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81
181
마야는 살업을 넘어 패업(?業)을 이루고자 한다.
가능할까? 현 무림은 절대 용납하지 않고 있다.
“연락을 취해. 장소는 오는 팔월 보름, 남만 경계 절강(切江) 수진포(水塵浦). 오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부르지 않는다는 단서를 꼭 달도록.”
“팔월 보름이면 너무 촉박한데…….”
마도가 염려스러운 듯 말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할 말을 마친 마야는 일어서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소립파가 천멸도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천멸도주는 힐끔 쳐다봤을 뿐 고개를 다시 돌려 먼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난 아무 여자나 안지 않아. 어디에 내놔도 단연 돋보이는 여자만 안지.”
“쉰소리 하지 말고 저리 가. 지금 골 아파.”
소립파의 수작이 싫지는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같이 농으로 어울렸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천멸도 식구들만 생각하면 편안히 앉아 있는 것도 죄스럽다.
“이번에도 그래. ‘역시 천멸도주’ 하고 무릎을 탁 치길 바랐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였나?”
“무슨 소리야?”
천멸도주의 눈가에 생기가 돌았다.
소립파가 이 정도로 말했다면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어렸을 때 기억이라 희미한데…… 천멸도에서 반나절 거리에 망도(忘島)라고 있지, 아마?”
“마…… 망도!”
“물살이 너무 세서 들어갈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는, 그래서 세상에서 잊혀져 버린 섬, 망도. 망도를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천멸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뿐이지.”
천멸도주의 얼굴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잘난 척하지 마. 그 생각 안 한 줄 알아? 지금 천멸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믿어.”
“뭐라고?”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만 남아 있다고? 그래도 물길은 알아. 무공을 알아야 망도를 들어갈 수 있다면 차라리 들어가지 않는 게 나아. 남도문 무인들이 그 정도도 못해낼까. 후후! 망도는 그런 섬이 아니잖아.”
무신들도 물길을 모르면 들어설 수 없는 섬.
그렇다! 망도는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전략 요충지다.
갑자기 희망이 샘솟았다.
“할 수 있을까?”
천멸도주가 들뜬 음성으로, 하지만 조금은 자신이 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믿어야지. 해낼 수 있어. 무공은 모르지만 물길만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그럼…….”
“연락을 취해야지. 언장은마를 불러줄까? 은마는 하오문과 연락이 닿고, 하오문의 연락망을 이용하면 가만있자…… 넉넉잡아 여드레면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거야.”
천멸도주는 마야의 말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갑자기 조급해졌다. 촌각이라도 아쉬웠다. 그녀는 소립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치고 있었다.
“은마, 도와줄래요?”
“어제 말을 해주지 그랬어?”
천멸도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종청호가 시신을 거두러 떠났다. 미리 말을 해줬으면 그가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게다.
그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천멸도 식구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언장은마가 고개를 끄덕였으니 천멸도 식구들은 살아난 것과 진배없다. 한데,
“또또…….”
소립파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뭐가? 내가 또 뭐 생각하지 못한 거라도 있어?”
“남도문은 한동안 천멸도에서 물러나지 않을 거야. 아무 소득도 없이 물러난다면 면목이 없지. 천멸도 식구들 대신 남도문 무인들이 천멸도를 점거하게 되면…….”
“망도를 빠져나올 수 없어!”
굶어 죽는다. 망도는 무인도다. 물도 음식도 없다. 망도 주변은 물살이 워낙 거세서 흔하디흔한 생선 한 마리 구하기도 힘들다.
얼마 동안은 가져간 음식으로 버틸 것이다. 하나 소지한 음식은 한계가 있기 마련, 결국은 견뎌내지 못한다.
“종청호라면 그들을 구할 수 있어. 남도문과 맞서 싸우지는 못하겠지만 생존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어.”
“그랬구나.”
비로소 온갖 시름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우선 피하게 하고, 종청호를 보내 물과 음식을 구하게 하고.
당분간, 아니, 종청호가 있으니 영원히라도 천멸도를 잊을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무신도 건드릴 수 없다.
“호호호! 좋아, 아주 좋아! 이래서 네가 좋다니까.”
천멸도주는 사람들의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립파를 와락 껴안았다.
제3장 부승인(浮昇人) ― 부각된 사람
1
남만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손가락 하나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총동원해서 반드시 죽여야 할 자가 있다.
전자는 계징(系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머릿속에 만박(萬博)이 담겨 있다는 현자다.
그는 남만을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다.
그는 거처가 일정치 않다. 시동(侍童)과 함께 남만을 전전하며 싸움을 말리고,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 주곤 하므로 그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반면에 반드시 죽여야 할 자는 ‘콘’이라고 불린다. 남만어로 악마라는 뜻이다.
남만인들이 이름도 없이 악마라고 부르는 자는 어떤 자일까?
그의 뜻을 거스르는 자, 말을 거역하는 자, 행동을 가로막는 자 등등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살려둔 적이 없다는 말로 간단히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콘은 사람을 죽인 후에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구! 컥!”
낯선 자를 보고 경각심을 느낀 것으로 그가 할 일은 모두 마쳤다.
사내는 쓰러졌다.
“웬 놈! 컥!”
온 산이 쩌렁 울리는 고함을 내지른 것으로 또 한 사내의 역할도 끝났다.
그들은 무인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로지 무공만 갈고 닦았다. 몸이 날다람쥐처럼 빠르고 손속이 잔인하여 남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두 사내는 자신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으리라. 죽는다는 사실보다 너무 어처구니없게 당해 버린 현실을 믿을 수 없었을 게다.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듣고 모여들었다.
두 사내를 꺼꾸러뜨린 사내는 안하무인격으로 중인(衆人)들을 오시하며 씩 웃었다.
괴인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거지 중에 상거지라고 해야 할까?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헤질 대로 헤져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도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하나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악취만은 참을 수 없었다.
오물 냄새인지 쓰레기 냄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악취는 파리를 꼬이게 했고, 사내는 얼굴 주위로 날아다니는 파리를 간식처럼 날름날름 잡아먹었다.
“웬 놈이냐. 커억!”
그야말로 눈 깜빡할 순간에 살인이 벌어졌다.
말을 한 자는 상당한 고수였다. 무공도 강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자상해서 특히 젊은 사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검도 뽑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창! 차앙!
사내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괴인을 에워쌌다.
괴인은 여전히 웃었다.
파리 몇 마리를 잡아먹은 후, 소름 끼치는 살광을 쏘아내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풋!”
비웃음, 사내 입에서 나온 첫소리다.
“이거 미친놈 아냐!”
사내들 중 한 명이 괴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이 신호였다. 괴인은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두 팔이 풍차처럼 휘돌았다.
퍽퍽! 퍽퍽! 퍽퍽퍽……!
“큭!”
“컥!”
죽음이 줄을 이었다. 평생 무공만 갈고 닦아온 무인들이 썩은 짚단처럼 픽픽 쓰러져 나갔다.
살인 솜씨만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깨끗했다.
괴인은 처절한 단말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폐부에서 쥐어 짜여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헛바람만 허용했다.
사내들이 모두 죽는 데는 채 반 시진도 소요되지 않았다.
괴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장한 사내는 서 있지 못했다. 누워 있었다. 서 있는 자들은 여인이거나 연약한 아이들뿐이다.
사내는 그제야 웃었다.
“큭큭! 큭큭큭!”
산주(山主)가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너무 깨끗한 솜씨.’
단 일도에 목숨 하나를 거뒀다. 한결같이 심장을 찔렸으며, 도신을 비틀어 빼낸 관계로 피도 많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절정에 이른 도법이다.
‘지극히 짧은 도. 단도(短刀)를 사용하는 자야.’
자리를 비운 게 불과 한 시진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이런 변괴가 발생하다니.
“컥!”
바람결에 짧은 헛바람 소리가 묻어 나왔다.
‘아직 있다!’
산주의 눈이 겨울 호수처럼 깊어졌다.
느낌만으로도 일생일대 최대의 적이다. 얼마 전에 겨뤘던 방갓 중원인과는 비교도 안 될 무서운 자다.
방갓 중원인은 삼성의 공력으로 칠양진력을 받아냈다. 당시 그자의 무공이 오성 정도에만 이르렀어도 칠양진력이 밀렸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궁의 궁주라고 했나?
살인을 저지르고도 살인 현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살인마는 현 마궁 궁주가 아니라 전 마궁 궁주인 마군이 나타난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산주도 한때는 남만 제일의 무공을 지녔다고 자부했던 몸이니 칠팔 할 정도는 상황 판단이 맞을 게다.
‘오늘로서 산인들의 운명은 끝장났군.’
산주는 헛바람 소리를 듣고 마을 안쪽으로 쏘아 들어가는 호법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운명이 될 것을.
“컥!”
“큭!”
비명은 지극히 짧았다.
‘콘…….’
산주는 콘을 떠올렸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토록 가공할 신위를 드러낸단 말인가.
콘에 견주어지는 사내는 호법들을 죽인 후에도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산주 정도는 상대도 안 된다는 것인가. 걸어나올 가치도 없으니 죽으러 들어오라는 의미인가.
‘들어오라면 들어가야겠지.’
산주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이토록 강한 자는 없었다. 자신이 직접 손을 써도 호법들을 이토록 짧은 순간에 기척을 거의 내지 않고 죽일 수는 없다.
산주는 마을로 들어섰다.
예상은 했지만 끔찍한 주검들을 대하자 인상이 찡그려졌다.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보였다.
젊은 사내들은 사내를 맞이해 싸웠을 것이다. 상대가 되지 않는 강자이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을 게다.
젊은이들의 시신이 마을 밖에서 대거 발견된 건 그 때문이다.
마을 안에는 부녀자와 노약자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사내들이 몰살하는 순간 죽음을 예감했다. 이것이 밀림의 율법인 것을.
일부는 자진했고, 죽음이 두려워 도주하던 자들도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인은 모두 한결같다. 심장에 일도를 찔려 지극히 짧은 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산주는 한 시진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헉헉! 헉헉헉!
여인의 거친 신음 소리.
산주는 다시 한 번 인상을 찡그렸다.
신음은 자신의 집에서 들려왔다. 다른 집에서 들려왔다고 해도 신음을 토해내는 여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챌 만큼 귀에 익숙하다.
‘어련히 알아서 처신했거니 했거늘.’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가장 먼저 자진했어야 할 여인이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다. 그리고 패자의 여인들이 받아야 하는 능욕을 당하고 있다.
저런 여인을 산주의 아내로 두었다니.
여복이 없었던가, 여인을 보는 눈이 없던가.
산주는 거적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제일 먼저 문가에 쓰러져 있는 다섯 사내가 발에 걸렸다.
사인은 살펴보지 않아도 짐작된다. 반격조차 할 수 없는 쾌도에 깨끗이 당했다.
두 번째로 일남일녀의 정사 장면이 눈에 띄었다.
발가벗은 여인이 사내 위에 올라타서 거칠게 엉덩이를 내리찧고 있었다.
“여, 여보!”
여인의 얼굴이 묘하게 비틀렸다. 하지만 사내에게서 떨어지지는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엉덩이를 비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그가 있거나 말거나 거칠게 내리찍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묘하다. 사내를 보는가 하면 자신을 쳐다본다. 사내를 쳐다볼 때도, 자신을 쳐다볼 때도 욕정이 짙게 물들어 있다.
‘타고난 탕녀.’
한 번도 그녀를 탕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현숙하고 정갈한 여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으음! 하악!”
여인은 거침없이 교성을 내뱉었다.
스르릉!
산주는 검을 뽑았다.
‘추잡함은 이 정도로.’
한데 여인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산주의 의도를 읽었을 텐데 더욱 힘차게 엉덩이를 뒤튼다.
산주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여인과 정사를 벌이고 있는 사내가 달아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정사는 여인 혼자 벌이고 있다. 괴인은 단지 몸을 맡겼을 뿐,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호법 다섯을 죽였어.’
사내가 누워 있는 곳과 호법들이 쓰러진 곳과는 세 걸음이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정사를 나누면서 살도를 휘둘렀다. 어떻게?
‘저 자세 그대로 튕겨 올랐다면 가능해. 양물도 빼지 않은 상태에서 살도를 휘둘렀다면…… 후우!’
상대는 예상보다도 훨씬 강한 자였다.
산주가 쉽게 검을 쳐내지 못하고 망설일 때, 괴인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