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54
154
괜찮다. 수로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수로를 이용한 진기 운용법도 창안해 냈으니 이를 발전, 보완시키면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무학이 창조될 수 있다.
실제로 부풍약영 같은 신법을 전개해 봤으니 검법, 도법인들 펼치지 못할까.
몸만 아프지 않으면 된다.
여인을 취해 음기를 흡수해야만 하는 저주에서 벗어났으니 만족한다. 특별히 양기를 자극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몸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소립파는 절반의 실패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성공했어!’
전해오는 말이 맞다. 저주의 자오법신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멸신구관에 드는 것밖에 없다더니, 정말 고쳤다.
경락이 메워진 것만으로도 그의 몸은 크게 변했다.
몸 안에 있던 노폐물이 쏟아져 나갔다. 병균과 사기(邪氣)도 핏덩이에 묻혀 빠져나갔다.
지금 이 순간, 소립파의 몸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갓 태어난 태아의 상태나 다름없었다.
원정지기(元精之氣)가 충만하니 상단전(上丹田)의 원신(元神)도 살아나 음(陰)한 영(靈)을 밀어냈다.
세상이 밝게 보였다.
만공심안이 극에 이르면 삼목(三目)이 생긴다고 했는데, 허언인 줄 알았더니 미간 한가운데 뚜렷한 눈이 생겼다.
외형상으로 눈이 생긴 건 아니다. 소립파만이 느낄 수 있는 심안(心眼)이 생긴 것이다.
굳이 만공심안을 펼치지 않아도 상단전의 원신이 요요한 웃음을 지으며 삼라만상을 꿰뚫어 보니 불가에서 말하는 천안통(天眼通)과 다름없지 않은가.
만공심안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꿰뚫어 보게 해주었다. 하지만 삼목은 사물의 모양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고락과 형색을 꿰뚫어 보게 해주는 지혜의 새로운 형태다.
소립파는 육신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절반의 실패가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내공이 너무 약했다.
소립파는 흡혈고인을 녹여 경략을 메우는 데까지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고, 성공했다.
한데 한 번 더 해야 할 것이 있었다.
강력한 힘으로 경락 안을 뻥 뚫는 일이다.
울퉁불퉁 메워진 마유를 있는 힘껏 밀어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력이 너무 약했다.
마유는 자리 잡은 곳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앞으로 지금과 같은 시도를 또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힘이 필요할 게다. 액으로 된 마유를 밀어내는 것도 큰 힘이 필요했는데, 바위처럼 딱딱해진 경략을 뚫으려면……
“이거 영 몰골이 말이 아니군.”
소립파는 아랫도리를 쳐다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발가벗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물로 뒤덮인 옷을 입고 다닐 수도 없고.
스으으으읏!
미염흑매가 구름처럼 피어나며 달려들었다.
만공심안으로도 보지 못했던 것이 삼목에는 환히 보였다.
미염흑매가 포자를 날리는 모습, 허공에서 나풀대는 광경, 육신에 달라붙는 조각들.
부풍약영은 소립파를 무척 빠르게 이동시켰다. 일 장, 이 장씩 쑥쑥 미끄러져 나갔다. 그러면서도 흡혈고인을 멸종시켰듯이 미염흑매를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미염흑매는 수로로 집합되며, 경락을 따라 일주천하는 동안 단단하게 뭉쳐져 단전에 고였다.
일명 독단(毒丹)이다.
내공이 없는 소립파로서는 빠른 시일 내에 내공을 키울 필요가 있었고, 미염흑매는 내력을 단숨에 키울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범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편법이다.
자칫하면 육신이 독에 삼켜지기 때문에 독문(毒門)에서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다.
오귀궁의 독귀는 시도했다.
중독되고 해독하기를 수십 번, 단전 자리에 독단을 심어놓는 데 성공했다.
요체는 독의 독성을 막는 데 있다. 체열과 체액에 녹지 않는 암석덩이로 만들면 된다.
독귀는 독을 아주 소량씩만 받아들였다. 암석덩이가 되지 않고, 몸에 퍼져도 이상이 없을 만큼 미미한 양만 사용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던가?
수년이 흘렸을 때, 독귀는 기어이 독단을 만들어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입김만으로도 사람을 중독시킬 수 있는 진정한 독인이 되었다.
소립파는 소량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추추추춧!
먹물이 스며들듯 미염흑매가 빨려들었다.
일장(一掌) 현현장(玄玄掌)은 만사무불통지가 안목을 넓혀준 장공이다. 일인지문 일수문(一秀門)의 절대 장공으로 약간의 단점만 보완한다면 능히 천하제일장공으로 불릴 만하다.
쏴아아아아……!
공기가 파랑을 일으켰다.
바다에 해일이 일듯이 격한 바람이 일었다.
소립파의 양손은 미염흑매가 자라던 석벽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파팡! 파파팡!
거센 소리와 함께 석굴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잠시 후, 뿌옇게 피어났던 돌가루가 가라앉자 타격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만사무불통지가 전개한 현현장과는 판이한 차이가 났다.
석벽이 움푹움푹 파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만사무불통지의 현현장이 한 수 위였다.
당연하다. 이제 갓 내공을 습득하기 시작한 소립파와 이미 무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소립파도 그렇게까지 뻔뻔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타격의 흔적을 보지 않았다. 다른 것을 봤다. 타격을 받은 곳에 피어 있던 미염흑매가 어떻게 되었나.
죽어간다. 아! 세상에 가장 지독한 독균 중에 하나인 미염흑매가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 독균이 자신의 독으로 만들어진 독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독단을 아주 조금 녹여서 배출시켰을 뿐인데 생각 이상으로 결과가 좋다.
‘해볼 만해.’
무신을 겨냥한 생각이다.
그들과 겨룬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그들은 태산이며 바다다. 어떠한 도전도 용납하지 않으며, 어떤 공격도 바다가 물을 포용하듯 삼켜 버린다.
소립파가 전력을 다해 일장을 쳐내도 티끌 하나 상하지 않을 게다. 하지만 몸 안에 형성된 독단으로 승부를 결하면 무신들도 방심하지 못하리라.
걸음을 옮겼다.
만공심안으로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미염흑매가 가득한 석실 한쪽에 시커먼 물체가 드러누워 있다.
강금산!
흡혈고인이 뇌로 흘러들어야 할 공기를 차단했으니 혼절한 것은 당연하다.
미염흑매가 전신에 퍼졌다.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흡혈고인과 미염흑매가 상호작용하여 폐 속에 들어 있는 흑침무를 요동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생혈침을 뽑아낸 자리도 성하지 않다.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아서 상처가 덧났다. 누런 고름이 배이고 악취가 코를 찌른다.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던 남도문 제삼무신가의 셋째 아들 강금산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간다.
강금산이 단짝을 이뤘던 서군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 것이다. 흡혈고인에 같이 중독되었다고 해도 서군봉은 상처가 없었던 몸이니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또 그녀의 곁에는 목숨을 돌봐줄 삼원로가 있다.
강금산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제삼무신가와 제이무신가의 관계는 혈육보다도 진하다. 만사무불통지 역시 아버지인 궁왕 강창도만큼이나 친밀한 관계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남만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쩌면…… 만사무불통지가 삼원로를 견제할 목적으로 그를 끌어냈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결정되었는지 모른다. 정말 어쩌면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게 편안한 죽음인지 모른다.
불쌍한 사람이다.
그가 여기 누워 있다는 것은 무신들과 서군봉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쓸모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가아아아아……!
적멸주가 쏟아져 나왔다.
혈관 속에 틀어박힌 흡혈고인이 움찔거리더니 발버둥 쳤다.
약간의 반항은 웃으면서 봐준다. 하지만 길게 버티는 건 용납 못한다. 용납할 시간도 없다. 흡혈고인을 빨리 몰아내지 않으면 설령 치료를 마친다고 해도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뇌란 그런 것이다. 공기가 조금만 모자라도 실신을 일으키고, 크게 모자라면 뇌신경이 파괴되어 버린다.
가아아아아……!
흡혈고인이 슬금슬금 밀려 나와 발바닥 용천혈(湧泉穴)로 모여들었다.
소립파는 양손으로 강금산의 용천혈을 짚었다. 그리고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흡혈고인을 빠짐없이 체내로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천하에 다시없는 저주의 마물이지만 소립파에게는 없어서 못 먹는 영약이다.
흡혈고인을 제거한 후에는 미염흑매를 빨아들였다.
이것 역시 소립파의 살과 피가 되어주는 영균(靈菌)이다. 내공을 증진시켜 그에게 막강한 힘을 부여해 주는 천하기물이다.
미염흑매를 완전히 흡수한 후, 잠시 운공조식을 취했다.
강금산에게 미안한 일이 벌어졌다.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그의 내공이 딸려왔다.
흡혈고인이 그의 피를 빨아댔고, 미염흑매가 그의 살을 파먹었으니 소립파는 간접적으로 강금산의 피와 살을 먹은 셈이 된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먹으랴.
하나 소립파는 먹었다. 아무리 부인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피와 살이 뜯겨 나갈 때 그의 내공은 강력히 저항했다. 흡혈고인을 죽이려고, 미염흑매를 뿌리치려고. 소립파에게 영매술이 있듯이 무인들에게는 내공이 같은 역할을 한다.
내공이 무엇인가? 무량(無量)의 힘을 발산해 주는 정도로 인식한다면 무인이 될 자격도 없다. 내공이 지닌 임무 중 최상위에 있는 것은 육신의 보존이다.
당연히 소립파가 흡수한 흡혈고인과 미염흑매 속에는 강금산의 내공이 녹아 있다.
강금산에게는 아주 미미한 양이다. 본격적으로 내공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없어져도 눈치조차 채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소립파에게는 크다. 그의 내공이 아니라 전혀 색다른 종류의 내공이기 때문에 독단과 뒤섞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시행해야 한다.
양강지력(陽剛之力)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철력(鐵力).
이것이 강금산의 내공이다. 제삼무신가의 내공이다. 피 대신 쇳물이 흐르고, 살덩이 대신 쇳덩이가 존재하며, 뼈 대신 쇠막대가 자리한 강골의 무가(武家)가 제삼무신가다.
강금산의 내공을 맛봄으로써 제삼무신가의 내공 종류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수로를 통한 운기조식이 연이어졌고, 강금산이 넘겨준 내공은 독단과 섞여 차분히 소화되었다.
“휴우!”
소립파가 탁기를 토하며 눈을 떴을 때, 강금산도 눈을 뜨고 있었다.
천생 무골(武骨)이다. 반짝이는 눈빛에 힘이 실렸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눈빛이지만.
금연화에게 금궁 강화명이 죽지 않았다면 이토록 집요하게 뒤를 쫓아올 일도 없었으리라. 아니다. 그라면 단지 마인이 출현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뒤를 쫓아왔을 게다.
“또 너냐?”
강금산의 첫마디는 무미건조했다.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지.”
“치워.”
“등 돌리고 누워라. 노닥거릴 시간 없어.”
강금산은 억센 힘에 이끌려 등을 보이며 누웠다.
그는 진기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흡혈고인과 미염흑매를 제거했지만 아직 여파가 남아 있어서 마혈(痲穴)이 제압되었을 때처럼 사지가 무력했다.
“전날 궁왕이 내 목숨을 살려줬지.”
“……?”
“은형시를 쏘았는데, 다른 곳을 겨눴어. 날 겨눴다면 꼬치가 되었을 거야.”
강금산의 어깨가 꿈틀거렸다.
고통이 극심할 것이다. 폐가 갈가리 찢어지는 아픔에 고함을 내지르고 싶을 게다.
소립파는 삼목으로 강금산의 폐에 달라붙어 있는 흑침무를 보았다. 아니, 느꼈다.
소립파의 손끝에서 미염흑매의 독기가 흘러나와 강금산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독기는 의기(意氣)에 인도되어 곧장 폐로 들어갔고, 흑침무를 건드렸다.
흑침무가 꿈틀거린다. 끈적끈적한 성질이 독기와 섞여 한 덩어리가 된다. 모래알처럼 작은 덩어리들이 수십, 수백 개나 생겼다. 흑침무는 꿀이다. 독기는 가루다. 가루와 꿀이 만나 작은 환단이 생긴다.
살점을 생으로 뜯어내는 고통이 있을 터인데, 강금산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아비의 덕이 자식에게 이어진 것. 이번 치료로 전에 받았던 후의에 보답한다.”
독기에 버무려진 흑침무가 기도를 거슬러 올라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왔다.
“컥! 커억! 컥!”
천하의 강골이던 강금산도 목구멍에서 치미는 고통은 참을 수 없는지 거친 소리를 토해냈다.
독기와 흑침무가 섞였으니 양강의 열기를 띤다. 끓는 물보다도 더 뜨거울 것이다. 그토록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지지며 올라와 혀를 태우고 쏟아졌다.
“운공조식해라.”
소립파는 강금산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공조식은 강금산이 필요하지 소립파는 필요없었다. 흑침무를 제거하며 독기를 흘려 넣었지만 그 정도는 새 발의 피, 당장 움직여도 아무 지장이 없다.
한데도 가부좌를 틀고 앉은 것은 그가 떠나면 강금산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염흑매가 끊임없이 달라붙는다. 꽃가루처럼 미세한 가루이기 때문에 대처가 어렵다. 거의 대부분은 빨아들여 독단으로 만들었지만 독인이 아닌 일반 무인들에게는 남아 있는 잔재들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치료를 시작했으니 끝까지 봐줘야 하지 않겠나.
궁왕 강창도에게 받은 호의는 이번 치료로 갚았다. 이제 궁왕과는 은(恩)이 없다. 하지만 원(怨)은 있다. 혈귀대주의 숨통을 끊었으니 궁왕도 목숨으로 혈채를 갚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