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14
114
제이총단을 벗어나 화양 거리를 걸어갈 때까지는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살수들도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는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하겠지. 그때,
“컥!”
문도 한 명이 펄쩍 뛰어오른다 싶더니 붉은 피를 사방에 흩뿌리며 자빠졌다.
옆에 있던 문도들, 뒤에 있던 문도들의 얼굴이며 옷은 붉은 피로 뒤덮였다. 마치 물감을 마구 뿌려놓은 듯…… 인상들마저 찡그리고 있어서 악귀나찰이 서 있는 듯했다.
“쯧!”
독조림주는 혀를 찼다.
독조림 문도들은 이런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몸에서 통증이 일어나는 순간, 재빨리 쇠격자를 이용하여 검을 움켜잡아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아버린다.
주위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재빨리 반격을 가했어야 하는데 멀뚱멀뚱 죽은 자를 쳐다만 보고 있다.
“죽은 자는 버린다. 가랏!”
림주의 매서운 일갈이 터진 다음에야 문도들은 제정신을 찾은 듯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문도들도 죽음을 봤으니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이고, 반응도 신속해지리라.
“악!”
“크윽!”
좌우에서 비명이 터졌다.
왼쪽은 벽 틈에서 검이 솟아나왔고, 오른쪽은 담장 위에서 내리꽂히며 격살한 다음에 반동을 이용하여 솟구쳐 올랐다.
‘됐어! 보이기 시작했어.’
“버리고 가랏!”
독조림주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황전륜은 독조림주의 속셈을 꿰뚫어 봤다.
그는 마야를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마야를 모르면서 마야를 잡겠다고 나섰으니 너무 우습다.
마야는 오귀궁과 연관이 있다.
어떤 관계인지는 본인밖에 모르지만 연관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오귀궁의 논귀(論鬼), 뇌귀(雷鬼), 암귀(暗鬼), 독귀(毒鬼), 잡귀(雜鬼)의 절학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귀궁 오귀들의 절학은 상당 부분이 천멸도에 흘러들었다.
그중에 하나가 독귀의 만초집성일원록(萬草集成一元錄)이며, 또 하나가 뇌귀의 백진백해(百陣百解)다.
만초집성일원록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풀들이 기재되어 있으며, 성질 및 약효가 상세히 분석되어 있다.
천멸도 살수들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근원이기도 하다.
먹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살수들은 풀 한 포기로 이틀을 버티는 수련을 받는다. 초기(初期)에, 아주 어렸을 적에, 가장 기본적으로.
풀이 있는 곳이면 몇날 며칠도 견딜 수 있다.
백진백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줬다.
드넓은 중원에 존재하는 진법이 어찌 백 개밖에 안 되랴. 종류로 따진다면 수천 가지도 넘을 것이고, 응용까지 감안하면 헤아린다는 것이 어리석다.
백진백해는 모든 진법의 근본을 설명해 준다. 단순히 진을 설명하고 파해법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진의 원리를 깨우치게 만들어준다. 그렇기에 어떤 진이든 조금만 겪어보면 파해할 부위가 눈에 보인다.
마야는 이런 일을 보기만 해도 해냈다.
일견후즉파라는 말은 그때부터 생긴 것이고.
독조림주가 펼치는 원형진은 허점이 매우 많다.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시선을 사방으로 빼앗긴다.
뿐만 아니라 독조림의 최대 장기는 독인데, 원형진을 펼치면 독을 떨쳐 내는 데 한계가 있게 된다. 사방으로 분산되는 독은 사용할 수 없다. 액체나 가루로 된 독을 사용할 수 없다면 독조림의 힘은 반으로 꺾인 것과 진배없다.
진법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이따위 실수를 저지른다.
‘오늘로써 독조림은 끝났군.’
그는 입을 오므려 새소리를 냈다.
“구룩! 구룩! 구루룩!”
쒜엑! 파아악! 파앗!
“끄윽!”
“아악!”
독조림 문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독조림주가 자신만만해하던 원형진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바보 자식! 흑무산(黑霧散)을 쓰면…… 아!”
흑무산을 쓰면 적은 잡을 수 있지만 주변 삼 장 안에 있는 모든 동식물이 생기를 빼앗긴다.
성을 나오자마자 시작된 맹공 앞에 독조림 문도들은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다.
살수들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장검을 긴 쇠사슬에 매달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공격해 왔다.
전 문도에게 마음을 불태워 버린다는 소심환까지 복용시켰는데…… 그들이 흘린 피는, 피 냄새는 독조림 문도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졌구나.’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이 무너진다. 전열을 정비한다거나 몇몇 고수를 추려내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문도들은 아비규환 속에서 제 살길을 찾기에 급급하고, 독에 능숙한 독수들은 마음껏 독술을 펼치지 못해 안절부절하다가 검을 맞는다.
살수들의 공격이 어설프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들의 검은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주지 않는다. 멀리서 휘돌리는 검이라 베어내는 것밖에 못하는데 정확히 목이나 가슴을 도려낸다.
저쪽 산, 이쪽 산…… 들판 너머 논둑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데 독조림은 너무도 형편없이 쓰러진다. 이게 무림문파였나 싶을 정도다.
사람들은 맞상대는 애초부터 안 되었고, 이런 문파였으면 싸울 가치도 없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조림주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늘로써 독조림은 무너진다. 하나 사람들 머릿속에 그래도 쓸 만한 문파였다는 생각을 갖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제일총단에 남아 있는 자식들이 낯을 들고 살아간다.
그는 품속에서 매미 날개처럼 가느다란 흑피수투(黑皮手套)를 꺼내 양손에 끼웠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살수와의 거리가 사 장쯤 된다.
파앗!
그가 솟구쳤다.
‘독조림주!’
황전륜은 그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쒜에엥!
손목을 떨치자 쇠사슬이 주르륵 풀려 나갔다.
독조림주는 살수를 향해 맹렬히 덮쳐 가다가 느닷없이 다가오는 살기를 느끼고 몸을 비틀었다.
촤악!
얼굴 위로 검 한 자루가 스쳐 갔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흑피수투는 도검불침(刀劍不侵)이다. 많은 고수들이 병장기만 믿었다가 낭패를 당하곤 했다. 독조림의 조(爪)는 바로 독조림주의 조공(爪功)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독조림주는 손을 뻗어 쇠사슬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검을 쏘아낸 자, 쇠사슬의 주인을 향해 팔미난수(八迷亂手)를 전개했다.
휘리릭! 촤아악!
가을날에 메뚜기가 날아오르듯이 가느다란 세침(細針)이 하늘을 가득 덮었다.
독조림주도 하나의 세침이 된 것처럼 세침 뒤를 바짝 쫓았다.
‘두 번째!’
상대가 세침에 신경을 빼앗길 때, 은밀히 쏘아져 나간 십자각(十字角) 열 개가 지옥의 호곡성을 토해낸다.
십자각은 물소 뿔로 만들었다. 물소 뿔을 십자 형태로 깎고, 바늘구멍을 무수히 뚫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멍 속에 작은 고충(蠱蟲) 한 마리를 놓아두면 십자각은 완성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덩이만 만나면 파고들어 가 뜯어먹는 고충.
고충은 성장이나 번식 능력이 기절할 정도로 빠르다.
십자각을 만든 후 십 일만 지나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맨손으로는 십자각을 만지지 못한다. 무수히 뚫어놓은 바늘구멍마다 고충들이 바글바글한데 죽고 싶지 않고서야 어떻게 만지랴.
십자각은 무적의 병기다. 오직 흑피수투를 낀 사람만이 전개할 수 있다.
빼애액……!
십자각에 뚫린 구멍에서 피리 소리와 흡사한 소리가 울렸다.
‘너 하나만은 죽이고…….’
독조림주는 다른 자를 찾았다. 겨루고 있는 자를 쓰러뜨린 것은 아니지만 십자각의 효능을 철저히 믿었다. 한데,
빼애액……! 촤아악……!
독조림주는 손에 잡고 있던 쇠사슬을 놓아버렸다.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도 강렬해서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십자각을 보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십자각이, 십자각이 되돌아오다니!
그는 십자각을 피하려고 했으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십자각을 전개한 후에도 계속 다가가고 있었으니……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이지 않은가.
퍼억!
십자각이 몸에 틀어박히는 순간, 그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네가…….”
“만초집성일원록.”
“마, 만초! 도, 독귀!”
독귀의 진전을 이어받은 자들…… 그렇다면 사천당문과 싸우듯이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어설픈 계략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독술로 겨뤘어야 한다.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덜 비참할 게다.
독조림주는 사내의 손을 쳐다봤다.
짐작대로 사내의 손에도 흑피수투가 끼워져 있다.
“나, 나를…… 철저히 분석…… 무서운 놈…….”
“죽이려는 자를 철저히 분석하는 거야 살수에게는 기본이니 말할 것도 없지. 한 가지만은 알아둬라. 네 딸을 이용한 것…… 미안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어나오지 않을 사람이라서 하긴 했다만…… 한적한 절에 가서 천 배를 올려줄 테니 마음 편하게 먹고 가라.”
“네, 네놈…… 네놈…….”
독조림주는 부들부들 떨었다.
수만 마리 개미에게 살이 뜯기는 고통은 그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갔다.
피부가 벌게지더니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살점이 보이고, 아니, 살점을 뜯어 먹혀 마치 떨어져 나간 것처럼 듬성듬성해지고…… 어떤 곳은 벌써 뼈까지 드러났다.
팔미난수 중 두 가지밖에 쓰지 못했다. 칠중겁 중 세 개는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은 이런 것인가. 준비해 놓은 것은 많은데 써먹은 것은 몇 개 되지 않는, 그런 곳인가.
“목을…….”
독조림주는 영원히 자신의 입으로는 말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했다.
“그러지. 잘 가.”
황전륜은 손목을 뒤틀어 쇠사슬을 뻗어냈다.
제6장 간불관(看不慣) ― 익숙하지 않다
1
날이 지날수록 다담선자 일행은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착각을 받았다.
낯설고 물 설은 곳이다. 사람들 피부색도 까맣게 변해가고 생김새도 중원인들과는 왠지 다르다.
말이 통하지 않은 지는 며칠 되었다.
광서(廣西)에서는 방언(方言)이 너무 심해서 무슨 말인가 귀를 기울여야 겨우 알아들었는데 좀 더 밑으로 내려오자 아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손짓에 발짓까지 동원하고 온갖 눈치를 다 써서야 간신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앞으로 나아갈 일이 참으로 난감하기만 하다.
‘여자의 비궁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지.’
제시된 말은 있다. 주위에 그곳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물어볼 수가 없으니 사람이 많은들 무슨 소용인가.
“남만 땅에 들어오긴 들어왔지?”
“그런 것 같네요.”
대답 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남만에 오기는 온 것 같은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시마는 경험이 많으니 아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마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예 남만은 처음인 것처럼 보는 것마다 신기해하는데 뭘 물어보겠나.
“여기가 어딘지나 알았으면 좋겠는데…….”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강주(江州)를 벗어난 지는 한참 되었으니 남만 땅은 맞다. 하나 아무리 눈을 돌려봐도 그 흔한 팻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설혹 팻말이 있다 한들 읽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말이 다른 사람들인데 글이라고 같을까.
“흠! 좋네, 좋아. 저 검은 피부하며…… 살이 아주 탱탱하구먼.”
시마가 주책없는 소리만 골라서 했다.
대꾸할 기력도 없다. 앞길이 막막하니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시선이 가는 곳은 마야의 얼굴, 고이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이다.
‘이 사람, 깨어나게 해야 되는데.’
괜히 서러움이 북받친다. 자신이 이처럼 무능력한가 싶고, 이대로 아무것도 못해보고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가슴이 미어진다.
다담선자는 일령과 절혼마녀가 보고 있는 데도 마야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
“남사스럽게 뭐 하는 짓이여. 벌써 서방이 그리운 거여? 클클! 그리울 만도 하지.”
이럴 때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시마는 잠시나마 마야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소박한 마음조차 짓밟았다.
“그래, 이제는 준비됐냐?”
“……!”
다담선자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봤다. 그러다가 불현듯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서 탄성을 토해냈다.
“아! 그거요. 예, 제 딴에는 괜찮을 것 같은데…… 변수가 생겼네요. 생각해 보니 전 중원만 염두에 뒀어요. 이곳 지형은 중원과 판이하게 달라서…… 지형이 어떤 변수가 될지 모르겠어요.”
“하자.”
“네?”
“거머리들을 떼어내자고. 만만한 놈은 하나도 없다는 것, 알지? 실수하면 망신만 당하는 거니까 알아서 해. 어떻게 할까? 이놈, 지금 들쳐 업어?”
시마는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였다.
“아뇨. 우선 마을로 가야 돼요. 마을에서 준비할 게 있어요.”
세 여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시마를 쳐다봤다.
술만 마시면서 느긋하게 오다가 갑자기 서두는 이유는 뭔가? 혹시 무엇인가 다른 복안이라도 있는 것일까? 있으니까 서두는 거겠지. 그럼 그게 마야와 관계된 것은 아닐까? 혹, 멸신구관이 어디 있는지 아는 거 아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나 지금은 묻지 않는다. 그가 적이 아니고 마야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적어도 그것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니까 믿어보련다.
시마가 멸신구관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 같은 것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안 해줘도 좋으니까 제발 알고 있기나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