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91
191
“조용히 해라. 네 아비 어미가 너를 내보냈을 때는 몸만 바치라는 뜻은 아니었을 터. 일족의 안녕을 생각하면서 입을 꾹 다물어라.”
산주는 허공에 대고 얕은 음성으로 말했다.
수가 그 소리를 못 들을 리 없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어린 마음에도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잡아주던 어미의 얼굴이 떠올라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재미없어지는데. 비명 소리가 있어야 제 격이지.”
콘이 심드렁한 음성으로 말했다.
‘앗차!’
산주는 큰 실수를 깨닫고 휘청거렸다.
계집의 발버둥이 콘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저어했는데, 콘은 그런 점을 즐기고 있었다.
콘은 단순하다. 즐기던 것이 사라졌으니 다른 재밋거리를 찾으려 한다. 원래 목표로 했던 피히족의 살육으로.
“반 시진이 왜 이렇게 길어? 아직 멀었어?”
콘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수의 몰골은 처참했다. 육신은 온통 멍투성이였고, 비림(秘林)은 피범벅이 되어 운신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수는 발버둥 쳤다.
“제, 제가 더 잘 모실 수 있어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어요. 제발, 제발요.”
콘에게서 살기를 감지했음인가. 콘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 부족에게 향했다는 것을 느꼈음인가.
수는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썼다.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콘의 두 발목을 움켜잡았다.
“제발요. 제발…… 다음에는 더 잘 모실 수 있어요. 제발요.”
“큭큭! 큭큭큭!”
콘은 무미건조하게 웃었다.
‘흥미를 완전히 잃었어. 죽음.’
수는 죽는다. 콘은 수를 죽이기로 작심했다. 아니, 작심까지도 필요없다. 귀찮은 것이 매달려 있으니 치워 버리고 싶어 한다.
자신을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모자랄 판에 부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이런 것인가.
“당장 물러서지 않으면 피히족은 몰살당할 것이다.”
산주는 급히 피히족 언어로 말했다.
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살기를 듬뿍 담은 눈길이 산주의 전신을 휘감았다.
“뭐라고 중얼거렸어. 너, 내 눈앞에서 수작부린 것 맞지?”
말투에 핏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산주는 급히 부복하며 말했다.
“콘! 부디 한 말씀만 들어주소서!”
절대제왕, 콘.
콘의 살기를 아주 잠깐이나마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그를 절대제왕으로 떠받드는 일뿐이다. 콘도 그런 게 싫지는 않은지 그 순간만은 잠시 살기를 억눌렀다.
“소신이 산복술(算卜術)을 살필 수 있습니다. 소신이 살피건대 이 아이는…… 지금은 토양이 거칠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천하제일 옥지(玉地)가 될 겁니다. 뭇 사내들의 뼈를 녹이고 혼을 거두는 여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 부디 지금 물리치지 마시고 거둬주소서.”
“큭큭! 큭큭큭!”
콘이 조소했다.
틀렸다. 콘은 이미 수를 잊었다. 그가 보고 있는 수는 거치적거리는 살덩이에 불과하다.
산주도 이제는 수를 포기하고 몸을 일으켜야 한다. 피히족의 운명에도 간여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들을 위해서 조그만 시도라도 하는 날에는 콘의 눈 밖에 날 것이 자명하다.
콘을 자극하여 돌아오는 것은 죽음밖에 없다.
‘휴우! 다음 수나 생각해야겠군.’
산주는 콘이 행동하기를 기다렸다. 그때에나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으리라.
“가만, 가만…… 재미있겠네. 칠 주야(七晝夜)를 준다. 그 안에 옥지인지 뭔지를 만들어봐. 이 계집이 날 녹이지 못하면…… 큭큭큭! 새끼, 네가 뒈질 거야.”
콘은 광언(狂言)을 남긴 채 피히족 마을로 걸어갔다.
푹! 꿰에에엑! 쓰으윽!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놀란 새들이 요란스럽게 날아올랐다. 원숭이들도 후다닥 도망갔다.
“큭큭!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뭐 이리 싱거워.”
콘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코끼리를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코끼리는 아직 숨을 거두지 않았다. 큰 눈을 끔뻑이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목의 절반이 베어진 후인지라 피만 더 쏟아질 뿐, 일어서진 못했다.
코끼리는 곧 숨을 거뒀다.
“새끼가 거짓말했어. 특별한 손맛도 없잖아.”
콘은 몸을 일으킨 후 사방을 둘러보았다.
재수없게도 그의 눈에 중무장한 코끼리가 보였다.
상아에는 칼날이 묶여 있다. 얼굴과 몸은 철갑으로 감싸였고, 긴 코에도 철편(鐵片)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끼리 위에는 사내들이 앉아 있다. 코끼리 하나에 세 명이 앉아 있는데, 한 명은 활을 들었고 두 명은 장창을 꼬나 잡은 채 눈빛을 번뜩였다.
싸움 준비를 끝낸 피히족 청년들이다.
코끼리 수는 줄잡아 쉰. 하나에 세 명씩 앉아 있다면 백오십여 명에 이른다.
“큭큭큭! 큭큭!”
콘은 웃었다. 그리고 불문곡직(不問曲直), 달려들었다.
꾸웨에엑! 쿵!
“으악!”
“아아악!”
피가 난무했다.
콘은 코끼리 피를 뒤집어써서 혈인(血人)이 되었다.
핏물을 뚝뚝 흘리는 자가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날뛰며 단도를 휘두르는 모습은 악마의 현신과 다를 바 없었다.
콘은 두 가지 살인 습성을 드러냈다.
코끼리를 죽일 때와 인간을 죽일 때가 달랐다. 코끼리는 왼쪽 목 중앙에 단도를 틀어박은 후, 몸을 빙글 돌려 두 다리 앞으로 빠져나가며 길게 호선을 그렸다.
핏물은 고스란히 아래로 쏟아졌다.
당연히 그 밑을 지나던 콘의 몸은 핏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콘은 무척 빠르다. 화살로도 장창으로도, 독침도 그를 잡지 못했다. 번갯불이 튀길 때처럼 번쩍하는 사이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그만한 신법을 지닌 사람이니 핏물을 피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게다.
콘은 피하지 않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핏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마치 목욕을 하는 사람처럼 즐기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람을 죽일 때는 달랐다.
단도를 정확히 심장에 틀어박았다. 핏물이 밖으로 솟구치지 않고 체내로 흘러들도록 칼끝도 조심해서 부렸다.
사람은 심장이 찔려 죽는 데도 피를 거의 흘리지 않았다. 코끼리는 모든 피를 쏟아내며 죽었다.
“컥!”
“끄윽!”
쉰 마리의 코끼리, 백오십여 명의 전사들이 몰살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반 시진밖에 되지 않았다.
“큭큭! 큭큭큭!”
콘의 눈은 부락을 훑었다.
피히족은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몸을 사렸다.
그 누구도 이 악마 앞에서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꼬마와 늙은이를 제외한 사내들은 모두 몰살당한 후인지라 공포는 더욱 크게 엄습했다.
콘은 휘적휘적 걸어가 한 여인 앞에 섰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가 엄청난 살인 앞에 얼어붙은 여인.
“뒤로 돌아.”
여인은 최면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후딱 일어나 돌아섰다.
툭! 툭!
하체를 가리고 있던 풀잎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곧 큼지막한 양물(陽物)이 비림을 헤치고 들어섰다.
핏물이 묻어 있어서 끈적끈적하다.
퍽퍽퍽……!
비명 소리와는 전혀 다른 거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숨죽였다.
부족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몸을 유린당하는 여인도 신음 소리조차 흘리지 못했다.
“큭큭! 큭큭큭!”
유일하게 콘만이 말하거나, 웃을 수 있었다.
‘악마…….’
산주는 너무도 잔혹한 광경에 치를 떨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많이 봤다. 그건 잔인한 게 아니다. 살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하는 게 밀림의 법칙이다.
하나 사람을 죽이는 데도 도(道)가 있다.
콘이 코끼리를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아무 여인이나 강간하는 것에서 어떤 삶의 법칙을 찾을 수 있을까.
콘은 강한 게 아니다. 미친 거다.
콘은 무인이 아니다. 살인귀다.
이래서 남만인들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자로 콘을 꼽았구나.
남만은 현재 콘의 사냥터가 되었다.
모두 연약한 동물들만 있다. 토끼, 다람쥐, 사슴……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호랑이가 날뛰고 있는데, 대적할 만한 맹수는 한 마리도 찾을 수 없다.
콘을 이대로 남만에 남겨두었다가는 남만인들의 씨가 마르고 만다.
“안됐지만 네 부족이 희생을 해줘야겠다.”
산주는 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소녀, 아니, 꼬마 여자애.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을까.
산주는 이를 악물었다.
“수라고 했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산주는 수의 어깨를 잡고 공포에 질린 눈을 강렬하게 쏘아보았다.
“지금부터 칠 주야 동안 넌 요물로 둔갑해야 한다. 정신 차리고 똑똑히 들어!”
쫘악!
산주는 수의 뺨을 힘차게 후려갈겼다.
무슨 말을 해도 수의 눈빛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냈다. 정신을 집중해도 살지 죽을지 모를 판에.
수가 비로소 정신을 차렸는지 산주를 쳐다봤다.
“칠 주야. 칠 주야밖에 시간이 없다. 그 안에 콘을 사로잡을 몸을 만들어. 알아들었어!”
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건 모두 다 해라. 마을로 돌아가서 네 어미에게 배우든 늙은이에게 몸을 대주던 뭐든 해. 요물이 되지 못하면 피히족은 몰살당한다. 너는 물론이고 모두 다.”
“아, 알았어요.”
수가 개미 기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알기는 무엇을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콘을 칠 주야 동안 이곳에 잡아둘 생각이다. 다행히 피히족에게는 아직 흥밋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 코끼리도 있고, 여자도 많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나가겠지만 콘을 붙잡아둘 수는 있다.
피히족에게는 미안하다. 하나 남만인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한다.
그동안 산주도 할 일이 있다.
콘을 남만에서 빼내 중원으로 보내야 한다. 콘의 사냥터를 남만에서 중원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칠 주야 동안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피히족 같은 희생양이 또 생길 수밖에 없다.
‘제길! 무슨 수로 콘을 중원에 보내나.’
중원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고 살아왔는지라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콘의 관심거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 무책임한 거 아녜요? 이제 꼬마에 불과한 아이더러 무슨 수로 요물이 되라는 거죠?”
산주는 긴장했다.
‘다가오는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 무서운 고수!’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옷자락을 찢어 얼굴을 가린 탓에 용모는 알 수 없지만 몸매가 무척 뛰어나니 틀림없이 미인일 게다. 그것도 천하를 떨쳐 울리는 미인.
“누구시오?”
“콘을 죽이려는 여자.”
“코, 콘을!”
“당신은 뭐죠? 콘의 개? 아님 콘을 죽음으로 안내하는 사자?”
산주는 고개를 돌려 콘이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콘은 여인을 죽이고 있었다. 젖먹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목뼈를 으스러뜨리는 중이었다.
여인이 뭔가 콘의 비위를 건드린 것 같다.
“코, 콘을 죽이고 싶소.”
산주는 급히 말했다.
“호호호!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도 충실히 콘의 개가 되어야겠네요?”
“필요하다면.”
“이 아이, 내게 맡겨요. 요물로 만들어줄 테니까.”
“아!”
산주는 한시름 놓았다.
방금 만난 여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누군지 정체도 모르면서. 하나 믿을 수 있다. 여인의 눈가에 드러난 증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콘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는지.
콘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자이기에 여인이 한을 품고 쫓아다니는 것일까.
“피히족은 오늘로 끝장날 거예요.”
“……?”
산주는 무슨 소리냐는 말을 눈빛에 담아 쏘아 보냈다.
칠 주야 정도는 콘을 묶어둘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저 새끼를 잘 알아요. 저 새끼, 이미 흥미를 잃었어요. 젖먹이까지 모두 죽이고 피바다에 누워 한숨 자고나면 또 다른 살육을 찾아 떠날 거예요.”
여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콘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아니, 악마다.
“저 새끼를 마릉 초원으로 끌고 가요.”
“마릉 초원?”
“마궁 궁주라고 알아요?”
“마야.”
“아는군요. 좋아요. 마궁 궁주 마야가 마릉 초원에서 삼천 군웅을 무너뜨렸어요. 저 새끼에게 이 말을 해주면 당장 달려갈 거예요. 아!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 마야가 단신으로 삼천 군웅과 싸워서 이겼다. 이렇게만 말해요.”
“그, 그 말이 정말이오?”
산주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야를 안다. 마야와 손속을 부딪치기도 했다. 단 한 번의 부딪침뿐이었지만 마야라는 사람을 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야는 마인의 굴레를 쓰고 있지만 악인은 아니다. 그는 결코 삼천이나 되는 사람을 죽일 인간이 못 된다. 또한 그의 무공도 삼천과 싸우기에는 부족하다.
그동안 마야에게 기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심성에 변화가 일어날 만한 극단적인 사건이라도 있었던 건가?
“호호호! 마야는 마도의 하늘을 세우려는 거예요. 마인은 잔인하다는 통설이 있으니, 잔인함의 법통을 이어야죠. 삼천이 아니라 삼만이라도 죽였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