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44
144
타당한 말이다. 죽음 속에서 건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가지 빠진 게 있어. 석문을 닫았을 때 무게 변화가 전혀 없으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지. 자, 제사관을 시험해 볼 사람은 누구든 나서시오.”
“…….”
나서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소립파는 쓴웃음을 지으며 혈일뢰를 밀치고 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들이 바라는 멸신구관의 기연. 꼭 얻기를 바라지. 들어오겠소?”
소립파는 만사무불통지를 쳐다봤다.
만사무불통지는 갈등했다. 소립파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진실이라면 소립파는 희생양이 되겠다는 거고, 거짓이라면 기연을 독식하겠다는 뜻이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건드려 보는 거다. 건드리다 보면 진실이 보인다.
“후후후!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낯간지러워서 그런 말은 못하겠고…… 전해줄 말이 있으면 하게.”
소립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아시오?”
“…….”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이오. 멸신구관에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모두 죽게 돼. 더 끌어봤자 부질없는 짓…… 이만 끝내는 게 속 편해. 알겠소? 당신들 역시 죽을 테니 전할 말 같은 게 무슨 필요가 있겠소.”
거짓이다! 만사무불통지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이유 또한 궁색하기 그지없다. 모두 죽을 것이기 때문에 먼저 죽겠다니 말이 안 된다. 인간이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동물이거늘.
“그런가? 그럼 내가 따라가지. 어차피 모두 죽을 것이라면.”
만사무불통지는 석실을 향해 걸음을 떼어놓았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웃음을 보았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입술을 살짝 비튼 것에 불과한 만족을 보았다.
소립파가 웃었다.
‘여우 같은 자식!’
만사무불통지는 석실로 들어서려다 말고 뒤로 물러섰다.
소립파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기관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왜 기관을 살필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소립파가 주의를 온통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만사무불통지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진기를 이끌어 후각에 모았다.
홍안요진(鴻雁曜振)이라는 무공은 잡기(雜技) 같아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런 무공을 이토록 요긴하게 쓸 줄이야.
스으으으읏!
온갖 냄새가 맡아진다.
다른 냄새는 필요없다. 화약 냄새만 맡으면 된다. 소립파 말의 진위는 화약에 달려 있으니까.
만사무불통지는 아니기를 바랐다. 거짓말이기를, 그래서 소립파와 함께 석실에 있기를. 소립파는 좋은 길 안내자였고, 그와 떨어지면 당장 막막해지니까.
한데 불행히도 화약 냄새가 맡아졌다. 그것도 제이관이 폭발한 것과 버금갈 정도로 많은 양이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사실을 확인했는 데도 폭발 속으로 뛰어들 인간이 있을까.
있다. 마야가 그런 인간이다. 미친놈!
만사무불통지는 완전히 물러섰다.
“아냐, 아냐.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난 아무래도 멸신구관을 전부 봐야겠어. 어떤 함정들이 있는지. 자네 충고처럼…… 난 무신이니 내 스스로 난관을 뚫고 나가야겠지. 지금까지 고마웠네.”
비웃음이나 조롱 섞인 말이 나오리라 생각하면서 말했다.
소립파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냥 무덤덤했다.
“들어올 사람이 없으면…… 부탁하지.”
소립파가 강금산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강금산은 선뜻 은형시를 꺼내 들지 못했다. 뭔가 찜찜해서 쉽게 행동할 수 없었다. 소립파를 따라서 석실로 들어서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남아야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서군봉에게 선택을 맡겼다.
서군봉은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능력이 없으면 사람이라도 잘 살펴야 한다. 그녀는 무신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삼원로는 침착하게 기관을 살폈다. 만사무불통지는 잠시 서둘렀지만 즉시 냉정을 회복했다. 뛰어난 지자는 종종 자신이 만든 심리적 함정에 자신이 빠지곤 하는데, 만사무불통지가 그런 경우다.
이건 생각할 것도 없다. 무신들 모두가 뒤로 물러섰다. 확실한 함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꽝! 에 동참할 필요는 없겠죠. 속았다면 다음 마차를 타면 되고요.”
그 한마디로 행동이 결정되었다.
쒜에엑!
은형시가 날아가 석문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혈일뢰는 전력을 다해 은형시를 잡아당겼다.
그그그그긍!
석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툭!
무엇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몸이 위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석실이 떨어지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극고음은 항상 정확한 사물만 보여준다.
도화선에 불이 붙었는지 매캐한 냄새가 풍긴다.
역시 화약이다.
떨어지는 석실을 산산조각 냄으로써 살아날 수 있는 가망성을 영으로 만든다.
걸려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걸려들기만 하면 반드시 죽일 수 있는 함정이다.
무신, 유계의 주공……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죽는다.
폭발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석실은 인간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두껍다. 그만한 두께를 폭발시키려면 삼, 사층 전각 한 채 정도는 가루로 부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화약이 터지는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되리라.
츠츠츠츠츳! 꽈앙! 꽝! 콰콰콰콰꽝!
엄청난 폭음과 함께 화약이 폭발했다.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돌가루가 분분히 날렸다.
타타타타탁!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조각난 돌덩이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석벽을 두들기는 소리다.
사방이 시커먼 어둠에 휘감겼다.
제8장 료반사(了半死) ― 초주검 되다
1
미치지 않은 이상 죽음 속으로 뛰어들 인간은 없다. 소립파는 미치지 않았다. 죽음이 확실한 함정이지만 그곳밖에 길이 없기 때문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소리를 날렸지만 틈새가 벌어진 곳은 단 두 곳, 제이관이 설치된 곳과 석실뿐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는 초월했다. 당연히 물러서느냐, 나아가느냐 하는 정도의 문제는 생각거리도 안 된다.
소립파는 나아갔을 뿐이다.
하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순전히 그의 몫이다. 석실에 들어서기까지는 선택이었지만 죽느냐, 나아가느냐는 능력이다.
폭발에서 살아날 공산은 전무하다. 목숨을 보호해 줄 무공도 없다. 그런 게 있다면 무신들이 물러섰을 리 없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 한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소립파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최대한으로 말아서 타격받을 부위를 좁혔다.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눈 깜짝할 순간에 불과했지만 소립파에게는 몇 시진이나 된 듯 더디게 지났다.
폭발음은 엄청나게 컸다.
고막이 찢어졌나? 귀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어났다. 뜨거운 열기가 콧속으로 스며들며 숨을 막았다. 바로 뒤를 이어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전신을 두들겼다.
난타(亂打)!
고통은 명뇌인으로 참아내고, 육신이 찢기는 것은 녹광성초가 막아주지만 돌무더기에 강타당할 때마다 가랑잎처럼 휘날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내장이 받을 충격도 염려스럽다.
자오법신의 두 기운이 오장육부를 단단히 붙잡아줄까? 제일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녹광성초와 어울려 금강불괴(金剛不壞)를 이뤄줄까?
제일관에서는 밀어오는 석벽의 힘에 대항할 정도로 강한 힘을 내줬다. 석벽의 힘과 자오법신의 힘이 충돌하여 생혈침을 납작하게 뭉그러뜨리기까지 했다.
그것도 있구나! 생혈침이 살가죽 표면을 덮어 싸고 있구나!
머리를 수그려 다리 사이로 집어넣고, 양손은 깍지를 껴서 뒷머리를 움켜잡았다.
머리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한다.
멍멍하여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청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희뿌옇게 피어났던 돌가루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전신을 찢어발길 듯 두들겨 패던 돌무더기도 바닥에 가라앉았다.
‘살았구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직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명뇌인을 풀 기색만 보여도 극심한 통증이 치미니 살아 있는 것 같다.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은 녹광성초였다. 녹광성초가 폭발을 막아줄 수 있을까?
이제는 확신한다. 피부만은, 살가죽만은 도검불침(刀劍不侵)에 금강불괴다. 왕벌의 침과 꿀이 보태져서 흑살마녀가 이룩한 경지보다 수 단계는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
녹광성초로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경지를 이룬 것일까?
그건 모른다. 녹광성초로 금강불괴를 이룬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효능의 끝이 어딘지 아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끝일지, 이것보다 높은 경지가 또 있는지는 끝없이 반복 실험을 해봐야 알게 된다.
절대 기재란 사람들로 적어도 백여 명쯤은 시험해 봐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많은 녹광성초가 있을 리 없으니 효능에 대한 궁금증은 이쯤에서 접어야 하리라.
어쨌든 무신도 물러선 폭발을 육신이 버텨줬으니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
이제 무림인 중 누가 있어서 육신에 흠집을 낼 수 있을까? 어떤 고문이 그의 입에서 비명을 토해내게 만들까.
명뇌인과 녹광성초는 완성의 정점에 이르렀다.
“끄응!”
힘을 주어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산산조각난 돌더미들이, 꼭 석실 분량만큼 온몸을 짓누르고 있다.
그중에는 소립파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돌도 있었고, 주먹만 한 돌도 있다.
명뇌인도 풀 수 없다. 명뇌인을 풀어야 정확한 감각을 알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신경을 찾아올라치면 난도분시(亂刀分屍)되는 아픔이 찾아온다.
‘하루만…… 있어보자.’
소립파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백 가지의 무공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곳이지만 생각은 할 수 있고, 생각할 거리는 많으니 다행이다.
자오법신의 고통을 두 번 겪었다.
고통을 받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는 음양이기의 순환 속도가 두 시진쯤으로 길어진 것 같다.
자시와 오시, 두 번이면 네 시진이다.
하루 십이 시진 중에 네 시진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한다.
이는 최종 시한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루? 이틀? 아니면 마지막 자오법신을 겪은 것일지도…….
소립파는 자오법신을 겪을 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오법신의 끝자락에서 다가올 죽음의 형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소립파는 조금씩, 조금씩 명뇌인을 풀어나갔다.
살점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다. 예전에 맞이했을 고통이 뒤늦게나마 찾아왔다.
그래도 이겨내고 일어서야 한다.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으려면 최소한 보름 이상은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극심한 폭발이었다.
이 정도만 당한 것도 천만다행이다.
“후웁! 후웁!”
숨을 크게 들이켜 고통을 참았다.
명뇌인에 대한 의존도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조금만 고통이 일어나도 다시 명뇌인을 펼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육신의 감각, 손과 발의 감각을 온전히 되찾으려면 명뇌인을 완전히 풀어야 하는데, 마음은 자꾸 명뇌인을 펼친 채 움직이라고 지시한다.
웬만큼 감각을 되찾았다 싶을 때, 온몸에 힘을 줘 돌무더기를 밀쳐 냈다.
“끄응!”
큰일 났다! 돌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집채만 한 바위가 짓누르고 있다. 아니, 태산에 깔린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내공이 있었다면……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내공을 수련했다면…….
이대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서야 한다. 일어나서 멸신구관을 통과해야 한다. 자오법신의 저주를 풀고 살아나야 한다.
아무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에게도 분노가 있다.
친구 놈! 혈귀대주라는 이상한 감투를 뒤집어쓴 놈!
놈의 복수를 해줘야 한다. 놈을 죽인 자는 물론이고, 배후에서 조종한 자도 응징해야 한다.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친구 놈은 자신을 믿고 눈을 감았다.
놈이 편히 잠들게 해줘야 한다.
친구의 마지막 숨을 거둔 사람은 궁왕 강창도다.
그를 봤다. 그의 솜씨도 견식했다.
많은 문파, 많은 사람들이 친구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
어느 문파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했다. 혈귀대를 몰살시킨 사건은 남무림 무인들에게는 자랑거리다. 그들이 대놓고 떠들어대는데 누구누구가 가담했는지 모른다면 바보나 다름없다.
소립파의 분노는 금연화보다도 훨씬 깊고 크게 타올랐다.
날이면 날마다 그들을 단숨에 피바다로 끌어들이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는 것을 참아왔다.
혈귀대를 몰살시켜야겠다는 생각은 누가 했을까?
그자를 잡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 혈난을 일으키는 것은 경거망동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조용히 은밀히 다가간다. 아예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숨을 죽인다. 하지만 껍질을 벗고 일어설 때는 피가 강을 이뤄 흘러가리라.
살아야 한다. 살아서 친구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
“끄응!”
온 힘을 다해 돌덩이를 밀어냈다. 하지만 수북이 쌓인 돌 더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스스슷! 파앗! 팍! 스슷!
거미가 벽을 기어간다. 개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주어 나른다. 아니다. 거미나 개미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큰 동물이 내는 소리다.
소립파는 소리의 정체를 단번에 꿰뚫었다.
‘참 끈질긴 사람들…….’
그렇다. 무신들이다. 강금산과 서군봉도 섞여 있다.
이만하면 되돌아갈 만도 한데 소검 혹은 소도로 석벽을 찍어가며 내려온다.
제사관이 발동되면서 길고 큰 수직 통로가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