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50
150
‘풋! 쇠로 만든 감옥에까지 갇히고…… 별걸 다해보는군.’
중일관 통로가 어떻게 쇠 감옥으로 변한 것일까?
해답은 머리 꼭대기에서 들렸던 이상한 소리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히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였다.
몸이 움직인 것도 기억한다. 철벽이 빙글 돌며 육신을 반대쪽으로 이동시켰다.
중일관 통로는 철벽 너머에 있다.
이곳은 안전한 곳일까? 위험한 곳일까?
어느 쪽이라고 해도 소립파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다.
‘몸부터 추스르자.’
편한 마음으로 앉아서 영매술을 펼쳤다.
스스스스스……!
몸이 빛을 빨아들인다. 뜨거운 열기가 병균을 태우고 썩은 살을 밀어내며 새살을 돋운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단포철환의 섬광과 열기가 소립파에게는 영약(靈藥)이었다.
영매술이 빛과 열기까지 상처를 치료하는 약재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소립파의 상처는 무척 빨리 아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떤 곳에는 딱지가 앉기 시작했으니 금창약을 바른 사람보다도 열 배 가까이 빠른 회복이다.
끊어졌던 힘줄이 다시 붙었다. 손상된 기맥도 이어졌다.
합일한 자오(子午) 양기(兩氣)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음기, 양기로 나눠져 절반쯤은 기절(氣絶)한 상태로 살았다. 한데 온전한 기운이 도도히 흐르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볍다.
신체가 불편해서 정상적인 활동을 못했던 사람이 멀쩡해졌을 때 느끼는 자유로움이 몸속을 누비고 있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
‘조금만 더하면…….’
“두 번 다시 들어오고 싶지 않은 곳이네요.”
철벽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중일관 통로가 어느 쪽인지 알게 되었다.
조용하다. 이리저리 흩어진 철편이 발에 차이는지 덜그럭거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이건 뭐라고 부르는 암기예요?”
“마화정(魔火釘).”
“마화정요!”
‘마화정!’
소립파도 놀랐다. 진정 놀랐다. 너무 놀라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마화정은 죽음의 암기다. 살상력이 너무 지나쳐서 마병(魔兵) 중에 마병으로 분류되었다.
우선 상처부터가 끔찍할 만큼 잔인하다. 마화정은 격중된 순간 내장으로 파고들며 강렬한 회전을 일으킨다. 뱃속에서 쇠붙이가 회전을 일으키니 오장육부는 갈가리 찢긴다.
마화정이 들어간 자리는 작은 못 자국 정도에 불과하지만 뚫고 나온 자리는 주먹이 들락거릴 정도로 크다.
마화정의 비밀이 강력한 회전에 있기 때문이다.
마화정에 당하면 반드시 죽거나 불구가 된다.
말을 듣자니 중일관 통로에 마화정이 사용된 것 같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왔나? 만공심안으로 살펴봤을 때는 칼날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암기를 숨겨 놓을 만한 장소도 없었는데.
소립파가 놀란 것은 마화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화정은 오귀궁 암귀(暗鬼)의 필사오병(必死五兵) 중 하나다.
중원 천지에 마화정을 사용한 사람은 그밖에 없고, 제조 비법을 전수하지도 않았다.
오귀가 죽은 지금, 마화정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때 마화정이…….’
머리 꼭대기에서 기관이 발동되었을 때, 철벽이 빙굴 도는 덕분에 단포철환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그때 돌려진 철벽에서 마화정이 발출되었다.
철벽은 소립파를 살리고자 돈 것이 아니다. 최후 관문에 설치된 칼날이 손상되는 순간, 철벽이 자동적으로 회전하며 마화정을 쏟아내게 설계되었다.
마화정은 현재 소립파가 앉아 있는 자리에 있었다.
철벽이 빗자루로 쓸듯이 마화정을 쓸어서 통로 쪽으로 일제히 쏘아낸 것이다.
자그마한 마화정에 가공할 회전력을 담을 수 있는 암귀라면 철벽에 회전력을 주는 것 또한 손쉬운 일이었으리라.
이제 분명해졌다.
오귀는 멸신구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어딘가에 입구가 있을 텐데…… 이상해. 핏자국은 있는데 사람은 없어. 허허허!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소립파는 석존무의 말을 들으며 영매술에 깊이 파묻혔다.
몇 시진 정도 영매술에 몰입해 있었는데 억겁이나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훨씬 가볍다. 철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을 때에 비하면 중상자와 경상자의 차이만큼이나 좋아졌다.
몸 상태를 점검해 볼 순간이다.
명뇌인을 풀고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아프다.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신경도 아프고, 뼈도 아프고, 살점도 아프다.
아플 것은 예상했다. 점검하고 싶은 것은 움직일 수 있느냐이다.
왼쪽 팔은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이번에는 오른팔…… 오른팔 역시 움직인다.
목, 허리, 무릎, 다리…… 관절까지 세세하게 점검했다.
아물었던 상처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이어진 힘줄이며 기맥이 불안하다. 아직은 힘을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한다.
역시 아직은 움직일 수 없다.
하나 언제까지 치료만 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상처가 깊을 때는 영약 못지않게 음식 조절이 중요한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
영매술로 상처 회복을 극대화시켰지만 영양 상태가 방해하고 있다.
‘이제 그만 움직여야겠지.’
피만 철철 흘러내리지 않으면 된다.
마음을 굳게 다잡고 일어섰다. 물론 전신을 움직이기 전에는 명뇌인을 운용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앉은 자리에서 무릎조차 펼 수 없을 테니까.
철벽을 움직이는 방법도 연구해 놨다.
그리 어렵지 않다. 구석진 곳으로 가서 발끝으로 톡 건드리기만 하면 된다. 밖에서 안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안에서 밖으로 돌리기는 무지 간단하다.
철벽 감방은 잠시나마 그의 연공실이었다. 떠나기 전에 구석구석을 살폈다. 철판의 두께, 모양, 이음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밀실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탁! 철컥! 철컥! 파앙!
발끝으로 철벽 구석을 치자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철벽이 돌풍처럼 빙글 돌며 소립파를 쓸어서 내동댕이쳤다. 중일관 최후 관문으로. 마화정을 쏘아내듯이.
소립파는 무려 오륙 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육신이 쿡쿡 쑤신다. 이제 간신히 피만 나지 않게 억눌러 놓았는데.
무신들, 서군봉과 강금산……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후사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찾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무신들이라면 틀림없이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일방적으로 이끌려 가기만 하다가 비로소 선택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후사관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되돌아 나갈 수도 있다.
후사관은 어떤 난관이 있을지 종잡지 못한다. 되돌아 나갈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소립파가 들어서는 것을 끝으로 제일관 석벽은 닫혔다. 기관의 연속성을 생각해 보면 닫혔던 석벽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들어서는 자들을 죽일 수 있다.
그런 식이라면 제이관, 제삼관, 제사관도 정상 복구되어 있어야 한다.
제사관은 폭파되었고, 제이관의 철화방진은 깨졌으며, 제삼관은 태워졌다.
중일관도 마찬가지다. 칼날이 부러졌고, 마화정도 쏘아졌다.
멸신구관 중 오관이 무용지물로 변했다.
제일관 역시 복구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소립파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닫힌 석벽을 열 힘이 없으니 후사관으로 들어가야 한다.
‘결국은 멸신구관을 모두 통과해야 할 것 같군.’
후사관 입구는 붕괴되어 있었다.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기연이 시작된다고 알려져 있으니 치열한 다툼이 있었을 게다.
보지 않았지만 눈에 선하다.
부러진 철편으로 흙을 파냈다. 바위와 돌도 들어냈다.
중일관 최후 관문은 사방이 철벽으로 되어 있는데, 후사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믿을 수 없게도 흙으로 조성되었다.
허술해도 너무 허술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 붕괴가 진행될 수도 있다.
이것 역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흙벽으로 만들었다.
후사관 중 제일관을 통과하는 열쇠가 흙벽에 있는 것은 아닐지.
소립파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붕괴된 입구를 파헤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후사관 안은 더욱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멸신구관이 아니라 탄광에 들어온 기분이다. 거친 나무로 기둥을 세웠고, 광목(廣木)으로 천장을 만들어놨다.
길도 썩 좋지 않았다. 작은 언덕이 있는 것처럼 굴곡이 심했고, 잔돌도 많아서 발끝에 툭툭 채였다.
먼지도 많았다.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가는 먼지가 풀썩풀썩 피어올랐다. 흑침무를 겪은 경험이 있어서 혹시 독이 섞여 있지 않을까 하고 주의했지만 단순한 먼지였다.
‘후사관이라고 죽음이 없을 리 없지. 기연을 주자고 기관을 만들었을 리는 없고…….’
앞서 간 사람들이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살펴보는 게 낫다. 먼저 죽음의 함정에 부딪칠 이유는 전혀 없다.
기연을 얻는 게 목적이라면 남들보다 한 걸음 빨리 나아가야 되지만 멸신구관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사람에게는 급할 것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다. 정확히 알았어도 부수적인 효과가 너무 커서 망각해 버렸을 수도 있다.
후사관의 기연이란 일단 죽음의 함정을 겪어내야 한다.
시련을 겪다 보면 몸도 마음도 강건해지지 않겠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또한 꿋꿋하게 이겨내어 성공한 사람의 표본이 되는 사람도 많다.
후사관의 기연이란 후자에 불과하다.
죽음의 고비를 겪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 같은 것을 기연이라고 말한다.
무신 같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찾을 만한 기연은 결코 아니다.
그들도 이런 사실을 안다. 그러면서도 굳이 찾아온 것은 유계의 주공을 상대로 깨달음 운운했기 때문이다. 북검문주, 남도문주와 버금가는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함정이라니 몸소 겪어보자는 심정에서다.
얻으면 좋다. 얻지 못해도 궁금증은 풀린다.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 무신의 위치가 되면 무공에 대해서는 무불(無不)의 경지에 오른다. 하지만 신이 아닌 이상 난관에 부딪칠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강렬한 자극제가 투여되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쉽게 풀리기도 한다.
멸신구관은 자극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무신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멸신구관까지 이용하느냐? 대답은 너무 쉽다.
무신들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지만 천하제일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하제일인에 욕심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평생 수련한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최강이라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다.
현재 최강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세 명뿐이다. 북검문주, 남도문주, 유계의 주공이 그들이다.
무림인들은 무신들을 같은 위치로 대우한다. 남무림과 북무림으로 갈렸어도 싸워보기 전에는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혈일뢰와 남도문주가 겨뤄도 누가 이길지 모른다는 게 중론이다.
한데 내기의 세계로 들어가면 우열이 갈린다.
다른 무신들은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보다 한 수 아래로 자리매김된다. 혈일뢰와 남도문주가 겨룬다는 질문을 내기의 세계에 던지면 판돈이 일방적으로 남도문주에게 쏠리기 때문에 아예 내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문주를, 대형(大兄)을 양보했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하는 부당한 대우다.
무신들은 부단히 노력한다. 자신의 무공이 천하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모르긴 해도 무공이 일 촌(一寸) 정도만 성장한다고 해도 멸신구관의 위험을 감수하리라.
기연이라는 것…… 후사관을 모두 통과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에서야 찾아오는 게 아닐지.
문득…… 문득! 걸음을 멈췄다.
중일관 최후 관문을 들어서기 전처럼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급히 주위를 돌아봤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광목으로 받쳐진 천장, 반쯤은 썩어서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나무 기둥, 풀썩이는 먼지…….
변한 건 없지만 틀림없다. 바로 앞에 위험이 있다. 한 걸음이 될지, 두 걸음이 될지 모르지만 절대 앞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중일관에서처럼 모험을 감행할 수도 없다.
몸 상태가 극히 나쁘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걸레를 이어 붙였다는 말도 감사히 받아들일 정도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던진 돌팔매도 위험이 된다. 하물며 후사관의 위험이니…… 감당할 수 없다.
바닥으로 눈길을 돌렸다.
무신들이 지나갔고, 서군봉과 강금산이 지나갔다. 그럼 발자국이 남아 있어야 한다.
있다! 한 무리가 이동한 듯 여러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중 유독 작은 발자국은 서군봉의 것일 게다.
발자국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계속 이어진다. 멀찍이…… 최소한 오 장 밖까지는 이어지고 있다.
본능은 몇 발자국 안에 위험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위험 없이 갈 길을 갔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할까.
본능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는 만공심안이나 적멸주, 마령음처럼 확실히 손에 쥐어줄 수 있는 능력이다.
위험 감지 능력!
소립파는 자신의 본능을 믿는다.
‘흙! 흙에서 단서를 찾아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어. 나가면 이제는 감당 못한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흙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마음을 활짝 열고 흙냄새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소립파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떴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하아!”
탄식인지 절망인지 모를 신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이곳은 절대 지나갈 수 없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