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59
159
“그래줘.”
다담선자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다 죽이라고?”
“그렇게 해서 막을 수 있다면.”
“도대체 왜 그래? 왜 입구를 틀어막자는 거야?”
천멸도주의 물음은 다담선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물음이었다.
‘마 마’의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는 중이다.
사람들은 복면을 벗기 시작했다. 벌써 태반이 복면을 벗었고, 아직까지 복면을 쓰고 다니는 자는 남북 양쪽 무림인들로부터 불문곡직하고 협공을 당했다.
무조건 복면을 벗어야 한다.
이는 적아를 분별하려는 시도다. 본격적으로 남무림과 북무림이 격돌하겠다는 의도다.
양쪽 세(勢)를 비교해 보면 북무림이 현저하게 불리하니 남무림의 일방적인 뜻일 게다.
상당히 운이 좋은 마인들, 호채마(好彩魔)도 남무림과 북무림 사이에서 새우처럼 등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호채마의 면면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도니 수검이니 언장은마니…… 얼굴 모습은 물론이고 신체적인 특징들, 무공의 정도까지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호채마가 무리 짓지 않고 개별적으로 행동한다면 백 중 백 협살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복면을 벗는다는 이야기는 천멸도 살수들의 행동에도 제약을 가해왔다. 지금까지는 은신술을 펼치지 않고도 자유롭게 ‘마 마’를 뒤질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뒷간을 갈 때조차 은신술을 펼쳐야 할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담선자의 주문은 억지나 다름없었다.
“출구를 발견하지 못했잖아.”
다담선자는 당연한 듯 말했다.
천멸도주는 즉시 반박하지 못했다. 다담선자가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바람에 순간적이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출구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입구를 막자고?”
“아무도 안 나왔어. 마야는 물론이고 무신들까지. 모두 죽었거나 모두 안에 있다는 거야. 어쩌면 마야만 죽었을지도 모르고.”
“계집이 재수없는 소리는. 말이 씨가 된다는 것도 몰라!”
천멸도주가 툭 쏘았지만 다담선자의 판단은 합당했다. 멸신구관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 이미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으로 보면 마야가 가장 높았다.
“입구를 열어놓자는 것은 마야가 나올 때를 대비해서 이목을 분산시키자는 뜻이었는데…… 마야가 나오지 않았으니 우리가 들어가야지.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꺼내 와야 하잖아.”
“…….”
묵직한 침묵이 흘렀다.
어중이떠중이가 달려들어 입구를 훼손시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게 된다.
들어간다고 해도 마야를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마야는 물론이고 무신들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만큼 힘든 곳일 테고…… 호채마들 중에서 무신들을 능가할 사람이 없는 이상은 들어간다는 자체가 개죽음일지 모른다.
어디쯤에서 죽임을 당할까? 멸신구관 중 몇 관문이나 통과할 수 있을까? 과연 마야를 찾을 수나 있는 것일까?
멸신구관의 기연을 탐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마야의 안위만 염려했고, 멸신구관에 들어가려는 목적도 마야를 찾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반드시 찾겠다는 신념은 있다. 하나 자신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큭! 큭큭! 모양 사납게 생겼네. 영 모양이 안 나. 입구를 막으려면 우리 식구들……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해. 좋아! 들어갈 놈이 누구야? 들어갈 놈들부터 정해.”
다담선자는 그윽한 눈길로 천멸도주를 쳐다봤다.
그녀는 눈길을 피했다.
서로 눈길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의중은 짐작한다.
‘도주…… 성(城)과 운명을 함께하는 성주(城主)처럼 천멸도와 운명을 같이하려고…….’
천멸도주가 직접 나서주면 천군만마가 몰아쳐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말리고 싶다. 천멸도주 역시 마야의 생사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으리라. 하나 말릴 수 없다. 다른 문제라면 말리겠지만 천멸도 살수들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결심만은 꺾을 수 없다.
다담선자는 고개를 돌려 호채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들어갈 사람은 그 사람의 부인만. 나와 절혼 언니, 두 사람만.”
“말도 안 되는 소리!”
수검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한마디만 던져 놓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쫓아 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미안하지만…… 안 돼요. 절혼 언니와 저는 마야에게 목숨을 걸었어요. 마야가 죽으면 우리도 죽어요. 마야 없는 세상은 살지 못해요. 천만 리나 떨어져 있고, 영원히 보지 못한다고 해도 마야가 살아 있다면 우리도 악착같이 살 거예요. 우리가 먼저 간다면 마야를 슬프게 할 테니까요. 하지만…….”
마야는 행복한 사내다. 여인에게서 지독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한세상을 산 보람이 있다.
모두들 다담선자의 마음을 들었기에 침묵했다. 그러자 천멸도주가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고 단호하게 결정해 버렸다.
“좋아! 됐어! 그만 해! 그놈 마누라만 들어가면 되지 우르르 따라 들어갈 건 뭐야! 둘만 들어가! 종청호, 주림! 다담과 절혼만 들어간다! 나머지는 이유 불문하고 모가지를 떼어내!”
“존명!”
“명!”
천멸도 살수들은 확실한 명을 받았다.
***
멸신구관의 입구는 활짝 개방되었다.
들어올 사람은 누구든 들어오라는 듯 두 사람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입을 쩍 벌린 채 하늘을 쳐다봤다.
천멸도 살수들의 솜씨다. 살수들 중에서도 주림과 백인수가 가다듬어 놓은 걸작이다.
그들은 무림인들이 찾지 못한 입구를 찾았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입구를 손질해 놓았다. 입구를 가려놓았던 거목은 베어졌다. 몸뚱이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좁았던 입구도 넓게 다듬었다.
주림이 마지막으로 한 일은 멸신구관의 입구를 널리 소문내는 것이었다.
소문을 내기 위해서 크게 힘쓴 것도 없다. 남무림과 북무림 인물들 중 아무나 한 명 골라 입구의 위치를 말해주자 일다경도 되지 않아서 ‘마 마’에 모인 전 무림인이 알게 되었다.
촌음(寸陰)을 아껴서 즉시 모여든 것은 당연하다.
한자리에 모인 남무림과 북무림 무인들. 복면까지 벗어 던지고 자신의 소속을 뚜렷이 밝힌 무인들. 멸신구관의 입구에서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이 흘렀다.
“이틀째인가?”
“그렇습니다.”
“한심한 작자들이군. 입구를 뻥 뚫어놓았는데 다가서지도 못하고 지켜만 보다니. 저놈들, 먹이가 눈앞에 있어도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굶어 죽을 위인들이야.”
천멸도주는 ‘마 마’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두 무리를 쳐다보며 혀를 찼다.
한쪽은 북무림 무인들로 천랑대 제삼대다. 맞은편에 위치한 사람들은 남무림 무인들로 주축은 추혼단이며, 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곁을 따르고 있다.
인원수로만 보면 상대가 안 된다.
한데도 남무림이 준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천랑대에 육능자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랑대의 지독함은 널리 알려져 있어 감히 시험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양상이 조금 복잡해진다.
육능자는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지켜만 봤다. 천랑대는 오로지 제삼대주가 이끌고 있었다.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던 제삼대주도 개미 떼처럼 우글거리는 남무림 무인들을 보고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육능자가 별다른 묘책을 건네주지 않는 한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할 것이다.
남무림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남무림에도 지자가 있다. 야광이 그들이며, 현재 멸신구관의 입구를 지켜보는 사람은 야광의 총수인 구환자다.
구환자는 멸신구관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전대 총수인 답평이 제거당하는 것을 똑똑히 목격한 그다. 만사무불통지에 대항한 결과가 무엇인지, 만사무불통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자신의 욕심보다 만사무불통지의 마음부터 헤아렸다.
만사무불통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첫 번째는 흑살마녀의 장악이다.
물론 장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흑살마녀를 천면겁에 빠뜨려 움직이지 못하도록 해놨으니 일면 장악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를 북무림 무인들에게 빼앗기지만 않으면 된다.
멸신구관의 경우는 어떨까?
만사무불통지는 천하제일을 추구하는 무인이다. 발길에 거치적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또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는 지자다. 누군가 그의 일에 개입하면 무시하거나 멸시했다고 생각할 게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분 나빠할 것은 분명하다.
들어가서는 안 된다.
멸신구관에서 기연을 얻는다고 해도 만사무불통지를 능가하기는 힘들다. 어떤 기연인지 모르지만 무신을 능가할 기연은 없다고 본다. 무신을 신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을 무신처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들어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구환자는 자신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북무림 무인들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대치 상태…… 좋다. 이는 구환자가 원하는 바다.
천멸도주는 한쪽은 움직일 수 없고, 다른 한쪽은 움직이기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마 마’에 들어서려는 것이다.
호채마의 움직임은 저들에게도 자극이 되리라. 또한 자극은 어떤 행동을 이끌어낼 것이니, 작은 움직임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말은 지금과 같은 경우를 일컬음이다.
“준비됐어?”
“응.”
“그걸로 되겠어? 말벌은 상대도 안 되는 놈들이라던데.”
천멸도주가 다담선자를 쳐다보며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다담선자가 준비한 것은 누가 봐도 부실했다.
마른 쑥으로 만든 횃불 한 가마와 길이가 사십여 장에 이르는 밧줄이 전부였다.
“이게 왕벌을 잠재워 주면 고맙고…… 아니면 힘들 거야.”
“아주 남 이야기처럼 말하네.”
“어쩔 수 없잖아.”
다담선자가 싱그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천멸도주는 절혼마녀를 힐끔 쳐다봤다.
절혼마녀는 일령에게 바짝 붙어 서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다. 현현신법과 사루의 무학인 육경검법, 귀루의 무학인 귀적무, 귀루의 무학과 사루의 무학이 합쳐졌을 때 나타난다는 귀수.
절혼마녀는 죽음을 예감했고, 그녀가 가졌던 모든 무학을 일령에게 전수해 주고 있었다.
다담선자가 마른 쑥을 준비하여 횃불을 만드는 하루 동안 절혼마녀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입과 몸을 놀렸다.
“알고 있겠지만 귀적무를 죽인 사람은 점창파(點蒼派) 고수 섬전잔영(閃電殘影)이야. 섬전잔영의 독문신법이 비천십이표(飛天十二飄)인 것은 알지? 이제 귀적무의 원한은 네게도 이어졌어. 꼭 귀적무의 혈한을 갚아줘. 섬전잔영을 죽이라는 말이 아냐. 귀적무로 비천십이표를 꺾어달란 말이야. 중원에서 제일 빠른 신법이 귀적무라는 걸 똑똑히 일깨워 줘.”
“언니, 그건 언니가 해. 나, 이거 수련하지 않을 거야.”
“해야 돼. 꼭 해야 돼. 귀루와 사루를 합친 귀수. 내가 얻은 건 껍데기밖에 안 돼. 넌 더 깊이 수련해서 진정한 귀수를 얻어내. 장담하는데, 귀수를 얻기만 하면 무신 반열에 오를 거야.”
마지막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일령에게도 공령문의 절기가 있다. 선유비조신법과 염화옥수는 귀적무와 육경검법에 능히 필적한다. 실제로 그녀들을 수십 번에 걸쳐서 비무를 펼쳤지만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실제로 목숨을 걸고 싸우면 어떻게 될까?
누가 이기든 간발의 차이로 삶과 죽음이 갈라질 게다.
절혼마녀의 무학이 무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면 일령의 무학 또한 최고의 절학인 것이다.
그럼에도 절혼마녀가 굳이 무신을 들먹인 것은 자신이 전수해 준 무학을 등한시하지 말라는 다짐이다.
“언니, 머릿속에 기억만 하고 있을게. 나와서…… 꼭 나와서 언니가 이뤄. 이건 언니 거잖아.”
“이제 가야겠다. 간다.”
절혼마녀는 일령에게 작별을 고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담선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됐어. 이제.”
절혼마녀가 다담선자를 보며 빙긋 웃었다.
천멸도주가 그런 그녀를 보며 톡 쏘았다.
“뭐야,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징징거리는 건.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낙화향 창기 맞아?”
“그래, 맞아. 낙화향 창기.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져 봤기 때문에 원도 한도 없어. 지금 난 무척 행복해.”
“주접떨지 말고 살아오기나 해.”
천멸도주는 홱 등을 돌리며 멀어져 갔다. 그러면서 빽 고함을 내질렀다.
“종청호! 북검문을 막아! 주림! 남도문을 맡아!”
양쪽 인원을 비교하면 어처구니없는 명령이다.
주림의 백인수는 주림을 포함해서 아홉 명뿐이다. 반면에 종청호의 십팔밀막검은 종청호까지 열여섯 명이나 된다. 개개인의 무공 차도 커서 백인수와 십팔밀막검은 어린아이와 어른 정도의 차이가 난다. 냉정하게 전력을 평가했을 때 십 대 일 정도라 할 수 있다. 한데 천멸도주는 십을 북무림에 돌리고, 일을 남무림에 던졌으니.
응답은 없었다.
스스스슷……!
부드러운 바람이 ‘마 마’를 휩쓸고 지나갔다.
“저거 뭐야! 저거 호채마 아냐!”
“호채마? 저것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나왔어.”
양쪽으로 갈라서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술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