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60
160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장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마인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호채마들의 신분은 환히 드러나 있어서 새삼스럽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절색들은 다담선자, 절혼마녀, 그리고 북검문 자하부의 금지옥엽으로 알려진 금연화다.
세 여인보다는 조금 앳되면서 육감적인 몸을 가진 소녀는 일령이라 부르는 여자일 테고, 자그마한 체구로 봤을 때 여인임이 틀림없는 백포인은 천멸도주가 틀림없다.
사내들의 신분도 확인된다.
마도, 수검, 혈유, 그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노인은 녹혈마공으로 유명한 시마다.
북무림에서 내려와 거침없이 남무림을 관통한 사남오녀(四男五女)가 눈앞에 있다.
“저것들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군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병장기를 움켜잡았다.
호채마는 거리낌없이 걸었다. 군웅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이 당당하게 걸어갔다.
좌측으로는 북검문 천랑대가 늘어서 있다. 우측으로는 각양각색의 남무림 무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호채마는 북무림과 남무림 사이를 걸었다.
군웅들도 소리만 높였지 다가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에게 다가서려면 천멸도 살수들이라는 죽음의 늪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금 천하에서 천멸도 살수들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때, 좌측에서 천랑대 무인들 틈을 비집고 백기를 든 사내가 불쑥 나섰다. 머리를 틀어 위로 묶었고, 깡마른 얼굴이 강단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육능자라고 하네.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그는 손에 든 백기를 장난처럼 살랑살랑 흔들었다.
우측, 남무림 쪽에서도 사람이 나타났다.
의복을 단정히 차려입었으며, 손에는 용이 그려진 섭선(摺扇)을 든 사람이다.
광동성(廣東省)의 정기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구환자(九還子)다. 진리를 찾아 세상을 떠돌다가 심득을 얻을 때마다 돌아오곤 했는데, 나가고 들어옴이 아홉 번이라서 붙여진 별호다. 동서고금의 온갖 병서에 능통하여 만병자(萬兵子)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환자라고 하오. 너무 미천한 이름인지라 알려진 바가 없을 텐데, 들어보셨는지요.”
구환자는 겸손하게 말했다. 한데 겸손함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어떤 연유인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벗을 만난 듯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인심수람술(人心收攬術)이 뛰어난 자! 조심해야 할 자야!’
과연 야광의 총수는 허명으로 얻을 수 없는 자리다. 구환자를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치리라.
다담선자는 걸음을 멈췄다.
“이야기는 나눌 수 있어요.”
육능자에게 먼저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구환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광 총수를 모른다면 무림인이라고 할 수 없겠죠. 존명은 익히 들었어요.”
육능자와 구환자가 거의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멸도주를 쳐다봤다. 천멸도주를 제치고 다담선자가 나선 것이 의아한 듯했다.
천멸도주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북무림, 남무림 무인들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여차하면 즉각 공격 명령을 내려서 다담선자와 절혼마녀가 무사히 멸신구관에 들도록 도와줘야 한다.
대화나 나누자고 신경을 분산시킬 여력이 없다.
당연히 앞으로 나서서 말을 하는 사람은 다담선자였다.
육능자가 횃불이 가득 든 가마니를 쳐다보며 말을 건네왔다.
“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멸신구관에 들 생각이오?”
“그래요.”
“보아하니 전면전도 감당할 생각인 것 같소만.”
“그래요.”
“몇 사람이나 들어갈 생각이시오?”
“나중에 보세요.”
“허! 거, 말 몇 마디면 될 것을 너무 야박하구려.”
육능자는 더 캐묻지 않고 순순히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망했다.
“총수께서도 묻고 싶은 게 있나요?”
구환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나온 질문인데 나도 물어봐야겠소. 들어갈 사람이 누구요?”
다담선자는 구환자를 쳐다봤다. 구환자의 얼굴에서 진의를 읽어내려는 듯.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알다시피 멸신구관에는 기연이 있으니까. 우리 형제들도…….”
구환자는 표시나지 않게 음성을 높였다.
“기연이 있다는 건 알고 있소. 기연에 욕심도 나고. 하하!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오.”
‘들어갈 생각이 없어!’
다담선자는 구환자의 의중을 읽었다. 그가 필요한 것은 남무림 무인들을 제지할 명분이다.
“나와 저 언니. 두 사람만 들어갈 거예요.”
다담선자가 절혼마녀를 가리켰다.
“두 사람만 들어가는 이유라도 있소?”
“마야의 부인이니까요.”
다담선자는 말속에 애틋한 정분을 담았다. 남겨진 여인의 비통한 심정을 담았다. 이 정도는 해줘야 구환자가 나서서 말을 걸어준 데 대한 보답이 된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피해야 하지 않겠나.
구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맑은 신광이 어리고 있었다.
자신의 뜻을 짐작하고 합당하게 대답해 주는 여인, 현명한 여인이다. 사내로 태어났다면 야광에 들어왔을 인물이다.
“두 사람뿐이라면…… 지켜보리라.”
구환자가 육능자를 쳐다보며 물러섰다.
2
육능자도 구환자도 길을 가로막지 않았다.
이는 뜻밖의 상황이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가장 희박하지만 다담선자 쪽에서는 최상의 결과다. 천멸도 살수들이 싸우지 않아도 되니 천만다행이다.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횃불이 가득 든 가마니를 짊어지고 멸신구관 입구로 향했다.
“저걸로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방법을 하나 찾은 거지.”
“쑥으로 만든 횃불인데…… 제길! 저걸로 됐으면 좋겠군.”
군웅들이 쑥 냄새를 맡으며 수군거렸다.
당장이라도 멸신구관으로 뛰어들고픈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입구 깊은 곳에 사는 왕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일부는 뛰어든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곧 튕겨 올라왔고,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절명하고 말았다.
왕벌은 지독했다. 말벌 같아도 엄두가 나지 않는데 왕벌은 말벌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놈들이다.
멸신구관 입구는 활짝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누가 뛰어들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편이 맞다. 오히려 누구든 왕벌을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주기를 고대한다. 어떤 식으로 왕벌을 요리하는지 배우고 싶은 것이다.
천멸도주가 멸신구관 입구에서 등을 돌리고 섰다. 북검문을 향해서. 마도와 수검도 방비를 했다. 그들은 남무림 무인들을 향했다. 혈유와 시마는 가운데서 다담선자와 절혼마녀의 등을 보호했다.
“괜찮죠?”
“괜찮아. 걱정 마. 우린 잘할 거야.”
다담선자의 물음에 절혼마녀가 웃으며 답했다.
다담선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가마니를 열었다.
“시작해요.”
“그래.”
그녀들은 횃불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열 개…… 스무 개……
가마니에서 꺼낸 횃불에 모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일시에 입구를 향해 던져 넣었다.
휘이이잉……!
지저 밑바닥에서 휘몰아친 바람이 솟구쳐 올라와 머리를 휘날렸다.
진한 쑥 냄새와 왕벌의 비린내가 함께 묻어났다.
쑥 연기는 벌을 마비시킨다. 말벌도 쑥 연기를 쐬면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왕벌은 어떨까? 왕벌도 잠잠해질까? 쑥 연기가 통한다면 일차 관문은 쉽게 통과하겠지만, 통하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절혼마녀가 다담선자보다 한 발 앞서서 밧줄을 붙잡았다.
절혼마녀의 마음을 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을 먼저 감수하려는 마음이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같이 들어갈 건데 앞뒤 구분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스스스슷!
절혼마녀는 거미처럼 너무도 매끄럽게 잘 내려갔다. 하지만 그녀는 바닥까지 내려가지는 못했다. 바닥을 십여 장쯤 남겨둔 곳에서 멈춰야만 했다.
‘맙소사!’
기가 질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놈들이 생겨났단 말인가!
바닥에 떨어진 횃불은 활활 타올랐다. 쑥 연기가 매캐하게 피어나 동혈을 가득 물들였다. 그리고 연기 사이를 엄지손가락만 한 벌들이 왱왱거리며 날아다녔다.
쑥 연기는 효과가 없었다.
날갯짓이 요란하고 비행이 거친 것으로 보아 오히려 쑥 연기가 성을 북돋은 것 같았다.
스스스슷!
다담선자가 바로 뒤따라와서 곁에 매달렸다.
“이런! 효과가 전혀 없네요.”
“오히려 화만 북돋은 것 같아.”
“섬광탄(閃光炭)을 태워야겠어요.”
절혼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뚫고 들어가야 한다. 왕벌들을 모두 죽이는 한이 있어도 관문을 뚫어야 한다.
절혼마녀가 다담선자의 등에 멘 행낭을 뒤져 기름종이에 쌓인 연통(煙筒)을 찾아냈다.
“반각 정도 시간을 벌어줄 거예요.”
“알았어.”
절혼마녀가 눈을 감았다.
섬광탄에 불을 붙이면 태양열만큼이나 강렬한 빛이 폭출되었다.
인간의 눈은 이러한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시력을 잃고 만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빛에 과다하게 노출될 경우 완전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섬광탄을 터뜨린 후, 눈을 감은 상태에서 왕벌들의 군락을 뚫고 나가야 한다.
탁탁! 파아앗!
동굴 색을 정반대로 바꾸는, 세상에서 가장 환한 빛이 작열했다.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바닥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갔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왕벌과 부딪치는 일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왕벌들이 섬광에 시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활동력까지 움츠러들기만 고대한다. 한데!
파아앗!
바닥에서 난생처음 접하는 강렬한 예기(銳氣)가 솟구쳐 올라왔다.
눈을 뜰 수가 없다. 떠서도 안 된다. 하지만 반응은 해야 한다.
절혼마녀는 귀적무를 펼쳐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다담선자는 마도 사상 가장 빠르다는 십족신마의 천와류를 펼쳐 옆으로 미끄러졌다.
쒜에엑!
강렬한 예기는 두 사람 사이를 뚫고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뭐야?”
절혼마녀가 엉겁결에 물었다.
“몰라요.”
다담선자도 즉각 대답했다.
예기는 위험을 담고 있었지만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았다. 마치 무엇에 쫓기는 듯 부리나케 내뺐다.
눈을 뜨고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눈을 감고 있어도 섬광탄에서 쏟아진 빛이 따갑게 찔러오는데 어떻게 눈을 뜨랴.
“이상한데? 막다른 길 같아. 어쩌지?”
바닥에 먼저 내려선 절혼마녀가 난감해했다.
다담선자도 감각을 모두 열어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서는 소름 끼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섬광탄에 바짝 독이 오른 왕벌들이 성난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제 동혈은 왕벌들로 가득 찰 것이고, 닥치는 대로 쏘아댈 것이다.
귀적무는 신비롭다. 천와류는 빠르다. 하지만 얼마나 되는지 숫자조차 헤아릴 수 없는 왕벌들의 총공세에는 대적할 수 없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담선자도 난감했다.
멸신구관에는 앞선 방문객이 있다. 소립파와 무신들이 길을 뚫고 나갔다.
분명히 길은 있다. 한데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꽉 막혔다.
‘이곳은 멸신구관의 입구가 아니라 왕벌의 집에 불과해.’
꼭 그렇게 생각되었다.
천멸도 살수들이 입구를 잘못 찾았나? 잘못 들어온 건가?
아! 방금 전에 느꼈던 예기를 잊고 있었다. 그건 무인만이 발출할 수 있는 기운이다. 무인이다.
그는 누구인가? 왕벌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버텨냈는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일 뿐 풀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절혼마녀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왕벌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놈들은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일제히 날아오를 태세를 취했으면서도 먼저 날아오른 놈은 없다.
왕벌들에게는 질서와 규칙이 있다. 그것도 인간들보다 훨씬 엄격하게 유지된다.
놈들은 벌써 공격 목표를 정했다.
서서히…… 서서히……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를 포위해 나갔다.
‘섬광탄도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 뿐이라면…….’
인정하기 싫지만 대책이 없다. 일단은 물러섰다가 다른 방책을 구비한 후에 다시 들어와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섬광탄이 빛을 다했다. 이제는 눈을 떠도 될 정도, 조금만 지나면 왕벌들에게 유리한 어둠이 몰려들게다.
“철수해요.”
두 여인은 쾌속하게 밧줄을 움켜잡았다. 한데!
윙! 윙! 왜애애앵……!
어느새 머리 위를 점령한 왕벌들이 맹렬히 날개를 떨쳐 냈다.
완벽하게 포위되었다.
다담선자는 섬광탄을 또 꺼냈다. 마지막 섬광탄이다. 탄(炭) 하나가 말 세 필 값이니 일다경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말 여섯 필을 먹어치운 셈이다.
그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내공이 충만해졌다. 퍼내고 퍼내도 가득 채워지는 요술 그릇처럼 단전이 가득 채워졌다.
츠츠츠츠츳!
경락도 배는 넓어졌다. 일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진기가 평소보다 배는 많다.
다담선자는 깜짝 놀라서 절혼마녀를 쳐다봤다. 마침 절혼마녀도 그녀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배가(倍加)!”
“증폭(增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