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20
120
좀 더 확실한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자들이 사방천마다.
그들이야말로 유계 사람들이고, 주공의 수족이니 멸신구관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들을 앞세움으로써 멸신구관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 있다.
아직까지 멸신구관에 대한 말은 없었지만, 녹광성초에 대한 말은 들었다.
마야의 몸에 바르는 것이 바로 녹광성초다.
사람 몸뚱이를 철갑으로 만든다는 영악 중에 영악. 금종조나 철포삼(鐵布衫) 같은 무공도 몸을 돌처럼 만들지만 그와 같은 외공들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함을 지녔다고 한다.
힘들여 수련하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서 철갑옷을 몸에 두르니 이보다 더한 기연이 어디 있겠나.
‘복 많은 놈.’
강금산은 솔직히 마야가 부러웠다.
자신이 녹광성초를 얻었다면, 천하제일의 궁술에다가 도검도 통하지 않는 몸이라면…… 무신의 위치를 노려볼 수도 있지 않겠나.
“오늘은 푹 쉬어둬요. 내일은 멸신구관에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내일? 저건 조금 있으면 끝날 것 같은데?”
“저건 바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보니까…… 약물이 완전히 피부 속에 흡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 시간이 두 시진, 거기다 일어나자마자 움직일 리도 없고. 오늘은 틀렸어요.”
서군봉의 말투는 언제나 단정적이다.
자신의 말은 절대 틀릴 리 없다는 확신이 스며 있다.
묘한 것은 실제로 모든 일이 그녀의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녀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거다.
“북검문 이야기 좀 해봐.”
“남도문 이야기부터 하는 게 어때요?”
“그만두지.”
“이런 건 어때요? 난 궁왕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무공을 알아요. 그쪽은요?”
“아버님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무공?”
“…….”
“후후! 아버님의 궁술이 천하제일이기는 하지만 파해공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서로 말해볼까요?”
“관두지.”
“그러죠.”
“소저가 알고 있는 무공은 뭐요?”
“호호호! 먼저 말해보세요. 원래는 제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한 번 퇴짜 맞으니까 생각이 달라지네요.”
강금산은 서군봉을 힐끔 쳐다본 후 말했다.
“동시에 말할까?”
“좋아요. 셋에 말해요. 하나, 둘, 셋! 패왕도법.”
“패왕도법.”
두 사람은 피식 웃어버렸다.
남무림에 무신은 세 명이지만 문주는 한 명이다. 그렇다면 다른 두 사람의 무공은 남도문주보다 반 수 정도 뒤지는 것이 아닐까?
‘내 생각이 맞았어.’
서군봉은 활짝 웃었다.
사방천마와 서군봉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흑살마녀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녹광성초가 떨어진 후부터 흑살마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추궁과혈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이번에도 쉬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참으로 초인적인 체력이다.
흑살마녀는 자신의 원정(原情)이 손상되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마야가 일어나기만 하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두 손에 진기를 가득 모아 혈도를 두들겼다.
녹광성초는 피부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럼 부작용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데 대다수의 무인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녹광성초를 바르면 일시간 체온이 발산되지 않는다.
속에서 일어나는 열이 고스란히 체내를 휘돌게 되니, 그때 발생하는 열은 계란도 익힐 정도다.
마야에게 녹광성초를 바른 것은 그를 금강불괴(金剛不壞)로 만들고자 해서가 아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열을 체내에 가둬서 오장육부를 자극하고, 뇌를 긴장시키기 위해서다.
이런 극렬한 자극만이 마야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 또한 지나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체내의 열이 위험 수위까지 치달으면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해줘야 한다.
그 방법이 추궁과혈이다.
입과 항문을 벌려놓고 혈도를 건드리고 오장육부를 건드려서 체온이 고루 퍼지게 한다. 넘치는 열기는 빠져나가게 하고, 모자라면 채운다. 그렇게 해도 현재 마야의 열기는 보통 사람들이 열사병을 앓을 때보다도 높았다.
흑살마녀는 쉬지 않았다.
혈도를 쳤다. 주먹을 쥐고 문지른다. 손등으로 비빈다. 팔꿈치로 짓누른다.
“휴우!”
마야의 입에서 긴 숨이 새어 나왔다.
물론 귀를 자세히 기울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약한 숨소리다. 하나 흑살마녀는 똑똑히 들었다.
“휘유!”
흑살마녀도 긴 숨을 토해냈다.
그녀의 고단한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만물이 깊은 잠에 취해 있는 한밤중, 소립파는 부스스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싶어서 뜬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짓누르기에 어쩔 수 없이 떴다.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머리가 깨어질 것처럼 아프다. 근육이란 근육은 모조리 뒤틀리고, 뼈란 뼈는 산산이 부서진다.
“끄으…… 윽!”
살려 달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고통스럽다. 정반대로 말한다면, 빨리 죽여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누가 옆에 있어서 살려주든지 죽이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허억! 허억! 끄윽! 컥!”
목구멍에서 걸리던 비명 소리가 점점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때, 누군가가 소립파의 손을 꽉 쥐어주었다.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달된다. 온기는 조금이나마 고통을 상쇄시켜 준다.
소립파는 온기만으로 손의 임자가 누군지 짐작해 냈다.
“휴…… 휴…… 야.”
“비비비하,비비비(飛飛飛). 곤륜산상세개조. 비비비하,비비비(飛飛飛). 쾌쾌비도림우가(快快飛到霖雨家).”
휴야는 언제 들어도 포근한 자장가를 불렀다.
비비비 비비비 곤륜산에서 날개를 씻고, 비비비 비비비 비오는 날 경쾌하게 날아든다.
“음…… 크윽!”
“비비비하,비비비(飛飛飛). 채타설련송급타(설련을 캐서 넉넉하게 보낼게).”
고통 소리와 자장가 소리는 한밤중의 고요를 잔잔하게 깨웠다.
흑살마녀는 마야가 깨어난 후에야 비로소 움직였다.
그녀는 보지 않고 듣지 않았지만 주변에 흐르는 낯선 공기를 모두 감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움직였다. 하나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보거나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톡톡!
시마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눈을 뜨기는 했지만 일어서지는 않았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듯 아무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톡톡!
누군가가 발길질을 하고 있다. 발로 정강이를 때린다.
그에게 발길질을 할 사람은 없다. 세 여인이 그러리라고는 생각도 못한다. 그럼 외인이라는 소리고, 외인이 이토록 가까이 다가와 발길질을 할 때까지 몰랐다는 것은 엄청난 고수라는 뜻이다.
톡톡톡!
이번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발길질의 강도가 점점 세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뼈가 부서질 듯 아팠다.
“으음……! 누구야!”
시마는 그제야 깨어나는 시늉을 하며 상대를 쳐다봤다.
“헉!”
백발의 원숭이, 백 년 묵은 원숭이! 아니, 흑살마녀!
“서, 선배님!”
시마는 황급히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나이도 만만치 않으나 흑살마녀에게 비할 수는 없다.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손자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모두 깨워.”
흑살마녀는 유창하게 한어를 구사했다.
‘빌어먹을!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네. 그럼 그때도 모두 알아들었다는 거 아냐. 빌어먹을!’
시마는 일령부터 깨웠다.
“야, 이 계집아! 일어낫!”
이로써 사방천마와 세 여자를 충돌케 하려던 서군봉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
마야는 두 손을 내밀어 걱정스런 눈길로 쳐다보는 여인들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다담선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절혼마녀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다.
“그러다 울겠네.”
다담선자는 기어이 눈물을 쏟아냈다. 반면에 절혼마녀는 고개를 돌리며 억지로 참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절혼마녀보다 다담선자가 조금 더 유약한 셈인가.
“왜 혼절한 거예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혼절해서 얼마나 놀랐다고요.”
“뇌를 기절시킬 필요가 있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바보가 되어 있었을 거야.”
“뇌를…… 기절시켜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그럴 수도 있나? 혼혈(昏穴)이나 마혈(麻穴)을 짚어서 잠시 기절시킬 수는 있지만 뇌를 기절시키다니? 그것도 그토록 오랜 시간을?
“뇌와 육신을 연결하는 신경이 잠시 마비되는 거야. 그건 내가 할 수 있지만 그걸 깨워줄 사람은 오직 우리 휴야밖에 없지.”
흑살마녀는 고운 웃음만 지어 보였다. 곱다고 해봐야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정도지만 왠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포근하다는 인상을 받게 하는 표정이었다.
“이틀 정도 몸을 추스를 거야. 그 다음은 멸신구관을 열 거고.”
흑살마녀가 향긋한 차를 끓여와 마야에게만 주었다.
마야는 차를 받아 마셨다. 흑살마녀가 차를 마실 때까지 멀거니 지켜보고 서 있으니 마시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제길! 우리도 입인데.”
시마는 흑살마녀가 달려올까 봐 눈치를 보며 한마디 했다.
흑살마녀는 달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말 한마디로 모두를 경직시켜 버렸다.
“주위에 파리 떼가 득실거린다. 알고 있니?”
마야에게 하는 말은 어찌나 다정스러운지. 그럼 알고 있지 모르고 있을까. 사방천마와 천멸도 살수들, 그리고 그 두 연놈…….
“어림잡아서 오륙백 명은 되는 것 같던데.”
“오, 오륙백 명이요?”
마야만 쳐다보고 있던 다담선자까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놈들 중에는 나도 자신없는 작자들이 보이더라.”
뒷말은 소립파가 담담하게 받았다.
“무신들이군요.”
무신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그들이 언제, 왜 왔는가!
모두들 숨이 막혔다.
2
강금산은 아버지의 무공을 본 기억이 없다.
무공을 배우고, 가다듬어 주시느라 활을 쏘신 적은 있지만 진실된 무공은 아니었다.
강금산이 성장한 후에도 아버지는 몇 번의 비무 혹은 싸움을 하셨다. 하나 그때에도 아버지는 진기를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지는 않으셨다. 그럴 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다른 무신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무신이라는 명호를 얻을 때까지는 숱한 싸움을 했겠지만, 현재의 젊은이들은 무신들의 무공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볼 수 있는 것은 무공의 형태일 뿐, 전력을 다한 무공을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오늘 보고야 말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아 선 노인은 만사무불통지다.
일곱 명의 무신 중 한 명이며, 남도문에서는 제이무신가를 이끌고 있다. 그의 머리는 야광의 지혜를 모두 모은 것보다 뛰어나며, 북검문의 삼뇌가 머리를 맞대야만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다.
명실공히 중원제일의 모사다.
강금산도 아버지를 따라서 몇 번 인사를 다녔다. 정겨운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나태함을 질책하는 소리도 많았다.
만사무불통지를 만났으면 예부터 올려야 한다.
강금산은 뱀을 만난 쥐처럼 몸이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했다.
“궁왕에게 들었다. 집을 뛰쳐나왔다고?”
“네.”
대답 소리도 평소의 그답지 않게 속으로 기어들었다.
“허허! 좋을 때구먼. 연인들의 도피겠지?”
만사무불통지는 서군봉을 주의 깊게 살폈다.
“네. 네…….”
“‘네’라? 천기수사의 딸과 연인의 도피라.”
강금산은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만사무불통지의 처분만 바랐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진기가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가닥가닥 끊긴다.
만사무불통지의 무공 중에 하나인 축기광파(縮氣光波)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 정도로 곤혹스러울 줄은 몰랐다.
축기광파는 기로써 기를 제압하는 상승 무공이다. 축기광파를 극성으로 시전하면 진기를 한 올도 끌어올리지 못하며, 사지 육신이 무력해져서 주저앉고 만다.
강금산이 그랬다. 호흡이 가빠오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저희는 이만…….”
“이상하군. 이런 오지에서 존장을 만났으면 어찌 된 영문인지부터 묻는 것이 도리이거늘.”
몸만큼이나 머릿속도 하얗게 탈색되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시바삐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갈망뿐이었다.
“어떠냐? 넌 이 늙은이와 함께 산책이나 하지 않으련?”
서군봉에게 한 말이다.
“음……! 조, 좋아요.”
서군봉의 안색은 파랗게 질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녀 역시 축기광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따라오거라. 넌 수련 좀 더 해야겠구나. 쯧! 그런 무공으로는 아무것도 못해. 궁왕이 견자(犬子)를 낳았어. 쯧쯧!”
만사무불통지는 강금산을 지나쳐 갔다.
그는 서군봉과 만사무불통지가 밀림 깊숙이 스며든 후에야 복면을 하고 있는 자에게 걸어갔다.
복면을 한다?
이것부터가 일이 심상치 않음을 말해준다.
그는 복면을 하고 있지만 체구나 기도가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해준다. 아니, 그와는 의기가 투합된 터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어떻게 된 건가?”
“우리 같은 사람이야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죠.”
추혼단주 부위량도 만사무불통지를 쳐다보다가 밀림 너머로 들어가 버리자 비로소 시선을 거둬 강금산을 바라봤다.
“미리 연통이라도 해주지 그랬나?”
“명이었습니다. 함구(緘口).”
“여긴 어쩐 일인가? 멸신구관?”
“그런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이 세세한 것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한 가지, 북검문도 여기 와 있습니다.”
“북검문이…… 여길 왔단 말인가?”
“북검문 삼원로가 왔는데, 어디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고요. 혹여 삼원로를 만나게 되면 절대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쓸모없이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