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194
194
독과 암기를 사용해도 좋다는 밀명(密命)까지 전달했으니 추혼단만으로도 충분할 듯싶기도 했고.
사천궁과 삼천 군웅을 죽인 놈인데, 놈이 예뻐서 내버려 두었겠는가. 써먹을 일이 있으니 잠시 모른 척한 것이지.
이제 놈을 정리할 차례다.
“됐어. 이제 강남에 숨어 있던 두더지들은 싹 쓸어냈어. 이제는 마야인데, 마야를 어떻게 요리하지?”
구환자는 문제를 던졌다.
이렇게 난제를 끙끙거리며 혼자 풀 필요 없이 여러 머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중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왕벌과 천멸도 살수가 문제예요. 그것들이 방패막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사천궁이 화공을 펼치려다 되레 역습당했다죠? 마야가 오귀궁과 연관이 있다고 합디다. 그럼 기관진식이나 화약, 독 같은 것에는 능통하다는 소리니 암습은 별로 효과가 없어요.”
“암습도 안 되고, 정공(正攻)도 어렵고. 허! 기가 막힌 인물이군.”
“아니, 아니. 그렇게들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 오백 마인을 죽인 일은 삼천 군웅의 복수로 생각할 거예요.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도 용납이 된 겁니다. 하지만 마야는 달라요. 그는 암습이 아니라 정공으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도문에 사람이 없다고 손가락질당할 거예요.”
“하기는 그 말도 일리가 있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소만. 알다시피 이번 일에 가장 깊숙이 연관된 가문은 제삼무신가요. 금궁 강화명이 죽었고, 유궁 강금산이 실종됐으며, 사천궁이 죽었소. 자! 이쯤 되면 궁왕께서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오만.”
“허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군. 누가 궁왕께 나서 달라고 아뢸 수 있겠소. 저번 단문협 사건도 후유증이 큰데.”
야광의 머리들이 분분히 의견을 나눴다.
구환자는 듣기만 했다. 개중에는 쓸 만한 의견도 있고, 잡담도 있지만 어떤 말이 나와도 제지하지 않았다.
의견은 자유분방하게 나와야 한다.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의견을 나누다 보면 느닷없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의견들은 대부분 기가 막힌 전략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딱 하나, 지금처럼 금기어(禁忌語)가 입 밖에 나올 때는 주의를 주어야 한다.
“갈!”
느닷없는 고함에 방금 입을 열었던 머리는 움찔했다.
단문협 사건, 혈귀대주의 죽음.
세상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야광의 머리들에게는 절대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금기어다.
“주의하지요.”
머리는 고개를 조아렸다.
한 번은 경고로 끝난다. 두 번째는 야광에서 물러나야 한다.
남도문이 창건한 이래, 야광에서 물러난 머리가 몇 명이나 될까?
한 명도 없다.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한다. 부득이 나가야 할 때나 내쫓길 때는 머리를 떼어놓아야 한다.
“궁왕을 움직일 수 없다면 둘째 독궁(獨弓) 강경승(薑敬勝)을 움직이면 되지 싶소만. 사실 궁왕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사람은 독궁뿐이지 않소이까. 금궁이나 유궁은 두어 수 뒤진다는 평가였으니 독궁이 나선다면 한판 승부가 이뤄질 거요.”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이기면 좋고, 지면 궁왕이 나설 수밖에 없으니 좋고. 두 아들이 마인에게 당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궁왕의 이름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소.”
“독궁은 궁왕을 닮아서 움직이려 들지 않을 텐데.”
“지금 제삼무신가는 상당히 곤란한 처지요. 여기저기서 그것밖에 안 되냐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긴 할 거요. 그 부분을 건드리면 되지 않을까 싶소만.”
대화는 독궁을 움직이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흐르면 한 번 정리를 해줘야 한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좋지만 시간만 지체될 뿐, 별다른 의견은 나오지 않는다.
“자, 그럼 어떻게 하면 독궁을 움직일 수 있을까로 화제를 고칩시다.”
구환자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제8장 인절적(人絕跡) ― 사람들이 사라지다
1
팔월 보름.
기다리는 사람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마인들만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오문도나 연락을 취하러 갔던 언장은마까지도 소식이 두절되었다.
“썩을 놈들!”
시마가 마야를 힐끔 쳐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힘이 쭉 빠졌다.
열심히 국수를 만들고 술을 준비하고, 어포를 챙겼던 여인들도 망연자실하니 먼 길만 쳐다보았다.
배는 수진포로 들어선 날부터 지금까지 한 척도 나가지 않았다. 들어오는 배도 없다.
수로(水路)는 막혔다.
마인들이 온다면 육로뿐이다.
마인들은 수진포로 들어서는 두 군데 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너무하군.”
어지간해서는 투덜대지 않는 마도까지 한마디 했다.
마야 보기가 안쓰럽다. 이런 인간들인지 모르고 온갖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마야가 불쌍하다.
마야는 아침도 들지 않았다. 침울한 눈으로 하늘에 떠 있는 새털구름만 쳐다보기를 반나절이다.
“몇 놈이나 올까?”
“…….”
“정말 한 놈도 안 오는 거야!”
혈유의 말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들 설마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벌써 아침나절부터 먹장구름이 드리워졌다.
‘오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단 한 명도.
오늘 하루는 웃을 일도 없었다. 농담할 기분도, 받아줄 기분도 아니었다. 식욕도 잃었다. 다담선자가 잔뜩 쌓인 국수를 내왔지만 손도 대지 않았다.
“자식들. 오지 않겠다면 말라지. 우리끼리 하지 뭐. 아, 지금까지 우리 잘해왔잖아. 뭐 부족한 것 있었나? 괜찮아. 우리끼리 해도 충분해.”
수검이 애써 힘주어 말했다.
“그럼, 우리끼리 해도 충분하지. 이럴 게 아니라 술이나 질펀하게 마시자고. 야, 오늘 술로 배 채우겠네. 금 낭자, 준비해 놓으신 탁주를 내다주시겠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시마가 그답지 않게 농을 섞어 말했다.
그 마음을 모르랴.
“호호호! 알겠어요. 저도 마시고 싶었는데 억지로 참고 있었거든요. 오늘 밤새도록 마셔 봐요.”
금연화는 찾아올 마인들을 위해 준비했던 탁주 마흔 독을 모두 내왔다.
주거니 받거니 술판이 질펀하게 벌어졌다.
간혹 신경을 건드리는 말도 나오리라. 마인들을 싸잡아 욕하는 분위기이니 아는 사람을 건드리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오늘만은. 아픈 마음, 서로가 보듬어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안아주랴.
“마시자고! 술이 없어지나 내가 없어지나 해보자고! 하하하!”
“마야! 마야! 야! 소립파! 거기서 궁상떨지 말고 와서 한 잔 하라고! 술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더라. 와! 와서 한 잔 해!”
혈유는 몇 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횡설수설이다.
술을 핑계로 마야를 끌어들이려는 마음씀씀이다.
“도주, 오늘은 괜찮아. 왕벌도 있고. 천멸도 식구들도 좀 쉬게 해. 술도 주고.”
마야의 음성은 무척 침울했다.
“제길! 모두 도륙당했네. 삼파낭검 같은 자도 당했다면 말 다했지.”
“그 말이 사실입니까?”
“오백이야. 오백이 당했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마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오백씩이나…….”
“하오문이 소식을 전한 건 이백 정도인데, 사실 우리와 뜻이 맞는 자는 그게 다고. 한데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어중이떠중이까지 전부 모여든 거야. 산적질이나 비적질을 하던 놈들까지 모두 몰려든 것 같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언장은마는 안색마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런 실수를…… 어떻게 이런 실수를…….”
마야는 어지럼증을 느끼고 휘청거렸다.
옆에 있던 다담선자와 절혼마녀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그를 부축했다.
그녀들에게도 언장은마의 말은 날벼락이었다.
차라리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비록 내일은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모르지 않는가.
“칼은 누가 든 거죠?”
다담선자의 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한기(寒氣)가 새어 나왔다.
“추혼단이네.”
“추혼단, 남도문. 북검문과도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만 남도문과는 한 하늘 아래서 살 수 없겠군.”
절혼마녀는 한기를 넘어 살기를 드러냈다.
“강남인에게 정보는 곧 돈이에요. 야광이 정보를 돈으로 사는데, 가치에 따라서 액수를 달리하죠. 이번과 같은 경우에는 꽤 큰돈이 나갔을 거예요. 옆 사람이 큰돈을 쥐니 덩달아서 정보를 캐내려고 안간힘을 썼을 테고. 그 시점에서는 모두 걸려들 수밖에 없죠. 문제는 제일 먼저 야광에 고변한 사람이 누구냐는 거예요.”
다담선자는 냉철하게 사태를 분석했다.
“우리가 소식을 전한 건 이백 명. 한데 소문이 나서 오백 명이 됐고. 여기에요. 이백 명 중에 소문을 낸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되죠. 그게 누굴까요?”
믿었던 사람들 중에 간자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간자를 파악해 내기가 오히려 용이해졌다.
언장은마도 용의선상에 올라야 한다. 하오문도 마찬가지다. 그들이라고 남도문 편을 들지 말란 법은 없다. 하오문도 중에 이번 일과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추려놔야 한다.
이백여 명의 마인 쪽은 더 쉽다. 그들 모두가 죽었으니 살아남은 사람이 용의자다.
이들 중에 간자가 있다.
간자는 어떤 식으로든 이백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강남인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게다. 이백여 명이 한 곳을 향해 움직이니 야광이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배반자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다.
하지만 아주 큰 오산을 했다.
마야가 그 정도도 헤아리지 못했겠나.
마야는 소집령을 내리면서 이백여 명에게 일일이 이동 경로를 지정해 주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행로가 같은 사람은 없었다. 마야가 지시한 대로만 움직였다면 종적을 흘리지 않고 감쪽같이 수진포로 모여들 수 있었다.
결국 누군가 고의로 정보를 흘렸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소문이 퍼졌으니 비적, 산적까지 모여들게 되었고, 야광이 모를 리 없고, 추혼단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좀 더 심한 자라면 이백여 명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했을 게다.
누구냐!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게냐!
“시신들은 어떻게 되었소?”
한참 만에 마야가 물었다.
“무더기로 땅에 묻히기도 하고, 불에 태워지기도 하고…….”
언장은마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리고요.”
“살점을 발라서 개, 돼지 사료로 먹이기도 했네.”
“천인공노할 놈들! 그러고도 제 놈들이 정도인이야! 뭐가 정도야! 흥! 앞으로 만나기만 해봐. 고스란히 갚아줄 테니.”
절혼마녀의 눈빛이 변했다.
살기를 뿜어냈을 때, 그녀는 평범한 무인이었다. 손속을 펼치지 않았으니 무공 수준은 가늠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도 특히 두드러질 것이 없었다.
그녀의 눈을 보다 보면 혼백이 빨려들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극성에 이른 탈백섭심공이다.
마야의 도움을 받아서 만공심안까지 가미한 터라, 정력이 굳센 고승일지라도 방심하지 못할 미염공(媚艶功)이 되어버렸다.
이와 유사한 무공으로는 동방천마의 욕금진기가 있다.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두 무공은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욕금진기는 정욕을 자극하고, 탈백섭심공은 망각 상태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을 드러낸다.
절혼마녀가 내뿜은 탈백섭심공은 그녀의 말과 어울려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냈다.
모든 사람이 산산이 부서져 죽어가는 그림이 현실인 양 펼쳐졌다.
언장은마는 어깨를 움츠리며 부르르 떨었다.
공격 대상자가 아닌 그가 이런 느낌을 받는데 정작 공격을 받게 되는 자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다담, 절혼. 위령제(慰靈祭)를 지내야겠어. 준비해 주겠어?”
“그럼요. 준비하고말고요.”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야를 쳐다본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극심한 배반감은 죄책감이 되어 돌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오다가 죽은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욕을 해댔다. 인근에서 오백이나 되는 마인들이 죽어가는 동안 술이나 마시고 잡담이나 늘어놓았다.
죄스러웠다. 자신들만 살아 있는 것이 미안했다.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위령제 준비를 끝내놓았다.
하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을 볼 낯도 없을뿐더러 형식에 지나지 않는 위령제를 백날 지낸들 죽은 사람이 살아올 리도 없었다.
속으로 절규하고 오열하는 것만이 그들을 기리는 일인 듯싶었다.
마야가 뚜벅뚜벅 걸어 제단으로 갔다.
그는 제문(祭文)을 읽지 않았다. 묵념도 하지 않았다. 지전(紙錢)도 태우지 않았다.
준비는 모두 해놨지만 어느 것도 손대지 않았다. 전혀 뜻밖의 행동을 했다.
느닷없이 술병을 집어 들어 제상에 힘껏 내려쳤다.
쨍그렁! 꽈당!
제상이 무너지면서 음식이 쏟아졌다. 술병이 깨지면서 안에 들었던 술이 비산했다.
“살아 있을 때 대접받지 못한 몸, 죽은 뒤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제상을 받는가. 그냥 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 나중에 생각나면 술 한 잔 따라줄 터, 그때나 와서 한 잔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