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 Talent Player RAW novel - Chapter (689)
#재능만렙 플레이어 689화
김혁진의 주변이 어두워졌다.
외부의 시야를 모조리 차단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세계를 단절시켰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김혁진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강선일.’
지금 저 강선일의 형상은 환상인가.
환상 면역을 가진 김혁진이다.
그 김혁진이 진왕이 되었다.
검림의 대마물들조차 김혁진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영겁의 시간을 단련해 온 엘카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이런 환상은 만들어낼 수 없었다.
‘또 다른 엘카가 존재할 리는 없고.’
언젠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건 강선일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나도 모르겠다.”
강선일은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서 김혁진을 노려보았다.
“네가 날 되살린 게 아니고?”
“널 되살리는 게 가능한 일이었나?”
“미치겠군.”
강선일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수많은 것들을 예비하고 안배했던 강선일이지만 자신의 부활을 염두에 둔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네놈이 되살리지 않았다는 게 확실한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한 마디를 안 지는군.”
강선일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김혁진을 바라보았다.
김혁진은 신기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는…… 강선일이 반갑나?’
왠지 그런 기분이었다.
강선일이 사라졌을 때 김혁진은 고독을 느꼈었다.
앞서가던 누군가가 사라졌고, 이제는 스스로 길을 개척해서 걸어가야 했으니까.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던 친구 하나를 잃은 느낌이었었다.
강선일이 어두운 공간의 벽면에 등을 대고 앉았다.
“반가워하지 마라.”
“티 났나?”
“날 왜 반가워하는 거냐, 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강선일도 사실 김혁진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되살아난 지금, 김혁진의 존재만큼 든든한 사람은 없었다.
김혁진이 없는 세상은 끔찍했다.
영원의 시간 동안 목표로 삼아왔던 것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삶의 목표가 사라지면서 삶에 대한 갈망도 없어졌다.
그는 오래도록 혼자였고 혼자 많은 것들을 감당해 왔다.
강선일은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혼자여도 괜찮았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군.’
그게 아니었다.
그때의 강선일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여도 괜찮아서 혼자였던 것이 아니라,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강선일은 그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다 이루었냐?”
“당나귀 장인은 다 이루었다고 말했다.”
“넌?”
“나는 아직.”
아직 할 일이 많다.
엄마와 선화의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누나도 시집 보내야 한다.
다롱이에게 치킨집도 만들어줘야 하고 용돌이도 책임져야 한다.
이사벨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기에 영원도 부족했다.
“신기한 놈이군. 아직이라니.”
둘은 별다른 대화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강선일은 여전히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을 이루었고 이제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속 시원히 소멸을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막상 김혁진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는 아직도 많은 목표가 존재하는구나.’
그 강대했던 엘카를 무너뜨렸으면서도.
진왕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김혁진에게는 아직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애송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김혁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강선일의 소멸 직전까지.
김혁진은 늘 약자였다.
‘내 뒤를 아등바등 쫓아오는 기특한 놈이었지.’
그랬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단순히 김혁진이 강해진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보고 있구나, 너는.’
강선일이 가지지 못했던 것.
강선일이 꿈꾸지 못했던 것.
강선일이 보지 못했던 것.
그것들이 김혁진에게는 있었다.
‘이제는…….’
과거의 김혁진이 자신의 발자취를 좇는 후발주자였다면,
‘내가 네 뒤를 쫓겠군.’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김혁진은 이제 자신보다 훨씬 더 앞서서 걸어가고 있다.
그것도 더 밝은 길을.
‘기분이 나쁘지 않아.’
누군가 내 앞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강선일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혼자가 아니었던 때가 있었지.’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지만,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내가 살아났다는 건. 그들에게도 가망이 있는 건가?’
강선일은 문득 그때가 그리워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플레이에 집중하며 동료들과 함께 지내왔던 시간들.
그때는 지금보다 행복했던 것 같았다.
“너는 진리를 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 내가 왜 살아난 건지 알아내.”
“말투가 영 거슬리네.”
김혁진은 피식 웃었다.
강선일의 명령조가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자신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은 존재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못한다는 뜻이냐?”
“아니.”
“얼마나 걸려?”
“글쎄. 한 3일?”
김혁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명안을 사용해서 열심히 관찰하면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선일. 배 안 고프냐?”
“무슨 소리냐?”
김혁진과 강선일 정도 되면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지 오래되었으니까.
굳이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몸을 가졌다.
“밥이나 먹자.”
“무슨 밥?”
강선일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누나가 유명 쉐프야.”
김혁진이 몸을 돌렸다.
그가 등을 보이고 걷자 주변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장담하지. 단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신세계를 만나게 될 거야.”
* * *
강선일은 생소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밥을 먹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속에 오로지 홀로 남은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김아영이 강선일 앞에 요리를 놔주었다.
“연저육찜이에요.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오랜 시간 숙성시켜 부드럽게 쪄낸 돼지고기였다.
강선일이 연저육찜을 한 점 집어먹었다.
‘맛있군.’
신세계가 맞았다.
‘밥을 먹어본 게 언제던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먹어본 적은 정말로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율리아가 반찬 투정을 엄청 했었는데.’
고귀한 황실의 혈통. 그것도 막내라서 그런지 입맛이 까다로웠었다.
거신길드원들은 강선일에 대해 큰 관심과 호기심을 드러냈고, 강선일은 그들의 관심을 모조리 무시했다.
“성격이 모난 놈이라서 그래. 그래도 심성은 나쁘지 않으니까 다들 잘 챙겨줘.”
주변은 굉장히 시끄러웠지만 강선일의 세계는 고요했다.
작은 방의 문을 스스로 닫고서 음식에만 집중했다.
신연서가 김혁진의 귀에 속삭였다.
“대장. 쟤 우는데?”
“그러게.”
“여기서 대장 다음으로 센 애 아냐?”
“나보다 더 세.”
무력은 이제 김혁진 자신이 더 앞설 것이라 생각은 했다.
그러나 무력 외 다른 것.
이를테면 영원의 시간 동안 외로움과 고독을 견뎌낸 정신력은 강선일이 더 강했다.
김혁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나라면 못 버텼을 거야.’
혼자서 그 오랜 시간을 싸워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혁진은 잘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혼자 잘나서가 아니었다.
지금 옆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강선일은 혼자 버텼다.’
그 강선일이 울고 있었다.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김혁진은 저 눈물이 얼마나 무거운 눈물인지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뭐.’
김혁진도 연저육찜을 한 점 집어먹었다.
소름 끼칠 만큼 맛있었다.
‘앞으로 혼자는 아닐 거다, 아마도.’
* * *
3일이 지나고, 김혁진은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숭고한 염원이 사라졌다.’
무명안을 통해 과거의 기록을 읽어들였다.
무명안은 ‘심해의 눈동자’와 ‘숭고한 염원’이 나누었던 대화까지도 찾아냈다.
숭고한 염원은 자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당신을 관찰해온 자입니다. 지금은 숭고한 염원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알쏭달쏭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십시오. 나는 찾았습니다.”
김혁진은 ‘숭고한 염원’이 찾아낸 존재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본래 모든 것을 관조하고 바라보기만 하던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숭고한 염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면서 어떠한 목적을 갖게 되었다.
수많은 염원의 집합체.
그 집합체가 하나의 행동을 해냈다.
‘숭고한 염원이 기적을 일으킨 거야.’
겨우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을 이적.
당나귀 장인이 자신을 모두 소모하여 기적을 일으켰듯, 숭고한 염원 역시 또 다른 기적을 일으켰다.
강선일이 소멸하던 그 시점에 손을 써둔 모양이었다.
‘관찰만 해왔던 그가.’
숭고한 염원은 직접적인 개입을 최대한 피했었다.
그랬던 그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
‘강선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다.’
바라보기만 하는 것을 멈추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냈다.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겠어.’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강선일은 확실히 되살아났다.
김혁진의 눈에 메시지가 보였다.
[‘막내 황녀님’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고 중얼거립니다. 너 같은 거 살아 돌아와 봤자 하나도 안 기쁘고, 귀찮다고만 주장합니다. 그러나 ‘막내 황녀님’은 울고 있습니다.]때가 되면 강선일에게 이 메시지도 전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강선일이 되살아났다는 건, 어쩌면 그의 동료들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숭고한 염원’이 어디까지 보았고 어디까지 안배했는지.
지금의 김혁진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되살아난 강선일은 하나의 목표를 찾게 되었다.
그건 김선화를 이기는 것이었다.
“젠장!”
그가 욕설을 내뱉자 DMC리버뷰자이 땅 전체가 울렸다.
김선화가 킬킬대고 웃었다.
“승질 내면 못 써요.”
김선화가 게임기를 들어 올렸다.
“게임 이렇게 못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모든 신체 능력이 이토록 뛰어난데 왜 고전 게임인 테트리스는 못하는지 모르겠다.
불가사의의 영역이었다.
“한 판 더 하지.”
“오늘은 이제 끝. 세 판 이겼잖아요. 오늘 설거지는 아저씨 몫이네요. 아이 부러워라.”
즐거운 설거지.
행복한 설거지.
“나는야 테트리스 개고수. 아저씨는 테트리스 개허접.”
김선화는 말도 안 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강선일은 저 말도 안 되는 도발에 심히 분노했다.
“반드시 이겨주마.”
강선일은 꼭 이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그게 강선일의 목표였다.
* * *
김혁진이 물었다.
“용혈에 대해 잘 아나?”
“알지.”
마왕군과 가장 오랜 시간 대적해 온 사람이 강선일이었다.
그에 관한 정보도 가장 많이 알고 있었고.
“용체화(龍體化)는?”
“안다.”
“방법에 대해서도?”
“별로 어렵지 않아.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강선일은 용혈과 용체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순혈 용족(龍族)의 피가 필요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용은 거의 멸종된 상태이고, 충분한 양의 피를 구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순혈 용족의 피는 진하다. 그래서 순혈이 아닌 다른 잡룡의 피와 섞여도 희석되지 않지. 특히나 네가 데리고 있는 무색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오히려 잡룡의 피가 순혈 용족의 피로 변한다고 했다.
순혈 용족의 피는 조금만 있어도 괜찮다고 했다.
“그 정도 피를 뽑아낼 수만 있다면 그를 정제하여 용체화 포션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마왕군 놈들이 썼던 방법이지.”
“잡룡이라면 어떤 놈들을 말하는 거지? 와이번이나 수룡 같은 놈들인가?”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래도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검림의 용족 남매인 빌헬롬탄과 키락사스 같은 놈들 정도는 되어야지.”
새로운 정보를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