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00
200
어느 한쪽은 진다.
일반적인 산법에서 볼 때 마야의 말은 분명히 모순이다. 하나 무인의 산법으로 보면 전혀 모순이 아니다.
무공은 무적이 될 수 있게끔 고쳤으니 무적이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수련하라는 뜻이 담겼다.
녹혈마공도 그렇다. 악마적인 수련을 거치지 않고도 시기를 흡수하여 축적시키는 방법을 고안해 주었으니 무적에 가깝다. 나머지는 시마가 노력했어야 한다.
“빌어먹을! 배신자를 찾기는커녕 되레 잡혔으니.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지.”
“방법이 있긴 해?”
“있지. 기다려 봐.”
시마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언제쯤 탈출할까?”
“녹혈마공의 시기는 쇠를 삭힐 수 있으니 늦어도 내일 아침 무렵이면 족쇄를 끊어내지 않겠어요?”
“어떤가, 이번 계획이. 난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마야를 찾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야광, 그들은 의견을 분분히 나눴다.
오백 마인 참살 뒤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약간의 머리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다음 행동은 무엇인가. 하오문을 재촉하는 일일 게고, 하오문이 움직이지 않으면 직접 야광으로 스며드는 무리수를 둘 게다.
그때 그들을 잡으면 된다.
마인은 마인끼리 통하는 법, 마인의 뒤를 은밀히 쫓으면 마야를 잡을 수 있다.
계획은 완전했다.
단지 마야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왕벌과 천멸도 살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독궁뿐인데 독궁이 꿈쩍도 하지 않으니 애간장만 녹았다.
그때, 사천제일룡이 나타났으니 천우신조이지 않나.
그는 마야에게 패했다. 마야와는 한 번의 만남뿐이었지만 손을 쓰지 못했으니 패한 것과 진배없다.
“이번에도 자신없나?”
“정인(正人)으로서는 평생을 가도 마야를 잡을 수 없어요. 하지만 사인(邪人)이 된다면 지금이라도 잡을 수 있죠.”
구환자에게 사천제일룡은 하늘이 때맞춰 내려준 복이었다.
“자자, 정리합시다. 그동안 마인 몇 명 때문에 참 혼란스러웠어요. 온 정신을 북검문에 쏟아도 모자랄 판에 안방을 휘젓고 있는 미꾸라지에게 매달려 있었으니.”
남도문에 무인이 없었다. 이 점은 마야를 잡더라도 반성해야 한다. 쓸 만한 무인이 있었다면 벌써 잡아챘으리라.
무인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제일무신가, 제이무신가, 제삼무신가에 무인들이 득실거린다.
제삼무신가 사람들은 일부 마야와 싸워 죽었지만, 개개인의 뜻에서 이뤄진 싸움일 뿐이지 제삼무신가의 공적 행동은 아니었다.
이 점도 반성해야 한다.
남도문의 진정한 강자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유는 구환자도 모른다. 그의 윗선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정말로 이상하다.
뭔가가 있다.
구환자는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탈출은 내일 아침이오. 다들 가서 추적에 이상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시오.”
2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철사문의 봉문 소식은 남무림의 무인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상조문이나 독조림과는 달리 철사문은 진정한 무인들이 모인 강골 문파였다. 무공에 대한 집념도 남달랐고, 인의협(仁義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봉문했다.
노문주가 금연화에게 일 대 일 승부에서 패배했다니!
우연히 패배한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무너졌다니!
사천제일룡 당화가 철사문에 있었는데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데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소문은 소상했다.
철사문이 문파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공표한 후에 봉문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철사문은 반드시 봉문을 풀 것이오. 금연화의 검법을 능가하는 날. 마야의 음공을 이겨낼 수 있는 날. 무림동도 여러분! 철사문의 치욕을 잊지 말고 분투해 주시오!”
노문주는 침묵을 택했다. 하나 현임 문주는 비통함을 널리 알려 무림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화가 황무연(黃舞煙)으로 왕벌을 칠 할이나 죽여 없앴다는 소식은 가뭄의 단비였다.
죽일 수도 없고, 상대할 수는 더더욱 없고, 오직 쏘이는 수밖에 없는 요물을 일거에 절반 이상이나 처치했다니 이보다 좋은 소식이 어디 있는가.
당화가 철사문에 있었고, 철사문이 봉문하는 동안 손을 쓰지 못했다지만 그는 무림의 신성(新星)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사천제일룡에서 마인 척사에 앞장선 의협의 표본이 된 것이다.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철사문 면전에서 불쑥 나타나 봉문을 시킨 후 다시 사라져 버린 마야.
이번 철사문 사건으로 오백 마인 척살 건은 많이 희석되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다.
북무림에서 남무림으로 내려올 때만 해도 혈귀대주의 죽음 뒤에 모종의 음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혈귀대주를 단문협으로 유인해 죽임으로써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누군가 큰 이득을 얻었을 거라고.
남도문과 북검문의 단순한 싸움은 아니었다.
한데 모든 게 벽에 막혔다.
남무림은 마인들이 날뛰어도 내버려 둔다.
남도문 제일지자라는 만사무불통지는 마인이나 마야에게서 눈을 뗀 지 오래다. 그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북검문도 마찬가지다. 멸신구관에서 빠져나온 삼원로는 북무림으로 돌아간 후, 어떤 근황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 역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뜻이다.
북검문주와 남도문주는 애초부터 쳐다보지 않았다.
무신들 모두가 다른 곳을 본다.
명문 정파나 세가(世家)들도 무신과 행동을 같이한다.
마릉 초원에서 삼천 군웅을 격파했다지만 그중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사천궁이 개인적인 복수심에 찾아왔다가 삼천 군웅의 우두머리가 될 정도였으니.
마(魔)니 정(正)이니 하며 싸우는 것은 마야와 남도문 야광뿐이다.
무신을 상대해도 모자랄 판에 야광을 상대로 거둔 전적은 이승일패.
그중 일패는 아주 뼈저리다.
마인들도 마찬가지다.
마야를 따라 남무림으로 내려올 때는 마야만이 마인들의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저 자신들의 일신 무공이나 완성시켰으면 원도 한도 없을 거라며 조그만 성취에 만족하는 실정이다.
마인들의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 바로 자신, 마야라는 인간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게다.
오백 마인의 척살도 따지고 보면 마야의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조금만 깊이 생각했으면, 한 수만 더 앞을 내다보았다면 읽을 수 있는 수였는데 너무 방심했다.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모두 버리거나, 모두 챙기거나.
‘난 마야야!’
소립파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열이 팔팔 끓어요. 갑자기 왜 이래? 언니! 정신 좀 차려 봐요!”
금연화는 철사문을 다녀온 후부터 심하게 앓았다.
이유는 없었다. 독에 중독되지도 않았고, 몸살 같은 것에 쓰러질 여인도 아니었다.
고열이 아무 이유 없이 발생하여 그녀를 혼수상태로 몰고 갔다.
일령이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발을 동동거리며 연신 이마에 찬 물수건을 얹어주었지만 금연화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풀어지면서 의식을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푹 쉬고 나면 괜찮아져.”
다담선자가 일령을 달랬다.
“정말요?”
“그럼. 나도 저런 적 몇 번 있어.”
“몇 번씩이나요?”
“저 사람이 여간 속을 썩였어야지.”
다담선자는 가벼운 농까지 했다.
금연화의 상태는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소망을 이뤄냈을 때, 탈진 현상이 찾아온다. 금연화처럼 소망이 복수인 경우에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복수가 끝난 이 시점에서 금연화는 계속 마인들과 섞여 지낼 수 있을까? 생사고락을 같이했고, 동고동락한 정이 있으니 쉽게 떨쳐 낼 수 없을 것이다.
마야 곁에 있는 마인들 중 심성이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또 용서받지 못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누가 있나.
그런 점들을 감안하면 더더욱 떠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염려스럽다.
마인을 향해 쏟아지는 세상의 지탄은 사람을 외로움과 고독 속으로 몰아넣는다.
마인으로 태어나 마인으로 자란 사람 같으면 쉽게 적응해 내겠지만 정도인에서 마인으로 낙화한 사람들은 무척 견디기 어려워한다.
마야가 다가와 금연화 옆에 앉았다.
“궁왕은 내가 맡지.”
“…….”
“당신 같은 사람은 마인 생활이 안 맞아. 끝없이 쫓기고 잠을 편히 자나, 밥을 편히 먹나.”
“…….”
“자하부로는 돌아가지 못하겠지. 검을 버리고, 신분도 바꾸고 그리 살아. 우린 오늘 떠나. 아픈 사람 버려두고 가는 것 같아서 안됐지만…… 우리가 떠나면 바로 떠나도록 해.”
마야가 일어났다.
금연화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니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정말 이대로 떠나도 돼요?”
일령은 금연화가 걱정되는지 연신 그녀가 누워 있는 곳을 살폈다.
“사람마다 갈 길이 다른 거거든.”
절혼마녀가 답답한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금연화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낙화향 창기로 살고 있으리라. 그녀를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마야를 만나지도 못했으리라.
이제 그녀는 남고 자신은 떠난다.
모두 떠날 준비를 마쳤을 때, 금연화가 창백한 안색으로 걸어왔다.
“나도 가. 두 번 다시 그런 말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딱히 누구에게 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마야를 쳐다봤다.
“정말로 궁왕을 칠 건가?”
수검이 불안한지 물어왔다.
무신을 치는 것은 몇몇 문파를 봉문시키거나 몰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놈의 가슴에 화살을 박은 사람이니까.”
마야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는 속으로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궁왕이나 만사무불통지가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가지 않을 수 없어.’
무신들이 쳐다보는 곳, 그곳은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마군, 유계, 무신들…… 이들의 역학관계가 중심일 것이다.
“철사문은 우리만으로 가능했지만…….”
“쉿!”
마야는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저 멀리…… 급하게 달려오는 인영이 보였다.
사사사삭!
앞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숨이 턱에 닿는 것을 애써 참으며 달려오고 있다.
혈유다. 혈유의 신법은 고무가 튕기는 듯한 탄력감이 들기 때문에 쉽게 파악해 낼 수 있다.
“도주!”
천멸도주가 사태를 파악하고 손을 쳐들었다.
파아아아……!
천멸도 살수들이 쫙 흩어지며 길을 열어주었다.
마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느 방향에서든 열네 겹의 포위를 뚫어야만 되도록 진세를 구축했다.
“마, 마야!”
혈유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마야를 불렀다.
그의 전신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다리에도 일검을 맞았는지 제대로 신법을 펼쳐 내지 못하고 심하게 절룩거렸다.
마도와 수검은 다급한 눈으로 마야를 쳐다봤다.
마야는 냉정했다. 자신의 판단에 수많은 목숨이 달려 있다는 점을 새삼 자각했다.
이번 일은 잘한 것일까, 잘못한 것일까.
혈유와 시마를 괜히 제이무신가로 보낸 건 아닐까.
“도주!”
천멸도주가 의아한 눈으로 마야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의는 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혈유가 너무 위급해 보였다.
“휘윅!”
사사사사사!
천멸도주가 휘파람을 불자 살수들이 신속히 움직여 혈유를 호위했다. 그리고 혈유가 속도에 맞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마야는 혈유가 지척에 왔을 때에서야 그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혈유!”
“제길! 가자마자 잡혔지 뭐야. 미안…….”
“됐다. 잘했어.”
“잘…… 해?”
“시마와 언장은마는?”
“어, 언장…… 은마? 어떻게 언장은마가 같이 있는 것까지?”
“시간이 없다. 어디 있어?”
“여기서 오 리 밖 대숲에.”
마야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를 따르는 마인들, 천멸도 살수들의 시선이 마야에게 집중되었다.
마야는 뜻밖의 말을 했다.
“오 리 밖에 추혼단과 야광이 있다. 그들을 남도문에서 끌어내는 데 성공했는데…… 어떤가. 오백 마인의 복수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
“뭐, 뭐! 그럼 내, 내가…… 시마와 내가 미끼…… 였던 거야!”
혈유가 눈을 부릅떴다.
“독궁은 왔나?”
혈유는 귀신을 본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사천제일룡이 나를 상대하겠군. 역시 악연이었어.”
마인들은 몇 마디 대화에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해 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혈유와 시마가 만사무불통지를 어떻게 감시하나. 그들이 감시할 정도라면 암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남도문이 그토록 허술한 곳인가.
언장은마도 그렇다. 언장은마는 지둔술은 뛰어나지만 무공은 그리 고강한 편이 못 된다. 그런 사람에게 배신자의 척결을 은연중에 강권했으니 일이 잘될 리 있나.
“한 번만 더 우릴 이용하면 궁주고 뭐고 때려죽일 거야!”
혈유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는 벌써 대숲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가!”
혈귀대주의 복수에 이어 또 다른 복수의 명령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