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56
156
인공적으로 가다듬은 석문이며, 석문을 여는 기관장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소립파는 손으로 석문과 바닥이 만나는 부분을 훑었다.
돌가루가 만져졌다. 깨진 지 얼마 안 된 것이다.
무신들이 지나가자 기관이 작동되어 뒤를 막은 것 같다.
언뜻 두 가지가 생각된다.
하나는 기관이 연속성을 지녔을 때 벌어지는 일로, 기관과 무신들의 싸움이 진행 중이라는 추측이다.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석문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는 연속성이 없을 때로, 일단 기관이 발동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석문은 올려지지 않는다. 영원히 길을 가로막는 역할에 충실하리라.
어떤 경우든 석문이 앞을 막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대로 갇히고 마는 것일까.
“난감하게 됐군. 닫히면 열리게 되어 있는 게 문인데 열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석문 주위를 세심하게 훑어보던 강금산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불편한 심정을 토해냈다.
그는 서군봉을 등 뒤로 돌려 업고 다녔다.
아직 정신이 깨어나지 않은 여자, 다 큰 여자.
장한이 여인을 업고 다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지만 강금산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소립파는 논귀(論鬼)가 남긴 비서(秘書)를 빠짐없이 되새겨 보았다.
온갖 진식, 기관도해가 스쳐 갔다. 기관을 설치할 때 사용되는 각종 자재들도 빠른 속도로 되새김되었다.
그중에 지금과 같은 기관은 없었다.
‘열 수 없으면 뚫고 나가는 수밖에.’
가아아아아……!
적멸주가 튀어나와 석문을 두들겼다.
균열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나중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당장은 두께부터 파악해야 한다.
아! 이럴 수가! 두께가…… 두께가 삼 장에 이르다니! 이토록 거대한 돌덩이라니!
이건 돌이 아니다. 바윗덩이다.
두께가 웬만한 전각(殿閣)은 비웃을 정도이니 이걸 무슨 수로 감당하랴.
가아아아! 가아아아아……!
적멸주가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어디 뚫고 나갈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석굴이 아니고 흙으로 된 굴이었으면 당장 땅을 팠을 텐데.
통로는 석굴에서 찾아야 한다. 취약한 곳을 찾아내 뚫어야 한다.
시도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지형 자체가 돌로 이뤄진 곳이다. 인위적으로 석실을 만들었지만 돌을 쌓아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를 뚫어서 만든 것이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바위를, 끝없이 바위만 나오는 암석 지대를 뚫어서 통로를 만들었다.
엄청난 인력과 경비가 들었을 게다.
인력과 돈도 그렇지만, 어설픈 지식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대역사(大役事)다.
논귀가 떠오른다.
이만한 공사를 무리없이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중원 천지에 논귀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또 있을까?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립파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논귀가 유일하다.
석실에 있는 독물들도 간접적으로 논귀를 지목해 준다.
독귀가 있었으니 논귀가 있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석문 저쪽의 광경이 상상되었다.
함정을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 이쪽을 석문으로 막았듯이 반대쪽도 석문으로 막아버리면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평생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는 것이다.
이만한 석문이라면 무신도 가둘 수 있다.
바닥, 벽, 천장에 천장과 버금가는 바위가 얹혀 있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
무신이고 뭐고 굶어 죽는다. 숨 막혀 죽는다.
‘후사관 중 제이관은 감옥이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 이게 제이관이야. 그럼 나머지 두 관문에는 무엇이…… 기연? 기연은 없다. 오직 죽음만 있는 곳이야.’
혹시 모른다. 무신들이 제이관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또 혹시 모른다. 그때가 되면 석문이 들어 올려질지.
생각이 전사관 중 제일관을 떠올렸다.
흑침무를 벗어나자 석벽이 좁혀왔다. 간신히 빠져나오자 다시 돌아갈 수 없게끔 꽉 막혔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돌아갔으리라.
제이관이 산산조각 났다. 제삼관은 완전히 타버렸다. 제사관은 벼랑이지만 기어 올라갈 수 있다. 중일관은 칼의 기관, 부서질 대로 부서져 기관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제일관의 석벽만 아니라면 돌아갈 텐데.
그러고 보니 갇힌 사람은 무신만이 아니다. 모두 다 갇혔다.
“좀 오래 쉬어야겠어.”
소립파는 끝내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
석벽이 너무 두껍다. 깬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가?”
그 말뿐이다.
서군봉이 의식을 회복했다.
어둠 속에서 두 눈만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깨었소?”
강금산은 마치 아침 인사를 하듯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누…… 누…… 구?”
서군봉은 말이 어눌했다.
“날 모르겠소?”
“배…… 배…… 고파.”
서군봉은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인상을 잔뜩 써가며 간신히 두 마디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다.
뇌신경이 크게 손상되었다. 말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 어린아이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다.
강금산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일어나 보시오.”
“배…… 배…… 배…… 고파.”
“자, 일어나면 배고프지 않을 테니 일어나 보시오.”
먹을 게 어디 있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붉은 이끼뿐인데. 그것도 태반이 말라 비틀어져서 입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서군봉이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자, 팔을 위로.”
강금산은 서군봉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무척 귀찮게 했다. 양팔을 위로 올렸다가 내리고, 좌우로 벌렸다가는 다시 내렸다. 목도 돌려보았다. 허리도 비틀어보았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해서 시켰고, 두 발로 걷게도 했다.
사지육신은 멀쩡하다. 단지 뇌만 다쳤다.
“휴우! 다행이군.”
강금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배…… 배…… 고…… 파.”
서군봉은 어린아이처럼 칭얼댔다.
“하하! 배고프면 먹어야지. 자, 입 벌려요.”
먹을 게 있었나? 없다. 강금산은 검지를 깨물었다.
제3장 화위열(火為熱) ― 불은 열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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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입을 굳게 봉한 채 몇몇 생명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이대로 있어선 안 돼.’
조급증이 불러온 불안감인가? 아니다. 열리지 않는 석문을 정확히 헤아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무지막지한 힘이 있어야 한다. 석문을 단번에 깨뜨려 버릴 만한 힘을 구해야 한다. 만사무불통지와 삼원로가 연수(聯手)했을 때보다도 서너 배 이상 강한 힘이 필요하다.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래서 주저앉아 넋 놓고 있었다.
“철뢰 있나?”
“두 개. 그거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강금산도 철뢰를 사용하여 폭파시킬 방도가 없는지 이미 생각해 본 모양이다.
“화운린이 섞여 있겠지?”
“물론. 왜? 가능하겠어?”
“아니. 그냥 생각난 게 있어서…… 은형시는?”
“마지막 것을 중일관에서 사용했지. 후후후! 천하에 못 부술 게 없던 은형시가 싹둑싹둑 잘려 나가던 모습이란.”
“줘봐.”
강금산은 두말하지 않고 품에서 철뢰 두 개를 꺼내 건네주었다.
만사무불통지가 준 것이다. 서군봉에게조차 마인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무신도 죽이지 못하고, 단지 발목을 붙잡아 약간의 시간을 벌어줄 뿐인 것을.
이백에게 휘말려 무인이 사용해서는 안 될 화탄(火彈)을 사용했다.
제삼무신가의 식솔들을 어떻게 보랴. 아버지의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보랴.
강금산에게는 회한덩어리인 철뢰가 소립파에게 건네졌다.
철뢰 두 개.
석문을 부수기는커녕 간지러움도 태울 수 없는 화력(火力)이다.
아아아……!
적멸주가 다시 쏟아져 나갔다.
석문 두께를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 석문 두께만큼 바닥과 천장, 사방 벽을 계산하면 감옥의 크기가 나온다.
감옥만 피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땅이 전부 돌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 감옥의 경계에는 흙이 있을 것이다.
그곳을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 땅속을 자로 잰 듯 정확히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가아아아아……!
이번에는 적멸주에 강력한 힘이 실렸다.
철뢰를 터뜨릴 곳이 정해졌다. 그곳 역시 석벽이다. 하지만 석문만큼 두껍지 않다. 아마도 두께가 상완(上腕)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석벽 한가운데로 진동을 흘려보냈다. 적멸주를 맞은 석벽은 형태는 변하지 않지만 단단함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구멍을 뚫어줘야겠어. 철뢰가 들어갈 정도면 돼.”
“구멍을…… 뚫어달라고? 여기에다가?”
강금산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강수(金剛手) 정도면 구멍을 팔 수 있어. 해봐.”
강금산은 반신반의하며 석벽으로 다가섰다.
“여기?”
“아니, 왼쪽으로 반 장 정도. 그래, 거기.”
소립파가 위치를 잡아주었다.
말을 하느라 적멸주가 끊겼다. 한 번이라도 더 쏘아주어야만 구멍이 쉽게 뚫린다.
가아아아……! 파팟! 파파팟!
강금산의 미덥지 않다는 표정으로 석벽을 후벼 팠다. 한데 파인다. 돌가루가 오래된 흙부스러기처럼 뚝뚝 떨어져 내린다.
“허! 이게 정말 되는군. 괴물은 괴물이야. 네가 무공만 사용할 줄 안다면 무림은 삼파전(三巴戰)이 되겠지. 남, 북, 마도. 넌 굉장히 두려운 존재로 군림했을 거야.”
강금산은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꽈꽝!
철뢰가 굉음을 토해냈다. 마병(魔兵)이란 말에 어울리게 폭발력도 엄청났다. 조각나 사방으로 튕겨 나간 돌들이 석벽을 난타하는 소리는 폭풍우처럼 몰아친 음악이었다.
철뢰로 석문을 깨는 건 어림없지만 상완 정도의 두께라면 깨낼 수 있다.
예상이 맞았다. 아니, 예상이 아니다. 적멸주로 측량을 한 것이니 사전 진단이 맞았다고 해야 할 게다.
석벽에는 어른이 서서 들어갈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철뢰를 수십 개 사용해도 안 될 것 같았는데 한 개만 사용하고도 이만한 효과를 냈으니 적멸주의 효과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이젠 어떻게 한다? 그래도 구멍이 뚫리니 속이 다 시원하군. 꼼짝없이 갇힌 줄 알았는데.”
“위로 파 올라가야지. 암석은 피하고 흙 있는 곳만 골라…….”
소립파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츠츠츠! 츠츠츠츳……!
기분 나쁜 소리,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닥칠 것 같은 불길함.
두 귀에 온 신경을 모았다. 삼목도 크게 열어 소리의 정체를 찾았다. 무엇인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전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
주룩! 츠츠츳!
소리는 다양했다.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물이 흐르는 소리로 생각되기도 했다.
‘물! 물이야!’
소리의 정체는 귀보다 코가 먼저 알아냈다. 흙냄새에 섞여서 풍겨 나오는 비릿한 냄새는 틀림없이 물 냄새다.
“무슨 일이 생겼군.”
강금산이 눈치를 채고 서군봉을 단단히 업었다.
“물이 쏟아질 거야.”
“물?”
“좋은 물은 아닐 것 같은…….”
이번에도 말을 하다 멈췄다.
물이 흘러오는 곳에 생명이 스러진다. 땅속에 사는 벌레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또 천로독인가? 생명을 소멸시키는 물이라면 독밖에 생각할 수 없고, 그만한 독으로 천로독을 봤다.
‘독이 아니다. 같은 수를 쓸 리 없어. 독은 아니면서 생명을 죽이는 물이라면…….’
찾아야 한다. 빨리 생각해 내야 한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과 부딪치기 전에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설마 천로독은 아니겠지?”
강금산도 같은 생각을 한 듯 표정이 어두웠다.
소립파는 생각에 몰두하여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들었어도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독이 아니면서 생명을 말살시키는 물…… 말살…….’
생각이 날 듯하면서도 나지 않았다. 무엇인가 금방 손에 잡힐 듯한데 막상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주루룩! 툭! 츠츠츠…….
물은 빠르게 흘러내려 왔다. 단단한 흙으로 이뤄진 땅이었다면 물이 스며드는 속도 또한 더딜 터인데, 불행히도 바위가 부스러져 형성된 굵은 사암(砂巖) 지대라서 거침없이 흘렀다.
소립파는 아무 생각도 해내지 못했다.
물이 흘러 흘러 코앞까지 밀어닥쳤다. 흙이 물기를 머금어 축축해진 게 확연히 보였다.
비릿한 내음은 더욱 심해졌다.
무척 역겹다. 토악질까지 치밀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근육이 파르르 떨리며 마비 증세까지 일어났다.
“이게 뭐지? 뭔데 이렇게 역겨워.”
강금산도 코를 움켜잡았다.
“누런 물! 황수(黃水)!”
정확한 명칭은 분황수(焚黃水)이다. 살점 같은 고깃덩이를 만나면 노란 불꽃을 일으키며 활활 타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아주 위험한 물이다.
불꽃은 고깃덩어리를 완전히 태운 후에야 꺼진다.
극악무도하다는 점에서는 철로독과 비슷하지만, 오직 고깃덩이에만 반응한다는 점에서는 쇠도 녹이는 철로독과 큰 차이가 있다.
간수하기 편하고, 사용하는 방법도 쉽다. 다량으로 생산해 낼 수 있으며, 물방울 하나로 황소 한 마리를 태워 죽일 수 있다.
독이 아니라고 아무리 강변해도 독문에서 원하는 최상의 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