은 들어라.”
천공의 왕 나프탄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를 인도할 자를 따른다. 그를 믿으며 거짓된 권위가 맞서 싸운다.”
김혁진은 고래들과 싸우지 않을 수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초롱이의 흔적과 신(新) 천공을 찾기 위한 노력에 전념을 쏟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짓된 질서가 나타나는 순간.”
나프탄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여지껏 목표없이 살아왔던 고래일족에게, 고래일족의 왕이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우리의 왕을 지킨다.”
세니아는 그러한 나프탄을 지켜보며 전율을 느꼈다.
‘강렬하고 확고한 믿음. 그 것으로부터 힘이 나오고 있어.’
진언은 아니었으나 진언과 비슷한 힘이었다.
그 힘이 천공 전체로 흘러나가 고래일족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
“우리의 왕은 나프탄, 너잖아.”
말은 그렇게 했으나 고래일족들은 느낄 수 있었다.
김혁진은 왕의 왕이었다.
그들은 나프탄 주위로 모여드는가 싶더니 김혁진을 둘러싸고 방벽을 만들었다.
“거짓된 질서의 이름이 엘카랬나?”
“엘카라. 씹어먹기 좋은 이름이네.”
고래일족으로 이루어진 방벽이 김혁진을 보호했다.
나프탄이 김혁진에게 믿음을 보여주었던 것만큼, 김혁진 역시 나프탄을 믿었다.
‘엘카는 고래일족에게 맡겨놓고. 나는 길을 찾는다.’
믿음에는 믿음으로.
신뢰에는 신뢰로 답해야 했다.
그러나 신(新) 천공을 찾는 작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보일듯 말듯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까지 오느라 많은 체력을 소모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수없이 되뇌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무의식중에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는 할 수 있다.”
그 무의식조차 진언이 되어 김혁진의 몸을 뒤덮었다.
* * *
엘카는 자신이 마련한 최후의 안배마저도 무위로 돌아갈 것만 같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래 놈들!’
그만큼 진왕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겠지.
엘카는 오늘이 아니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사실을 완벽히 깨달았다.
‘나 혼자 죽을 수는 없다.’
제2의 엘카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함께 죽는 것이다, 김혁진.’
그녀가 보랏빛 기운을 피워 올렸다.
천공의 마나를 흡수했다.
그녀의 눈도 김혁진과 마찬가지로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김혁진의 금안보다는 탁한 색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영창이 흘러나왔다.
진왕이 ‘구원의 영창’을 사용했으며, 엘카는 진왕의 구원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엘카의 주름진 눈에 피고름이 고이기 시작했다.
피눈물에 가려져 더이상 황금색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살의를 가진 자여.] [내가 명령한다. 영원한 영면으로 돌아가라.]모든 세계를 향한 명령이었다.
거짓된 질서는 스스로의 멸망을 선택했다.
초월마법.
그것은 진왕뿐만 아니라 여지껏 쌓아올린 모든 질서와 세계를 파괴하는 마법이었다.
그녀의 몸을 둘러싼 보랏빛 마나가 어느새 시뻘건 색으로 변했다.
김혁진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영창을 들었다.
‘저건…… 안서희의 영창.’
구원의 영창을 교묘하게 뒤틀어 사용했었던 영창.
그 영창이 엘카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천공 전체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두근! 두근!
김혁진의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엘카의 마나에 반응했다.
‘아니. 반응하면 안 돼.’
엘카의 마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마나였다.
“끼하하하하하핫!”
엘카의 목소리는 어느새 많이 늙어 있었다.
“나는 진왕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 진왕은 없어.”
엘카의 손이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세계에 생명은 필요 없다.”
김혁진은 눈을 뜨지 않았다.
고래일족이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고래일족이 가진 강대한 힘이라면 저 초월마법의 진행을 어떻게든 막아줄 것이다.
붉은색으로 변해버린 천공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이곳이 점점 뜨거워져 열기가 가득해졌다.
마치 불거인의 불꽃 아라테사로 꽉 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라, 이 못된 할망구야!”
나탈리였다.
나탈리는 어린 고래일족들과 암컷 고래일족들을 모조리 규합하여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프탄이 탄식을 내뱉었다.
“나탈리!”
나프탄은 나탈리가 어른들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수가 이백에 이르렀다.
“저도 힘을 보탤게요, 아빠.”
암컷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래일족은 태생부터 수컷이 암컷보다 강했다.
그래서 수컷들만 이곳으로 모여 있던 상태였다.
그것은 나프탄의 결정이었다.
‘내 결정이 틀렸구나.’
어린 고래일족들과 암컷 고래일족들은 약하지 않았다.
이들이 한데 모이니 더 큰 힘이 났다.
‘저들은 강하다.’
나의 보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고래일족이 일제히 초음파를 쏘아내기 시작했다.
엘카의 마법영창과 초월마법의 구동을 방해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진왕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춘 엘카의 초월마법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몇몇 고래일족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프탄이 고래일족들을 독려했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목에서 피가 끓어 올랐다.
엘카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다고 이미 발동된 초월마법이 없어질 것 같으냐?”
저만치 앞.
한 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카였다.
그녀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듯 킬킬대며 웃었다.
“완벽한 소멸. 그 것이 우리들의 미래인 게야.”
* * *
신(新) 천공의 초롱이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
광활한 우주.
이곳에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 것은 갓 탄생한 초월종인 초롱이를 힘들게 했다.
‘보고 싶어요, 아빠.’
초롱이는 의미없다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매일같이 초음파를 쏘아냈다.
초음파가 되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거라도 해야했다.
‘새로운 세상은 싫어.’
아무도 없는 세상은 싫었다.
감정을 가지게 된 고래일족 초롱이는 이 고독한 적막이 두려웠다.
두려움에 매몰된 초롱이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언제 와요?’
그녀의 의식이 김혁진을 애타게 찾았다.
김혁진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하루만 더 옆에 있어 주세요. 1년에 한 번은 만나주셔야 해요.”
-“내가 이곳으로 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제가 만들 거예요. 반드시 아빠랑 다시 만날 거예요.”
그 약속을 떠올리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맞아.’
김혁진이 혼자서 찾아온다는 약속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다고 약속했었다.
-“아빠. 다음에 봐요! 아빠한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어 있을게요!”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벌써 약해져서 울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우면 안 된다.
아빠가 언제 올지 모른다.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로 약속했다.
‘내가 길을 만들어야 해.’
그런데 그때.
초음파가 되돌아왔다.
끝없이 뻗어나가기만 하던 초음파가 돌아왔다.
‘아빠다!’
한 방향을 향해 초음파를 쏘아냈다.
삐이이이이-!
초롱이의 강렬한 염원이 담겼다.
그와 동시에 김혁진이 눈을 떴다.
‘느껴진다!’
한 번 느꼈으면 되었다.
이제는 길을 열면 된다.
다행히 김혁진은 이 작업을 한 번 했었다.
검림과 지구를 연결시키며 연습을 했었다.
한 번의 연습이 있었으니 훨씬 더 잘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단뢰의 힘을 이용하여.’
이 세계를 찢어내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되었다.
그때, 나프탄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나둘.
고래일족이 모두 넘어졌다.
몇몇 일족의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러나왔고, 몇몇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낄낄낄. 이제 어떻게 할 테냐?”
곧 천공은 무너진다.
이 세계는 이 곳의 모든 생명체와 함께 소멸하고 말 것이다.
엘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길을 찾은 모양이군.”
엘카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너를 지켜줄 놈들이 없어. 그리고 너는 나보다 더 많이 지쳤지.”
더 정확히 말하면, 힘을 비축해야했다.
천공에서 신천공으로 넘어가야 했으니까.
“어차피 가만히 둬도 죽겠지만.”
엘카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여기서 너를 죽이겠어.”
그녀의 손이 수인(手印)을 맺었다.
보랏빛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러면 결국 나의 승리지.”
엘카는 오로지 김혁진을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김혁진은 눈을 뜨지 않았다.
‘길을 연다.’
엘카의 초월마법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고래일족 역시 강대한 일족인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천공에 진입할 수만 있다면 모두 금방 회복할 것이었다.
‘다롱.’
말은 하지 않았다.
여지껏 어깨 위에 꼭 달라붙어 있던 김다롱의 머리 위에 [!]표시가 떠올랐다.
마치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김다롱이 인벤토리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잭슨이 죽으면서 남겼던 ‘향유가 가득 담긴 유리병’이었다.
김다롱이 재빨리 김혁진의 머리 위로 기어오른 뒤 유리병을 깨뜨렸다.
향유가 김혁진의 머리를 타고 몸에 흘러내렸다.
김혁진이 눈을 떴다.
“초월마법을 사용했으니 너는 소멸하겠지.”
엘카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네, 네, 네 이놈……!”
“네가 세운 모든 질서가 무너질 거야.”
김혁진이 깊게 호흡했다.
세례자가 죽으면서 남긴 향유는 왕을 세우는 향유.
그것은 거짓된 질서의 왕을 세우는 향유였다.
“그러니 이제는 네가 세운 왕이 되어도 상관없겠지.”
엘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니까.
엘카가 세운 왕이 되더라도 부작용은 없을 터였다.
“이제 끝이다.”
그러나 이제 거짓된 질서는 사라진다.
김혁진이 예언을 읊었다.
“황금의 권능을 가진 자의 명운이 엇갈리리.”
명운이 이곳에서 확실히 엇갈렸다.
세례자 잭슨의 유언을 떠올렸다.
-“다만 슬픈 것은, 새로운 질서의 우주를 보지 못하고 소멸된다는 것입니…….”
이제는 새로운 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김혁진이 명령했다.
“고래일족들은 들으라. 우리는 새로운 천공에서 새로운 삶을 맞이할 것이다.”
정신을 잃었던 고래일족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나하나 없어지기 시작했다.
진언이 천공 전체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기존의 질서는 모두 무너질 것이다.”
꿈을 꾸던 세례자의 낡은 신발도 이제는 쉴 수 있을 것이었다.
김혁진의 몸도 점차 사라졌다.
엘카의 절규가 들려왔다.
“안 돼!!!”
엘카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거짓된 질서는 진왕을 무너뜨리려 했으나 결국 부서진 건 그녀 혼자였다.
결국 엘카는 천공의 붕괴와 함께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