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48
148
‘천천히 몸을 추스르고…… 빠져나가자.’
소립파는 묵상에 잠겼다.
스스스스…………!
영매술이 최극상으로 펼쳐졌다.
2
사람들은 ‘마 마’를 이 잡듯이 뒤졌다.
멸신구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하나 일곱 사람이나 삼킨 입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움푹 파인 분지, 어머니의 무덤은 지난 산불로 인해 잿더미가 된 상태였다.
숨을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었다.
조금 높은 언덕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마 마’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왔다.
그런 연유로 ‘마 마’에 들어서는 사람은 신형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공공연히 ‘마 마’를 돌아다녔다. 복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신분을 숨길 수 있어서 내놓고 다닐 수 있었다.
남만에 모여든 무인은 천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들이 뒤지고 또 뒤졌지만 멸신구관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드러나지 않았다.
주림과 백인수도 ‘마 마’를 돌아다녔다.
‘마 마’를 돌아다니는 데는 굳이 은신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흑색 복면 하나만 뒤집어쓰면 남과 북, 어느 쪽 무인인지 따지지 않았으니 활동하기가 편했다.
“찾았나?”
“의심스러운 곳이 한 군데.”
“어디야?”
“벌들이 워낙 많아서 접근하기 힘든 곳인데…… 유일하게 수색할 수 없는 곳입니다.”
“벌? 고작 벌이 무서워서…….”
“말벌만 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건 말벌 같은 건 새끼 취급할 것 같은 큰 벌입니다.”
“그런 벌이 있으면 이목을 집중시켰을 텐데?”
“원래는 통로가 있던 곳인데, 산불로 흙이 무너지는 바람에 입구가 막힌 곳이죠. 저희도 벌이 아니었으면 놓칠 뻔한 곳입니다. 확신하지는 못해요. 벌 떼 때문에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이해할 만하다. 이들이 천멸도 살수이기에 찾아냈지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다.
‘그곳이야!’
주림은 확신했다.
이곳에 모인 무인들 중에 천멸도 살수만큼이나 눈썰미가 뛰어난 자를 찾는다면 누가 있을까?
‘추혼단…….’
주림은 망설이지 않고 남도문 최고의 정보 수집, 추적 집단인 추혼단을 지목했다.
그들이라면 입구를 찾아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됐어. 이거면…… 다행히 임무를 완수했어.’
정말 홀가분했다.
십팔밀막검도 ‘마 마’를 뒤졌다.
그들 역시 백인수처럼 복면을 썼다. 그러나 보고하는 사람은 십팔밀막검주인 종청호가 아니었다.
“못 찾았습니다.”
“쉽지 않을 거예요.”
다담선자였다. 그녀가 ‘마 마’에 나왔다.
종청호는 기개가 산악 같기 때문에 단번에 신분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는 천멸도주의 곁에 있고, 다담선자가 대신 나선 것이다.
“백인수는 입구를 찾은 모양입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다담선자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녀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남무림 무인, 북무림 무인…… 서로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움직인다. 밀림에 들어온 여자도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멸신구관이 주는 위력은 그만큼 컸다.
“아무래도 다른 곳을 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은 벌써 네 번이나 샅샅이 뒤졌는데…….”
“아녜요. 여기에요. 여기 있어요.”
다담선자의 눈동자가 샛별처럼 반짝였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라도 들려주시면…….”
“그냥 느낌이에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그렇지만, 저희가 놓치는 것은 없습니다. 이 정도 뒤져서 찾지 못했다면 없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
십팔밀막검은 다담선자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다담선자가 물러서지 않는 한, 내일도 ‘마 마’를 뒤져야 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시간이나 많다면 몰라도 이제 겨우 하루 내지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에 멸신구관의 출구를 찾아서 수중에 장악해야 한다.
은밀한 행동이 요구된다.
천멸도 살수들의 최대 무공인 은신술을 최고조로 펼쳐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끝내 버려야 한다.
십팔밀막검에 비하면 백인수는 오히려 편한 일을 맡았다.
그들은 출구가 열리는 시점에 입구를 열어야 한다. ‘마 마’에 몰려든 수많은 군웅들을 멸신구관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집어넣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멸신구관을 활짝 열어놓기만 해도 된다. 무림인들은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꾸역꾸역 빨려 들어갈 것이다.
소립파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빼내려는 방편이다.
그가 어떤 상태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멸신구관의 기연을 얻기 바라지만, 무신들이 곁에 있는 이상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저주의 자오법신만 풀었으면 싶다.
그것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성한 몸으로만 나와주기만 하면 원이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하루 혹은 몇 시진 만에 유명을 달리한다.
어떤 경우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
이는 다담선자의 뜻이기도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다.
다담선자와 십팔밀막검은 단 몇 시진이 될지도 모를 평온을 얻고자 천멸도주를 비롯한 지인들의 목숨까지 도박 상품으로 내걸었다.
그들은 잘 버텨내고 있는지……
혹 큰일이나 당한 것은 아닌지……
“좋습니다. 내일은 좀 더 세밀히 뒤져 보죠.”
십팔밀막검이 ‘마 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드려요.”
다담선자는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
야광의 총수인 구환자는 추혼단으로부터 자신들의 동료가 육능자에게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흑살마녀에게 보낸 지자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는 것보다 무려 이틀이나 뒤진 보고였다.
이틀이란 시간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야광은 손을 쓰지 못하는데 육능자는 손을 쓸 수 있다. 육능자에게 마음 놓고 흑살마녀를 요리하라고 길을 열어준 것과 다를 바 없다.
다행히도 남만은 남무림 땅이나 마찬가지다.
남무림 무인들을 무한정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원할 수 있는 자는 모두 동원해! 무조건 밀고 들어가!”
조용하던 밀림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육능자는 군진(軍陣)인 방진(方陣)을 사용했다.
천랑대 무인들을 십열 종대로 세우고, 병기는 스무 척짜리 기창(騎槍)을 사용하게 했다.
기병들은 주로 열다섯 척짜리 기창을 사용한다.
육능자는 다섯 척을 더 보태 유례가 없는 기창을 만들어냈다.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보지.”
천랑대는 명을 받들었다.
스무 척 기창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찌르며 전진했다.
땅속, 바위, 나무, 허공까지…… 기창과 기창은 서로 빗겨 침으로써 사람이 빠져나갈 공간을 사전에 차단했다.
시간은 중요치 않다. 세밀함이 생명이다.
“은신술은 눈속임에 불과해. 기껏해야 숨어 있거나 위장한 것에 지나지 않아. 풀이고 나무고 하나도 남기지 마!”
그가 말하지 않아도 천랑대는 매우 느리게 움직이며 창을 찔러댔다. 그들의 목숨이 달려 있지 않은가. 천멸도 살수들의 솜씨는 익히 보아왔지 않은가.
방진이 효험을 봤는지 흑살마녀의 영역에 들어섰지만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다.
살수들의 죽음도 없었다. 하기는 창이 찔러오는 걸 보면서 가만히 숨어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피할 여유를 충분히 주면서 천천히 찔러온다면 웃으면서 피할 것이다.
십 장을 나아가는 데 한 시진이 걸렸다.
“좀 더 속도를 내. 이건 너무 느리잖아!”
육능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십겁룡의 솜씨를 봤으면서 그런 말을 하시는 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천랑대 삼대주가 비틀린 음성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육능자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틀렸어.’
육능자가 간신히 벌어놓은 이틀이란 날짜는 너무도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나아간 거리라고는 고작 백여 장.
흑살마녀의 초옥이 가까워질수록 나아가는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에 기창을 뻗어내는 속도와 횟수는 훨씬 빠르고 많아졌다. 천랑대는 지옥의 수련을 거친 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겁쟁이가 되어 움직였다.
육능자는 지켜보기만 했다.
처음부터 지휘권에 문제가 있었다. 천랑대주도 아니고 천랑대주 휘하의 삼대주밖에 안 되는 인물조차 마음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흑살마녀를 잡겠다는 건 개가 웃을 일이다.
성질 같아서는 벌써 삼대주의 목을 쳐냈겠지만…… 그럴 수 없다. 본 문에 있는 천랑대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삼대주의 목을 베어냈다고 하면 성질이 불같은 천랑대주가 가만있을 리 없다.
이래서 삼원로에게 지휘 문제를 매듭지어 달라고 그토록 강력히 말했건만.
“자!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긴장 늦추지 말고!”
삼대주가 목청을 높였다.
육능자는 가만히 지켜봤다. 이번 일에 흥미를 잃어서 지켜볼 기분도 아니다. 그때,
쉬익! 쉭쉭쉭! 쉬이이익!
여기저기서 복면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속한 몸놀림으로 창을 든 복면인들과 대치했다.
‘빠르고 효과적인 대책…… 다급한 대로 포위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이겠지. 이토록 많은 무인을 일시에 동원할 수 있는 자라면…… 구환자가 직접 왔군.’
육능자는 사태를 단번에 짐작해 냈다.
삼대주가 난감한 표정으로 육능자를 쳐다봤다.
‘바보 같은 놈!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다니.’
육능자를 눈빛에 경멸을 담아 보냈다.
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인가! 위급 상황이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나면 북무림 무인들은 씨가 마른다. 삼대주란 놈이 그 정도도 모르고 수하들을 부린단 말인가!
“천랑대를 전멸시킬 참인가? 그만 물러가지.”
육능자가 급히 재촉했다.
천랑대 무인들은 육능자의 속내는 짐작도 못한 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구환자는 끓는 기름을 준비했다.
여덟 명이 한 조로 이십 개 조가 나란히 움직였다.
네 명은 팔팔 끓는 기름 솥을 걸머졌다. 네 명은 쇠 주걱에 기름을 담아 앞길에 뿌렸다.
골고루 뿌렸다. 산천초목이 온통 기름에 튀겨지도록 꼼꼼히 뿌리며 나아갔다.
구환자가 준비한 살수 대응책이다.
야광의 전진 속도는 천랑대보다는 훨씬 빨랐다. 한 시진도 안 되어서 흑살마녀의 초옥을 눈앞에 두었다. 넉넉잡아 반 시진 정도만 지나면 천면겁에 빠져 있는 흑살마녀를 집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잘 전진하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헉!”
“아아악!”
비명은 처절했다. 상처는 깨끗했다. 육신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치명적인 사혈(死穴)만 깨끗하게 관통시켰다.
목이 뚫리고, 미간이 뚫리고, 심장이 꿰뚫렸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상처만 생겼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죽음 하나가 보태졌다.
공격은 앞이 아니라 뒤에서 터져 나왔다. 무인들이 기름을 뿌리며 지나온 길이다.
천멸도 살수들이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들은 팔팔 끓는 기름을 뒤집어써도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무인들은 곧 대응 태세를 갖췄지만 죽음은 계속 이어졌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신출귀몰(神出鬼沒)이란 말이 절절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검만 튀어나와 목숨을 앗은 후에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통에 당한 자를 쳐다보기에도 급급했다.
육능자는 천멸도 살수들이 땅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기에 기창을 사용했지만, 구환자는 살수들의 은신술만 염두에 두었기에 끓는 기름을 선택했다.
천멸도 살수들에게 언장은마의 힘이 보태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세운 계획과 보고만 받은 후에 세운 계획의 차이였다.
만사무불통지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흑살마녀를 잡으라고 했으니 잡아야 한다. 수중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만사무불통지도 흑살마녀의 곁에 천멸도 살수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약간의 변화를 주어도 무방할 듯싶다.
처음부터 생각하자.
천면겁을 풀 수 있는 사람은 무신밖에 없다.
마야는 흑살마녀를 만나도 천면겁을 풀지 못하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만사무불통지가 흑살마녀를 취하려고 애쓴 것은 마야를 염려해서가 아니라 삼원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야가 멸신구관의 기연을 얻지 못하면 흑살마녀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든 상관없다. 그때는 삼원로도 흑살마녀라는 귀찮은 혹을 거들떠보지 않으리라.
멸신구관의 기연을 마야만 얻었을 때, 흑살마녀는 마야의 모든 것을 탈취할 수 있는 병기가 된다.
마야에게 흑살마녀라는 존재는 다담선자나 절혼마녀와 비길 바가 아니다. 마야의 여인들을 모두 잡아놔도 흑살마녀 한 명을 잡아두느니만 못하다.
흑살마녀를 잡지 못하겠다면…… 북무림 무인들을 통제하면 된다.
그들만 통제하면 삼원로는 흑살마녀가 천면겁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르게 된다. 나중에는 알아도 상관없다. 만사무불통지가 먼저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구환자는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안다.
“모두 복면을 벗는다! 낯선 자는 반드시 신분을 확인한다!”
“그 말씀은 북무림 놈들을 베어내라는…….”
맞다. 되물을 게 뭐 있나.
예전과는 사정이 달라졌다.
전에는 만사무불통지와 삼원로가 공존했다.
함부로 싸울 수 없는 사람이 있었기에 싸움을 피한 거다.
무력(武力)으로 볼 때는 삼원로는 세 명이고, 만사무불통지는 한 명이니 단연 삼원로가 우세하다. 하나 삼원로는 남무림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단점을 생각해야 한다.
싸움이 벌어지고 남도문주가 직접 남무림을 총동원시킨다면 삼원로도 힘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들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