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62
162
활을 정확하게 쏜다거나 한 번에 네다섯 대를 쏘아내는 초식적인 측면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 정도는 해낼 수 있는 문파가 많다. 궁술의 달인이라는 자도 상당수가 있다. 하지만 누구도 제삼무신가와 비교되지 못한다. 강궁과 은형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파괴력 때문이다.
한데 마도는 강금산의 일수(一手)에서 천변만화하는 환수(幻手)를 보았다.
강궁과 환수.
도저히 제삼무신가의 무공과 섞일 수 없는 무공인데.
“쥐새끼, 목숨 한 번 걸어봐.”
강금산이 두 손을 활짝 펼쳤다.
마도는 혈염도를 뽑았다. 강금산 말대로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순간이다.
이번 격돌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혈염도는 그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고, 수검과 혈유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혈염도에 피를 묻히리라.
끔찍한 상상이다. 한데 이상하게도 모두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광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술(邪術)…….’
고개를 크게 뒤흔들었다.
“해볼까.”
‘졌다!’
수검은 마도의 마음 상태를 읽었다.
마도는 기세에 눌렸다. 마도 같은 고수가 싸워보기도 전에 눌린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마도는 자신이 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할 게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강금산과 단 한 번 부딪친 것에 불과하지만 그를 이길 수 없다는 불쾌한 마음이 무럭무럭 일어난다.
‘빌어먹을! 우리가 졌어. 어떻게 이런 일이…….’
멸신구관에 정말 기연이란 것이 있었나? 그렇지 않으면 무신도 아니고 강금산 같은 위인에게 이토록 밀릴 수가 있는가.
그는 혈유에게 눈짓을 보냈다.
혈유도 사태를 눈치 챘다.
마도와 강금산의 싸움, 하지만 이미 승패가 결정났으니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 그래도 싸우겠다면 비무 차원을 넘어서 생사 대결이 된다. 두 사람이 서로 은원이 없으니 정도와 마도의 싸움이 되는 것이고, 굳이 일 대 일의 싸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제길! 몸 좀 풀어봐?”
혈유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묵검을 뽑았다.
싸움이 삼 대 일의 상황으로 변했다. 한데도 세 사람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긴장했다.
승패를 점칠 수 있는 고수의 눈에 이들의 싸움은 늑대와 호랑이의 싸움으로 견줘졌다.
강금산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타앗!”
마도가 첫 일성을 터뜨렸다.
바로 뒤를 이어 수검의 손에서 섬광이 번쩍 터졌다. 혈유의 묵검은 조용히 흘렀다. 하지만 한 발 앞서서 달려나간 독수전(禿手箭)은 강금산의 하체로 쏟아져 들어갔다.
강금산의 반응은 굉장히 느렸다. 아니다.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느리게 보인 것은 표정과 태도에서 여유가 넘쳐 나기 때문이다.
왼발을 들어 독수전을 걷어차고, 몸을 슬쩍 틀어서 사흡검을 피해냈으며, 오른손을 쭉 뻗어서 혈염도의 도신을 움켜잡았다.
일순간에 벌어진 결과다.
“그만 놓지!”
강금산의 왼손이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노리는 곳은 마도의 가슴이다. 혈염도를 놓고 물러서지 않으면 가슴뼈가 박살날 게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세 사람의 공세가 급변했다.
“건방진!”
일갈과 함께 혈염도를 든 마도의 손목이 살짝 비틀렸다.
강금산은 도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혈염도를 타고 흐르는 진기가 강력하기 짝이 없어서 계속 잡고 있다가는 손가락이 잘릴 판국이다.
쉬익! 철컥! 쉬익! 철컥! 쉬익! 철컥!
수검의 검이 눈부시게 뽑혀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한 번에 일획(一劃)이 그어졌다. 옆구리에 그어진 혈선(血線), 어깨에, 등에 그어진 한 줄기 붉은 선.
“이봐! 여기도 있어!”
혈유의 묵검은 종아리를 베어왔다. 아니다. 허벅지? 아니다. 허리?
빠르기로 따지면 당금 무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 검을 전개하니 정신이 없다.
“하하하하!”
강금산은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신형을 허공으로 쭉 뽑아 올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쥐새끼들! 오늘은 살려주마! 지금 이 순간부터 땅속에 굴을 파고 숨어 사는 게 좋을 거야! 하하하! 하하하하! 계집! 금연화! 하하하! 기다려라! 하하하!”
강금산은 무척 빨랐다. 마지막 앙천광소가 들릴 즈음, 그의 신형은 ‘마 마’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그의 웃음소리만이 ‘마 마’를 쩌렁 울리며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군웅들이 넋을 잃고 멍하니 쳐다봤다.
대부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강금산이 멸신구관에서 나왔고, 호채마와 몇 수 드잡이질을 하더니 신형을 뽑아 사라진 것이 고작이었다.
사람들은 강금산의 빠른 신법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일부 몇몇 무인은 접전의 내막을 소상히 봤다.
육능자와 천랑대 무인들의 안색은 어두웠다.
강금산의 무공은 예상 밖으로 강하다. 호채마의 무공도 절정인데, 그런 그들을 어린아이처럼 데리고 놀았다. 천랑대와 부딪친다면 태반이 당할 것이다.
구환자의 표정도 어두웠다.
강금산이 사용한 무학은 제삼무신가의 무학이 아니다.
멸신구관에서 기연을 얻은 것일까?
그는 혼자 사라졌다. 남무림 무인들과 섞이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떠나갔다.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가 사라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멸신구관의 기연을 얻은 사람.
과연 무림이 그를 내버려 둘까? 무신들이 그를 가만히 놔둘까?
강금산은 생각이 단순하면서 의기만 강한 사람이라 남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었는데, 이제는 폭풍의 핵이 되었다.
이런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남무림과 북무림의 평화는 무신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때 얻어진다.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멸신구관에 들어간 무신 네 명이 죽었기를 원한다. 그들만 없어도 세상이 한결 조용할 텐데.
육능자와 구환자는 생각도 깊게 하지 못했다.
쉬익! 쒜에엑!
옷자락 날리는 소리와 함께 멸신구관에서 두 여인이 튀어나왔다.
“헉헉! 안 되겠어. 왕벌들이 너무 지독해.”
다담선자는 나오자마자 거친 숨부터 토해냈다.
“쑥 냄새도 안 되고, 섬광탄에도 꿈쩍하지 않아. 벌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수만 마리는 되는 것 같지?”
절혼마녀도 거친 숨을 토해냈다.
하나 두 여인은 곧 다른 말을 해야만 했다.
“왜…… 들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
“강금산이 나왔어요.”
일령이 그간의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정리해 줬다.
“놀랐어요. 강금산이 그만 한 인물일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어요.”
일령의 마지막 말은 감탄으로 끝났다.
“그런 일이! 그럼 그때 우리 곁을 스쳐 지난 예기가!”
“강금산이었어!”
두 여인은 진정 놀란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혼자서 세 사람을! 강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는데.”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강금산의 미행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기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예의 주시해 왔다.
‘상대할 만한 사람’이라는 게 그에 대한 평가였다.
“믿는 게 좋아. 소름이 오싹 끼쳤어. 무신들처럼 철벽 같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지만 단단하다는 느낌은 받았어. 전과 달랐어. 정말 멸신구관에 기연 같은 게 있었던 거야, 뭐야!”
천멸도주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서로를 쳐다볼 뿐 할 말이 없었다.
호채마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물러났다.
“고마웠어요. 아쉽게도 우리가 준비한 수는 왕벌에게 통하지 않네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하하! 이곳 남만에서 사는 놈들은 쉬운 놈이 없죠.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구환자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남무림 무인들에게 호채마는 원수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호채마는 분명히 척살 대상이다. 상조문과 독조림이 무너졌다. 각 문파에는 천여 명이 넘는 문도들이 있었지만 거의 다 죽었다.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호채마는 반드시 멸살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몰아붙인다면 천랑대와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
천랑대도 정도인이고, 호채마에게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한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손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놓아줄 수밖에 없다.
“허허허! 그래도 기대를 했는데 아쉽구려. 통과했다면 우리도 그 방법을 쓰려고 했는데. 또 봅시다.”
육능자도 웃었다.
삼원로와 만사무불통지가 나오지 않고 강금산이 나왔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특이한 무공을 선보이면서.
그는 만일의 경우까지 생각했다. 삼원로가 멸신구관에서 당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남무림으로부터 지독한 추격을 받을 게다.
호채마와 척을 질 때가 아니다. 오히려 잘 구슬려 놔야 한다. 반드시 호채마를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이고, 호채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리라.
남북 무림인들은 천멸도 살수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다섯 여자와 네 사내가 당당하게 빠져나가는 것만 지켜보았다. 마인에 대한 분노를 가슴속에 삭히며.
“아까는 묻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마 마’를 빠져나오자마자 천멸도주가 물어뜯듯이 달려들었다.
“뭐가?”
다담선자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녀답지 않은 웃음이다. 소립파가 멸신구관에 들어간 이후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그녀다.
“무슨 일이 있었지! 빨리 안 말해!”
“마야가 나왔어.”
절혼마녀가 옅은 웃음을 띠며 말해줬다.
천멸도주의 몸이 딱 굳어졌다. 마도, 수검, 혈유, 시마도 어안이 벙벙해서 절혼마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말해야 했다.
“마야가 나왔어요. 지금쯤 흑살마녀에게 가 있을 거예요.”
“어…… 떻게? 나오는 것도 못 봤는데?”
“그 사람, 언장은마의 비법을 고스란히 터득했잖아요.”
“그럼 땅 밑으로?”
“지금쯤 흑살마녀에게 가 있을 거라니까요.”
마도, 수검, 혈유는 우울했었다. 명확한 승부는 가리지 못했지만, 진 싸움이다. 진기란 진기는 모두 끌어모아 일격을 가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숨을 쉬고 있지도 못할 게다.
한데 웃을 일이 생겼다. 소립파가 돌아왔단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천멸도주가 소리를 빽 질렀다.
모든 게 답답했는데, 앞날이 암울했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는데…… 모든 근심 걱정이 일순간에 해소되었다.
“자오법신은 어때요?”
금연화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고친 것 같아. 진기까지 운용하는 것 같던데.”
“진기까지!”
과연 멸신구관이다. 더 무엇을 바라랴.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2
어린아이가 벼랑 끝에서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가 외줄을 탄다면 어떨까?
아슬아슬, 조마조마…… 위태롭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
천멸도 살수들, 호채마가 그런 행로를 걸어왔다.
호채마는 강하다. 천멸도 살수들도 강하다. 그들이 힘을 합쳤으니 웬만한 문파는 손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개개인의 경우는 더욱 힘들어서 무신들 정도는 되어야 팔을 걷어붙일 수 있다.
그럼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인가.
천만에! 천하무림을 그렇게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호채마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남북무림이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야가 필요했다.
마야라는 인물 자체는 평가할 대상도 아니었지만 그가 지닌 능력은 연구해 볼 가치가 있었다. 또한 일견후즉파라는 무공을 보는 안목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유는 또 있다.
호채마와 천멸도 살수들이 무림을 분탕질하고 돌아다녔지만 위협다운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는 무리’가 호채마였다.
멸신구관의 등장도 호채마의 처단을 뒤로 미루는 계기가 되었다.
장강을 넘으면서 많은 무인을 죽인 것은 허허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상조문과 독조림을 몰살시킨 것은 정도가 지나쳤다. 수염을 잡고 장난친 것으로도 모자라서 불을 내어 홀랑 태워 버렸으니 단단히 혼을 내야 한다.
마침 그때 멸신구관이 등장했다.
호채마는 정말 운이 좋은 마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서너 번쯤 저승에 갔다 온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알았어도 개의치 않았을 게 분명한 위인들이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멸신구관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강금산의 무위는 여러 사람이 목격했고, 전설대로라면 무신에게도 위협이 된다. 멸신구관의 무공을 완벽하게 소화, 흡수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 혹은 포섭하거나.
세상의 이목이 강금산에게 집중되었다.
집중도가 흐려질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강금산과 함께 멸신구관에 들었던 무신들과 마야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강금산에게만 쏠렸던 이목이 분산될 것은 자명하다.
강금산이 그럴진대 무신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염려하는 바도 크다. 무림은 강금산이 업고 나온 서군봉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