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66
166
“마궁…….”
“언젠가 우리 농담처럼 한 말이 있지 않은가. 이리저리 부대끼지 말고 우리끼리 모여서 한세상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지금부터 그러자는 말일세. 우리끼리.”
마궁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마인으로 낙인찍혀 끝없이 추살당하는 사람들이 두 발 편히 뻗고 살 수 있는 낙원이 마궁이다.
그곳에서는 정도인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죽음의 공포 같은 건 잊어버려도 좋다. 원해서 배운 무공, 정도인의 세상에서 마공이라고 낙인찍힌 무공을 실컷 수련해도 된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무공을 실컷 수련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
마인들이 바라는 것은 아주 단순했다.
물론 솎아내야 할 마인들도 많다.
천륜 어기기를 밥 먹듯이 하는 마인, 무공을 수련함에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마인, 타인을 해할 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는 자, 살인을 광적으로 탐닉하는 자……
그런 자들을 거두는 곳은 따로 있다.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세상을 형성했다.
유계.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마인들의 세상이다. 정과 마의 싸움은 중원무림과 유계의 싸움이어야 한다.
유계는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침묵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도인들은 애써서 유계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마궁은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들의 집합처다.
마인이 아니나 마인의 오명을 뒤집어쓴 사람들, 마공이 아니나 마공으로 분류된 무공,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밀려난 사람들……
정도인도 아니고 마인도 아닌 사람들은 그들 세상을 기웃거린다는 이유로 죄 없이 추살당했다.
극악(極惡)은 극악끼리 똘똘 뭉쳐 있는데, 억울하게 오명을 뒤집어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개죽음을 당해왔다.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유계로 흘러들어 갔다. 아니, 대부분이 유계로 빠져들었다. 악에 물들어 복수심을 키우는 것이 가만히 있다가 맞아 죽는 것보다 훨씬 나았으니까.
이 중 극소수의 일부만 중원을 떠돌았다.
끊임없이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때로는 거칠게 싸워가며 한목숨 보존해 왔다.
그들이 원하는 곳은 마인으로 낙인찍히기 전처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현 세상에서는 그런 곳을 찾을 수 없다. 어디에 숨어 있어도 정도인들은 귀신같이 찾아내 검을 겨눈다. 그래서 오직 마음속에 이상적인 터를 닦고 건물을 올렸으니, 마궁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네. 궁주가 되어주시게.”
소립파는 대답 대신 다담선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야의 시선을 피했다.
이 모든 것이 다담선자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은 자신이 열락에 빠져 있는 동안 마인들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 확실한 비책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궁주가 된다고 약속하면 이들 곁을 떠날 수 없다.
한목숨 보존해 주는 것보다 마음속 성지(聖地)를 지켜주는 것이 훨씬 낫다.
약속할 수 없다. 약속해서는 안 된다.
소립파는 다담선자의 고개가 얕게 끄덕여지는 것을 보았다.
‘또 뭐를!’
그녀의 고갯짓을 시마가 받았다.
“마야는 마인의 아버지, 이 세상에 오직 마야만이 마궁의 궁주가 될 수 있으니.”
시마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서 합장했다. 그리고 쿵! 소리가 울리도록 머리를 땅에 대며 두 팔을 쭉 뻗었다.
오체투지(五體投地)!
“궁주님을 뵈오이다!”
시마는 지금까지 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음성으로 외쳤다. 밀림이 쩡쩡 울리는 큰 소리였다.
“궁주님을 뵈오이다!”
“궁주님을 뵈오이다!”
마도, 수검, 혈유가 오체를 투지했다. 항상 땅속에 숨어 있던 언장은마까지 모습을 드러내어 엎드렸다.
“궁주님을 뵈어요.”
금연화와 일령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동참했다.
“쳇! 우린 이런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할 수 없지, 뭐. 궁주님을 뵈오이다!”
천멸도주의 음성이다. 그녀가 담을 돌아 나와 오체투지했다.
움직이는 그림자, 형체 없는 죽음의 손인 천멸도 살수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다담! 이건!”
소립파는 정말로 화가 났다.
완벽한 거미줄에 걸려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을 죽음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다.
“궁주님을 뵈어요.”
다담선자까지 깊게 엎드렸다.
서 있는 사람은 소립파뿐이다. 모두들 엎드려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라는 명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엎드려 있는 게다.
‘혹시!’
눈길이 초옥으로 향했다.
절혼마녀, 그녀는 언제 옷을 입고 나왔는지 문가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이번 일을 언제 알았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니면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소립파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먼 하늘을 쳐다봤다.
동녘이 밝아오는 중이다. 오늘 하루도 얼마나 뜨거울는지 벌써부터 강한 열기가 훅훅 느껴진다.
태양을 쳐다보고 있건만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번잡스럽게 할 뿐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궁의 궁주가 된다는 것은 마야라는 별호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가볍지 않다.
마야는 언제든 홀몸이 될 수 있는 위치이지만, 마궁의 궁주는 궁도들과 생사를 같이해야 한다. 그들이 죽는 순간,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안겨주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생을 같이 걸머지고 가야 한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가. 그릇이 되는가.
일각, 이각…… 시간이 야속하게 흘러갔지만 소립파는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그의 뒤쪽에서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설마!’
“노신, 궁주님을 뵈오이다.”
흑살마녀였다. 작고 가녀린 동체가 땅에 바짝 엎드려 존경의 예를 표시했다.
“미치겠군.”
소립파는 기어이 웃음 섞인 소리를 토해내고 말았다.
마궁 궁도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클클! 저야말로 미치겠습니다. 늙은 뼈다귀가 엎드려 있으려니 삭신이 쑤셔서.”
“저런, 저런…… 궁주님께 무엄하다! 어서 돈수백배하지 못할까!”
혈유는 언제나 장단을 잘 맞췄다.
소립파는 그들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흑살마녀의 동체를 안아 일으켰다.
“기어이 가당찮은 짐을 지우십니다.”
“크크크! 어쩌겠냐. 너보다 저 아이들이 더 좋아졌으니 이럴 때 도와줘야지.”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다른 것 같으면 내가 쫓아냈을 게다.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마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넌 그 사람의 후인이니…… 암! 자격 있지. 자격이 뭐야. 너 아니면 누가 마궁 궁주를 해. 마궁 궁주는 오직 마군의 후인만이 할 수 있지.”
흑살마녀는 소매로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알겠으니 이제 들어가세요. 아침 먹어야죠.”
“그래, 그래. 야속한 사람 같으니…….”
흑살마녀가 깊은 한숨을 불어 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들 먹고. 이야기는 그 후에 하지.”
소립파는 결국 마궁 궁주를 승낙하고 말았다.
“아까 할마씨가 마군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훔치던데, 마군과 할마씨의 관계를 아남?”
“클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헤! 궁금해서 미치겠네. 도대체 무슨 관계지? 연인은 아닌 것 같고…… 그렇지? 연인은 아니었던 것 같지?”
“아! 나도 모른다니까!”
시마와 혈유가 티격태격하는 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똑똑히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들으라고 일부러 언성을 높이고 있는데 듣지 못한다면 귀머거리가 아니겠는가.
소립파는 피식 웃었다.
마군과 흑살마녀의 관계는 오직 당사자들의 과거로 묻어둘 생각이다. 연인이었어도, 아니었어도…… 다른 사람이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보다는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다담.”
“벌주로 술 석 잔 마실게요.”
다담선자는 배시시 웃었다.
미운 구석을 조금도 찾을 수 없는 여인이다. 언제나 맑고 청초해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을 상쾌하게 이끌어주는 여자다.
“석 잔 가지고는 안 되지. 서른 잔은 마셔야 돼.”
“어멋! 부하를 만들어줬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
“하나만 묻지. 북검문에는 삼뇌가 있어.”
“남도문에는 만사무불통지와 야광이 있고요.”
“할 수 있겠어?”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지자들끼리의 싸움은 병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큼이나 치열하다. 어떤 때는 지옥에 한 발을 걸쳐 놓고 있을 때처럼 숨 막힌다.
한 번의 실수나 착각은 곧바로 몇 사람 혹은 몇십 명의 죽음으로 이어지니 늘 긴장해야 한다.
그들의 비책, 계책, 행동을 알아낼 수 있으며, 상대할 수 있느냐.
정녕 곤란한 질문이다. 하지만 다담선자는 쉽게 대답했다.
“그들에게는 머리를 짜낼 수 있는 기반이 있어요. 북검문은 천비대가 기반을 만들어주고, 남도문은 추혼단이 그 역할을 해줘요. 제게도 그런 걸 주세요. 그럼 할 수 있어요.”
천비대는 목서(木鼠)라는 고정 간자를 운용한다. 추헌단은 막대한 금전적 보상으로 강남인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남북 무림의 진짜 정보력은 여기서 나온다. 다담선자가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정보 수집력이다.
“힘들겠군.”
“어멋! 어쩜 그렇게 쉽게 말해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제게 일을 너무 맡기시는 것 아녜요?”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그들은 곤란해.”
“아직도 그런 생각이에요? 이제는 마궁 궁주예요. 이미 궁주라고요. 아직도 죽음에 동참시키는 게 마음에 걸려요?”
“그 사람들은…… 흠!”
“어휴! 알았어요. 그냥 쉬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다담선자는 머리 아프다는 듯 손을 들어 머리를 짚었다.
그렇다. 움직이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는 일이다.
눈과 귀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다.
하오문!
그들이 움직여 주기만 하면 능히 목서에 버금갈 것이다.
“하오문을 접수하는 게 첫 번째 임무네요.”
다담선자는 습관처럼 배시시 웃었다.
너무 예쁘다. 꼭 안아주고 싶다.
제7장 조귀적(找貴的) ― 각오해라!
1
웨에에엥!
괴변은 소름 끼치는 기음과 함께 일어났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수천 마리에 이르는 벌들이 땅속에서 튀어나와 하늘을 장악했다.
“왕벌이닷!”
“와, 왕벌이 나왔다!”
무인들은 당황했다. 그들의 무공은 땅을 진동시키고, 병기는 하늘을 꿰뚫을지라도 한낱 왕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물러섯! 물러서라!”
누군가가 고함을 내질렀다.
왕벌의 공격에는 이유가 없다. 사리분별을 따지는 일도 없다. 그들에게 위협이 된다 싶으면 공격하는 것이고, 공격을 시작하면 뿌리를 뽑는다.
군웅들은 일제히 뒤로 빠졌다.
남무림 무인과 북무림 무인들이 뒤섞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들 쳐죽일 기회만 노렸는데, 지금은 살을 맞대고 있어도 신경조차 쓸 수 없었다.
왕벌의 등장 앞에서 인간들의 영토 분쟁은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왕벌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 거야!”
“전부 다 나왔나?”
“분봉(分蜂)하는 것 아냐?”
“분봉치고는 너무 많잖아. 이거야 원…….”
군웅들의 손과 발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몸도 굳어지고, 눈알마저 함부로 돌리지 못했다. 급기야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러선다고 물러섰지만 왕벌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해서 졸지에 왕벌 무리 속에 서 있는 셈이 되고 말았다.
왕벌의 신경을 건드리지나 않았는지. 몸에 왕벌을 유혹하는, 혹은 왕벌이 싫어하는 물건이나 냄새가 있지는 않은지.
왕벌이 땀 냄새를 싫어할까 봐 식은땀조차 함부로 흘릴 수 없었다.
말벌은 꿀벌보다 다섯 배는 크다. 한데 왕벌에 비하면 말벌은 어린애 취급도 못 받는다.
말벌이 꿀벌 집을 발견하면 대도살이 일어난다.
말벌 한 마리가 한 시진 동안에 죽일 수 있는 꿀벌의 수는 무려 천 마리에 이른다. 하물며 왕벌은 몇 마리나 죽일까. 말벌보다 열 배는 많이 죽일 것 같다.
추격하는 거리도 차이가 난다.
꿀벌은 적이 도망가면 십여 장 정도까지 쫓아간다. 말벌은 삼백여 장이나 쫓아간다. 그럼 왕벌은?
왕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 없다.
“조용히…… 천천히…… 물러서라.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돌부리 하나 건드리지 마라.”
육능자가 속삭이듯 말하고는 시범을 보였다.
굳이 시범을 보일 필요도 없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인들 못 잡으랴. 왕벌에 둘러싸인 군웅들은 조심조심 물러섰다.
왜애애앵……!
왕벌들은 극성스럽게 날갯짓을 했다.
간혹 날갯짓이 얼굴을 스치면 껍질이 벗겨져 나갈 때처럼 쓰렸다.
그래도 손을 올리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고 공격해 오지 않기만 고대했다.
왜애앵! 왜애애애앵!
왕벌은 여왕벌을 따라가는 중인지 무리를 지어 하늘로 솟구쳤다. 아니, 방향을 틀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것도 아니다. 또다시 방향을 틀어 뒤로 돌아갔다.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갈 길을 잃은 벌들처럼 보였다.
“음!”
갑자기 북검문 천랑대원 중에 한 명이 얕은 신음을 토해냈다. 왕벌이 입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간신히 막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