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87
187
이건 말이 안 된다. 일개 여인이 이토록 강하다니!
“무, 무슨 검법?”
“본가의 무공이에요. 자하부. 자하쌍구검에 자하풍류신법.”
“자, 자하부의 무공이 이토록…… 마, 말도 안 돼. 자하부주라 해도 이런 검법을 펼칠 수…….”
털썩!
사내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금까지만 해도 많이 버텼다. 심장이 반으로 갈라지는 순간 즉사했어야 하는데 많이 버틴 거다.
금연화는 죽은 시신에게 남은 말을 건넸다.
“그런 말도 많이 들었어요. 아버님께서 펼쳐도 소녀처럼 강할 수는 없을 거라고. 그 말 역시 제가 아는 분이 먼저 말했다는 것, 아세요?”
금연화는 사내에게서 활과 화살을 회수했다.
그 시간, 다담선자도 한 사내와 마주했다. 세상이 사천궁이란 이름을 안겨준 사내다.
둘 사이에는 이미 많은 말들이 오갔다.
여러 말까지도 필요없었다. ‘다담선자’라고 명호를 밝힌 것으로 서로 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
사내는 시위를, 다담선자는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다담선자는 사천궁의 활 솜씨를 잘 안다. 사천궁이라는 명호만으로도 활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사내도 추명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병기가 추명반이다. 빠름과 강함을 동시에 따지면 단연 은형시지만, 단순히 빠름만 가지고 논할 때는 추명반도 무시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단 한 수에 승부가 결판나리란 걸 안다.
참으로 묘한 싸움이 되었다.
상대를 죽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상대의 병기를 피해낼 것인가로 승부가 결정지어진다.
쏘아내고 피해야 한다.
“이제 그만 시작해야겠군요.”
다담선자가 먼저 선전포고했다.
마야가 제시한 시간은 진시말(辰時末)까지다. 사시(巳時)가 되면 마릉 초원은 격전지가 될 것이고, 그때까지도 사내를 처리하지 못했다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간은 진시정(辰時正)을 향해 치달았다.
아직 여유는 많다. 싸움이래야 촌각 만에 끝날 터이다. 하나 마냥 대치하고 있을 필요가 무엇인가. 어차피 결과를 내야 한다면 빨리 끝내는 것도 좋으리라.
스윽!
사내가 활시위를 얹었다.
“추명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들었소. 나 역시 피할 자신은 없지만 당하고만 있지도 않을 것이오. 양패구상(兩敗俱傷). 우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오. 그래도 하겠소?”
“해야죠. 셈법이 똑같지 않으니까요. 그쪽 셈법으로는 양패구상이 나오지만 내 셈법으로는 딱 한 글자, 승(勝)이 나오네요. 입장이 바뀌었다면 하지 않겠어요?”
“얄미운 말인데도 밉지 않군. 마야라는 사람, 당신을 곁에 둔 것만으로도 행운아야.”
“고마워요.”
눈빛과 눈빛이 어울려 불꽃을 튀겼다.
먼저 쏘는 쪽이 유리하다.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고 해도 확실히 피해내기는 해야 한다.
하나! 둘! 셋!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사내는 활을 쏘았고, 다담선자의 손목에서도 빛이 반짝였다.
쒜엑!
어느 병기가 흘린 소리일까?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사내의 목이 반쯤 잘린 채 옆으로 꺾였다.
사내는 추명반을 피하지 못했다.
타악!
은형시는 목표를 꿰뚫지 못하고 땅에 꽂혔다.
마도 사상 제일 빨랐던 십족신마(十足神魔)의 천와류(天渦流)가 은형시를 빗겨낸 것이다.
다담선자는 당연하다는 듯 별다른 감흥 없이 사내에게 다가가 활과 화살을 회수했다.
다담선자에게는 천와류라는 마도 제일의 신법이 있다. 금연화에게는 마야가 따로 절학을 전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가다듬어진 자하풍류신법이 있다.
제삼무신가의 궁술을 피할 수 있었던 힘이다.
마도나 수검에게는 절정 신법이 없다.
마야는 그런 점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신법, 보법 중에 하나를 꺼내놓지 않았다.
마야와 마도, 수검의 오랜 친분 관계를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마야는 여인에게만 절기를 전수해 주나?
아니다. 절공을 전수해 주지 않는 것이 마도나 수검을 위한 길이었다. 그들이 택한 혈염도법이나 사흡검법은 평생을 수련해도 못다 끝낼 절학 중에 절학이다.
그들은 지름길을 택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택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게 만드는 것만이 최선의 배려다.
절정 신법이나 보법을 전수해 주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다. 하나 신법이나 보법에 의지하는 마음이 늘어갈수록 혈염도법이나 사흡검법은 약해진다.
두 무공은 그런 무공이다. 진심으로 전력투구해야만 꼬리라도 잡을 수 있다.
마도는 혈염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겨누기 전에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피를 묻혔다.
지이이잉……!
혈염도가 운다. 피 맛에 잠에서 깨어난 혈염도가 붉은빛을 뿜어낸다. 슬프디슬픈 울음을 토해낸다.
“좋은 칼이야.”
상대도 혈염도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아보았다.
“무인의 꿈은 짧을수록 좋지.”
마도는 상대를 향해 치달렸다.
쒜엑!
무엇인가 허공을 가른다. 소리도 없고, 들리지도 않지만 혈염도가 급격히 반응하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다. 도를 들고 있는 손이 자르르 저려오기까지 한다.
촤아악!
마도는 도를 쳐내지 않았다. 혈염도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제어하지 않고 보내주었다.
까앙!
도와 화살이 부딪쳤다.
손목에 큰 충격이 전해졌다. 원래 강궁인 데다가 날아오는 속도까지 가미되어 큼지막한 바위를 받아친 것 같은 충격을 준다.
파파팟!
마도는 속도를 더했다.
아무런 의식도 없다. 적과 나의 구분도 없다. 두 눈이 상대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적이 어디 있는지 알 뿐,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혈염도에게 맡긴다.
쒜엑!
두 번째 화살이다. 이번에는 두 대가 한꺼번에 날아든다. 한 대는 가슴을 노리고, 다른 한 대는 허벅지를 노린다. 확실한가? 모른다. 느낌이 그렇다.
쒜에엑! 카앙!
가슴을 향해 쏘아진 화살은 혈염도로 쳐냈고, 허벅지를 향한 화살은 신형을 틀어 피해냈다.
상대가 세 번째 화살을 재었다. 하나 그것까지 날리게 할 수는 없다. 두 번씩이나 기회를 주었는데도 꿰뚫지 못했다면 운이 다했다고 생각하거나 미숙한 무공을 자책해야 한다.
푸욱!
혈염도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느껴진다. 콩닥콩닥 뛰던 심장이 급격하게 굳어진다. 치솟는 선혈, 경직하는 몸, 바르르 경련하는 육신, 코와 입에서 뿜어지는 단내까지……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맡아진다.
혈염도는 사람을 잡아먹는 마물(魔物)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도를 잡지만 무공이 능숙해지면 사람이 도를 잡는지 도가 사람을 잡는지 모르게 되고, 좀 더 강해지면 도가 사람을 잡아먹게 된다.
꼭 술과 같다.
영혼이 혈염도에 먹히면 어떻게 될까? 물어보나 마나다. 오직 살생만을 좇는 살인귀가 된다.
마도는 한순간이지만 상대의 가슴에서 뿜어지는 선혈을 빨아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혈염도가 피를 탐하듯, 그도 피에 대한 욕구를 느낀 것이다.
‘이제 결정할 때가 됐군. 혈염도를 버릴 것인가, 이겨낼 것인가. 욕심을 부리다가 이겨내지 못하면…… 마야가 죽여주겠지.’
생각거리도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에서 혈염도를 들었다.
살인귀가 되면 마야가 죽여주리라.
이 세상에서 오직 마야만이 마도라는 이름을 유지한 채 그를 죽여줄 수 있다.
그 순간을 위해 마야를 떠나지 못했다. 언젠가는 그 순간이 올 것이고, 마야가 옆에 있어야만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마도는 혈염도를 굳게 움켜잡았다.
혈염도에 묻은 피를 핥고 싶다. 아니다. 더 큰 먹이가 있다. 놈은 심장이 뻥 뚫린 채 죽었다. 죽은 놈 피 좀 먹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놈의 피를 마시면 갈증이 해소될 텐데.
마도는 부르르 치를 떨었다.
혈염도의 마기(魔氣)는 너무도 강렬했다. 이제 허벅지를 베어 피를 먹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감각이 예민해졌다.
“휴우! 휴우! 휴우!”
마도는 일부러 거친 숨을 연속해서 내뱉었다.
사천궁을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보다도 신법이 초절한 절혼마녀나 일령이 더 나을 성싶다.
한데 마야는 마도와 수검을 택했다.
당시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마야는 자신들의 무공 수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마도나 수검이 조만간 심마에 빠질 것이라는 것도 예측했다. 오히려 마도와 수검이 자신들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마야는 경고를 해준 것이다.
역시 마야 곁에 머물기로 작정한 것은 잘한 결단이었다.
그는 혈염도를 거두고 활과 화살을 챙겼다.
착! 차악! 착! 차악! 착……!
수검은 끊임없이 발검과 착검을 반복했다.
마야가 지시한 일은 해결했다. 사천궁으로 불리던 자는 양팔이 잘리고 목이 꿰뚫려 즉사했다.
그런 후에도 발검과 착검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검의 인상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왜 이러지? 아냐, 이게 아닌데… 왜?”
착! 차악! 착! 차악……!
검을 뽑고 집어넣는 일이야말로 수검이 가장 자신하던 부분이다.
이 세상에서 사흡검법처럼 발검과 착검을 정형화시킨 검법은 존재치 않는다. 그리고 그는 사흡검법의 달인이다.
한데 검을 뽑고 집어넣는 손길이 어쩐지 어색했다. 속도도 반복을 거듭할수록 느려졌다.
“이, 이게 아냐! 이게 아닌데…….”
검을 잡았다.
서른여섯 가지에 이르는 집검법(執劍法) 중 하나다.
아니다. 능숙할 대로 능숙해졌다고 생각한 집검법인데 지금은 마치 처음 검을 잡았을 때처럼 낯설다.
동방천마와 싸웠을 때, 사흡검법에 혈염도법의 요결을 가미한 적이 있다.
아주 유용했다. 도의 숨결에 모든 것을 맡기는 혈염도법처럼 의식을 검에 심는 순간 동방천마의 욕금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도 발생했다. 사흡검법의 운결(運訣)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마야가 그를 깨웠을 때, 그는 거부하고 싶었다.
지금 그의 상태로는 누구와도 싸울 수 없었다. 검이 낯설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사천궁을 죽인 것은 요행이다. 결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싸움이 벌어지자 운 좋게도 사흡검법이 제대로 펼쳐졌다.
수검은 그때의 행동을 되새겨 보려고 했다.
착! 차악! 차악!
안 된다. 검이 낯설다. 수검(收劍)도 막무가내, 열여덟 가지에 이르는 수검법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검을 잃어버렸어.’
수검은 식은땀을 흘렸다.
마야는 왜 이런 싸움에 자신을 보냈단 말인가. 일령이나 혈유를 보냈어도 충분했는데.
그때, 어떤 생각이 그의 뒷머리를 세차게 후려쳤다.
“만상(萬象)은 만유(萬有)이나 무시(無視)다.”
마야가 사천궁을 죽이고 활과 화살을 회수하라는 명을 내릴 때 해준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갸웃거렸다.
이런 뜻이었구나!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것…….’
사흡검법의 진수는 형(形)과 식(式)에 있지 않다. 무애(無碍)의 경지에서 펼치는 사흡검법이야말로 최강이다.
만유는 이뤘다. 이제 무시를 이룰 차례다.
서두를 게 없다. 잃어버린 검은 실전에서 되살아날 게다. 과거의 정형화된 검식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수검은 비로소 소매를 들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2
사람이 많으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말 강한 사람도 존재한다.
몇몇 사람들, 삼양신검(三陽神劍)이라든가 무음살도(無音殺刀) 같은 사람은 사천궁조차도 무시하지 못하는 고수다.
문파를 떠나 홀홀단신으로 유랑하는 방랑 무인이기에 주목받지 못할 뿐, 그들이 남도문에 투신했다면 대주(隊主) 이상의 신분을 부여받았을 게다.
그들은 군웅들과 섞이지 못했다.
벗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혹은 홀로 올 용기가 없어서 문도까지 대동하고 나선 사람들이 눈에 차지 않은 탓이다.
그들에게 군웅들이란 욕심만 많은 소인배였다.
그렇다고 그들끼리 손을 맞잡지도 않았다. 사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적할 만한 고수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더러는 주목할 만한 무인들을 찾아내기도 했지만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외톨이처럼 홀로 떨어져서 마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마인들이 흩어지게 되면 마야를 움켜쥘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확신하면서.
청옥고검(靑玉孤劍)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출신 문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옥이 빛을 발하면 혈로(血路)가 생긴다’는 말까지 만들어낸 인물이다.
청옥고검, 그는 마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솔개도 쥐를 잡기 위해서는 낚아채는 순간까지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을 잡는 일인데, 시선을 돌린다면 말이 되는가. ‘어디에 있으니까’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저기 있다’로 답해야 한다.
호채마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 왔다.
그 결과 몇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