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57
157
흙을 적시고 있는 물은 틀림없이 황수다. 살에 닿는 즉시 불이 붙기 시작하여 뼈만 남는 데까지 일다경도 소요되지 않으리라.
“황수? 이게 도대체 뭔데…….”
강금산이 손을 내밀어 흙을 만져 갔다.
“치워!”
소립파가 쩌렁하니 일갈을 내질렀다.
강금산이 손을 뚝 멈추며 의아한 눈길로 쳐다봤다.
소립파가 하는 말이니 백 번 타당하다. 마음이 다급하면 다급할수록 황수는 위험하다.
궁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황수에 대해서 설명할 시간이 없다.
“철로독보다 두 배는 위험해. 살에 닿기만 해도 분사(焚死)당해.”
“분사?”
대꾸할 겨를이 없다. 해결 방도를 찾아야 한다.
소립파는 황수가 물줄기처럼 급하게 흘러내리지 않고 흙에 촉촉이 젖어서 느릿느릿 흘러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황수가 흐르지 않고, 마르지도 않으면서 석벽 주위에 포진해 있었다는 걸 뜻한다.
절대 불가능하지만 혹여 석벽을 깨고 나오면 황수와 부딪치게 만든 것이다.
철뢰의 폭발이 힘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흐르지 않고 있어야 할 황수가 높이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특성대로 구멍이 뚫린 곳으로 흘러내려 온다.
무신들은 후사관 중 제이관에 갇혔다. 소립파는 제이관을 비껴나는 대신 제삼관과 직접적으로 부딪치고 있다.
황수를 피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몇십 배 정도 되는 많은 물로 희석시키거나 갈화산(喝火散)으로 중화시키면 된다.
이것이 황수가 독이 아니라 특이한 물이라는 증거다.
하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물도 구할 수 없고, 갈화산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황수가 독이 아니기 때문에 소립파조차도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음양이기나 영매술로 기운을 빨아들일 수도 없고, 독단과 융합시킬 수도 없다.
강금산도 마찬가지다. 그가 수련한 어떤 무공도 소용없다. 황수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뒤로 물러서는 것뿐이다.
물러서면 살 수 있을까? 황수가 잠시 흘러내리다 말까?
소립파의 생각은 비관적이다. 지금은 흙을 적시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곧 물방울이 되어 떨어질 것이고, 물방울은 계류(溪流)가 되어 제일관을 뒤덮으리라.
‘물은 아래로 흐른다.’
소립파의 고개가 천장으로 향했다.
위를 뚫으면 어떻게 될까? 위에서도 물이 쏟아질까?
지금은 그럴 것이다. 하나 시간을 조금만 더 지체시키면 천장 위에 있는 황수가 옆으로 흘러서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내릴 게다.
‘시간을 잘 맞추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구멍을 하나 더 뚫자.”
소립파가 천장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어느새 그의 입은 동그랗게 말려져 있었다.
황수가 졸졸 소리를 내며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립파와 강금산은 벽호공(壁虎功)을 시전하여 다른 쪽 벽에 달라붙었다.
강금산으로서는 서군봉까지 업고 있지만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잠시가 아니라 하루 종일이라도 붙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소립파는 처음 해보는 시도였고, 모험이었다.
벽호공의 구결은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들어 있지만 육체에 힘을 실어주는 진기가 없었다.
지금은 무인들이 사용하는 진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진기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 외부진기를 이용하여 벽호공을 펼친다는 것은 확실히 모험이었다.
“마야는 무공을 모른다던데…… 헛소문이었군.”
강금산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마야를 오랫동안 관찰한 사람 중에 그도 포함된다. 마야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마야가 무공을 펼친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목을 내걸고 장담하건데, 소립파는 무공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제는 사용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어제만 해도 무공을 모르던 자가 느닷없이 무공을 펼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옳단 말인가.
강금산은 궁금증이 너무 많았지만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소립파가 입을 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소립파는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하는 대상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천장에 박아놓은 철뢰를 터뜨리는 문제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게다.
언제 터뜨리느냐.
소립파의 말을 빌리면 천장에 스며 있는 황수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 터뜨려야 하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황수는 물이다. 황수 대부분이 아래쪽으로 흐른다 해도 남아 있는 황수가 있다. 흙을 적신 물기는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좋다. 천장만 폭파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치자. 천장에 있는 황수가 모두 빠져나간 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나같이 못 믿을 이야기뿐이지만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마야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강금산은 소립파가 심지에 불붙이는 것을 보면서 서군봉을 꼭 끌어안았다.
꽈꽝!
천지가 진동했다. 석굴이 뒤흔들렸다.
부서진 돌덩이가 사방 벽을 두들겨 댔다. 질펀하게 흘러내리던 황수가 돌덩이에 튕겨 올랐다.
‘으음! 크읍!’
강금산은 오만가지 인상을 썼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은 들었다. 천장이 폭파되면서 황수를 머금은 흙먼지도 피어날 거고, 혹여 살을 스치면 불에 데인 듯 화끈할 거라고.
화끈한 정도가 아니다. 인두로 지지는 것 같다. 흙먼지에 살짝 스쳤을 뿐인데 고문을 당하는 것 같은 통증이라니.
소립파는 어떨까?
그는 훨씬 가까운 곳에 달라붙어 있다. 천장이 폭파된 후, 땅굴을 파고 올라가는 것도 그가 맡았다.
물기가 거의 빠졌지만 흙에 묻은 황수만으로도 목숨을 빼앗기는 충분할 텐데, 무슨 수로 뚫고 나갈까?
강금산은 눈을 꼭 감은 채 비릿한 내음이 사라지기만 기다렸다.
방법은 없다.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고 굴을 파 나가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황수가 몸을 태울 건 예상된다. 열기가 미약해서 몸에 불이 붙지 않기만 고대한다.
흙더미가 우수수 떨어지자마자 이를 악물고 구멍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뜨겁다! 몸이 활활 타오른다!
육신이 망가지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마실수록 빠져나갈 길은 요원해진다.
명뇌인이 펼쳐졌다. 육신의 신경이 무감각해져 고통을 망각했다.
생선은 압통(壓痛)이 없다. 때문에 머리가 잘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몸통과 머리가 완전히 분리된 다음에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퍼득거린다.
소립파가 그런 상태였다.
만공심안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미간 사이에 형성된 삼목은 앞길을 환히 밝혔다.
한 손을 흙 속에 찔러 넣어 몸의 무게를 받치게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파 나갔다.
파파파팟!
두 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물기 묻은 흙이 술술 파내져 발아래로 떨어졌다.
손톱이 녹았다. 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강렬한 태양열이 한 점에 집중되었을 때처럼 까만 점이 생기더니 움푹움푹 구멍이 뚫렸다.
손도, 몸도, 얼굴도…… 빌어먹을! 끓는 기름 속에 파묻힌 것이나 다름없다.
순간! 머릿속에 구결 하나가 퍼뜩 스쳐 갔다.
화위양성소생(火爲陽盛所生), 위열지원(爲熱之源), 열위화지성(熱爲火之性). 열위온지점(熱爲溫之漸) 화위열지극(火爲熱之極)……
‘불은 양(陽)의 생(生). 열과 근원이 같고, 열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 열이 점차 뜨거움을 더해가니, 불이 열의 궁극이다…….’
오귀궁의 화약 귀신으로 뇌화문(雷火門)을 몰살시켜 악명을 얻은 뇌귀(雷鬼)의 독문신공, 뇌력금황기(雷力金黃氣).
뇌귀는 벼락을 맞는 바람에 뇌력금황기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벼락을 맞지 않았다면, 또 벼락을 맞고 죽었다면 뇌력금황기는 절대 탄생하지 못했다.
후인도 수련하기가 용이치 않다.
번개가 몸을 관통할 때의 힘, 전율, 충격은 전신 경략을 일시에 깨워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찰나에 관통하고, 전신 경략을 동시에 찢어놓고, 단전까지 태워 버리는 뇌력.
세상의 어떤 힘도 이에 대체될 수 없다.
뇌력금황기는 세상을 태울 것 같은 열화기(熱火氣)를 쏟아주지만, 이를 수련하려면 목숨을 걸고 벼락을 맞아야 한다.
천우신조가 아니면 결코 수련할 수 없는 신공이 뇌력금황기다.
소립파는 흙을 파내던 손까지 벽에 찔러 넣었다.
양기의 종류를 구분해야 한다.
장심(掌心)으로는 소화(小火)를, 다섯 손가락에는 직화(直火)를 받아들여야 한다.
두 가닥 양기는 손목을 거쳐 팔을 타고 심장으로 모여든다.
왼손에서 받아들인 두 양기, 오른손에서 받아들인 두 양기.
네 가닥 양기는 심장에서 엇갈린다. 왼손 직화는 오른손 소화와 어울려 하늘로 솟구친다. 백회혈(百會穴)을 강타하는 것이다. 왼손 소화는 오른손 직화와 어울려 땅으로 스며든다. 내장을 뚫고 다리를 지나 용천혈(湧泉穴)을 꿰뚫는다.
백회혈과 용천혈은 일시에 뚫려야 한다.
두 가닥 양기에 속도 차이가 나면 정말 큰일 난다.
한쪽 양기가 먼저 뚫고 나가 버리면 미처 뚫지 못한 양기는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흩어져 버린다. 이는 양기가 내부 장기를 태워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는 것이다.
백회혈과 용천혈을 동시에 뚫고 나갔을 때는 벼락에 맞은 것과 똑같은 효과를 누린다.
벼락에 맞지 않고도 뇌력금황기를 수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 뇌귀가 창안해 낸 이 방법 역시 벼락을 맞고도 살아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먼저 양기가 소화와 직화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움의 종류가 다양해야 한다.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음(陰)의 역할을 할 작은 불과 양(陽)의 역할을 하는 강렬한 불은 얼마든지 동시에 공존시킬 수 있다.
어려운 난관은 힘에 있다. 양기에 벼락과 같은 힘이 실려 있어야 한다. 양혈을 뚫지 못하면 비산된 양기가 전신에 쏟아져 내리게 되고, 이는 치명적인 상처로 연결된다.
오장육부가 타고, 경략이 타고, 신경이 타고, 뇌가 타고…… 주화입마(走火入魔) 정도는 가벼운 상처 정도에 불과할 테니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지만 뇌력금황기에서는 넘칠지언정 모자라서는 안 된다.
‘해보자!’
결심이 굳어졌다.
하필 이때 왜 뇌력금황기가 생각났을까?
신공이 욕심나지는 않는다. 미증유의 힘을 주는 신공이지만 목숨을 걸면서까지 수련할 생각은 없다. 또 지금은 신공이나 수련할 정도로 여유롭지도 않다.
절박함 때문에 신공 수련을 택했다.
황수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다. 강한 물줄기가 대부분 빠져나가고 찌꺼기만 남아서 쉽게 헤쳐 나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멸신구관에 들어와서 겪었던 어떤 난관보다도 어렵고 절박하다.
뇌력금황기를 얻지 못하면 타 죽는다.
쏴아아아……!
강한 두 물줄기가 양손을 타고 흘러들었다.
주로에 스며 있는 마유가 꿈틀거렸다. 양기는 수로로 흘러들지만 주로까지 자극을 받았다. 뭐랄까? 마유가 금방이라도 녹아서 물줄기가 되어버릴 것 같다고나 할까?
‘이 정도면 충분해.’
황수가 내뿜는 열기는 가공할 정도다.
충분하지 않아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심장에서 갈라지고 어울린 두 양기가 위, 아래로 나뉘어 맹렬하게 쏘아졌다.
2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뻥 뚫린 천장에서 불붙은 석탄이 쏟아져 내렸다. 쏟아져 내린 흙먼지가 석굴을 뿌옇게 흐려놓았다.
철뢰가 또 한 번 터진 것 같았다.
“으음!”
강금산은 진기를 일으켜 전신을 보호했지만 유황불 속에 던져진 듯한 고통은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서군봉만은 꼭 끌어안았다.
한참 후, 흙먼지가 가라앉자 눈길이 자연스레 천장으로 향해졌다.
천장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을 최고로 끌어올렸지만 어떠한 생기(生氣)도 감지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구멍 뚫린 곳으로 이동했다.
“어이! 괜찮나!”
시커먼 어둠 속을 향해 외쳤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내지른 소리만 웅웅거리며 반향되어 왔다.
강금산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구멍을 쳐다봤다.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열기는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이, 마야!”
마야는 대답이 없었다.
강금산은 서군봉을 다시 추슬러 업었다.
화로(火爐)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끝까지 뻥 뚫린 화로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소립파가 맡은 일을 다 하지 못해서 막혀 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되돌아 나와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하나, 둘, 셋!’
강금산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몸을 솟구쳤다.
강금산 정도 되는 무인이 겨우 삼사 장에 불과한 암굴을 기어나오면서 거친 숨을 연거푸 뿜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악!”
강금산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위로 올라섰다.
소립파가 보였다. 탈진해서인지 혼절했는지 큰대자로 드러누워 있었다.
“이봐! 헉헉! 수고했어.”
그 말만은 해주고 싶었다. ‘마야’라고 불리는 인물이니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이지만, 자신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정도 무인 누군가에게는 죽을 운명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살길을 열어준 그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