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74
174
“나는 만사무불통지. 후후! 허허! 이름값을 해야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터. 할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잡을 터. 만만하지는 않을 거네.”
그는 빗방울 속으로 걸어갔다.
신법을 펼치지 않고, 굵은 비를 전신으로 맞으며 걸었다.
***
남만에는 남만의 법이 있다. 중원에 중원의 무공이 있듯이 남만에도 무공이 있다.
남만은 중원과 다르지 않다.
한데 언제부터인지 남만인은 밀려나고 중원인의 천지가 되었다.
마군(魔君).
그가 오면서부터다. 그가 남만 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남만인은 남만을 잃었다.
무공이 강한 자는 참살되었다.
남만인의 율법에 따라 범죄자를 죽였을 뿐인데,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현재 마군은 죽고 없다. 하지만 남만은 옛 생활을 되찾지 못했다. 마군이 지배하던 시절이 너무 길었기에 그보다 먼 옛날의 율법은 잊어버린 것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산인(山人)들은 남만인의 율법을 잊지 않았다. 남만인의 무공도 고스란히 전승했다. 그들은 세상사에 간여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을 건드리는 자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이 분노했다.
“누구냐!”
“중원인입니다.”
“몇 명이냐!”
“대략 쉰 명 정도 됩니다.”
“쉰 명이든 오백 명이든 모두 죽인다. 죽음에는 죽음으로. 이게 남만의 율(律)이다.”
“상당한 고수들입니다.”
“놈들을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어야 한다. 타협은 없다.”
“마군의 후인이 개입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마군? 마군…… 또 마군인가. 그것도 좋겠지. 이번이야말로 지난날의 치욕을 되갚아줄 때. 놈들은 어디 있느냐!”
“천인폭(泉引瀑)에서 야영하는 걸 보고 오는 길입니다.”
“모두 준비시켜!”
명령이 떨어졌다.
남만인의 율법은 지엄하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남만인의 율법을 수호하다가 죽으면 부처님 곁으로 가게 되니 두려울 것도 없다.
무엇보다 이제 갓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을 무참히 도륙해 버린 인간 말종들은 반드시 천참만륙(千斬萬戮)해야 한다.
잔인한 작자들이다.
아이들의 가슴을 쪼개 심장을 꺼내갔다.
남만 어린애의 심장을 먹으면 내공이 증진된다니,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놈들은 악마다. 악마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없다.
산인들은 촌각도 안 되어서 모여들었다.
준비할 것도 없었다. 사냥을 나갈 때처럼 만도(彎刀)만 두어 자루 준비하면 된다.
“준비됐습니다.”
“가자!”
산주(山主)는 만도 두 자루를 허리춤에 꽂고 일어섰다.
‘삼백 명 정도 되는군. 상상 이상이야.’
흑조편복은 남만 사내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들은 너무 단순하다. 생활이 단순하니 생각도 단순하다.
남만인의 율법? 너무 단순하다. 아니, 무식하다.
마군은 남만인들을 개화시키려 했으나 산인들처럼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진작 멸절되었어야 한다.
아직까지 굳건히 살아남아 있는 것은 중원인조차 깜짝 놀랄 무공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들의 무공은 놀랍다. 흑조편복조차 감탄했다. 특히, 무리지어 싸우는 싸움은 지극히 탁월하다.
이러한 무공이 있기에 세상이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간다. 그들이 안방처럼 들락거리는 밀림에서 외지인을 상대로 싸운다면 갑절의 능력을 발휘할 게다.
아이 몇 명을 죽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향이나 피워주련다.
‘이놈들은 단순하니 마령음에 영향받지 않을 거야. 궁금하군. 은신술의 대가인 천멸도 살수와 모든 지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는 산인들의 싸움이라…….’
흑조편복은 신형을 날렸다.
마야가 남만에 들어온 것은 큰 기회다.
그가 남만을 빠져나가기 전에 최대한 큰 선물을 줘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신도 선물을 받을 생각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추루족(椎壘族)은 사납기로 정평이 났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망치다. 오죽하면 추루족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는가.
그들이 망치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때리기도 하고, 던지기도 한다. 나무 위에 있는 원숭이도 단번에 때려 맞춘다. 맹수가 나타나도 단매에 때려죽인다.
이들은 인간에게도 무자비하다.
산인들은 자신을 건드리는 자만 죽이지만, 추루족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남만인들 거의가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사냥하지만, 추루족만은 심심풀이로 사냥한다.
밀림을 걷다 보면 종종 피떡이 되어 죽어 있는 맹수들을 보게 된다.
추루족 솜씨다.
“죽인닷! 죽인닷!”
추루족장은 두 손에 망치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부짖었다.
그에게는 세 명의 아내가 있다. 하나 지금은 한 명도 없다. 세 명 모두 뼈란 뼈는 모두 박살난 채 널판 위에 눕혀져 있다.
“놈들은 어디 있냐!”
두 눈동자를 핏빛으로 물들인 추루족장이 죽은 세 아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천인폭에 있습니다.”
“천인폭? 이 새끼들이 내 마누라를 죽여놓고 천인폭에 있어?”
천인폭은 추루족 마을에서 가깝다. 부지런히 가면 반나절이면 도착한다.
놈들이 멀리 가지 않고 그곳에서 야영한다는 것은 추루족이 두렵지 않다는 뜻이리라.
“모두 준비시켜! 싹 쓸어버린닷!”
“산인들도 움직이는 모양입니다만…… 그쪽은 아이들 심장을 파먹은 모양입니다.”
“우리가 먼저 간다. 어서 준비해!”
추루족장의 마음은 벌써 천인폭에 가 있었다.
산인이나 추루족도 상대하기 싫어하는 부족이 있다. 단지 ‘수리(樹里)’라고만 불리는 부족이다.
수리를 만난 사람치고 돌아온 사람은 없다. 수리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없다.
그들은 철저히 비밀 속에 가려져 있다.
‘이, 이놈들, 이거!’
흑조편복은 치를 떨었다.
수리들은 보통 남만인들과 다를 바 없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단단하게 뭉쳐진 근육, 검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하지만 수리는 인간이 아니다.
이놈들은 사람을 먹는다. 이놈들이 구워 먹고 있는 것은 분명히 사람이다. 여자다.
‘이 미친놈들!’
흑조편복은 잠시 망설였다.
이들까지 가담시켜야 하는가.
결론은 ‘그래야 한다’다.
이들이 아니면 마야의 이목을 흐릴 수 없다.
산인과 추루족이 강하지만 상당한 곤란을 줄 뿐, 마야를 어쩌지는 못하리라.
이놈들이라면 다르다. 확실하게 마야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 놈들의 식인 습관을 마야에게 보여주면 볼 것도 없이 흔들릴 게다.
흑조편복이 바라는 것은 마야의 분노였다.
분노는 이성을 흐리게 하고, 허점을 만들어준다.
그는 수리들의 눈을 피해 마을 속으로 잠입했다. 순간, 수리들이 먹는 것을 멈추고 코를 벌름거렸다.
‘앗차!’
흑조편복은 실수를 깨달았다.
수리는 냄새로 적아를 판별해 낸다.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되다니.
한 여인을 봤다. 여인도 흑조편복을 봤다. 여인은 이빨을 드러내며 뭐라고 고함질렀다.
쉬익! 퍼억!
흑조편복은 쏜살같이 짓쳐들어 가 다섯 손가락으로 여인의 머리를 짚었다.
여인은 두개골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졌다.
뇌수와 붉은 피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이런 식인종한테 매화지(梅花指)를 사용할 줄이야.’
수리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어느새 병장기까지 챙겼다.
활, 독침, 장창…… 밀림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병기가 총망라되었다.
쒜에엑! 퍽퍽퍽!
흑조편복은 연달아 세 명을 쳐죽었다.
사내는 죽이지 않았다. 여인과 어린아이만 골라서 죽였다.
아무리 미개한 자들일지라도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은 같으리라.
종족 보존 본능이 있다면 여자와 아이는 보호 대상이며, 보호 대상을 죽이게 되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수리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며 모여들었다.
몸을 빼내야 할 때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수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과 수리의 싸움이 되고 만다.
한데 문제가 있다.
수리를 어떻게 마야에게 인도할 것인가.
산인이나 추루족처럼 비굴한 놈을 매수하여 마야의 거처를 알려줄 수도 없다.
흑조편복은 치달리기 시작했다.
신법은 펼치지 않았다. 신법까지 펼치면 수리가 따라오지 못한다. 육신의 힘만으로 달아다며, 이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
‘고생문이 열렸군.’
2
다담선자가 추루족과 부딪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모조리 죽여 버려!”
족장의 일갈에 추루족은 물밀듯이 밀려왔다.
쒸익! 꽈직!
“큭!”
추루족이 던진 망치를 웃으며 막던 천멸도 살수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망치가 검을 부수고 들어와 어깨를 강타했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다른 손으로 부러진 검을 움켜잡았다.
어깨뼈가 박살났다면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살수들의 투지만은 꺾지 못했다.
“안 되겠습니다.”
종청호가 결단을 촉구했다.
다담선자는 답답했다.
이들이 왜 공격해 오는지 알아야 응대를 할 것 아닌가. 마야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이유를 모르는 것 같다.
“할 수 없죠. 쳐요.”
응전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정작 응전 명령을 내린 다담선자조차도 이 명령이 가져올 살육을 짐작하지 못했다.
슈욱! 파앗! 슈우웃!
“커억!”
“아악!”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추루족은 악착같이 덤벼들었지만 정련된 살수들의 검을 피해낼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싸움이 되지 않았다.
추루족의 용맹성만은 박수를 칠 만하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듯 악착같이 다가와 망치를 휘둘렀다.
처음, 천멸도 살수들은 손속에 사정을 남겼다.
팔을 노리기도 하고, 다리를 건들기도 했다. 투지만 꺾어서 싸움을 끝낼 심산이었다.
추루족은 미련했다. 한쪽 손을 못 쓰면 다른 손을 사용했고, 그 손마저 못 쓰면 머리로 들이박자고 덤벼들었다.
그들의 무모한 만용은 숨이 끊긴 후에야 그쳤다.
“이 때려죽일 놈들!”
추루족장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커다란 망치를 거칠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쉬익! 파앗!
흐릿한 인영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 추루족장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리고 기어이 풀썩 꼬꾸라졌다.
그는 숨을 쉬지 못했다. 천멸도 살수의 검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다.
“휴우!”
다담선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들은 무엇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나? 상대가 안 되는 줄 빤히 알면서도 모두가 전멸을 택한 이유는 뭔가.
“왠지 불길해.”
소립파는 이상을 잔뜩 찡그린 채 좀처럼 펴지 못했다.
추루족은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들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랬어도 인상을 찌푸릴 일인데, 추루족은 아무 이유 없이 재미삼아서 심심풀이로 사람을 죽이곤 했다.
언젠가 누구에겐가는 멸족당했을 부족이다.
그럼에도 마야는 자신들 손으로 이들의 씨를 말린 것이 잘한 일인지 회의(懷疑)했다.
이들은 선악(善惡)의 개념에서 분류하면 악인에 속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존재할 필요는 있다. 하늘의 명을 받고 태어났을 때는 다 나름대로 소용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악인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절대 선은 곤란하다.
“천멸, 부탁이 있어.”
“그럴 줄 알았어. 추루족에 다녀오라고?”
“추루족은 여기서 가까워. 최대한 빨리 다녀오면 저녁 무렵에는 올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내 신법이 혈유나 다담만은 못해도 그럭저럭 쓸 만해. 저녁까지는 다녀올 수 있어.”
“몸조심하고.”
“풋! 기분 좋네. 걱정해 주는 사내도 다 있고.”
천멸도주는 추루족을 향해 떠났다.
소립파는 추루족의 망치를 들어 보았다.
묵직했다. 쇠붙이에는 피 냄새가 배여 있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많은 피가 묻었을 망치다.
‘이자들이 급습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왜?’
마음이 답답했다.
다담선자의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쉬익! 쉭쉭쉭……!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며 달려드는 사람들은 볼 것도 없이 남만인들이다.
“저들이 사용하는 병기는 만도네. 좌우에 한 자루씩 쌍도를 사용하며, 패력(覇力)을 주(主)로 삼고 환(幻)을 보(補)로 하지. 강하게 부딪친다면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베어올 걸세.”
시마가 남만인들을 알아봤다.
“저들을 아쇼?”
혈유가 물었다.
“원래 남만에는 칠양진력(七陽眞力)이라는 무공이 전해져 왔지. 상당히 뛰어난 무공인데…….”
“그럼 저들이?”
“칠양진력을 수련했을 거네. 좀 전에 나타났던 자들과 비교하면 곤란해. 철저히 정면 승부는 피하고, 천멸도의 장기를 살려 급습하는 것이 속전속결(速戰速決)로 가는 길이겠지.”
“진을 펼쳐욧! 빨리!”
다담선자가 급히 외쳤다.
산인은 공격해 오지 못했다.
그들은 무인이다. 상황의 유불리를 짐작할 수 있다. 상대의 무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멸당할 자리에 들어서지 않는다.
호채마도 나아가지 못했다.
언장은마가 부지런히 땅굴을 파고 천멸도 살수들을 끌어들였다.
나아가면서 하는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있는 자리에서 상대를 끌어들인 후,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