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83
183
“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법이지. 어떤 때는 공포로 작용하지만 지금과 같은 때는 흥분제 역할을 할 거야. 때문에…… 난 조용한 죽음을 원해. 가장 확실히, 가장 조용히, 가장 단호하게 죽이는 것이 가장 적게 죽이는 길이야.”
“누구를 얼마나?”
“벌이 일차 습격을 할 거야. 도주는 벌을 쫓으며 쓰러진 자들을 깨끗이 처리해 줘.”
“저, 저들을 전부?”
살인이 업(業)인 천멸도주이지만 마야의 말은 너무 기가 막혀서 되묻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싼 군웅들의 수가 얼마인가! 저들을 모두 죽인다면 전 무림의 공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공적, 공적, 공적…….
공적에도 급(級)이 있다.
지금과 같은 일로 공적이 되면 죽을 때까지 두 발 뻗고 자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공격해 온 자는 사천궁. 그럼 싸움은 사천궁과 벌여야 돼. 사천궁을 죽여야겠지. 한데 왜 애꿎은 사람들까지 죽이려는 거지?”
자문자답(自問自答), 마야는 자신의 의도를 마도에게 물었다.
“기, 길을 막았으니까?”
마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길을 막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죽인다.
마야의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살기는 지금까지의 마야에게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기도였다. 매일 피를 봐야만 하는 마도까지도 움츠러들 만큼 악마적인 살기였다.
“이게 내 싸움이야. 길을 막는 자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전 무림이 알아야 해. 똑똑히.”
모두 숨을 깊이 들이켰다.
공기는 맑았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각오는 했지만 이제는 정말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박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 피할 수도 없고, 피해가기도 싫은 길이었다.
“아아아아악!”
첫 비명은 온 천지를 쩌렁 울렸다.
즉사다.
왕벌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군웅들을 공격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비명을 지른 자는 단지 서너 마리에게 쏘였을 뿐이지만 수십만 마리의 벌 떼가 오로지 자신만 공격한다고 생각했으리라.
군웅들의 이목이 벌 떼에게 집중되었다.
바로 그 순간, 천멸도 살수들이 은신술을 펼쳐 사라졌다. 그리고 일방적인 도살이 시작되었다.
사악! 퍼억!
“으악!”
마도나 수검조차도 일초지적이 되지 못했던 은신술이다. 초감각을 지닌 무인일지라도 검이 몸에 닿는 순간까지 공격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천멸도의 공부(功夫)다. 하물며 지금은 온 신경이 왕벌에게 집중되어 있는 처지가 아닌가.
“크윽!”
“켁!”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군웅들도 손 놓고 멀거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천멸도 살수란 존재 여부를 모를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하나 지금은 군웅들 모두가 살수의 존재를 안다. 천멸도의 절기인 은신술도 대충은 짐작한다.
“물러섯!”
군웅들 속에서 느닷없는 일갈과 함께 대나무를 두드리는 듯한 경쾌한 음향이 흘러나왔다.
타타타타탁! 쒜에에에엑!
세상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뒤덮였다. 하늘에는 태양이 작열하고 있건만 고개를 들어보면 온통 어둠뿐이다.
“절침사계(絶針死界)…….”
마야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절침사계?”
“절침사계!”
금연화와 다담선자가 동시에 되받아 말했다.
같은 소리, 같은 말이다. 하나 말속에 숨어 있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다담선자는 놀라움을 표시했고, 금연화는 정도인이 사마 무리를 대할 때 사용하는 경멸을 담았다.
절침사계, 남무림 침사방(針死려)의 절기.
무공이라고는 간신히 기본공 정도만 깨우친 자들이 병기의 이점에 의지하여 무림 일각을 장악하고 있으니 놀랍다고 해야 하나, 경멸해야 하나.
놀랍다는 사람도 많지만 정통무공을 존중하는 정도인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침사방은 무림 일각을 지배하는 패주다.
일렬로 쭉 늘어선 침사방도의 수는 이백여 명에 이르며, 각기 녹색 죽통(竹筒)을 들고 있다.
기본공밖에 모르는 침사방을 무림 일각에 우뚝 세워준 만폭통(萬爆筒)이다.
만폭통 안에는 세침이 만 개씩 들어 있으며, 결전에 나서는 침사방도는 만폭통을 열 개씩 소지한다.
조그만 죽통에 세침 만 개를 쑤셔 넣는 기술,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폭발시키는 협동심이 오늘의 침사방을 있게 한 것이다.
어찌 들으면 치졸할 수도 있는 수법이지만, 결과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절침이 튀어나오는 순간 죽음의 세상이 도래한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쒜에에에엑! 타타타타탁……!
절침은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키겠다는 듯 빼곡하게 내리꽂혔다.
스스스슷! 툭! 투투툭!
왕벌들이 세침을 맞고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또 있다. 완벽하던 자연 풍경이 무너지며 백포를 휘감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이미 생명이 없었다. 세침들을 헤아릴 수조차 없이 뒤집어쓴 채 망자(亡者)의 몸짓을 할 뿐이다.
그 수는 무려 십여 명에 이르렀다.
절침사계는 효과가 있었다. 무적처럼 군림하던 왕벌과 천멸도 살수들을 잡아냈다.
“크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군웅들에게는 득의의 웃음이겠지만 호채마에게는 저주의 웃음이다.
“꼴좋다. 꼴좋아! 크하하하하! 잘 봐라, 이놈들아! 이게 바로 절침사계다! 제이착(第二搾)!”
명령에 따라 침사방도가 녹색 죽통을 바꿔 잡았다.
“이놈들! 씨를 말려라! 씨를! 크하하하하!”
침사방주는 득의의 웃음을 재차 터뜨렸다. 하나 그의 웃음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커억!”
웃음소리와는 지극히 대조적인 비명 소리.
한 자루의 검이 땅에서 솟구치더니 침사방주의 양물을 꿰뚫고 들어갔다.
누가 찔렀는지 손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검을 활에 재워 쏘아낸 것처럼 검만 맹렬한 속도로 쏘아져 나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크윽!”
“아악!”
침사방도는 두 번째 만폭통을 터뜨리지 못하고 허수아비처럼 무너졌다.
기본공 정도밖에 수련하지 못한 침사방도들에게 천멸도 살수들은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천멸도 살수들을 십여 명이나 죽인 후이니 말해 무엇하랴.
비명 소리는 천지를 진동했지만 격전은 일어나지 않았던 이상한 싸움이었다.
많은 사람이 쓰러졌다.
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고,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 죽은 사람도 있다.
쓰러진 사람들 중에서 산 사람은 없다. 화타도 살릴 수 없는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고통의 순간이 짧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왕벌에 걸린 사람은 심장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천멸도 살수들에게 걸린 사람은 조금 더 사정이 나았다. 어떻게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테니까.
군웅들은 일방적인 도살을 피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일곱 명이 즉사했습니다.”
팔십일전혼주인 황전륜의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우리는 세 명. 모두 십팔밀막검이에요.”
백인수의 주림도 사상자를 보고했다.
십팔밀막검주인 종청호가 천멸도로 떠난 후, 십팔밀막검 중 살아남은 열다섯 명은 주림이 통솔하고 있었다. 이중 세 명이 절침사계에 걸려든 것이다.
무공으로만 따지면 십팔밀막검이 백인수보다 월등한데, 백인수는 사상자가 없는 반면에 십팔밀막검은 세 명이나 죽었으니 삶과 죽음이란 천명(天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가.
“열 명이나…… 그런 하찮은 수에!”
천멸도주가 분을 참지 못하고 치를 떨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지날수록 천멸도 살수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줄어든다.
천멸도를 나설 때는 이백여 명에 이르렀는데 굴곡을 거치는 동안 서른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쪽은 사백 정도 돼. 그중 절반이 침사궁도야.”
마도가 군웅들의 시신을 점검한 후 말했다.
정적이 흘렀다.
싸움의 서곡은 사천궁이 열었지만 정작 그들은 침사방의 멸문, 그리고 뭇 군웅들의 대살육이라는 결과를 뒤로한 채 사라져 버렸다.
마야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시작이군.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백 번을 이겨도 한 번 실족하면 몰살당하고 마는 싸움.”
마도인, 마야를 추종하는 무리.
그들은 마야의 말을 들으며 눈빛을 반짝였다. 죽은 수하들을 위해 애도를 표하던 천멸도주까지 고개를 돌려 마야를 쳐다봤다.
그의 말이 새삼스러워서가 아니다. 말뜻이 비장해서도 아니다.
마야의 말투에 변화가 생겼다. 평소 마야는 낮은 저음으로 말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갈라진 음성이 새어 나왔다. 목이 쉰 사람이 억지로 성대를 쥐어짜서 말하는 것처럼.
왜 이런 음색으로 말하는 것일까?
의문은 곧 풀렸다.
왜애애앵! 왜애앵!
멀리 떨어져 있던 왕벌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둥근 원을 그렸다. 마야와 그의 일행을 포위하는 형국, 호위하는 모습이다.
왕벌을 움직이는 소리가 마령음인가, 적멸주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제 특이한 소리를 내지 않고도 부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 사람과 중얼중얼 몇 마디만 나눠도, 혼잣말을 흘려내도 왕벌은 날아오른다.
왕벌만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내력을 상승시킬 수도 있으며, 감쇄할 수도 있다.
노래도, 휘파람 소리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리를 내지 않고도 공격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병기를 움켜쥔 것과 다름없다.
음공(音功)!
마야는 전설의 음공을 실현해 냈다.
위력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음공으로 절대 무신들을 상대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마야를 쉽게 상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군웅들 사백여 명을 죽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축하해요.”
다담선자가 제일 먼저 말했다.
***
“재미있군. 사천궁(四天弓)이라. 이건 아주 쓸 만하겠어.”
흑조편복은 입맛을 다시며 왱왱 날아다니는 왕벌을 쳐다봤다.
확실히 왕벌의 출현은 예상 밖이었다.
이놈들은 천멸도 살수들이 붙어 있는 것보다 더 큰 위협이다.
멸신구관의 기연을 노리고 남만을 기웃거린 무인들의 수는 줄잡아 삼천에 이른다.
북검문과 남도문의 무인을 제한 숫자다.
삼천이라는 숫자가 호채마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골치깨나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무공은 미약할지 모른다. 하나 그들을 맹수로 탈바꿈시킬 명약이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이 지닌 본성 중에는 탐욕이란 놈이 있다. 이놈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영약보다도 강렬한 유혹의 덫이다.
“남만을 벗어나려면 고생깨나 해야 될 걸세. 후후!”
흑조편복은 신형을 날렸다.
군웅들은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다. 그들은 사천궁을 떠받들며 제이전(第二戰)을 준비할 게다.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싸움인 줄 빤히 알면서도.
흑조편복은 무모한 싸움을 그나마 약간은 가능성 있는 싸움으로 바꿔줄 생각이다.
“어쩌면 이번에 여벌 목숨 중 하나가 날아갈지 모르겠군.”
공허한 음성이 허공을 울렸다.
제4장 귀자문(鬼子們) ― 이놈들아!
1
삼천 대 마흔다섯.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삼천 쪽은 이겨도 욕 얻어먹을 것이며, 마흔다섯 쪽은 구르는 마차를 향해 달려드는 당랑(螳螂) 같은 존재로 치부될 것이다.
삼천 대 쉰다섯의 싸움이 있었다.
삼천에서는 사백여 명의 시신을 남겼고, 쉰다섯은 열을 내놓았다.
확실히 쉰다섯은 마흔다섯으로 줄었다. 하지만 삼천은 여전히 삼천이다. 사백 명이라는 숫자는 거의 일 할에 육박하는 숫자지만 꾸역꾸역 몰려든 숫자가 금방 그 자리를 메워 버렸다.
그리고 이제 또 삼천 대 마흔다섯의 싸움이 시작되려고 한다.
“이건 전쟁이야!”
“인정사정 봐줄 필요 없다고!”
“사악한 놈들! 왕벌 부리는 것 좀 봐. 벌을 부려서 사람을 죽여? 그런 놈들을 언제까지 봐줘야 돼!”
“수단, 방법 가릴 게 뭐야? 당장 끝내 버리자고!”
군웅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들은 움직이기를 원했다.
활을 사용하든 화약을 쓰든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호채마를 결단내는 데 이의 없음을 선포했다.
하나 몸은 말처럼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왕벌과 천멸도 살수들에 둘러싸인 마야는 철옹성(鐵甕城)처럼 단단해 보였다.
군웅들은 사천궁을 주시했다.
그들이 무슨 말인가는 해주기를,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주기를, 일차 접전에서 그랬듯이 다시 한 번 활을 잡아 쏘아주기를.
“전쟁인가.”
“은형시에 화약을 조합하면 오늘 중으로도 끝낼 수 있다고 보는데.”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란 말이지.”
“…….”
“우린 이 순간부터 사천궁이란 이름을 버려야겠군.”
“…….”
네 명의 궁수는 감정없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을 포기한 순간부터 사천궁은 제삼무신가의 무인이 아니었다. 제삼무신가에서 그들을 파문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물러서야 하리라.
하물며 삼천 대 마흔다섯의 싸움을 주도하는 입장이라면 제삼무신가가 아니라 남무림 무인이라는 소리도 못한다.
하나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