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73
173
까앙!
서방천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쒜엑! 쒜에에엑!
살수들의 공격은 무척 거칠었다.
조금 전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듯 완벽한 진세를 구축하고 쏘아져 왔다.
‘미…… 치겠군.’
까앙! 깡! 깡깡!
간단한 생각 하나 하는 데 소도를 다섯 번이나 쳐내야 했다.
그는 바로 신형을 빼냈다.
‘이럴 리가 없어!’
누구도 막지 못한 공격을 두 번씩이나 막아냈다면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서방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공격은 예측불가(豫測不可)하다. 그래서 막을 수 없다. 마도 같은 자도 절정의 감각도를 동원한 후에야 간신히 막아냈는데 한낱 천멸도 살수들이 너무 쉽게 막아낸다.
‘뭔가 있어.’
그는 천천히 뒤를 쫓았다.
모든 형세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들어왔다.
이들은 진을 형성한 채 움직이고 있다. 진의 중심은 두 군데로, 시마가 전면을 맡고 다담선자가 후미를 맡았다.
얼마 전과 똑같은 진세다.
한데 그때는 통한 공격이 지금은 왜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해볼까?”
걸걸한 음성이 신경을 건드렸다.
“아니, 한 번만 더 해보고.”
쒜에엑!
세 번째 공격은 자신이 생각해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기막혔다.
살수들이 은신하기 좋은 곳을 골라서 미리 잠복했다. 살수라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은밀한 곳이다.
유계에서는 이런 싸움을 종종 한다.
상대가 숨을 곳에 미리 숨어 있다가 들어오는 자를 찾아내는 숨바꼭질 놀이인데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마지막에 걸린 자의 심장에 검을 쑤셔 넣을 때는 짜릿한 흥분에 오줌을 지릴 정도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하는 장난이지만.
사방천마는 숨죽이며 기다렸다.
쉬익!
드디어 먹이가 걸려들었다. 어떤 재수없는 놈이 신형을 날려왔다.
낙엽 밑에 죽음의 검이 기다릴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게다.
서방천마는 기다렸다. 손만 뻗으면 소도에 찔릴 거리까지 다가와야 한다.
쉬익! 쉬이익!
‘응?’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날아오는 인영이 한 명이 아니다. 최소한 다섯 명 이상 되는 자들로, 무공도 지금까지 급습했던 살수들보다는 한 단계 위인 것 같다.
‘잘못됐어!’
잘못됐다는 판단이 서면 즉시 움직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미적거리다가는 죽는다.
서방천마는 낙엽을 헤치고 나왔다.
보인다. 검이 날아든다. 백포인 다섯이 오행진(五行陣)을 펼친 채 공격해 온다.
파앗! 파파팟!
서방천마는 즉시 물러섰다.
그가 누워 있던 곳에 검이 작열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여지없이 꼬치가 될 뻔했다.
오행진을 펼친 사내들은 이차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이런 점이 얄밉다. 두 번째 공격을 취해오면 가차없이 베어줄 텐데, 얄밉게도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베어내고자 다가서는 것은 다른 살수들에게 기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확실히 잘못됐어!’
그는 물러섰다.
“쯧쯧! 한낱 젖비린내 나는 놈들에게 이게 무슨 꼴이야. 뒤로 물러서 봐. 내가 해볼 테니까.”
그 대신 남방천마가 기세 좋게 나섰다.
‘실패할 거야.’
그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첫 번째 공격에서 남방천마는 옷이 찢겨 돌아왔다.
“그놈들, 이상하네? 왜 이렇게 강해졌지?”
“그만 하자.”
“이대로 그만두자고?”
“지금은 아냐. 놈들이 강해진 이유를 찾아야 해.”
이남일녀, 세 명은 다담선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밀림을 벗어나 잠시 광활한 초원을 거닐 무렵, 세 사람의 눈에 낯선 인물들이 들어왔다.
“저놈들은 뭐야?”
“글쎄? 못 보던 자들인데.”
“호채마를 왜 쫓는 거지?”
“남무림 놈들이잖아. 신경 쓸 것 없다고.”
서방천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남방천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주목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다.
낯선 인물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호채마를 따랐다.
서방천마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공격한다!”
이남일녀는 일남일녀 앞을 가로막았다.
“방갓 좀 벗어볼래요?”
동방천마가 요염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일남일녀는 침묵했다.
“어이! 쉽게 쉽게 가자고. 빨리 방갓이나 벗어봐. 서로 손쓰기 시작하면 피곤하잖아.”
“…….”
일남일녀는 사방천마를 아예 무시했다.
그래도 사방천마는 언성만 높일 뿐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일남일녀, 그중에서도 일남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밀림을 덮고도 남을 정도다.
상당한 고수다. 일장에 산악을 쓸어버릴 고수가 있다면 이런 자이리라.
이런 고수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호호호! 제가 벗겨드려요?”
동방천마가 요염한 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녀는 더 움직이지 못했다.
“굉장하군요. 욕금진기가 전혀 통하지 않다니. 존성대명을 알려주시겠어요?”
동방천마의 얼굴에는 파란 힘줄이 드러났다.
“꺼지지 않으면 죽는다.”
일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순간 사방천마는 지옥굴에 들어선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신을 옭죄어오는 검기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다. 손끝이라도 들어 올렸다가는 당장 베일 것 같다.
음성은 또 어떤가. 너무 음침하다.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다. 인간의 음성이 이럴 수도 있을까.
“실례했소이다.”
서방천마가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들은 난감했다.
저들은 누구인데 이토록 강한 것인가.
“움직였다면 당했어.”
동방천마가 자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이만한 고수는 무신뿐인 줄 알았는데.”
“정도인은 아냐. 정도보다는 유계에 가까운 자였어. 몸에서 풍기는 살기하며…….”
점점 멀어져 가는 일남일녀.
사방천마는 뒤를 밟지 못했다. 대신 전서구를 띄웠다. 이자의 등장은 꼭 주공이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한 거야?”
“만공심안이라는 게 있어.”
“알아.”
“그게 삼목으로 발전했지. 상대의 기를 읽을 수 있어. 거기에다가 적멸주를 가미했지.”
“그럼 어떻게 되는데?”
“소름 끼쳐.”
“기를 누른다? 그럼 이겨내고 공격해 오면?”
“당하는 거지.”
“뭐야!”
천멸도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이번 일은 타초경사(打草驚蛇)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사방천마는 놀라서 유계에 전서구를 띄웠다.
이게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까.
소립파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 사방천마로부터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빼앗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낮에만 공격하는 우를 범했다.
소립파가 눈을 뜨고 있는 한, 천멸도 살수들에게 사방천마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밤에 공격했다면, 소립파가 잠들어 있을 때 공격했다면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어쨌든 당분간 사방천마는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그동안 최대한 멀리 가야 한다. 가능하면 밀림을 벗어나 중원으로 들어서야 한다.
“마군과 흑살마녀는 어떤 관계야?”
“…….”
“내게도 말 못해? 말 안 해줄 거야?”
소립파는 말하지 않았다.
제10장 해인정(害人精) ―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인
1
쏴아아아……!
폭우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돌덩이처럼 굵은 빗방울이 천지를 뒤덮었다. 땅에 흡수되지 못한 빗방울은 개울이 되어 흘렀다.
“비 한 번 지독하게 쏟아지네.”
“이런 날은 그저 부침개가 최곤데.”
몇몇 무인이 멍하니 빗방울을 쳐다봤다.
사람이 득실거리던 ‘마 마’에는 이제 그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북검문이 철수한 후, 구환자는 남무림 무인들도 돌려보냈다.
‘마 마’는 금지(禁地)로 선정되어 모든 사람의 출입을 통제했다.
야광의 총수인 구환자가 내리는 명은 남도문의 명으로 간주되었고, 이를 어길 시에는 남도문에 불복하는 것이 되니 명을 듣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일부 무인이 몰래 숨어들기도 했다. 제지를 무릅쓰고 멸신구관으로 뛰어든 사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다.
‘마 마’에 남은 사람들은 이렇게 억지로 들어간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누가 들어갔고, 누가 나왔는지 기재하는 것이 입구에 배치된 사람들의 임무이나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는 것으로 일과를 마치곤 했다.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기웃거리는 사람조차 없었다.
“저 아래 흑침무가 있다며?”
“제일관이라네. 제일관이 흑침무면 다른 관은 뭐가 있는 거야?”
“앓느니 죽지. 흑침무를 어떻게 건너.”
무인들은 이것저것 아무 이야기나 주고받았다.
아야기의 대부분은 두 번, 세 번 우려먹어서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말들이었다.
쉬익! 쉭! 쉬이익!
비바람 소리가 약간 거세게 울렸다. 그리고 멸신구관에서 세 명의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무인들은 아무런 기척도 감지해 내지 못했다. 장막 안에서 편히 누워 잡담만 주고받았다.
“자넨 이런 날 보고 싶은 사람 없나?”
“있지.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그 이야기나…… 헉!”
무인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 앞에 괴물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인 것 같은데 도저히 사람 모습이라고 볼 수 없었다.
불길에 그을린 사람처럼 온몸이 새까맸다. 머리는 홀랑 탔고, 살점도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불길에 휩쓸렸다가 살아 나온 사람들인가.
“누, 누구?”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네놈들은 누구냐!”
“추, 추혼단…….”
“추혼단…… 그렇군. 추혼단이군. 네놈들이 어떻게 여기 와 있는지 상세히 말해봐!”
무인들은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놨다.
눈앞에 서 있는 괴물들은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글거리는 눈빛만 봐도 오금이 저려왔다. 주먹이나 발길로 한 대만 얻어맞으면 머리뼈가 부서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금산이…… 살아 나왔다고?”
괴물들은 강금산을 알았다.
“서, 서군봉을 업고…… 서군봉은 축 늘어진 게 죽은 것으로 보였는데, 또 모르죠. 아직 살았는지.”
“강금산이 서군봉을 업은 상태에서 마도, 혈유, 수검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예. 분명히 그랬…… 컥!”
말을 잇던 사내는 쇠고랑 같은 손아귀에 목을 움켜잡혔다.
“컥! 컥컥! 제발…… 숨이 막…… 컥!”
한참을 바동거리던 사내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다른 사내들도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부웅! 퍽! 부웅! 퍽! 퍽!
주먹이 바람을 한 번 가를 때마다 한 생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장막에 있던 다섯 사내가 이승과 결별하기까지는 숨 한 번 몰아쉴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강금산…… 그 변변치 못하던 놈이 뭔가를 얻었군.”
“죽은 줄 알았는데…… 허!”
괴물들, 그들은 삼원로였다.
“가세. 이런 몰골로야 어디 사람들이나 보겠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기껏 멸신팔관까지 뚫고 들어가서는 마지막을 놓치다니.”
“지난 것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지. 가세. 그런데 자넨 왜 한마디도 없는가?”
울건평과 진혜력이 석존무를 쳐다봤다.
백발, 백염이 풍성했던 석존무. 하나 지금은 불에 검게 그을려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석존무가 깊은 탄식을 터뜨리며 말했다.
“휴우! 멸신구관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것 같으이.”
“정말인가?”
“누군데? 누가 저따위 것을 만든 거야!”
“그가 만든 게 맞다면…… 마지막 구관에 있던 석상은…….”
“허어! 답답하이.”
“아니네. 일단 확인해 보고…….”
울건평과 진혜력은 서로를 쳐다봤다.
석존무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굉장한 일일 것이다.
“확인할 방도는 있는 겐가?”
“있네. 확실히 확인할 방도가 있어. 그게 맞다면…… 아냐, 아냐. 그럴 수 없어.”
“허어! 도대체 뭔데 그러나?”
석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괴물들, 전신이 새까맣게 그을린 괴물들은 빗속을 뚫고 사라졌다.
쉬익!
멸신구관에서 또 한 명이 솟구쳐 나왔다.
만사무불통지, 그는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말끔했다.
“이곳은 그가 만든 곳이었어. 강금산, 이 미친놈! 그 무공을 수련하면 안 돼!”
만사무불통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멸신구관에 드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무신들의 욕구를 자극할 만한 기연은 그 무공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어야 한다.
세상에 어떤 것이 무신들을 유혹할 수 있겠는가.
그 무공이라면 가능하다. 무공을 접하는 순간, 수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빨려들 수밖에 없다. 미친 듯이, 정신없이 수련하게 된다.
강금산을 탓할 일이 아니다. 강금산이 무슨 힘으로 그 무공의 유혹을 거절하겠나. 탓하려면 멸신구관을 찾은 자신들을 탓해야 한다.
그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장막 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봤다.
죽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남도문의 무인들이다. 하지만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승산을 점칠 수 없어.”
한참 만에야 묘한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일을 알고 빠진 거라면…… 삼제, 자네야말로 똑똑한 사람이군. 허허! 이 세상에서 환란을 피해갈 유일한 사람이 자네이니 부럽네, 부러워. 허허허!”
만사무불통지는 반각 만에 십 년은 늙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