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06
106
어떤 게 맞는지는 마야가 깨어나지 않는 한 알아낼 방법이 없다.
“요기들 해요. 저녁까지는 쉴 틈이 없을 테니까요.”
꼭두새벽에 길을 나서서 한낮이 되도록 쌀 한 톨 입에 넣지 못했다. 얼굴을 후려치는 장대비가 입술을 적실 때 혀를 내밀어 입 안을 적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요기는 해야 한다. 가능한 기운을 충족시켜 놓아야 한다. 하나 요기할 것이 변변치 않다. 준비해 온 것이라고는 육포(肉脯) 몇 조각이 전부다. 그때,
덜컥! 덜컥! 덜컹……!
멀리서 덜컹거리는 달구지 소리가 들려왔다.
인적이 드문 길만 골라서 달려왔다. 눈에 띄는 사람은 모두 남무림 무인들이라는 전제를 깔고 행동했다. 장대비 덕을 많이 받아서 현재까지는 오는 도중에 만난 사람이 없다.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인가? 인근 주민인가?
항상 반격할 준비가 갖춰져 있기에 딱히 경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덜컹! 덜컹……!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달구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황소가 이끄는 우마차는 거친 길을 힘들게 올라왔다.
‘적!’
육포를 꺼내 입에 넣으려던 동작이 뚝 멈춰졌다.
황소는 특이할 게 없다. 늘 보던 황소다. 마차도 특이하지 않다. 바퀴 두 개짜리 달구지로, 농촌에서는 흔하다.
달구지를 모는 사람도 평범하다. 모초(茅草)로 만든 도롱이를 입고, 챙이 커서 전신을 가리는 대나무 삿갓을 썼다. 비 오는 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우장(雨裝)이다.
어디를 보나 흔하기 이를 데 없지만, 경계심이 드는 것은 농부가 사람도 다니기 힘든 길을 달구지까지 몰고 온다는 점이다.
꿀꺽! 꿀꺽……!
시마는 여전히 술을 마셨다. 아마도 호로병을 완전히 비울 요량인 듯싶다.
“쯧! 계집들이 먹을 복은 있군.”
시미가 지나가는 말처럼 흘릴 때, 다담선자도 달구지를 몰고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저 사람이 어떻게!”
“크크크! 저놈이 흑조편복이란 사실을 잊었냐? 지독한 놈이지, 아주 지독한 놈. 입에 물었다 하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는 독종이야. 저런 놈에게 세 번이나 기회를 주었으니…… 쯧!”
달구지를 타고 우장까지 걸치고 오는 사람은 흑조편복이었다.
달구지에는 갓 지은 듯 김이 모락모락 솟는 밥과 야채가 비 맞지 말라고 기름종이로 덮여 있었다.
“아미타불! 소승,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
흑조편복은 염불부터 외운 후 식사거리를 건넸다.
“놀랍군요. 우리가 여기서 쉬어 갈 줄 알았다는 거군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놀랍지 않은 일이외다. 달리는 방향을 보고, 속도를 계산하고, 마음의 여유 정도를 감안하면 어디쯤에서 땀을 식힐지 한눈에 읽히죠.”
“그런가요?”
“달리는 사람은 힘든 곳을 골라 가니 빨리 달리기는 하지만 속도가 늦고, 우리 같은 사람은 편한 길로 와서 대기하고 있으니 빠를 수 있고…… 다 그런 거외다.”
“덕분에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됐어요.”
“맛있게 드시길. 그럼 소승은 이만.”
흑조편복은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그는 왔던 길을 돌아간다. 황소를 재촉하며 덜컹거리는 길을 뒤뚱거리며 간다.
세 여인은 흑조편복이 주고 간 식사를 앞에 놓고 구경만 했다.
“먹어라. 수작은 부리지 않았으니까.”
시마가 세 여인의 마음을 읽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흑조편복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사람도 없고, 마야를 지키는 사람들만 어떻게 요리하면…… 음식에 미혼약이나 좀 더 잔인한 수를 쓰자면 독약 정도를 타서 먹이면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다.
방법은 있다. 한 명이 먼저 먹고 상태를 지켜본 후에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이다. 하나 이 방법에도 구멍이 있다. 흑조편복 같은 사람이 손을 쓴다면 식사 후 한두 시진쯤 경과한 후에 독이 발작하게끔 조절할 수 있다.
결국 그가 건네준 음식은 먹을 수 없다.
내심 그렇게 생각했을 때, 시마가 먹으라고 말해왔다.
“정말로 이 안에……?”
“끌끌! 저놈, 다른 수는 몰라도 독에 의존하지는 않을 거니까 차후에도 가져오는 것이 있으면 날름날름 받아먹어. 큭큭큭!”
다담선자는 자신있어 하는 시마의 표정을 본 후에야 안심하고 웃었다.
시신들과 어울려 살아야만 수련해 낼 수 있다는 무공이 녹혈마공이다. 시신 썩는 냄새가 몸에 배이고, 시신이 썩은 물로 갈증을 풀어야 하며, 시신이 내뿜는 독기를 먹고 살아야 한다.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독인 시독(屍毒)을 몸 안에 갈무리하고 다니는 사람이니 그 어떤 독이 시마를 중독시킬 수 있을 것인가.
세 여인을 중독시켰다고 마야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마까지 처리해야 하는데, 시마라는 인물 또한 녹록치 않다. 독을 뿌려댄다는 면으로 보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인물일 수도 있다.
결국, 독을 쓸 수는 있으나 실패할 공산은 매우 높다.
“그렇군요. 독을 쓴다는 것은 기회 한 번을 날리는 것이죠. 독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마께서 계시니 어설픈 수를 쓸 수도 없고요.”
“계집아, 얼굴에 금칠은 그만 하고 먹기나 해.”
시마는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더니 음식을 덮었던 기름종이를 걷어 가 마야의 얼굴에 덮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대하듯이 자상한 손길이었다.
‘저 두 사람…… 보통 관계는 아닌데…….’
마야와 시마는 늘 붙어다닌다. 우연히 혹은 강압에 못 이겨서, 또는 어떠한 사정을 달아서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지만 언제나 두 사람은 같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는 시마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죽은 듯이 조용한 사람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시마와 마야의 밀접한 관계는 지금처럼 사람이 적을수록 뚜렷이 드러난다.
마야와 시마는 어떤 관계일까?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다.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보통 마인들과 마찬가지로 마야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고, 그가 좋아서 쫓아다닌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녹혈마공으로 인해 주화입마에 걸렸는데 마야가 도와줘야 산다. 지금 마야가 도와주는 중이다.
마야만이 녹혈마공을 천하제일마공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한데 놈이 뻣댕기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는단 말이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쫓아다니며 구걸할 밖에.
놈이 좋아서 쫓아다니나? 이 나이에 어딜 가서 뭐 해? 한데 놈과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단 말이지. 뭔 놈의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지. 곧 뒈질 마당에 이만한 소일거리를 어디 가서 찾아? 안 그래? 너 같으면 이놈을 놓치겠어?
시마가 했던 무수한 말들…… 이 모든 말들이 허허롭게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담선자는 처음으로 마야와 시마의 관계에 주목했다.
‘정신이 들면…… 깨어나면…… 꼭 물어봐야겠어.’
뒤통수에 무엇인가 엉겨붙은 느낌은 뭐란 말인가.
다담선자는 자신의 판단에 어떤 착오가 있었는지 생각에서부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전 과정을 되짚어봤다.
쉭! 쉭! 쉭……!
달려나가는 속도는 한결 뒤졌다.
그녀가 더디니 앞서 나가던 두 여인도 걸음을 늦출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나아가는 속도가 평범해졌다.
“무슨 고민 있어?”
절혼마녀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담선자는 듣지 못했다. 생각에 깊이 빠져 절혼마녀가 뒤돌아보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절혼마녀는 더 묻지 않았다. 한층 더 경각심을 드높여 주위를 살피며 나아갈 뿐이다. 다담선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으니 그녀 몫까지 살펴야 한다.
“훗!”
절혼마녀는 혼자만이 알 수 있는 웃음을 흘렸다.
따지고 보면 다담선자보다는 일령이나 금연화를 훨씬 오래 알았다. 하나 지금에 와서 보면 금연화나 일령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다담선자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게 된 것 같다.
눈빛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고, 미미한 표정 변화는 감정의 흐름을 말해주고……
사내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여인이기에 볼 수 있다.
연적이라 생각했는데,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한마디만 물었을 뿐이고, 대답조차 듣지 못했지만 다담선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았다. 앞서 나가지 않았다면, 옆에서 같이 달리는 중이었다면, 그래서 다담선자의 얼굴을 보았더라면 의미없는 물음도 던지지 않았을 게다.
“그만!”
다담선자가 느닷없이 소리쳤다.
절혼마녀와 일령은 이미 예견하고 있던 터라 즉시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다담선자는 주위부터 둘러봤다.
“왜? 누가 미행이라도 하는 것 같아?”
다담선자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세세한 곳까지 살피며 주위를 둘러보느라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많다.
절혼마녀와 일령은 덩달아 주위를 살폈다.
“휴우! 강호란 정말 힘들군요. 완벽하다는 것도 없고, 안전한 것도 없고…… 늘 뒤를 밟히고, 늘 긴장해야 하는 곳이에요.”
“큭큭! 강호밥 먹기가 쉬운 줄 알았냐? 강호란 그런 곳이지. 한쪽 발을 늘 검 위에 올려놓고 사는 곳. 빠져나가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곳. 큭큭큭! 이것아, 정신 바짝 차려.”
시마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천천히 앞서 나갔다.
다담선자도 시마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걸었다.
빨리 달릴 필요가 없었다. 뒤를 밟히고 있는데,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무엇을 숨기고자 달린단 말인가.
흑조편복이 알았듯이, 천멸도주가 파악했듯이…… 그녀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많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다. 산천초목은 빗속에 잠겨 있고, 동물들은 굴속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인다.
마야가 없는 마차를 감시하는 자들은 평범한 자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뒤를 밟는 자가 있다면 누구일까?
천멸도 살수들이다. 그들이 따라붙는다. 천멸도주의 수하가 아니라 청령단과 맞바꾼 남도문 살수들, 주림의 백인수들이 뒤를 밟고 있을 공산이 칠 할은 넘는다.
그 다음은? 천멸도 살수들이 뒤를 밟고 있다면 사방천마 역시 따라붙었다고 봐야 한다.
또 그 다음은? 생각할 것도 없다. 제삼무신가!
남아 있는 자들에게 달라붙었어야 할 자들이 속지 않고 마야를 따라오고 있다.
그럼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마야를 죽이지 않는 것일까?
남도문 살수들이야 겪어봐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지만, 사방천마나 제삼무신가 무인들이 나서면 곤란에 처해질 가능성이 구 할에 이르는데 말이다.
적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다.
이 정도의 일은 무풍곡에서 적안 사태의 공격을 받을 때부터 알았어야 한다.
적안 사태가 어떻게 마야의 앞길을 막을 수 있었나?
아니, 그전에…… 천멸도주는 어떻게 마야를 따라올 수 있었나?
세상이 온통 남무림의 눈과 귀다. 눈으로 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에 맡아지는 모든 냄새가 남무림 편이다.
북무림은 북무림대로, 남무림은 남무림대로 철통같은 감시의 눈길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인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누가 어디에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득달같이 달려가 죽여댔으니 어찌 살아남겠나. 마인의 이름을 얹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다.
그들의 눈길을 피하려면 마야가 했던 것처럼 굴을 이용하여 이동하거나 예상치 못한 수를 계속 두어가야 한다. 그것도 북무림에서는 삼뇌, 남무림에서는 야광의 머리를 능가해야 하니 사실상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마야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마야의 능력이, 그의 머리가, 그의 신념이 그립다.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뿐인데, 그의 몸이 옆에 있는데 왜 이토록 그리운 것일까?
“알고 있었어요?”
시마에게 물었다.
“큭큭! 뭘?”
“알고 있었군요.”
“느닷없이 무슨 소리야? 뭘 알고 있었다고 그래?”
“피할 수 없다는 것이요.”
“클클클!”
“그런데 왜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어요?”
“이놈도 아무 소리를 하지 않는데 내가 뭔 소릴 해.”
시마는 업고 있던 마야를 다시 추슬러 업었다.
“왜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대요?”
“그걸 왜 내게 물어? 이놈에게 물어야지. 깨어나면 물어봐.”
순간, 다담선자는 머리가 띵 울렸다.
시마…… 그는 마야가 깨어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절대적으로 깨어나리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의 언행에는 애달픔이나 조급함이 없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평온할 수 있다.
그럼 자신들은? 그의 여인이라는 자신들은?
“그렇군요. 고통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 똑똑해지기 위해서는 배움의 고통을. 강한 무공을 얻기 위해서는 살과 뼈가 갈라지고 부서지는 고통을.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풍파와 싸워 이겨내는 고통을. 아무리 그래도 너무했어요.”
다담선자는 손을 들어 시마의 등에 푹 엎드려 있는 마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는 일어날 것이다. 늦었지만,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확신한다. 이성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다.
“숨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
“네.”
다담선자의 대답 소리가 한결 맑아졌다.
“그럼 다시 숨으래.”
“네?”
“이놈이 혼절하기 전에 웃으면서 한 말이 있거든. 머지않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말해주라더라. 피할 수 없다고 느낄 때 피해라.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막다른 길에서 활로를 찾아라. 길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길을 찾지만 길이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현자(賢者)만이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