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19
119
지금 천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북검문 삼원로라면 세 명의 무신을 말한다. 오늘날 남도북검의 세계를 만든 일곱 명의 주역 중 세 명이 남만, 그것도 마야가 있는 멸신구관을 찾아갔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야! 점소이! 너 이리 좀 와봐!”
수검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점소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쪼르르 달려왔다.
“남도문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구환자를 필두로 야광 전원이 며칠째 행방불명입니다. 그들이 전력을 다하여 지혜를 모을 일이 무엇인지 짐작해 보시랍니다.”
점소이는 야채 한 그릇을 가져갔다가 다른 것으로 바꿔서 가져왔다.
“추혼단이 은밀히 남만으로 이동했습니다. 추혼단이 마야를 친다고 했는데, 이곳이 아니라 남만의 마야입니다.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외형상으로는 추혼단주 부위량이지만, 실은 만사무불통지 도숭부로 판단됩니다.”
말을 잇던 점소이가 갑자기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제길! 말이 너무 길었네요. 꼬리를 밟히고 말았으니.”
금연화가 급히 고개를 돌리자 창문 너머 저쪽 길가에서 한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가는 것이 보였다.
“밀막주!”
천멸도주가 짧게 말했다.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내가 술 취한 것처럼 휘청거리더니 풀썩 꼬꾸라졌다.
엎어진 그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나와 땅을 적셨다.
“후후! 틀렸습니다. 저놈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서…… 제 정체는 탄로 났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왕 이렇게 된 거 눈치 볼 것도 없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점소이는 아예 옆 탁자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합석했다.
“남도문, 북검문의 태두들이 모두 남만으로 직행했으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일이 비밀로 한다고 비밀이 되겠습니까? 웬만한 문파의 장문인들은 벌써 감으로 때려잡고 남만으로 달려가는 중입니다. 이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거죠.”
역시 그랬다. 세상에 이유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 생겼으면 그런 일이 벌어졌어야 하는 이유도 반드시 존재한다.
“저희 문주님도 남만으로 가시기는 했지만…… 워낙 거물들이 몰려드는 통에 구경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라는 말씀이 계셨어요.”
삼십육고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신분으로 보아 하오문주는 피라미에 불과하다. 정말 구경만 하는 것으로 만족할지도 모른다.
“마야가 간 곳은 어떻게 알고?”
마도가 물었다.
“멸신구관이 ‘마 마’에 있다는 거, 만사무불통지 같은 사람이 모르겠어요. 단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 마야의 남행 때는 남도문에 파견한 천멸도 살수들을 암암리에 호위로 붙였던 모양입니다.”
“주림을?”
“네. 다행히 중간에 별일은 없었고요.”
그럼 주림도 남만에 있는 것인가.
“이해를 못하겠네. 마야는 저주의 자오법신을 치료하기 위해 멸신구관을 찾는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왜 찾는 거야? 유계의 주공을 죽이기 위한 함정이라던데, 그렇게 죽기가 소원인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솔직히 이번에야 알았지 멸신구관이라는 이름 자체도 몰랐는걸요. 어렴풋이 짐작이 되는 건…… 멸신구관이란 곳이 단순한 함정만은 아니라는 거죠.”
“그럼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단 거야?”
“보물 맞죠. 인간을 탈태환골(奪胎換骨)시킬 수 있다면 보물도 상보물이죠.”
이런 말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야가 멸신구관을 찾아간 게 아닌가. 인간의 영혼까지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곳에서 철저히 죽었다가 깨어나야 저주의 자오법신을 벗어난다고 했다.
모두들 기적을 바라고 간다.
자오법신에서 벗어나는 것도 기적이고, 무공이 진일보하는 것도 기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천외무봉(天外無峰)에 올라선 사람들이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다만 반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게 기적이지 무엇이 기적인가.
혹시…… 멸신구관을 만들었다가 뒤늦게 이런 효능을 깨닫고 스스로 파훼시킨 것은 아닌지.
아무래도 북검문, 남도문 무신들이 멸신구관을 찾아 헤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점소이는 근 한 시진에 걸쳐서 이것저것 무림 상황을 말해주었다.
금연화 일행은 객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오랜만에 푹신한 침상에서 잠답게 잔 하루였다.
그들이 객잔을 나설 때, 점소이는 마중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객잔 주인이 나와 두툼한 보따리를 내밀었다.
“그렇게 다니면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거지도 그렇게 안 다닌다고 하면서…….”
보따리는 묵직했다. 금, 은, 동전…… 상당히 많은 패물이다.
“그 사람은요?”
“남도문은 하오문을 눈엣가시로 보고 있습죠. 워낙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윗선에 접근하기가 힘든데, 그 사람 정도 되면 하오문주의 행방을 잡아내기는 여반장이고…… 이쯤에서 잠드는 것이 문주에 대한 도리라고 하더군요.”
그는 죽었다. 자진했다.
“남만으로 가야겠어.”
천멸도주가 말을 꺼냈다.
그녀의 말은 곧 법이다. 집행만 있을 뿐, 번복은 없다. 그녀가 가야겠다면 가는 것이다.
“지금 가도…… 늦지 않을까요?”
“늦지. 하지만 가야지. 미련한 새끼가 앞뒤좌우 꽉 막혀 있잖아. 나라도 가줘야지. 만약 너무 늦어서 그 못난 새끼 끝장난 모습을 보게 되면 뼈라도 추려줘야지.”
‘이 사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거야.’
섶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해도 말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녀의 가슴에는 뜨거운 불이 지펴져 있다. 하얀 백포로 전신을 가리고 있지만 뜨거운 불길만은 숨기지 못한다.
“나도 가야겠어.”
마도다.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 수검, 혈유, 모습을 보이지 않는 언장은마까지도 모두 가고 싶어 한다.
십중팔구는 뼈도 못 추릴 곳이다. 명호를 붙이다 붙이다 붙일 것이 없어서 무신으로 불리는 사람이 현재만 해도 네 명이나 들어갔단다. 마도나 수검, 천멸도 살수들도 폭풍 앞에 가랑잎처럼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부터 탈출로를 확보해야 하는 건가요?”
“탈출로는 무슨. 밀막주, 전혼주, 간다!”
그것으로 진로가 결정되었다.
제8장 입몽향(入夢鄉) ― 꿈나라에 들다
1
인간의 뇌는 강하면서도 약하다. 특히 질병과 관련해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보다도 약하다.
약할 뿐만 아니라 성질도 더럽다. 한 번 망가진 곳은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다. 일부 복구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극히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은 영구 손상된다.
저주의 자오법신은 인간의 뇌를 극도로 자극시킨다.
육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차후 문제다.
죽음까지 백 일이라는 시간이 있다고 한 것은 육신이 죽는 경우를 말한다. 그전에 뇌는 망가지게 되고, 바보천치가 되어 부모형제, 주위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망각해 버린다.
뇌 손상을 막을 방도는 없다. 이는 자오법신을 막는다는 말과도 같다. 자오법신이 운용되는 한은 기필코 뇌 손상이 찾아온다.
뇌의 손상 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진다.
저주의 자오법신이 백회혈을 두들길 때마다 뇌는 저항도 못하고 죽어간다.
소립파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그의 여인들도 몰라보고, 시마도 몰라봤을 것이며, 자신의 이름조차 망각하여 뭇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을 게다.
혼절하기를 잘했다.
바보천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괴인은 소립파를 발가벗겨 나무 침상 위에 눕혔다. 그리고 붓으로 풀 즙을 찍어 소립파의 몸에 발랐다. 구석구석 풀 즙이 닿지 않은 곳이 없도록 꼼꼼히 발랐다.
전신을 다 바르는 데는 일다경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 번으로 그친 것도 아니었다. 머리끝에서부터 시작하여 발끝까지 바른 다음에는 다시 머리부터 발라갔다.
한 시진, 두 시진……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고, 저녁은 깊은 밤으로 이어졌다.
괴인의 손길은 쉼없이 움직였다. 붓질을 멈출 때는 풀 즙이 떨어져서 다시 풀을 으깰 때뿐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를 맞이했다.
그때까지도 괴인은 같은 행동만 반복했다.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았으며 쉬지도 않았다.
소립파의 몸은 풀 즙에 물들어 녹색으로 변했다.
까만 머리칼도,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도…… 모두가 녹색이 되었다.
사흘째가 되었는 데도 괴인의 행동은 변함없었다. 마치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는 듯 풀 즙을 발랐다.
“하! 이거야 답답하고 지루해서 볼 수가 있나! 지금 저거 뭐 하는 거야? 저 짓거리를 언제까지 봐야 되는 거야?”
남방천마가 급한 성격을 드러냈다.
그로서는 삼 일 동안 지켜본 것만도 많이 참은 것이다.
“서둘지 마. 내 짐작이 맞다면, 저 노파는 흑살마녀(黑煞魔女)야. 뭐 생각나는 것 없어?”
동방천마가 나른한 음성으로 말했다.
“흑살마녀? 그 노괴물이 아직도 살아 있었어? 저 늙은이가 흑살마녀라고? 크크크! 잘됐군, 잘됐어. 어디 천하무적이었다는 흑살마공(黑煞魔功) 맛 좀 봐볼까.”
남방천마는 두 손을 깍지 껴서 으드득 소리가 나게 꺾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좌우지간 돌 머리는 어쩔 수 없어.”
“뭐야!”
“사람들은 흑살마녀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었어. 그래도 생각 안 나면 정말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녹광성초(綠光聖草)!”
“아주 돌 머리는 아니었네?”
남방천마는 동방천마의 놀림을 태연히 받아들였다. 동방천마의 놀림은 어떤 것이든 당연하게 생각했다. 서방천마와 북방천마가 하는 말도 잘 들었지만 동방천마가 하는 말은 특히 잘 들었다.
“녹…… 광…… 성…… 초.”
잘 입을 열지 않는 북방천마조차도 녹광성초에는 태연하지 못했다.
“녹광성초가 실재했군. 후후!”
서방천마도 눈을 가늘게 떴다.
현 무림인들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이 있다.
먼 옛날 한 여인이 무림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마주 앉기도 싫을 정도로 엄청난 추녀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녀를 모욕했다. 정도가 지나쳐 살심이 끌어오를 때까지 조롱했다. 마침내 그녀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칼로 못생겼다고 조롱하는 자들을 쳐 죽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지나친 살육에는 징벌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변수가 생겼다. 그녀는 웬만한 도검에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피부가 철갑처럼 단단해서 무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죽일 수 없었다.
그녀의 피부를 검게 태워 버린 영약은 녹광성초의 즙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수많은 무인들이 그녀를 쫓았다.
이 사건은 그녀가 실종됨으로써 허무하게 끝났지만 녹광성초에 대한 유혹은 아직도 무림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저거 빼앗아야 되는 것 아냐. 저게 녹광성초면…… 아휴! 아까워.”
“늦었어. 녹광성초를 다 써버렸어. 그렇지 않았어도 어쩔 수 없잖아? 마야가 일어나야 멸신구관을 열 수 있으니까. 멸신구관을 포기하고 녹광성초를 취할 거야?”
“그것도 그렇네. 이런! 아휴! 근데 저건 정말 아깝다.”
“녹광성초를 거의 다 썼으니까 이제 깨울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어.”
사방천마는 나무 위에 앉아서 나무 위에다 나뭇가지를 쌓아올려 만든 이상한 집을 감시했다. 마치 새둥지처럼 생긴 집이었다.
다담선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괴인이 풀 즙만 발라댈 때는 가슴이 바짝 타 들어갔는데, 동방천마의 이야기를 엿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녀도 녹광성초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녹광성초는 단지 풀 하나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흑살마녀가 발견해 낸 이름 모를 풀이 주재료가 되며, 이 풀을 일컬어 성초라 한다. 성초 즙액에 수십 가지의 약재를 풀면 녹광을 띠게 되며, 이로써 녹광성초가 완성된다.
흑살마녀는 약재의 배합을 잘못하는 바람에 피부가 새까맣게 탔다.
마야는 어떨지 모른다. 옛날 그대로 약재를 배합했다면 마야의 피부도 새까맣게 타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발전이 있어서 배합 비법을 알아냈다면 마야는 아주 큰 기연을 얻는다.
육신이 철갑처럼 단단하면 무서울 게 무엇이랴.
마야가 들어도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질 좋은 일이건만…… 그래도 다담선자는 불만이었다.
녹광성초가 꿈에 그리는 영약이지만 지금은 그걸 바르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게 해서 멸신구관을 열어야 한다. 마야의 마지막 날, 백 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한가로이 육신을 보할 때가 아니다.
다담선자는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사방천마에게 길이 막혀 그러지도 못했다. 억지로 뚫고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사방천마와 싸우다 보면 흑살마녀의 치료에도 영향이 미칠까 염려스러웠다.
지금은 오히려 사방천마가 도발해 오지 않기를 고대할 판이다.
그러나저러나 괴인의 정체가 흑살마녀였다니, 시마가 이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기절초풍할까. 그녀가 흑살마녀인 줄도 모르고 원숭이니 어쩌니 했으니.
절혼마녀는 같은 마녀라고 좋아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가끔가다 별호에 마녀가 붙어서 좀 그렇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다담선자는 살그머니 몸을 빼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기다려야 해.’
‘이거였군!’
강금산은 이제야 사방천마를 먼저 들여보낸 이유를 알았다.
서군봉은 멸신구관에 대해서 잘 모른다. 막연히 무림사를 좌지우지할 어떤 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하나 그 정도 짐작만으로는 멸신구관에 들어갈 기분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