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02
202
“컥!”
“헉!”
헛바람 소리도 들렸다. 몇몇 무인들은 은신술을 깨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 말은 들었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모습을 드러낸 자 중에 한 명이 몹시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어가며 말했다.
그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눈가는 잔경련이 끊이지 않고 떨려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토도 치미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공을 흩어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로(氣路)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으며, 장기까지 건드렸으니 내상(內傷)을 입지 않을 수 없다.
외추포살진을 형성한 무인들은 모두 똑같은 공격을 당했지만 일부는 모습을 드러냈고, 일부는 아직도 숨어 있다.
아직도 모습을 숨기고 있는 자들은 생각보다 내공이 깊은 자들이다. 하나 그들 역시 깊고 얕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상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게다.
무공에 층차가 있다.
집법에 강한 자와 약한 자를 섞어놓다니. 비등한 자들끼리 엮어놓아야 공격의 효율성이 최대한으로 보장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 중에 상식인데, 제이무신가의 진법에 이토록 커다란 실수가 숨어 있다니 말이 되는가.
약자와 강자가 혼합된 것이 외추포살진만의 특성인가, 아니면 정말로 허점인가.
보통 사람들은 제이무신가에서 펼친 진법이니만치 외추포살진의 특성이라고 볼 것이다. 하지만 소립파는 후자, 허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실하게 단정했다.
이건 마치 비 오는 날, 마당 한가운데에 그릇을 내다놓은 것과 진배없다. 시간이 흘러서, 세월이 지나서 빈 그릇이 빗물로 가득 채워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외추포살진을 펼친 자들 중에는 그릇을 가득 채운 자도 있고, 아직 채우지 못한 자도 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외추포살진은 미완성이다.
하면 만사무불통지는 왜 완성되지도 않은 진을 바깥 세상에 내놓았는가. 아니다.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야 한다. 제이무신가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 삼십여 년인데 그동안 진법 하나 완성하지 못했다는 게 믿어지는가.
제이무신가에는 완벽한 외추포살진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음공으로 타격을 줄 수 없는 강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미완성의 외추포살진을 펼친 자들도 음공을 받아냈는데, 완벽한 외추포살진이라면 더더욱 견뎌낼 게다.
단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마야를 잡는 데 완벽한 외추포살진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완성되지 않은 외추포살진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다.
믿어야 한다. 만사무불통지의 판단이므로.
“후후후후! 추태를 보였소이다.”
머리를 길게 길러 허리까지 늘여뜨린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열여덟 명의 목숨을 한 손에 움켜쥐고 좌지우지하는 자, 외추포살진을 움직이는 중추다.
“이놈의 벌들 좀 치워주시겠소이까? 쯧! 명색이 만물의 영장인데 한낱 미물에게 위협이나 당하고 있으니.”
사내는 침착했다. 당황하는 기색은 조금도 엿볼 수 없었다.
“물러서라!”
소립파는 사람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쏴아아아아……!
왕벌은 말귀를 알아들었다.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사방으로 흩어져 숨어들었다.
“후후후! 인간의 음성 속에 벌들의 말을 섞어놓을 수 있다니, 이거야 말로 기문(奇聞) 중에 기문이요. 정녕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을 거요.”
사내는 마야가 벌을 움직였다는 사실보다도 인간의 언어와 벌의 언어를 혼합시켰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다.
뛰어난 자이거나, 특이한 자이거나.
소립파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건 그렇고…….”
장발 사내는 여유있게 팔짱까지 꼈다.
“얌전히 따라갈 텐가, 피곤하게 손발을 움직여야 할까.”
사내는 마치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왕벌에게 위협당했고, 마야의 음공에 외추포살진이 흔들렸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듯했다.
“자신있나?”
소립파도 사내의 태도를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만사무불통지가 보낸 자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말은 십중팔구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한다.
“산목숨 데려가는 건 자신없지만 죽은 목숨 데려가는 건 일도 아니지.”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동귀어진(同歸於盡).’
마야는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이토록 자신있는 이유는.”
사내는 말을 하다 말고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숨어 있던 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일어섰다.
그들은 병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모두가 빈손이었다. 싸울 생각이 없는 듯 무방비 상태로 일어선 그들은 일제히 요대(腰帶)를 풀었고, 장삼을 활짝 펼쳐 보였다.
열여덟 명의 가슴에서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언뜻 보면 가슴을 가리는 갑옷 종류인 것 같은데, 달리 보면 암기의 일종으로 보이기도 한다.
“종액(終液)이라 부르는 것이오.”
‘종액?’
소립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잡학다식(雜學多識)으로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다는 그였지만 종액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간단히 말하면 폭약의 일종으로, 한 사람이 능히 방원 삼십여 장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보면 되겠지.”
“음!”
소립파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장발 사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빠져나갈 공간이 없다. 전(前) 팔괘(八卦)만 터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후(後) 십방(十方)까지 터진다면 대라신선일지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만사무불통지의 작품이니까.
그야말로 음공과 왕벌의 공격을 완전히 무능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최상의 수법이다.
장발사내가 말했다.
“죽겠다면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고……. 만약 순순히 따라가겠다면…… 후후! 가기 전에 그대의 능력을 보고 싶군. 일견후즉파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도전이었다.
2
장발사내는 야광 지자들에게 뒤지지 않는 빼어난 지략가다. 다른 점은 몰라도 진법 하나만큼은 자신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리라.
그가 제이무신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제삼무신가 무인들이 활을 들고 나왔듯이 제이무신가 무인들은 지략이 뛰어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남도문의 머리라는 야광보다 제이무신가 무인들이 더 뛰어날 수도 있다.
이런 추측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남도문은 엄밀히 말하면 제일무신가, 제이무신가, 제삼무신가가 주축이다.
그들이 삼각에 위치해 있고, 그들 사이를 연계해 주고 심부름해 주는 곳이 남도문 여타 기관들이다.
명색이 남도문(南刀門)인데, 외장(外莊) 삼첨(三尖)이라는 철궁대, 형옥대, 추혼단은 도를 사용하지 않는다. 철궁대는 활을 사용하고, 형옥대와 추혼단은 검을 쓴다.
도(刀)는 누가 쓰는가.
제일무신가다. 그들이 사용하는 병기가 도다.
한데 그들은 외장은 물론이고 내원(內院), 예하조직 그 어떤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
분권(分權)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남도문을 안다고 할 수 없으리라.
장발사내의 뜻은 간명하게 요약된다.
마야가 생포되지 않으려고 저항하면 이 자리에서 자폭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생포되겠다고 약조해 줄 경우에는 외추포살진을 시험해 보고 싶단다.
일방적으로 장발사내에게만 유리한 조건이다.
“웃기네. 마인에게 약조를 내걸다니. 약조 같은 걸 지키는 사람이었다면 마인이라는 말도 듣지 않았을걸? 안 그래?”
“그대는 마야. 마인의 하늘이라는…….”
“후후후!”
이번에는 소립파가 웃었다. 야수처럼 눈빛을 번뜩였다.
그의 웃음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는다면 정상이다. 의도한 것이니까. 마인에게 약조 같은 것은 무의미하다는 뜻을 읽었다면 옳게 판단한 거다. 잔혹함을 실은 살소(殺笑)였으니까.
장발사내는 지존(至尊)의 품위를 예상했을 터이지만 이제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마야의 말은 중요치 않다.
그가 생포되겠다고 약조를 하더라도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자폭할 것인가, 외추포살진을 펼칠 것인가 하는 판단은 순전히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초(初) 팔(八) 개(開)!”
그의 입에서 진을 여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튀어나왔다.
장발사내는 종액이라는 폭약을 사용하지 않고 진을 열었다. 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마야의 기이한 능력과 부딪쳐 보겠다는 뜻이다.
뜻에 답해줘야 한다.
왕벌을 사용하면 손쉽게 진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상대가 종액을 포기했으니 자신도 왕벌은 접어둬야 한다.
촤아아악!
좌우에서 창 두 자루가 쏜살같이 짓쳐들었다.
변화가 무척 빠르고 현란하다. 몸을 어느 쪽으로 빼내든 창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갈!”
소립파는 일갈을 터뜨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내딛어 왼쪽에서 쏘아져 오는 창을 피해냈다. 동시에 손을 뻗어 오른쪽에서 찔러오는 창을 잡아갔다.
“훗!”
“하!”
두 사내는 의미 모를 탄성을 토해내며 옆으로 미끄러져 갔다.
촤아아아!
현란한 창술 뒤를 이은 것은 강맹한 기운이다. 남과 북, 앞과 뒤에서 망나니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대부(大斧) 두 자루가 날아왔다. 한 자루는 위에서 아래로 쪼개져 왔고, 또 한 자루는 땅에서 솟구쳐 하늘을 쪼갰다.
먼저와 같은 이인일조(二人一助) 공격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물러서는 창끝이 아직도 그를 노리고 있다는 점이다. 약간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물러서던 창끝이 돌연 앞으로 치달려 나오리라.
“갈!”
소립파는 또 한 번 일갈을 터뜨렸다.
그의 음성에는 강력한 음파가 내포되어 있다.
공기를 타고 흐른 소리는 상대의 고막을 뚫고 들어가 기혈을 격탕시킨다. 양손에 운집한 진기는 태반이 흩어질 것이며, 중병을 앓다가 일어선 사람처럼 손발이 어지러워진다.
공격 초반에 일으킨 기세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미미한 일이지만 대단히 중요하여 치명적인 자해(自害) 요소가 되기도 한다. 자칫 초반 기세를 이기지 못하게 되면 몸이 병기에 딸려 들어가는 현상이 일어난다.
출문(出門)을 허가받은 무인에게서는 천에 하나도 구경하기 힘든 현상이니,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치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무인이 되어가지고 병기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 그런 무공으로 누구와 싸우려고 하는가.
한데 소립파와 맞선 무인들은 진기가 끊겨 병기조차 장악하지 못하는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외추포살진 전체를 향해 일갈을 내뱉었을 때도 내상을 입은 자가 나왔는데, 하물며 공격자만을 집중적으로 강타한 일갈임에야.
실제로 그런 일이 없기를, 병기에 딸려가는 현상만 일어나지 않기를 조심할 뿐이다.
소립파가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이자마자 대부 두 자루가 오른쪽 옆으로 엇비켜 지나갔다.
“갈!”
소립파는 세 번째 일갈을 내질렀다.
공격해 왔던 무인들이 진기를 수습하는 순간이었다.
대부는 창과는 다른 중병(重兵)이다. 힘을 쓰든 진기를 사용하든 마땅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끌어올리던 진기가 이번 일갈로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꽝!
대부 한 자루가 거칠게 땅을 후려쳤다. 그토록 치욕스럽게 여기던 일이 기어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와 일조를 이룬 자는 병기를 놓쳐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휘이이잉!
대부가 무서운 속도로 솟구치다가 뚝 떨어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대부를 놓친 사내는 물러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섰다. 대부를 절반이나 땅속에 박아 넣은 무인도 굽어진 허리와 무릎을 펴지 못했다.
그들은 죽은 목숨이다. 누가 봐도 죽었다. 마야가 한 걸음만 다가와 마수를 뻗쳤다면 살아날 가망이 없다.
“음…… 공. 말은 들었지만…… 대단한 위력이군. 이제 막 시작했는데 깨져 버렸으니.”
장발사내도 이렇게까지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기회를 다시 달라면 줄 수도 있고.”
장발사내는 뜻밖에도 순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으로서는 귀하의 음공을 상대할 방법이 없으니 두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을 다시 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게요. 음공이라…… 음공. 하하하하! 음공을 들고 나온 고수가 있을 줄이야.”
이상한 일이다. 장발사내는 패배를 자인했다. 그의 말에는 자조적인 뜻까지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나 다른 무인들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가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렇게 맞을 줄이야. 우리로서는 일초지적이 안 된다기에 설마 했거늘. 후후후!”
이들은 패배를 알고 있었다. 확인을 했을 뿐이다.
정작 무서운 사람은 만사무불통지다.
호채마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마야는 종이호랑이나 진배없다.
그가 사용하는 진기는 일반 무인들의 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경략(經略)을 사용하지 않는다. 혈도(穴道)라는 개념도 미약하다. 당연히 내가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멸신구관 덕분에 자오법신이 풀린 지금, 그의 경략은 자유롭다. 다른 무인들처럼 진기를 끌어올릴 수도 있고, 적공(積功)을 할 수도 있다.
하나 남이 먼저 간 길을 한참 뒤늦게 쫓아간다면 큰 성과를 보기 힘들다. 그것이 내공과 같이 수십 년 적공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