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05
105
“이 사람이!”
“앗차! 미안하이. 하도 분통이 터져서 나도 모르게.”
상조문을 돕고자 왔던 군웅들은 분분히 흩어졌다.
일부는 마차를 포위하고 있는 군웅들과 합류했다. 마야를 제지할 만한 대문파와 연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연이 닿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하다못해 문지기와 안면이 있어도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떠나갔다.
“정말 상종 못할 사람들이군. 이게 뭐야? 사람을 완전히 걸레로 만들었잖아?”
“아예 작심하고 그어댄 것 같은데?”
“휴우! 그 괴물들과 적이 된다면 무슨 수로 싸우지?”
사람들은 일제히 마지막 말을 한 철탑거추를 흘겨봤다.
마도와 수검이 철저히 당한 적이 있지 않은가. 도(刀)에 마혼(魔魂)이 깃들어 있다는 마도도, 일검일살(一劍一殺)이라는 수검도 병기 한 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당했다.
그들이 죽이고자 하면 죽고, 살리고자 하면 사는 비참한 신세였다.
그들과 다시 한 번 싸운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아직은 그 누구도 그들의 은형술을 깨뜨릴 비책이 없다. 이것저것 가능해 보이는 것은 모조리 끌어모아도 결과는 항상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끝났다.
천멸도의 은형술을 깨려면 마야 이상의 능력을 지녀야 한다.
마야가 손봐준 무공이니까. 마야가 완벽하게 다듬어주면서 스무 사람이 죽을 일도 한 사람 정도 다치는 것으로 그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무공이니까.
그들도 무너진 적이 있다.
금연화에게도 무너졌고, 절혼마녀, 일령에게도 무너졌다.
금연화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죽이기까지 했지만 꼭 죽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은형술을 깨뜨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긴 것이다. 숨은 자를 찾아냈으면 끝난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세 여인은 심법에 의존하기도 했고, 신법을 극상승으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심법이든, 신법이든, 검공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무엇에 집중했든지 간에 초감각 상태에 있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초감각에 열쇠가 있다. 인간 이상의 감각, 오감이 아니라 육감에 의존하는…… 아니다. 육감도 아니라 육감까지도 던져 버리고 무엇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각이 필요하다.
모두들 천멸도 살수들과의 겨룸을 생각하고 있을 때, 금연화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이건 마야의 생각이 아녜요.”
“무슨 소리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수검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마야 같으면 이토록 무모한 일을 벌이지 않아요. 마야가 혼수상태에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거야 짐작하고 있는 일이니…….”
“다담선자의 의도도 아녜요. 다담선자는 강해 보여도 약해요. 사람 목숨을 이런 식으로 빼앗지는 않아요.”
“다담이 움직였겠나? 실제로 움직인 것은 천멸도니 죽이는 방법 또한 그들 식일 거고.”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다담선자 같으면 천멸도가 움직이면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것까지 생각한다는 거죠. 이어질 사태까지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 생각을 못했겠어요?”
“흠! 그럼 이건 천멸도주가 독단으로 움직였다는 건가?”
마도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금연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호호호! 내가 다담선자라면 마야만 움켜쥐고 전장을 빠져나가겠어요. 남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만이 마야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니까요. 아시다시피 백 일 안에 멸신구관까지 찾아가려면 시간도 촉박하고.”
“그럼 지금 마차에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흠……!”
마도는 손을 들어 턱을 괴었다.
혈유는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철탑거추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고, 고루쌍마는 서로를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싸움이 벌어질 게다. 그 싸움은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 천멸도주가 맡겠다고 나섰으나 자신들 또한 주축이 되어 싸워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는 생각지 않는다.
마인이 되어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나 이제는 밝은 세상이라는 그들과 맞서 당당하게 손속을 섞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했지 않은가.
상조문은 천멸도주가 죽였으나 마야가 죽인 것이라 한다. 정작 마야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모두들 마야가 한 짓이라고 한다.
통구에서 천절수를 죽였다. 그것 역시 마야가 한 일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천멸도주가 누굴 죽였던, 금연화가 누굴 죽였던 모두 마야가 죽인 것이 된다.
왜? 모두 마도인이라서 그렇다.
마도인은 한통속이다. 우두머리는 마야다. 모든 일이 마야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들이다. 마야의 수하들은 절대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오직 마야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이다. 그러니 마야의 수하들은 무공이 강하든 약하든 모두 조무래기들이다.
이것이 정도무림인들의 셈법이다.
의지도, 생각도 없는 괴뢰.
그래도 좋다. 이제부터 헤어진 짚신 취급도 하지 않던 인간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단단히 보여줄 테니까.
“다담선자는 우리가 알아서 움직여 주길 바랄 거예요. 자! 가요!”
금연화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어딜?”
혈유가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천멸도의 움직임을 봐요. 아무 움직임도 없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이게 그들 방식이니까…… 그럼 마차는 누가 움직여요? 우리가 움직여야 되잖아요.”
금연화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마차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네가 금연화란 계집이냐?”
“천…… 멸도주?”
“가능한 오래 버텨라.”
“걱정 마세요.”
“흥! 늦지 않게 찾아온 걸 보면 머리는 돌아가는 계집이군.”
“모쪼록.”
“뭐?”
“모쪼록 부탁해요. 오다가 상조문이 몰살당한 현장을 봤어요. 앞으로도 상조문을 치듯이 그렇게. 우리 모두 전멸할 건 불 보듯 뻔한데…… 그럴 바에는 치나 떨리게 해야죠.”
“…….”
천멸도주는 말을 받지 않고 두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을 쏘아냈다. 금연화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겠다는 듯이.
“왜 그렇게……?”
“혈귀대주가 생각나서.”
“불쾌하군요.”
“호호호! 불쾌해? 그럼 하나 묻자.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혈귀대주를 죽인 남무림에 복수를 하겠다는 거냐, 아니면 마야가 순탄하게 길을 갈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겠다는 거냐?”
“세상에는 흑과 백밖에 없다는 투군요.”
“호호호!”
천멸도주는 상쾌하게 웃으며 사라졌다.
천멸도주와 금연화의 첫 만남이었다.
2
날이 밝은 후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려는 듯이 항아리로 들이부어 댔다.
쉭! 쉭쉭……!
다담선자는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에 닿고, 진기가 고갈된다 싶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달릴 수 있을 때 한 걸음이라도 더 달려놔야 한다.
빗방울이 몸에 떨어지기 무섭게 튕겨 나가는 것 같았다.
의외인 것은 뜻밖에도 정심한 시마의 내력이다.
그는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세 여인은 나름대로 기연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마야를 만났고, 그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이다. 마령음이 되었든 적멸주가 되었든 그의 소리 덕분에 운기가 훨씬 원활해졌고, 내력도 그를 만나기 전에 비해 두세 배는 강해졌다.
무엇보다도 초식을 이해하고 소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해졌다.
천하에 다시없을 둔재가 어느 날 갑자기 천재로 변하는 것처럼 평범하다 여겼던 머리가 본인들이 생각해도 깜짝 놀랄 만큼 민활하게 돌아갔다.
마야는 사람을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가 보여준 능력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다. 그런 능력들이 총체적으로 모여서 사람을 발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 그가 지닌 능력 중 가장 돋보이는 능력으로 보이는 것을 어찌하랴.
세 여인은 이 세상 그 누구와도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시마도 그런 경우일 것 같다.
마야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마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일견후즉파라는 눈썰미로 단점을 찾아내고, 완벽할 수 있게끔 손봐주었을 게다.
시마는 어떤 도움을 받았을까?
언젠가 시독(屍毒)을 흡취하지 않고도 녹혈마공을 수련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시마의 내공은 세 여인보다도 정심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지, 진정한 무공을 드러낸다면 세 여인 중에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스럽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시마의 기도는 안으로 감춰져 있다. 나약하고 골골거리는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항상 흐트러짐이 없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경에서도 그는 고요하다.
시마는 앞에 나서는 일이 없다.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의견을 말하지도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 누가 무엇을 하자고 하면 따라가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강해 보이는 이유는?
모른다. 단지 직감이다. 한참을 달려왔어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로는 그가 강하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더욱 심오한 느낌이 있다. 아직은 그런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저쯤에서 쉬었다 가요.”
다담선자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움막을 가리켰다.
쏴아아아……! 꿀꺽! 꿀꺽!
시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호로병을 꺼내 술을 들이켰다.
“마시고 싶지 않아요?”
다담선자는 절혼마녀를 보며 물었다.
다담선자나 절혼마녀나 술이라면 이골이 났다. 아니, 넌덜머리가 난다고 해야 한다. 한때는 술 없으면 살지 못했지만 술이 원수보다 밉기도 했다.
술은 처참한 인생을 도피시켜 주는 도피처였다. 또한 처참한 인생을 더욱 악취가 심한 시궁창으로 밀어 넣는 역할도 했다.
“마시고 싶지. 억지로 참는 거야. 늙은이가 입 댄 술병에 입 대기는 싫거든.”
“클클! 그 입은 죽어도 썩지 않을 입이라더냐? 클클! 아서라, 나 혼자 마시기도 모자라다.”
시마는 힘겨운 표정으로 마야를 내려놓았다.
이제야 느낀 거지만 저 표정 또한 습관에 불과하다. 언제나 힘든 듯, 언제나 힘없는 듯, 언제나 아픈 듯…….
“호호! 귀도 밝으셔라. 일부러 소리를 죽였는데 들어버리셨으니, 민망하네요.”
“민망? 흥! 세상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고함질러 놓고는…….”
절혼마녀와 시마는 오랜만에 티격태격했다.
한 가지, 그런 와중에도 이주회첨진은 놓치지 않았다. 혼절한 마야를 중심으로 좌우로는 시마와 다담선자가, 앞쪽으로는 절혼마녀와 일령이 위치했다.
어느 때라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급습이라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예상되는 적을 천멸도의 살수들로 잡으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비진이 형성되었다.
천멸도 살수가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 어디서 공격해 올까? 앞에서 공격해 오면? 뒤는? 땅속에서 튀어나오면?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천멸도 살수들에게 쫓긴다고 가정하면 곳곳이 빈틈투성이었고, 막을 수 있는 최대한의 움직임을 강구하게 된다.
이주회첨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졌다.
“그래, 여자의 비궁…… 천멸도주가 말한 곳 말이야. 짐작 가는 데라도 있어?”
“전혀요. 일단 남만으로 가려고요.”
“어딘지 알면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할 텐데, 하필이면 이럴 때 정신을 놓아 가지고는…….”
근심 또한 시간이 경과할수록 깊어졌다.
마야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다면? 남만에 도착했는 데도 눈을 뜨지 못한다면? 멸신구관이 설치된 곳을 찾았다고 하자.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하자. 그 시점에도 마야가 이 상태라면?
보통 사람 같으면 혈(穴)도 눌러보고, 침도 놓아봤으리라. 정신이 돌아오는 데 특효라는 온갖 처방전도 동원했으리라.
하나 마야의 경우는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다.
그가 겪고 있는 저주의 자오법신은 인세(人世)에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는 병세다. 무인이나 의원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기혈의 흐름이 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육신을 지녔으되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추궁과혈(推宮過穴)은 분명히 약이다. 병세에 알맞은 혈을 적합한 강도로 시술하면 영약을 복용한 것 같은 효험을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마야에게는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른다.
상식으로 헤아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에 치료 또한 함부로 행할 수 없다.
“어때?”
절혼마녀가 다담선자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이주회첨진의 한쪽 창끝을 맡고 있는 관계로 쉬어 가는 곳에서조차 마야를 볼 수 없었다.
“똑같아요. 지금 시간이 오시쯤 되었을 텐데 기혈이 뒤바뀌는 느낌도 잡을 수 없어요.”
“맥은?”
“거의.”
“호흡은?”
“…….”
다담선자는 대답도 필요없다는 듯 고개만 가로저었다.
“체온도?”
다담선자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절혼마녀의 이번 물음은 의미가 달랐다.
체온이 거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체온이 이상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여전하냐는 뜻이다.
마야가 혼절하고 하루쯤 경과했을 때부터 그의 몸에서 이상 변화가 일어났다. 양기가 있는 쪽 피부는 불구덩이처럼 뜨거웠고, 음기가 있는 쪽은 얼음처럼 찼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다. 음기가 있는 곳이 뜨겁고, 양기가 있는 곳이 차가울 수도 있다. 피부란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뜨거운 것이고 열을 빼앗기면 차갑게 되지만, 이 또한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