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11
111
“사람을 무시하는 버릇이 있군요.”
금연화도 마주 쏘아봤다.
그렇잖아도 고루쌍마와 철탑거추의 죽음 때문에 심사가 괴롭던 차였다. 누가 뺨이라도 때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터였다. 시비를 걸어와도 좋고, 싸움을 걸어오면 더 좋고.
“남도문 뇌옥에서 네 손에 우리 식솔들이 적잖이 죽은 것을 안다. 마야, 그 새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머리 좀 굴리면서 살아라.”
금연화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도발인가? 천멸도주는 이번 일을 기화로 옛일에 대한 보복을 하고자 하는가.
“천멸도의 무공이 최강은 아니죠. 언제라도…….”
금연화는 말을 하다 중도에서 그쳤다.
천멸도주의 눈가에 떠오른 것은…… 경멸? 비웃음? 조롱?
“아까 그 새끼는 오 리 밖에 매복이 있다고 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심문 도중에 끼어들어서 미련하게 그런 걸 직접 물어보려던 것도 아니었고?”
“…….”
금연화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알겠어? 머리 좀 쓰면서 살아.”
천멸도주는 거침없이 조롱을 내뱉고는 벌떡 일어섰다.
“하하하! 그놈들 꼬라지 좋다!”
“저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 줄 왜 몰랐을까? 한 놈씩 한 놈씩 차근차근 죽여가는 거야. 하하하! 정말 통쾌하네. 상조문을 작살낼 때는 좋았지, 이놈들아!”
군웅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롱을 퍼부었다.
이쪽의 죽음은 저쪽의 희열이 된다. 그렇다고 저쪽의 죽음이 이쪽의 희열로 변하는 건 아니다.
뽀로롱……! 뽀로롱……!
어디선가 산새가 거친 날갯짓을 했다. 그와 동시에 금연화의 주변에서도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변했다.
스스스스……!
천멸도 살수들이 감지된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 군웅들을 베려는 심산인가? 아니다. 방금 전에 들린 소리와 관계가 있다. 어떤 신호가 왔고, 그에 반응한 것이다. 한데,
꽈앙! 꽈아앙!
엄청난 폭음이 울리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산이 무너지고, 하늘이 붕괴되는 듯한 폭음이었다. 폭음이 만들어낸 지진은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
한 번의 경험 덕분에 남은 사람들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몸에 지닌 병기는 검이나 도다. 팔의 길이까지 합해도, 신형을 날리는 것까지 포함시켜도 삼 장 거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누가 삼 장 안에 들어서면 반응한다.
‘천멸도!’
금연화는 폭음이 터진 곳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했다.
그곳은 방금 전에 천멸도 살수들이 움직인 곳이다.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이 일어났다.
‘또 당했어!’
입으로 소리 내어 할 말은 아니다.
천멸도주는 금연화에게 머리를 쓰면서 살라고 했지만 정작 머리를 쓴 자신도 당했다.
생포한 자를 풀어줄 때, 천멸도 살수 중에 한 명이 은밀히 뒤를 밟았다.
그는 일단의 무리가 매복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리의 수장은 여인이지만 체구가 워낙 장대하여 한눈에 식별되었다.
도주한 사내도 그 무리에 합류하여 재매복에 들어갔다.
오 리 밖에 매복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었다.
그는 마차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호를 보냈다.
천멸도 살수들은 정확히 매복자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공격해 들어갔다. 움푹 파인 곳, 뚱뚱한 여자가 숨어 있는 곳, 한 팔을 내놓고 도주한 자가 앉아서 쉬고 있는 곳……
폭발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났다.
생존자는 없다. 매복자들도 걸레가 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천멸도 살수들도 조각조각 나서 흩어졌다.
“정지!”
천멸도주가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세 가닥 수염을 기른 중년인은 만족했다.
일안, 이안, 삼안, 사안까지 림주가 예측한 대로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어쩌면 그리 족집게처럼 짚어낼 수 있는지.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힌 분이야. 배짱마저 두둑했으면 사천당문에 버금갈 정도로 클 수 있었는데.’
일 대 일의 비례로 죽이고 죽었다.
이쪽에서 가장 큰 손실이라면 림주의 두 제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림주의 기막힌 계략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동귀어진(同歸於盡)한 남녀 두 제자는 림주의 눈밖에 난 지 오래였다.
하라는 수련은 하지 않고 색(色)에 미친 제자들.
두 제자의 난잡함은 독조림 내에서는 유명했다. 여자는 품어보지 못한 사내가 없고, 사내는 자보지 않은 여자가 없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으니 사부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다.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좋아하는 림주에게 제자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쳤겠는가.
림주는 잔인한 선택을 하게 했다.
나가서 동귀어진하여 명예라도 얻고 죽든가, 림주의 손에 온 가족이 씨를 말리면서 죽어가든가.
제삼의 선택은 주지 않았다.
난잡한 제자들도 정리하고 독조림의 명예도 드높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다.
다른 자들은 전부 주워왔다.
독조림 문도라고 하지만 누구 밑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는 자들이었다.
벌여야 할 일을 미리 정해놓고, 그 일에 적합한 인재를 물색하다 보니 그들이 선택된 것이다.
하하하! 여자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뚱뚱하니 단번에 눈에 띄지.
중년 사내는 폭발의 성과를 주시한 후 몸을 일으켰다.
만족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제 오안을 시행할 차례다.
오, 육, 칠…… 나머지 세 안이 마쳐졌을 때, 마야가 타고 있는 마차는 공중 분해되고 없으리라. 그를 따르는 자들은 고혼이 되어 땅에 쓰러져 있으리라.
“허허! 소수 정예…… 좋은 방법.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군. 화끈하게 싸우는 맛이 없는 게 탈이지만 좋기는 해.”
천멸도의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관도에서 팔십일전혼 중 네 명이 죽었고, 이번 폭발로 십팔밀막검 중 세 명이, 팔십일전혼 중 열세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무적을 자랑하던 살수들이 싸움 같지도 않은 싸움에 스무 명이나 죽은 것이다.
“종청호! 임무 교대해!”
“알겠습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절대적으로 윗사람을 따랐다. 설혹 전원 몰살당할 곳으로 기어 들어가라고 해도 따를 것이다.
“황전륜! 넌 날 따라와!”
천멸도주는 황전륜만 데리고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갔다.
잠시 후, 돌아온 사람은 천멸도주 혼자뿐이다.
황전륜은 어디로 갔는가?
금연화는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한 것을 읽었다.
천멸도주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종청호는 십팔밀막검을 데리고 외곽 경비를 나섰다.
임무 교대란 경비 교대라는 말과 상통한다.
그들은 외인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마야와 대면할 수 없는 통제권을 지녔다.
천멸도주가 황전륜을 데리고 어딘가로 갔을 때, 팔십일전혼 중 살아남은 스물두 명은 수장을 쫓아 같이 움직였다.
사라진 사람은 황전륜뿐이 아니다. 스물두 명의 팔십일전혼도 사라졌다.
“우린 여기서 머물러야겠어.”
일방적인 통보다.
“언제까지 머물러야…….”
마도가 말을 거들려고 했으나,
“무기한!”
천멸도주는 단호하게 말꼬리를 잘라 버렸다.
“이건 아닌데……? 쯧! 그래봤자 하루 이틀 더 사는 것…… 목숨에 그리 연연해서 어쩌겠다고. 그만 쉬고 이제 움직이거라. 움직여.”
세 가닥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는 언덕 위에서 마차를 주시하며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마차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남은 세 안을 마저 시행한다.
그 후에는…… 영광을 누리는 일만 남는다.
지금까지 한 일만 가지고도 독조림의 명성은 전에 비해 배는 높아졌다.
군웅들은 속 시원해했다.
독으로 몇몇 마인들을 제거했을 때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만, 이번 폭발이 일어났을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칭송했다.
“독조림이 이렇게까지 잘 싸우는 줄은 몰랐는데?”
“하하! 이거야 원,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따로 없잖아. 그냥 생각한 대로 쩍쩍 터지네.”
“휴우! 기뻐만 하지 말고 죽은 사람들도 생각해 줘야지. 독조림에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문도들이 저렇게 많으니…… 휴우!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네.”
칭송은 듣고 있는 귀가 간지러울 정도였다.
살신성인? 하하하! 지나가는 개가 웃을 말이다.
저들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그들은 단순한 유인책인 줄 알고 기어들어 갔다가 느닷없는 폭발에 죽었다.
연유야 어쨌든 그들은 살신성인의 본보기로 칭송받을 것이고, 독조림도 그들의 가족에게 섭섭지 않은 예우를 해줄 것이다.
“흠! 오늘 중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하루나 이틀쯤 더 걸리겠군. 겁먹었어.”
중년인은 마차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때,
“즐겁나?”
누군가가 말을 건네왔다.
‘누구!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도록 전혀 몰랐다니!’
중년인은 경각심을 높이며 살짝 손을 내려 요대(腰帶)를 잡아갔다.
요대에는 그가 평생을 바쳐 제조한 그만의 극독이 숨겨져 있었다. 독조림주조차도 모르는 독이었다. 훗날, 림주가 그를 제거하려고 할 때에 동귀어진이라도 할까 싶어서 소중하게 보관하는 구명독(求命毒)이었다.
“아! 조심…… 조심해야지.”
그는 손을 더 내리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날카로운 쇠붙이가 손가락을 건드려 댔다.
‘무, 무서운 고수! 이놈들…… 그렇군. 저들이야…… 천멸도 살수라더니…….’
그는 하늘을 봤다.
오늘이 이승을 하직하는 날인가?
‘날씨는 괜찮군. 이만하면 장소도 괜찮고.’
그의 생각은 살기 가득한 음성 때문에 중지되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네 일가붙이를 모두 죽이려 한다. 처자식은 물론 팔촌, 구촌, 십촌까지. 네 피가 흐르는 인간은 모두 죽일 생각이다.”
중년인은 웃었다.
미련한 놈들! 이것도 협박이라고. 무림에 살면서 그 정도 각오하지 않는 놈이 있던가. 죽이고 싶으면 죽이는 거고. 오늘 죽을 놈인데 어쩌라고.
“넌 살아서 들어야 한다. 그들의 절규를.”
정말 우습지도 않다. 이놈들이 살수들인 것은 맞나? 살수들이 이따위 너저분한 소리나 늘어놔?
“독조림에서 다른 수도 준비해 놓은 것으로 안다. 연락을 취하고 싶으면 취해라. 어떤 방법이든 용납해 주마.”
“그만 죽이게.”
중년인은 어설픈 살수들에게 빙긋 웃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칠중겁은 자신 혼자서 지휘하는 게 아니다. 자신 뒤에는 그조차 모르는 다른 자가 있고, 그자 뒤에는 또 다른 자가 있다. 한 명이 당하면 다음 자가, 그자가 당하면 또 다음 자가. 그렇게 끊김없이 이어져 가며 끝까지 칠중겁을 시행시킨다.
연락을 취하고 못 취하고는 살수들이 염려할 게 아니다.
이들이 알기나 할까? 한 시진 동안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으면 변고가 생긴 것으로 간주하여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며, 다른 자가 자신의 위치에 서서 칠중겁을 이어 나간다는걸.
“소원이라면 이제 손을 쓰지. 잘 참아봐.”
파앗!
쇠붙이가 허공을 긁어대는 소리와 함께 두 다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났다.
“큭!”
중년인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 데도 지독한 아픔에는 저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잔인한 놈들!”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놈의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니다. 검신이 톱니처럼 생긴 검자(劍刺)다. 다리를 베는 것까지는 좋은데 톱으로 썰듯이 모로 썰어댔다.
살이 생으로 떨어져 나가고 뼈가 깎이는 고통은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두 다리가 없으니 걷지는 못할 것이고, 두 팔도 필요없겠지.”
파앗! 뿌드득! 끄끄!
검자에 당하느니 차라리 생으로 뜯겨 나가는 것이 더 나을 성싶다.
두 팔이 잘리며 붉은 피가 홍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천멸도 살수들은 능숙한 솜씨로 지혈까지 했다.
‘정말로 살려둘 생각?’
“눈도 필요없어. 넌 듣기만 하면 돼.”
써걱!
무엇인가 눈앞에서 번쩍하더니 노란 불이 확 피어났다.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에서 쏟아진 피가 축축하게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물론 소리도 지를 필요가 없지.”
“아아아악……!”
참으려고 했는데, 꾹 눌러 참으려고 했는데……
그는 마지막으로 힘껏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참았던 고통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토해냈다. 그러나 어떤 비명도 혀가 뽑히는 고통은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했다.
잘못 생각했다. 이놈들은 정말 살수다. 검에 인정 한 올 담지 않은 살수 중에 살수들이다.
“데려가라. 치료해 주고, 자진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라고 해!”
중년인은 사내의 잔인한 손속이 비로소 멈춘 것을 깨달으며 의식을 놓았다.
제5장 상서천(上西天) ― 저승으로 가다
1
유성(柳城).
강을 따라 발달한 마을치고 번잡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유성 또한 작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술 냄새, 기름에 튀기고 굽는 음식 냄새…….
뱃속에 있는 벌레들이 술 달라, 밥 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절혼마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을을 지나쳤다.
유성은 묘한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높은 산은 아니라서 조그만 언덕만 올라가도 멀리까지 시야가 툭 트인다.
나무에서는 새싹이 돋고, 땅에서는 풀이 자란다. 붉고 노란 꽃들이 저마다 자태를 자랑한다.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마야는 깨어나지 않는다. 맥박도 호흡도 거의 없다. 보통 사람이 살핀다면 죽었다고 말할 정도로 가늘고 미약하다.
“오늘은 여기서 묵어.”
절혼마녀가 마차를 세워놓고 길가에 있는 농가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