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65
165
“정말 오늘 왜 이래요?”
절혼마녀가 기어이 한마디 했다.
아이를 왜 갖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가질 때가 아니지 않나. 언제 죽을지 모를 판국인데 아이까지 가져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소립파는 활짝 웃었다.
“자, 당분간은 모든 걸 잊고 아이나 만들자고.”
발정난 짐승이 따로 없었다.
소립파는 최음제라도 복용한 것처럼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체를 탐했다.
“헉! 헉헉! 하악……!”
절혼마녀는 거친 숨을 뿜어냈다.
그녀는 누워만 있지 않았다. 낙화향에서 배운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여 소립파의 정욕을 있는 대로 끌어냈다.
그녀는 여체를 탐하는 남자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여자였다.
“후우!”
소립파가 가벼운 숨을 불어냈다. 그리고 네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시 숨을 골랐다.
“고마워요.”
“…….”
“어쩌면 굉장히 지루한 정사가 될 뻔했는데.”
“지루한 정사?”
“여자를…… 여자가 욕정을 해소하는 도구가 됐을 때는 참 슬퍼져요. 그럴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요.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 지루한 정사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느꼈나?”
“애정이 없는 정사는 누구와 해도 마찬가지예요. 또 목적이 있는 정사도 여자를 나무토막으로 만들어요.”
“후후! 아기를 갖자는 말 때문에…….”
“호호! 여자의 본능을 너무 얕보지 마세요. 아기를 갖자는 말은 우리를 떼어놓겠다는 뜻 아녜요? 아기를 잉태시키고 혼자 훌훌 떠나가겠다는. 그 정도 눈치도 못 챌 것 같아요?”
“…….”
“그냥 아무 말 없이 안아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기뻐요. 애무하는 손길에서, 당신의 숨소리에서, 눈빛에서 절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거든요.”
절혼마녀는 그의 위로 올라탔다.
“지금부터는 가만히 있어요. 내가 해줄게요.”
“또?”
“그럼요. 이게 얼마 만인데. 저 뜨거운 여자인 것 몰랐어요?”
절혼마녀가 요염하게 웃었다.
다담선자는 쑥 연기에 몸을 맡긴 채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주위에는 천멸도주를 비롯해 호채마 모두가 빙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초옥에서 들려오는 비음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끈끈하게 이어지는 교성은 처녀의 방심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소리만 듣고 있는 데도 사내들은 여인들을, 여인들을 사내들을 쳐다볼 수 없다. 숱한 날을 동고동락한 사이인 데도 한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쳇! 어지간히 좀 하지.”
혈유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풀지는 못했다.
“휴우!”
다담선자가 고개를 들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들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야의 지낭(智囊)이다. 알려지지도 않았고, 드러내지도 않지만 마야가 전폭적으로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머리는 예사롭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어르신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뭐랄까, 사명감 같은 게 있어요. 깊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거나, 누굴 기다리거나.”
흑살마녀를 일컫는 말이다.
“그분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떠나야 할 거예요.”
장내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앞으로의 행로가 그녀의 말 한마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자연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삼삼오오 짝을 짓든, 혼자 가든…… 마야는 혼자 가는 쪽을 택한 거죠.”
“목표는 역시 궁왕?”
마도가 물었다.
다담선자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녜요. 우리를 데리고 장강을 건널 때, 그때는 분명히 목표가 궁왕이었어요. 혈귀대를 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자가 무신 궁왕이었으니까요. 또 하나 확실한 것, 그때까지만 해도 마야는 전멸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궁왕을 치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를 데리고 장강을 건넜고요.”
“뭐야? 궁왕도 아니란 거야?”
수검이 고리눈을 떴다.
“네. 아녜요. 목표는…… 이 땅.”
“켁! 켁켁! 뭐라고?”
시마가 술을 마시다가 사레들렸다.
다담선자의 말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땅이라고 했어요. 남도문도 북검문도 아니고, 이 땅이에요.”
“이게 뭐라는 소리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언니에게 잠자리를 양보하더니 드디어 미쳤구나.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이 땅? 땅을 상대하겠다고?”
천멸도주도 어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안이 없다 못해서 화가 난다.
땅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사람은 없다. 그건 당금 천하를 주무르고 있는 무신도 마찬가지다.
거목은 도끼로 베어 넘길 수 있다. 풀도 태워 버리면 그만이다. 바위도 부수면 끝난다. 산도 강도 없애고자 작심하면 없앨 수 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못하면 아들이,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없애면 된다. 그러나 그 어떤 힘으로도 땅만은 없애지 못한다.
땅은 광활하다. 가문(家門)이니 문파(門派)니 하는 것은 땅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인 초원에 만들어진 작은 화단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기인이사, 은거고수가 득실거리는 곳이 중원이다. 이 세상을 샅샅이 뒤지다 보면 무신 같은 사람이 두어 명 정도는 더 나타날지도 모른다.
땅과 싸워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파묻히고 만다는 것이다.
무림과 싸운다고 해도 질릴 노릇이다. 한데 땅과 싸운다면 무인은 물론이고 무인이 아닌 사람과도 싸운다는 뜻이니, 이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린다는 말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들어서 알겠지만, 아이를 낳아달라고 했던 말은 진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우리를 떼어놓으려는 의도도 있고, 후인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테죠.”
“하악! 학…….”
초옥에 피어난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았다.
철면피, 색한이나 다름없는 소립파의 행동이요, 정사다. 하지만 그가 불쌍해 보인다. 한없이 작아 보인다. 마인들의 아버지라는 마야조차도 땅 앞에서는 한낱 인간일 뿐인가.
2
“아함!”
소립파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조금만 지나면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고, 산천초목을 바싹 익혀 버릴 열기가 지배할 터이지만 아직까지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맡아진다.
피곤하면서도 상쾌했다.
“후훗!”
간밤의 일을 떠올리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절혼마녀를 놓아주지 않을 작정으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잡히고 말았다.
그녀는 끝을 모르는 늪이다.
발끝만 닿아도 단숨에 머리까지 삼켜 버린다.
자신은 마상(魔相)이요, 절혼마녀는 귀상(鬼相)이다. 두 사람은 천하에서 짝을 찾을 수 없는 최상의 속궁합이다. 그런 면에서는 요상(妖相)인 다담선자, 명상(明相)인 금연화, 귀상(貴相)인 일령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다.
“대단한 여자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등 뒤에서 쑥스러운 말을 주워담을 수 없게 만드는 말이 들려왔다.
“흥! 그렇게나 대단했어요?”
고개를 돌리자 두 손에 다반(茶盤)을 받쳐 들고 살포시 걸어오는 다담선자가 보였다.
“잘 잤어?”
“흥! 제 생각을 할 틈도 없었으면서 괜히 말 몇 마디로 때울 생각은 아예 마세요.”
“후후! 다담도 질투를 하다니 놀라운 일인걸.”
“전 여자 아닌가요. 차 드세요.”
“여긴 차가 없을 텐데, 어디서 난 거야?”
찻잔을 받아 들었다.
따뜻하다. 찻잔도 따뜻하지만 다담선자의 마음도 따뜻하다.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계속 물을 끓인 것 같다.
“천멸도주가 멋있는 여자인 것 몰랐어요? 밥은 먹지 않아도 차는 마시죠. 그것도 명차(名茶)만.”
“주둥아리 함부로 놀릴래?”
초옥 왼쪽 꺾어진 곳, 굽이돌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멸도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호호! 칭찬이야. 칭찬도 거슬려?”
“저게 많이 컸다니까.”
소립파는 두 여인의 말을 들으며 차를 입에 댔다.
향긋하다. 깊은 향이 배여 있다. 천멸도주의 깊은 마음이 배여 있다.
소립파는 차를 잘 알지 못한다. 차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삶이다.
하나 그도 아끼는 차는 있다.
호광성(湖廣省) 악양(岳陽) 군산(君山)의 명품으로 널리 알려진 군산은침(君山銀鍼)이다.
군산은침은 명품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구하기가 쉽다. 하지만 진품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건 아무 생각 없이 차 맛만 즐겨야 되는 건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생각하다 보면 차 맛을 놓치잖아. 무심코 마셨다가 가짜면 기분만 나빠지고. 즐기자고 차를 마시는 건데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다면 아예 안 마시는 게 낫지 않겠어?”
그 말을 한 이후로 천멸도주는 늘 군산은침을 지니고 다녔다.
후루룩!
다향이 입 안에 감돌았다. 천멸도주의 마음이 입 안에 머물렀다. 하지만 차 맛이 어쩌고저쩌고, 차를 준비해 줘서 어쩌고 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는 못하겠다.
“언니는요?”
“아직. 자게 내버려 둬.”
“호호호! 피곤했다, 이거죠?”
“쯧!”
소립파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일다경(一茶頃), 딱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 소립파는 빈 잔을 건네줬다.
“아침은 조금 늦을 거예요.”
소립파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 명, 두 명…… 그의 등 뒤로 늘어서는 사람들을 느끼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반응이 여러 가지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중에서 자신은 절대 원치 않으면서 실행 가능성은 가장 높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보 같은 사람들! 무림에 몸담고 산다는 사람들이 하찮은 정(情) 하나 끊지 못해서 목숨을 내걸다니.
“마야, 밤새도록 생각했는데…….”
마도가 첫 말문을 열었다. 한데 시마가 제지하고 나섰다.
“클클! 비켜. 이런 건 늙은이가 말하는 게 그래도 씨알이 먹혀.”
마도는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
“이보게, 마야.”
‘제발 말하지 마. 이대로 뒤돌아서 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
소립파는 자신을 질책했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것은 자신이 유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무지할 정도로 거칠게 내쳤어야 하는데 말 몇 마디로 쫓아내려고 했으니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당연하다.
아니다. 다담선자의 머리가 그보다 한 걸음 앞선 것이 지금의 이 사태를 불러왔다.
의중을 전달하는 것은 모질 필요가 없었다. 굳이 낯까지 붉힐 필요가 뭐 있으랴.
의사를 전했으니 행동만 하면 되었다.
한 달쯤 시간을 두고 아기를 만들자고 했지만 그것도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고, 그리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하에서 나왔으니 이삼 일쯤 쉬었다가 갈 생각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움직이려고 했다.
“우리가 자네를 왜 마야라고 부르는지 아나?”
‘이제 그만! 그만 하고 가. 가란 말이야!’
갈 사람들이 아니다. 가려면 자신이 가야 한다.
“자네는 마인의 희망이기 때문이었네. 자네만 곁에 있으면 편안했지. 자네와 같이라면 죽음이라도 얼마든지 맞겠네. 다른 사람은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그랬네.”
소립파는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사방에서 기운이 읽힌다. 너무 가늘어서 자연의 기운과 흡사하지만 분명히 사람의 기운이다. 살아 있는 이상 생기가 새어 나오는 것은 영원히 어쩌지 못할 것이다.
‘대통륜…… 완벽하군.’
천멸도 살수들이 펼치는 대통륜은 자신이 보정해 주었다. 천멸도 살수들은 보정해 준 대통륜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완벽하게 습득했다. 흠잡을 데가 전혀 없다.
언장은마는 그들에게 날개까지 달아주었다.
화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날개 달린 호랑이가 바로 천멸도 살수들이다.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으로는 몇 가지가 떠오른다.
이들은 무적이 아니다. 은신술만 깨면 일반적인 합공과 전혀 다를 바 없고, 무적의 진인 대통륜만 남게 된다.
대통륜을 어떻게 깰까? 당장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투석(投石), 화공(火攻), 원사(遠射), 폭파(爆破)……
그럼 무너뜨리지 않고 빠져나가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없다.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이들 이목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니 완벽하다는 소리를 하는 게다.
이들은 땅속과 하늘을 동시에 살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마음 든든했을 천멸도 살수들의 완벽함이 오늘은 왜 이토록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지.
몰래 빠져나가는 방법은 없다. 가고 싶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해 놓고 가는 길밖에 없다.
‘오늘 저녁에…….’
시마가 아무리 뭐래도, 호채마의 뜻이 바위를 옮겨놓은 것처럼 굳건해도 이들과 함께 갈 수는 없다.
저녁에 움직인다.
시마의 말이 상념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런 마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걸세. 그래서 아예 목숨을 자네에게 맡기기로 했네.”
마음을 결정하자 시마의 말을 담담히 들을 수 있었다.
“휴우!”
어쩔 수 없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끼리 결정한 거네만…… 우린 마궁(魔宮)을 건립하기로 했네. 당장은 궁도 없고 사람도 없지만 마음속에는 고래등 같은 궁궐을 지어놨네. 마야, 마궁의 궁주가 되어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