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45
145
석실이 있던 곳은 온전히 뻥 뚫린 공간이 되었다.
그들은 구멍을 통해 위와 아래를 살폈을 게다.
위는 오래 살펴볼 것이 없다. 거리도 짧을 뿐만 아니라 천장이 막혀 있다. 반면에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해 낸다.
“끄응!”
다시 한 번 힘을 줘서 돌덩이를 밀어봤지만 요지부동, 전혀 움직임이 없다.
이제는 기다려야 한다. 무신들이 내려올 때까지. 그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무신들 중에 벗의 원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힘을 빌려야 한다.
같이 있고 싶지 않아도 같이 있어야 하고, 떼어놓으려고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서둘지 않았다. 침착하게 조금씩조금씩 내려왔다.
이윽고 만사무불통지가 제일 먼저 돌 더미 위에 발을 디뎠다.
소립파가 깔려 있는 곳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만공심안은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움직이는 모습, 움직일 때 드러내는 기세만 살펴도 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지독하군. 이런 폭발 속에서도 살아 있다면 그가 무신이야.”
혈일뢰가 부서진 돌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죽었겠죠. 안내를 잘해줬는데…….”
서군봉이 아쉬움을 담았다.
솔직히 마야 덕분에 전사관을 돌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립파가 앞서 나가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뒤를 따르기만 했다.
소립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제일관은 어떻게 돌파했을지 몰라도 제이관에서 목숨을 잃었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소립파가 말해주기 전까지 철화방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지 않은가.
“길을 찾아보세. 이곳이 전사관 중 제사관이니 중일관으로 들어서는 길이 있을 걸세.”
석존무가 돌무더기를 헤집으며 말했다.
가아아아아……!
소립파는 극저음을 토해냈다.
너무 낮아서 동물들밖에 들을 수 없는 소리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답답해!”
강금산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의 내공은 서군봉보다 강하다. 하지만 전신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입고 있기 때문에 심력이 많이 약해졌다.
강금산은 무신들 앞이라 함부로 발작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신경질적으로 돌무더기를 차냈다.
가아아아……!
소리를 계속 토해냈다.
암놈을 사이에 두고 수놈과 수놈이 만나 다툴 때처럼 흥분을 일깨우는 소리다. 발정기가 아닐 때도 발정기 때와 똑같은 행동을 유도해 낼 수 있다.
어렸을 적에는 개나 고양이들을 골려주기 위해 몇 차례 시도해 본 적이 있다. 커서는 동물들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소리를 자제했다.
극저음은 혈액 순환을 촉진시킨다. 인체에 나쁠 리 없다. 반면에 극고음은 상당한 세기로 자극한다. 일점에 집중시킬 경우 인두로 지지는 것과 같은 효과까지 낼 수 있다.
그렇다. 양날의 검이다.
극저음을 병자에게 사용하면 아주 큰 치료 효과가 있다. 하지만 소립파는 적멸주를 만들어냈다. 극고음은 흉기처럼 보이지만 마령음으로 변화되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모든 것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정도 되고, 마도 된다.
“너무 답답하네요. 더워요.”
서군봉이 손을 들어 이마를 훔쳤다.
“먼지가 많아서 그럴 게다.”
진혜력이 벽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혈일뢰, 자의성검, 만사무불통지…… 마령음을 눈치 챈 그들도 적멸주는 깨닫지 못했다.
적멸주도 오래 사용하지는 못할 게다.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만 해도 경각심을 잔뜩 끌어올릴 테고, 미지의 기운을 탐지해 낼 게다.
무신들이 적멸주를 알아채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아아아……!
지극히 조심하면서 적멸주를 토해냈다.
자극이 강할 것 같으면 조금 약하게, 약할 것 같으면 조금 세게…… 세기를 조정하면서 적멸주를 사용해 보기는 처음이지만 서툴지 않게 운용되니 천만다행이다.
“하악! 정말 지독히 덥네요. 빨리 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서군봉이 옷섶을 약간 풀어헤쳤다.
욕망은 열기를 불러온다. 열기는 욕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들끓어 오른 욕망은 더욱 큰 열기를 내어 육신을 활활 불사른다.
서군봉은 욕념이 치미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지 특이한 지형 탓으로만 여겼다.
퍽퍽! 퍽퍽퍽!
돌을 차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저기 있던 돌을 이리 치우고, 여기 있던 돌을 저리로 옮기고…… 좁은 굴속에서 큰 돌, 작은 돌이 끊임없이 옮겨 다녔다.
‘됐어!’
소립파는 수족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감지했다.
윗돌들을 움직여 준 덕분에 조그만 틈이 생긴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쓰면 몸을 빼낼 수 있을 것 같다.
파아아아!
머릿속을 활짝 열어 만공심안을 펼쳤다.
중일관으로 들어서는 통로는 좌측 하단에 있다. 너구리굴처럼 좁아 체구가 가장 작은 서군봉도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가아아아! 두두두두……!
적멸주는 너구리굴 입구를 때렸다. 입구를 맞고 튕겨진 진동은 서군봉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서군봉이 움직였다.
그녀는 애초부터 의도했던 것처럼 너구리굴 입구로 다가가 벽면을 더듬었다.
‘바람! 바람이야!’
서군봉은 잠시 망설였다.
앞에 어떤 난관이 있을까? 혼자서 뚫고 나갈 수 있을까?
멸신구관 중 죽음의 함정은 전사관에서 끝난다.
죽음의 함정을 설치하던 중 이런 식으로는 유계의 주공을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해서 다른 방도를 취한 것이 중일관이다.
중일관은 물리적인 함정이 아니다. 그럼 무얼까?
중일관과 같은 방식으로도 유계의 주공을 죽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다. 그래서 고금에 선보인 적이 없던 죽음의 방식을 창조해 냈다. 후사관이다.
혼자 몸으로 중일관과 후사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내 머리라면.’
서군봉은 숨을 크게 들이쉬어 진기를 조절한 후, 쏜살같이 너구리굴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이번 행동에 전 공력을 실었다.
훗날, 오늘 일을 되돌아볼 때 후회가 조금치도 치밀지 않도록 최선을 경주했다.
쒜에엑!
그녀의 신형은 한줄기 바람이 되어 스며들었다.
쉬이익! 쒜에엑!
여기저기서 바람 소리가 일었다.
그녀의 행동은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자리로 모여들게 만들었다.
신속했다. 빨랐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그때,
퍽퍽퍽! 꽝! 꽈르르르!
너구리굴 입구가 강력한 타격을 받고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허! 이 아이도 욕심이 있었군.”
진혜력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욕심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속으로 감출 뿐이지. 멸신구관의 기연쯤 되면 욕심을 감추기에는 너무 큰 유혹이고. 아이를 탓할 게 무엔가.”
자의성검 석존무는 오히려 서군봉을 감쌌다. 뿐만 아니라 만사무불통지의 앞을 가로막기까지 했다.
그의 의도는 혈일뢰와 통천서패에게 즉시 전달되었다.
혈일뢰가 자의성검과 보조를 맞춰 만사무불통지를 견제했다. 통천서패는 웃으면서 강금산의 앞에 섰다.
“북검문과 남도문의 싸움이 어디 가겠나? 이쯤에서 종결짓는 것도 괜찮다고 보네.”
자의성검의 양손에 진기가 운집되었다.
삼원로의 행동은 소립파의 의도를 벗어난 것이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줄이야.
이들이 싸우건 말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상관하고 싶지도 않다. 하나 이들이 싸우면 피해를 보는 건 자신이다. 이제 간신히 틈새를 벌려놨는데, 치고받다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나.
‘고약한 사람들이군.’
소립파에게도 대책이 없었다.
“심보가 고약하군.”
만사무불통지가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하지만 싸우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자의성검이 진기를 모으고 있어도 무방비 상태로 태연히 맞이했다.
“자의성검, 날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내가 바로 만사무불통지라네. 천하제일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 나란 말일세. 길을 여시겠는가, 아니면 내가 준비한 수를 보시겠는가.”
자의성검은 선뜻 검을 뽑지 못했다.
“한 가지만 말해줌세. 내가 준비한 수를 파해하려면 북천신검의 천광일섬(天光一閃)이 필요하네. 그래, 천광일섬이라면 충분히 내 수를 파해할 수 있지. 어떤가? 천광일섬을 시전할 수 있겠나?”
자의성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북무림의 황제, 북천신검 양학산의 천광일섬은 무신들에게도 공포의 무공이다.
세인들은 천광일섬이라는 무공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오직 무신들만이 알고 있다.
빛을 보았나? 그럼 가슴을 내려다보라. 심장이 뻥 뚫려 있을 테니.
단 일 초로 끝난다. 시작되고 끝나는 동안 검을 볼 수가 없다. 발검(拔劍), 착검(着劍)의 형태도 없다. 눈앞에 빛이 어른거렸다면 이미 끝난 것이다.
해서 검법 명칭이 따로 붙지 않았다. 초식 명칭이 바로 검법 명칭이 되었다.
자의성검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그에게도 천광일섬을 대적할 검초가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천광일섬과 겨뤄볼 생각이다.
‘아직은…….’
자의성검은 진기를 거뒀다.
만사무불통지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모르지만, 멸신구관만큼이나 지독할 것이다.
동귀어진(同歸於盡), 틀림없이 삼원로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또 충분히 시간을 지체시켰다. 이 정도 시간이면 중일관에 들어간 서군봉이 무엇엔가 부딪치고도 남았다. 위험이든, 기연이든.
서군봉이 얻은 기연은 삼원로에게도 돌아올 공산이 크다. 서군봉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화(禍)가 되어 돌아갈 테고. 하나 남무림 사람들이 얻게 되면 그림자도 못 본다.
기왕 늦었다면 길이라도 지체시켜 주어야 하는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대단한 걸 준비한 모양이오?”
만사무불통지가 석존무의 말뜻을 모르랴.
“허허허! 먼저 간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란 걸 모르시오? 중일관은 종류는 다르지만 전사관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길이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후사관에 있거늘. 쯧! 큰일이나 당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만사무불통지는 오히려 서군봉을 염려했다.
웃음과 웃음이 교차했다.
그들은 결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2
모두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래도 즉시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저주의 자오법신이 지나갔다.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이번 자오법신에도 죽지 않은 걸 보면 최소한 반나절의 시간은 남아 있다.
“끄응!”
힘을 주어 힘껏 밀어내자 꼼짝도 하지 않던 돌덩이가 들썩거렸다.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다. 그러자 돌이 움직이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양팔에 힘을 주어 몸을 빼냈다.
몸은 스르르 빠져나왔다. 중간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힘들었으련만 다행히도 별다른 장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풀려나자 단정히 앉아 만공심안을 펼쳤다.
무신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뚫어놓은 너구리굴은 짙은 침묵만 유지하고 있다.
제이관과는 다르다. 제이관에서는 모두 한데 모여 동굴 벽을 더듬고 있었지만, 지금은 너구리굴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사라진 사람은 강금산.
너구리굴로 들어가서 일로 직진하여 우측으로 돌아서는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그후 감쪽같이 없어졌다.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사라졌다. 우측으로, 좌측으로…… 가까이에서, 멀리까지 가서…… 사라진 지점은 각기 다르지만 흔적 없이 녹아든 건 마찬가지다.
‘미로(迷路).’
소립파는 너구리굴의 정체를 눈치 챘다.
사람이 만든 미로는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싱겁다. 미로에 휘말리면 기진하여 죽고 말지만, 법칙을 알아내면 내 집 안방처럼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작 힘든 미로는 천연적으로 생성된 동굴 미로다.
천연 동굴에서 길을 잃으면 십 중 십 죽는다. 동물도 예외가 없다. 길을 잃으면 굶어 죽거나 지쳐 죽거나 떨어져 죽거나 한다.
마인들은 동굴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모두 정도인들 덕분이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인 덕분이다.
소립파에게도 동굴의 미로는 익숙하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이것이 공포의 시작이다. 세상에 홀로 있다는 느낌이 들면 사소한 것에도 긴장하게 된다. 긴장이 극에 이르면 사리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조급증만 불러온다.
동굴에서는 절대 침착해야 한다.
가아아아아……!
적멸주가 터져 나갔다.
머릿속은 환하게 열려 어둠을 꿰뚫어 봤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다른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지형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무신도 마찬가지다.
소립파는 굽어진 곳까지 볼 수 있다. 적멸주와 만공심안이 그에게 제삼의 눈을 주었다.
당연히 시행착오는 줄어든다.
몇 굽이 앞을 볼 수 있다면 미로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형성되더라도 싱거운 미로가 된다.
이상한 점은 깊이 들어왔건만 먼저 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모습을 감춘 강금산도, 제일 먼저 들어온 서군봉도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서 다른 길로 빠진 무신들도 흔적이 없다.
‘앗차! 앗차차!’
이건 정상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어떤 작용을 가해놨기 때문에 만공심안도 통하지 않는 거다.
불현듯 한 가지 진식이 떠올랐다.
환상미로진(幻想迷路陣)!
간단히 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진이 환상미로진이다.
자신은 천연 동굴을 생각했고, 길을 잃을 위험에 대비했다.
환상미로진은 천연 동굴을 보여주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길을 열어주었다.
사막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막을 볼 것이다. 바다에 익숙한 사람은 바다를 보리라. 산속 생활이 익숙한 사람은 숲길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