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16
116
“방법이 없나?”
서방천마는 유일한 여인인 동방천마를 쳐다봤다.
“호호호! 간단한 이치를 망각하네. 이래서 사내들은 단순하다니까.”
“뭐! 그게 뭔데! 뭐가 단순해!”
동방천마는 남방천마의 콧바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요염한 눈길로 서방천마를 응시하며 말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마을이 있고, 마을에는 정보가 넘쳐흘러. 어렵게 쫓아갈 것이 아니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돼.”
“어! 야하! 그런 수가 있었네! 역시 우리 동방천마 머리는.”
남방천마는 엄지손가락을 우뚝 세워 보였다.
“가. 이곳은 로로족 영역이야. 로로족만 굴복시키면 저들이 어디 있는 것쯤은 하루면 알아낼 수 있어.”
“다 좋은데, 말할 때 그 욕금진기는 거두고 말하지? 감당하기 어려워.”
“뭐 하러 어렵게 살아? 그냥 감당해 버려.”
동방천마가 눈을 찡긋거렸다.
2
밀삭은 철갑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질기다. 가볍기로는 종이를 드는 듯하여 몸에 걸치고 있어도 무게를 느낄 수 없다.
“이거 물건이네.”
시마가 몹시 흡족한 듯 연신 날개를 만지작거렸다.
이 순간, 남만의 폭염은 이들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날개옷을 입고 나무 위로 치달리다 보니 더위가 싹 가셨다. 자신의 몸이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니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징그러운 밀림의 곤충들도, 그 지겹던 모기에게서도 해방되었다.
여러모로 쓸모있는 물건이다.
하룻밤 사이에 급히 만드느라 모양이 없지만 시간을 두고 정성스레 다듬으면 아주 훌륭한 갑옷이 될 것 같다. 필요한 경우에는 지금처럼 신법을 더욱 빠르게 해주는 촉매 역할도 해줄 테니 능히 만금의 값어치가 있다.
“이제 빠져나온 것 같은데요.”
다담선자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큭큭! 빠져나오기는 어떻게 빠져나와. 조금 시간을 번 것뿐이지.”
“이곳을 찾아온다고요?”
절혼마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찾아올 거야.”
“우리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데요?”
“거참, 찾아온다니까 되게 말 많네. 귀찮게시리.”
세 여인은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말이 되어야 말을 하지. 자신들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판에 그들이 무슨 수로 찾아온단 말인가.
“안 믿겨?”
“네, 안 믿겨요. 어떻게 찾아와요?”
일령이 대뜸 말을 받았다.
“이 밀림이란 곳은 말이야, 아주 넓은 듯하면서도 무지 좁아. 누군가에게서 도망쳐 가지고 밀림 속으로 스며들면 아무도 못 찾지. 맞아. 그건 못 찾아. 꼭꼭 숨어 있는데 어떻게 찾나. 한데 우리는 숨어 있을 수 없어.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그렇군요.”
다담선자가 제일 먼저 말뜻을 알아들었다.
“움직이면 사람 눈에 띄고, 사람 눈에 띄면 소문이 나고…… 우린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누구의 눈에든 신기하게 보일 테니까 잊어버리지도 않을 것이고.”
“큭큭! 이제 알았냐?”
“그건 그렇고요. 이젠 어디로 가죠?”
다담선자가 한가닥 기대를 걸고 물었다.
시마의 입에서 모른다는 말이 나오면 그야말로 절망이다. 나락 깊은 곳으로 떨어져 빠져나올 생각을 못하리라. 하지만 만에 하나, 어디로 가자는 말이 나온다면 하늘을 얻은 기분이 될 게다.
천국과 지옥이 시마의 입에 달렸다.
“나도 몰라.”
지옥이다. 지옥으로 떨어졌다.
“이곳에 휴야라는 자가 있어. 우선 그자를 찾아야지.”
천만다행이다! 천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찾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휴야요?”
“응. 앞에 뭐라더라…… 보 홍? 맞을 거야, 보 홍 휴야. 그자부터 찾아야 돼.”
“뭐 하는 사람인데요?”
“몰라.”
“몰라요? 그럼 왜 찾아요?”
“이놈이 찾으라고 했으니까 찾지 왜 찾긴 왜 찾아! 이놈이 언젠가 그랬지. 시신과 다름없는 상태로 남만에 가게 되거든 보 홍 휴야를 찾아달라고 했는데……. 당시는 농담인 줄 알았지 뭐야. 이름도 개떡같이 보 홍 휴야가 뭐야. 무시하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나더라고.”
더 말할 것도 없다. 무조건 보 홍 휴야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왜 지금에서야 말해욧!”
일령도 속이 많이 타 들어갔는지 소리를 빽 질렀다.
중원 한복판에서 장강이 어디냐고 물으면 누구라도 한마디씩 해줄 게다. 황산(黃山)을 물어봐도 어느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왕오(王五)라든가 진삼(眞三)과 같은 이름을 대며 그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미친놈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도 유분수지 딱 이름 넉 자 가지고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아무에게나 물어봐야죠.”
다담선자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만큼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절망스러웠다. 마야를 이대로 죽게 만들 수 없다는 절박함이 오히려 그녀에게 여유를 안겨주었다. 보 홍 휴야만 찾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기에.
“휴야라는 사람 말예요. 한자로는 어떻게 써요?”
“몰라. 이곳 사람들도 한자를 쓰나?”
쓴다. 본인들도 모르지만 남만 사람들은 한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온갖 이름들 속에서 한자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스운 것은 말을 쓰는 본인들은 정작 뜻도 모르고 사용한다는 것이다.
집을 빌려줬던 아낙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릇이며, 집이며, 그녀 이름이며…… 손짓발짓 섞어가며 뜻을 말해주었을 때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담선자는 사람이 살 법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각되어도 할 수 없어요. 아무 마을이나 찾아가요.”
역시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 전부가 뛰쳐나와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지만 위협은 가해오지 않는다.
호전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순박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냥이 주업이 아니라 농사가 주업이다. 인근 어딘가에는 척박한 논과 밭이 있을 것이다.
묘하지 않은가. 살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호전적이 되고, 땅을 일구는 사람은 순박하다는 것이.
“배고파, 배. 밥 좀 줘. 밥 좀 달라고!”
시마가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가 먹는 시늉도 해보고 온갖 행동을 해도 마을 사람들은 낄낄거리기만 할 뿐 음식을 내오지 않았다.
“제길! 이러다 목쉬겠네. 어이, 다담. 어떻게 말 좀 해줄 수 없어? 아침에 보니까 몇 마디 하는 것 같던데.”
“아뇨. 저도 못해요. 여기 말은 또 다르네요.”
“그래? 빌어먹을! 뭔 놈의 말들이 이렇게 많아. 야, 꼬마야, 밥 있냐? 밥 좀 가져와. 응?”
꼬마는 시마의 코를 만지며 낄낄거렸다.
다담선자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노인 앞으로 가서 포권지례를 취해 보였다.
그는 동물 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마을 전체에서 오직 그만이 목걸이를 했다. 특이한 것이 있는 사람, 그렇다면 족장(族長)이 아닐까 싶었다.
노인은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가 크게 반원을 그리며 내렸다.
인사법은 다르지만 다담선자가 예를 취한다는 건 알아본 것 같다.
“보 홍 휴야.”
다담선자는 찾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만 간단하게 말했다.
“보 홍 휴야?”
“네, 보 홍 휴야.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어요, 보 홍 휴야?”
노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고개를 마구 저었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한 명, 두 명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집 안으로 숨어들어 갔다.
“도대체 그 휴야라는 사람이 뭐 하는 자이기에 사람들이 이름만 듣고도 기겁을 하지?”
절혼마녀가 문 뒤에 숨어서 내다보고 있는 소녀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느낌이 좋은 사람 같지는 않은데요.”
일령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닌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야 원……. 밥술이나 얻어먹은 다음에 묻지 그랬어? 이구! 배창시가 등에 달라붙었네.”
시마가 무슨 말을 하든, 절혼마녀와 일령이 화를 내든 말든 다담선자는 노인만 쳐다봤다.
기겁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이다. 휴야라는 사람이 있는 곳을 알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다.
그에 관한 정보를 하나라도 들어야 한다.
“말해주세요. 꼭 찾아야 돼요. 보 홍 휴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요? 꼭 좀 부탁드려요.”
애절한 말투, 눈물이 묻어나는 얼굴.
다담선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말이 통하지 않는 노인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부탁했기에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감정이 작용한 것이다.
노인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마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찾아냈다.
스릉!
일령의 검을 빼앗아 일부러 천천히 뽑았다. 위협을 가할 때는 금속성을 될 수 있는 한 오래 끌 것이며, 눈빛은 금방이라도 살생을 할 것 같이 악기가 스며 있어야 한다.
노인은 시마의 차가운 눈을 대하자 부들부들 떨었다.
“보…… 홍…… 휴야.”
한 자, 한 자 끊어가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노인은 아예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그러나 무공으로 단련된 다담선자의 눈은 꿈틀거리는 노인의 손가락을 놓치지 않았다.
노인은 허벅지 위에다 재빨리 어떤 그림을 그렸다.
‘저건! 여인의 비궁!’
천멸도주가 해준 말과 노인의 그림은 상통한다.
자라 등짝 같기도 하고, 전복을 뒤집어놓은 것 같기도 한 묘한 그림이었다.
노인은 특히 주름을 강조했다.
전복을 뒤집어놓고 반으로 가른 다음, 가로로 무수한 선을 그으면 노인의 그림이 된다. 노골적인 말이지만 약간 긴 타원형하며, 주름진 모습이 여인의 비궁과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노인은 손가락을 구부려 북쪽을 가리켰다.
밀림을 돌아다닌 지 이틀이 지났다.
노인이 가리켜 준 북쪽을 향해 무던히도 걸었다.
깊고 깊은 밀림, 나타나지 않는 민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끓는 맹수…… 밀림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커다란 위협을 가하는 것보다 제 풀에 못 이겨 나가떨어지도록 만든다.
다담선자는 혹시나 하고 매 시진마다 산봉으로 올라가 주름진 곳을 찾았다.
덕분에 날개옷에는 상당히 익숙해졌다.
이제는 내려올 때뿐만이 아니라 올라갈 때도 활용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다. 바람이란 순풍도 있고, 역풍도 있다. 어느 바람이든 이용만 잘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바람이 없어도 상관없다. 신법으로 바람을 일으키면 날개옷은 즉각 힘차게 펄럭인다.
‘없어.’
이번에도 허탕이다.
도대체 여인의 비궁과 흡사하게 생긴 지형은 어디 있는가.
‘혹시 지형이 아니라 어느 장소를 말한 건 아닐까?’
궁금증은 치밀지만 확인할 방도가 없다. 직접 추론하여 찾아가거나 없는 사람을 찾아 물어봐야 한다.
그녀가 사방을 둘러보고 내려왔을 때, 어쩐지 분위기가 전과 다르다는 걸 감지했다.
“무슨 일이야?”
가장 쉽게 입을 여는 일령에게 물었다.
“상태가 안 좋아요. 호흡이 굉장히 거칠어요.”
일령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울먹이기까지 했다.
급히 달려가 마야의 상태를 살폈다.
말 그대로다. 맥은 아예 잡히지 않고 호흡은 매우 불규칙하며, 높고 낮음의 기복이 심하다.
“언니, 추궁과혈. 쉬지 않고 심장을 움직여 줘요. 동생, 불을 피워. 몸을 따뜻하게 해야 돼.”
“지금도 덥지 않나?”
시마의 음성도 미미하게 떨렸다.
“더 따뜻해야 돼요. 저주의 자오법신이 운용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 같아요. 지금이 오시잖아요. 음양의 기운이 한 바퀴 회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절혼마녀는 양손에 진기를 가득 모아 추궁과혈을 시전했다. 일령은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피웠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세요. 그들이 바짝 뒤쫓아왔을 텐데, 불까지 피워놓으면 금방 달려올지 몰라요. 지금은 무조건 충돌을 피해야 돼요. 아셨죠? 누가 오면 다른 곳으로 유인해 주세요.”
“이것아! 불은 여기다 피워놨는데 내가 무슨 수로 유인해!”
“알아서 해주세요.”
“이런! 누가 마야랑 관계없달까 봐 이런 것도 닮아가네. 알았다, 이것아! 빨리 어떻게든 해봐.”
시마는 나무 위로 신형을 솟구쳤다.
다담선자는 운공하여 모든 진기를 손끝에 모았다.
‘회음혈을 틔워야 돼. 자칫 시간을 놓치면 음기나 양기 중 어느 한 기운이 회음혈을 비집고 나와 허공에 흩어질 거야. 그럼 이 사람은 죽어. 오장육부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뭉개질 거야. 회음혈을 타통(打通)하는 한편 다른 쪽 진기를 밀어내야 해.’
말은 쉽지만 다담선자의 진기가 소립파보다 약하면 쏟아져 나오는 진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놓치게 된다. 그럼 임맥에 있던 진기는 독맥으로 흘러들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게 되고, 독맥에서 임맥으로 흘러든 진기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오장육부를 두들긴다.
이럴 경우 운이 좋으면 반신불수가 되며, 대부분은 즉사한다.
다담선자도 큰 타격을 받는다. 제어하지 못한 진기의 일부가 그녀에게 스며들어서 경락의 상당 부분을 타격한다.
아마도 무공이란 것을 두 번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리라.
‘해야 돼, 어떻게든.’
“셋에 진기를 돌릴 거예요. 셋을 세면 양쪽 유중혈(乳中穴)을 힘껏 쳐요. 만약을 대비해서 임맥으로 흘러드는 기운을 조금 상쇄시켜야겠어요.”
“알았어.”
절혼마녀라고 다담선자가 하려는 일을 모를까.
두 여인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나…… 둘…… 셋!”
‘셋’을 셈과 동시에 다담선자의 손이 소립파의 회음혈을 강타했다. 아니다. 강타하는 듯하지만 찍고 누르고, 문지르고, 끌어당기고…… 열여덟 가지의 손동작이 일시에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