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89
189
주림 말을 십분 믿어서 냄새로 굉천뢰를 찾아냈다면, 천멸도 살수는 자신이 예상하는 것보다 두 배는 강하다.
살수에게 오감을 발달시키는 수련은 필수다.
잘 보고, 잘 들어야 하지만, 냄새도 잘 맡아야 한다.
고기 냄새가 풍긴다면 어떤 고기인지 알아맞히는 것은 기본이다. 굽는 것인지 삶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냄새가 풍기는 곳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냄새의 양(量)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고기를 굽는지, 그래서 몇 명이 먹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파악해 내야 한다.
이밖에도 냄새 하나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수없이 많다.
화약도 마찬가지다. 굉천뢰같이 폭발력이 강한 화약을 매설했는데 냄새인들 풍기지 않으랴.
해서 냄새를 죽이기 위해 죽통에 넣었으며, 특히 화약 냄새와 상극인 구지초(九地草)로 겉을 감쌌다.
자신이 직접 마릉 초원을 둘러본다고 해도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냄새를 맡지 못할 정도까지 단속해 놨다.
그런데도 천멸도 살수들은 냄새를 맡았다니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패한 음모는 수치에 불과하지. 마릉 초원 이야기는 더 듣고 싶지 않네.”
흑조편복은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잖아.”
주림은 흑조편복 앞을 가로막았다.
“흑조편복, 당신에게는 사생아가 있지. 지둔공에도 뛰어나고 화약 다루는 솜씨도 제법이고. 천염문(賤艶門)과 독조림을 거쳤으니 참 악착같이 살았던 것 같아.”
흑조편복은 눈을 질끔 감았다.
‘다 끝났구나.’
“사생아…… 씨를 뿌렸으면 돌보기라도 했어야지. 어떻게 천염문 같은 곳을 들락거리게 만드나? 아비가 되어 가지고 그 꼴을 지켜봤단 말이야?”
“그만 하지.”
피붙이를 살릴 기회는 사라졌다. 주림이 피붙이까지 파악하고 있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말을 꺼내놓는 이유는 마릉 초원에 어떤 함정이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소상히 안다는 뜻이다.
피붙이에게 달려가려면 주림과 일장 격돌을 벌여야 한다.
한 번 싸워볼까?
이건 함정이다. 주림이 파놓은 함정. 자신이 손을 쓰는 순간, 주위에 매복해 있는 살수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끝장낼 게다. 마야에게는 죽자고 달려들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보고하겠지.
“하기는 중 놈이 살수의 전설이 되기 위해서는 비정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후후! 그건 자네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자넨 같은 형제에게도 검을 겨눴는데, 그건 어떻게 말할 텐가? 북검문에도 천멸도 살수가 가 있지? 안량빈이 이끄는 십겁룡이라고 했던가? 그들과의 싸움은 또 어떻게 설명할 텐가? 하하하! 수장의 몸으로 십겁룡에게 도살당하는 백인수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죽고 싶은 모양이군.”
“마야의 허락은 얻었는가?”
“후후후! 허락이 필요할까?”
“내게는 필요없지. 하지만 네게는 필요해. 왜냐? 넌 마야의 밑을 닦아주는 똥개니까.”
주림은 씩 웃었다.
‘졌어. 철저히.’
흑조편복은 쓰게 웃었다.
완벽하게 졌다. 서로가 서로를 격동시켰으나 먼저 흥분한 것은 자신이다. 신경 쓸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피붙이가 죽는 건 아픔이었나.
“그놈. 천염문을 들락거리고 독조림 밥도 얻어먹은 놈. 별호 한 번 기막히더군. 사망혈인(死亡血人)이라고?”
“치고 받았으면 그만인 게야. 이기고 지는 것은 목숨으로 셈하면 되는 것이고. 이번에는 내가 졌으니 목숨 하나를 내놓았지. 더 이상 날 추하게 하지 말게.”
“흑조편복, 당신이 목숨을 내놓는다면 사망혈인의 목숨은 보장해 주지. 마지막으로 아비 노릇을 하라는 거야. 어때? 바꾸겠어?”
주림은 살수다. 하지만 자기가 한 말은 지킬 줄 아는 놈이다. 그가 무엇을 믿고 이런 제안을 하는지는 몰라도 정말 목숨을 바꿀 힘이 있으니 말하는 것일 게다.
어떻게 할까? 목숨을 내놓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경우는 청부를 받아들이기 전에 미리 결정해 놓았다.
목표는 반드시 죽인다.
“아이를 잡아가게.”
“후후후! 그럴 줄 알았지.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주림은 비로소 길을 열어주었다.
제6장 야수후(野獸吼) ― 야수의 울부짖음
1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져 나간다.
마야가 군웅들을 눈에 보이는 족족 죽인다는 소문은 마른 풀숲에 불을 붙여놓은 듯 번져 갔다.
군웅들은 끝없이 물러났다.
왕벌을 상대할 수 없는 한, 물러서는 길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천궁은 뭐 하는 거야! 활이라도 쏘아야 될 것 아냐!”
“제길! 치고 박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쏘기만 하면 되는데 뭐 이리 아껴.”
군웅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마릉 초원.
군웅들 중 절반 정도는 초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지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절반도 갈대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사천궁은 마릉 초원의 함정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알려주어야 할 사람들에게만 비밀리에 말해왔다.
군웅들 대부분은 마릉 초원에 함정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갈대밭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같대밭 같은 곳이야말로 왕벌이나 천멸도 살수가 날뛰는 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갈대밭에서 벌을 맞게 되거나 살검과 부딪친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다.
“불! 여기다가 불을 놓으면 벌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바보야? 생각없이 말하는 것하고는. 그럼 마야도 같이 죽는 걸 몰라? 불길 속에서 마야만 구해낼래?”
“제길! 누가 그걸 몰라? 마야를 손에 쥐기는 틀린 이야기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놈을 잡을 수 없다면 죽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언제까지 이렇게 쫓기기만 할 거야?”
군웅들이 하는 말은 거의 비슷했다.
마야가 강하게 느껴질수록 그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은 옅어지고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강해졌다.
“이곳이 마릉 초원이야. 더 들어갈 거야?”
천멸도주가 갈대밭을 쳐다보며 말했다.
초원은 누가 봐도 화공의 요처였다. 갈대가 잘 말라 있어서 불씨만 떨어뜨려도 큰 불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렇게 뻔한 곳에 들어설 사람이 있을까?
마야는 들어선다. 왕벌은 불길이 번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피신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는 언장은마가 있어서 땅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듯이 배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들어선다.
“안심해. 주림이 일을 끝내놨을 테니까.”
“어쭈! 이젠 아예 자기 수하인 줄 아나 봐?”
“후후후!”
사사사삭……!
천멸도 살수들은 마야의 웃음이 신호라는 되는 양 거침없이 갈대밭으로 뛰어들었다.
‘정말 들어왔군.’
사망혈인, 그는 굉천뢰를 품에 안았다.
세상에는 똑똑한 듯하면서도 미련한 인물들이 예상외로 많다.
마야도 그런 자들 중에 하나다. 마야처럼 뛰어난 자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갈대가 바짝 말라 있는 걸 봤다면 발길을 돌렸어야지.
군웅들이 분분히 쫓겨 가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마인이란 허울을 뒤집어쓰고 쫓기기만 하다가 쫓는 입장이 되니 승리감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들어섰고, 이제 살 길은 없다.
그는 차게 굳어버린 마음으로 불화살이 쏘아지기를 기다렸다.
화공이 시작되면 화약도 터뜨린다.
불길이 마인들의 뒤를 막으면 어쩔 수 없이 초원 한가운데로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곳이 바로 죽음의 함정인 줄도 모르고.
패애애애앵!
굉장한 파공음이 울렸다.
‘사천궁의 화살!’
사천궁이 쏘아낸 화살은 소리부터가 다르다.
강궁은 많다. 활을 주병기로 사용하는 문파도 많고, 제삼무신가를 본떠서 철궁을 주조한 문파까지 나와 있는 실정이다.
하나 그 어떤 활도 제삼무신가 무인들이 쏘아낸 것처럼 시원시원한 맛을 풍기지 못한다.
강렬하면서도 시원한 느낌.
폭군이나 패왕(覇王)의 느낌보다는 잘 갈린 칼이 나뭇가지를 쳐내는 느낌이 풍겨 나온다.
오직 제삼무신가 무인들만이 표출할 수 있는 궁기(弓氣)다.
사망혈인은 가슴에 품고 있던 죽통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두 손에 진기를 주입하고, 힘껏 눌러서 터뜨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고달팠던 인간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다.
‘하나를 세는 동안 다섯 걸음은 떼어놓을 수 있을 것. 열을 세면 오십 보. 하나…….’
수를 헤아렸다. 한데!
꽈앙!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폭음이 터져 나왔다.
굉장한 폭발이다.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이건 굉천뢰가 터지는 소리!’
사망혈인은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굉천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터지면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 마릉 초원 전체가 들썩이게 설치되었다.
시발은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원래는 그가 터뜨리려고 했던 것이지만 다른 곳에서 먼저 터졌으니 이제 곧 그가 있는 곳도 폭발에 휘말릴 것이고, 굉천뢰도 터지리라.
그는 양손에 쥐고 있는 굉천뢰가 터지기를 기다렸다.
패애앵! 패앵!
예상했던 폭발은 일어나지 않고, 연이어 허공을 가르는 화살 소리만 맹렬히 들려왔다.
‘어떻게 된 일이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가 설치해 놓은 굉천뢰가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는 품속의 굉천뢰를 터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작은 폭발에 불과할 뿐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럴 것 같다.
꽈앙! 꽈앙!
화살 소리 끝은 굉천뢰가 터지는 소리로 이어졌다.
‘사천궁이 화살을 쏘고 있는데…… 화살에 굉천뢰를 달아?’
도대체 굉천뢰가 얼마나 많은 것일까? 그건 그렇고…… 사천궁이 화살에 굉천뢰를 매달아 쏘아대는 것은 이해하는데, 그럼 자신이 설치해 놓은 굉천뢰는 왜 안 터지는 것일까?
그는 몸을 일으켰다.
꽈앙! 꽈앙……!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었다.
마릉 초원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 네 군데에서 쏘아져 오는 화살은 마야가 아닌 군웅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크악!”
“아아악!”
“사천궁이 미쳤다! 빨리 빠져나가!”
군웅들이 피해야 할 것은 사천궁의 화살뿐만이 아니었다.
왜애앵! 왜앵!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구름은 빗방울이 되어 떨어졌고, 빗방울을 맞은 사람은 어김없이 비명을 토해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벌 떼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천멸도 살수들의 먹이가 되었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었다. 바로 이곳이 염라지옥(閻羅地獄)이었다.
화아악! 타탁! 타타탁!
불길도 거세게 치솟아 갈대밭을 태워갔다.
굉천뢰가 터지며 불꽃을 피워냈고, 일부가 갈대에 옮겨 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함정은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사망혈인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영문을 알아보려고 했다. 한데,
착! 차차착!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검 몇 자루가 목에 대어졌다. 날이 아주 날카롭게 서서 아름답기까지 했다.
“사망혈인, 넌 잡혔다. 굉천뢰를 터뜨려 우릴 저승 길동무로 삼을 텐가, 순순히 따라나설 텐가?”
사망혈인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꽈앙! 꽈앙! 패애앵! 꽈앙!
화살은 마릉 초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군웅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갔고, 굉천뢰까지 매달고 있어서 살상력이 매우 컸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가 으깨진다.
‘이건 내가 설치한 굉천뢰!’
사망혈인은 할 말을 잃었다. 입이 꽁꽁 얼어붙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사천궁이 화살에 매단 굉천뢰는 자신이 땅에 파묻은 것이다.
언제 캐어냈을까? 굉천뢰를 모두 캐낼 때까지 자신은 왜 아무 기척도 잡아내지 못했을까.
보아하니 사천궁도 당한 것 같다. 사천궁이 미치지 않는 이상 군웅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낼 리 있겠나.
사망혈인은 살수들에게 이끌려 마야 앞에 이르렀다.
마야, 마야 하기에 노괴(老怪)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너무 젊다. 용모도 매우 준수하며, 무엇보다 기개가 장하다.
인물만 보면 충분히 영웅호걸 반열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마야는 말이 없었다. 팔짱을 끼고 묵묵히 눈앞에 펼쳐진 도살 장면을 쳐다봤다.
폭발은 근 반 시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사천궁이 마구잡이로 화살을 쏘아대는 것이 아니라 십여 명 이상이 뭉쳐 있는 곳만을 골라서 쏘아냈기 때문에 군웅들의 희생은 형언할 수 없이 컸다.
‘천 명 이상은 죽었을 것…….’
어림 추산이다. 상당히 정교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게다.
“우리에게는 언장은마가 없었다.”
폭발음이 잦아들 무렵, 마야가 입을 열었다.
“언장은마는 모종의 일을 처리하러 먼저 떠났지. 가고 오는 데 보름은 걸릴 예정이지.”
마야의 시선이 사망혈인에게 돌려졌다.
희한한 일이다. 마야와 눈길을 마주치는 순간 내력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원래부터 단전이란 곳이 아예 없었던 듯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