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1
21
사아아악……!
물속에 있는 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배를 타고 있어서 물속 광경을 볼 수는 없지만, 떠난다는 느낌만은 분명히 든다.
확실히 보통 수부들이 아니다. 북무림 무인들과 천비대의 무공은 쉽게 입에 올릴 것이 아닌데, 수부들의 수공 앞에서 쩔쩔맨다. 물속이 아니라 땅에서라면 상황이 정반대가 되었겠지만.
강변에서 불화살을 쏘아대던 자들도 철수한다.
그들 모습은 육안으로 확인된다.
한쪽에 백여 명씩, 이백여 명.
“겨, 겨우 저 정도로…….”
일령은 인원이 의외로 적은 것에 놀랐다.
“연환노(連環弩)야. 일시에 다섯 대까지 쏘아낼 수 있어.”
절혼마녀가 담담히 말했다. 하나 그렇게 말하는 절혼마녀 자신도 속으로는 무척 놀라고 있었다.
수중 전투를 감행한 자들이 오십여 명이다. 거기에 강변에 있는 자들을 더하면 이백오십여 명이나 된다. 그들의 수공이나 궁술은 예사롭지 않다.
이 정도라면 문파 이름을 걸 수도 있지 않은가.
“아까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되네. 천비대주는 지금 상황을 예측했을 거야.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집단이, 그것도 천비대가 알지 못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걸. 호호호! 대주가 욕심을 부렸네. 우리만 잡을 것이지. 이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잡으려다 뒷덜미를 채였어.”
여기저기서 수중전을 벌이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의 대부분이 북무림 무인들이었지만, 일부 천비대원의 모습도 비쳤다.
그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격으로 멀어져 가는 비조선을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반각이라는 말을 허투루 들었군. 싸움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소립파가 찬물을 끼얹었다.
***
“대단한 자군. 허를 찔렸어. 수묘인…… 상소(上所)에서 합류할 줄 알았는데 오달(悟達)이라. 한 발 앞지르는군.”
“파암검수에게서 적선서를 거둬왔습니다. 계집들이 입던 옷은 길가에 흩어져 있었고, 팔두마차는 텅 빈 채 발견되었습니다.”
시체가 말하는 듯 정이라고는 조금도 담겨져 있지 않은 음성이었다.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마치 날 선 검을 대하는 듯했다.
만박선생과 함께 천비대주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네 명의 사내, 그들이다.
“마부와 여자는 사라졌겠지? 천비이조는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을 테고.”
“그렇습니다.”
“후후! 적선서에 대한 대비책이 이거였나? 양동책(兩動策)이라니. 수묘인과 머리 싸움을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 그나저나…… 제팔역(第八域)을 지키는 문파가 청호방(靑虎幇)인가?”
문약한 서생은 바람결에 묻어오는 혈향(血香)을 음미했다.
“그렇습니다.”
“청호방이 많이 컸군. 천비대 조장의 말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데 자존심을 따지다니. 이번 일은 파암검수의 잘못이 아냐. 파암검수가 명령권을 가지고 지휘했다면 수묘인까지 잡을 수 있는 호기(好機)였는데 아쉽군.”
“천비대주께서 말씀하신 게 이거였군요. 천라지망이 중첩되면 해가 된다는.”
“파암에게는 삼첨진(三尖陣)이 있었어. 수전(水戰)에서 화살은 강력한 무기이지만 정예 무인들이 펼치는 삼첨진보다는 못하지. 수묘인이 사용한 방법이래야 불화살에 화약이 고작이었는데…… 아쉽군, 아쉬워. 쯔쯔쯧!”
“놈들은 적혈구를 향해서 신나게 가고 있을 것, 지금이라도 움직이셔야 합니다.”
“아니. 그자들은 상소에 머물 거야. 찢어졌던 그물이 복구된 것을 눈치채지 못할 자가 아냐. 한 박자 늦추겠지. 지금은 바로 상소로 가야 돼. 잠사검귀(潛死劍鬼)는?”
“즉각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한데, 상소가 확실하신지……?”
“목이라도 걸까?”
“황감한 말씀. 너무 단정적인 말씀이라서…….”
“상소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이 있었어. 그래서 난 수묘인이 상소에서 합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허를 찔렸어. 일부러 움직임을 드러낸 거야. 천비대가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게끔. 솔직히 난 수묘인이 머릴 썼으니 파암 정도로는 잡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수묘인이 나타날 곳은 상소. 거기서부터 나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멋지게 속아 넘어간 거지.”
“그렇다면 상소에 들르지 않을 가능성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들러. 우리가 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자라면 이대로 적혈구를 간다는 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테니 틀림없이 중간에서 옆길로 샐 거야. 지금 당장은 차라리 육지로 가는 것이 계속 가는 것보다 나은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육로를 선택하지는 않겠지. 그건 여우를 피하자고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우행(愚行)이니까. 결국 중간에서 잠시 머무는 방법을 택하겠지. 그곳이 상소. 천비대주는 적혈구에 계신가?”
“예, 적혈구에 당도하셨다는 전서를 받았습니다.”
“그럼 안심이군. 전서를 보내. 적혈구를 완벽하게 봉쇄하시도록. 궁극적으로 그자가 탈출할 통로는 강이 확실하니까. 이번처럼 청호방이 날뛰어서는 곤란하겠지?”
“상소에서 잡을 게 아니었습니까?”
“궁극적인 탈출로는 강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두 번씩 말하게 하는군. 그자가 죽을 걸 빤히 알면서 잠사검귀를 상대할 것 같아? 잠사검귀는 그자를 강으로 내치는 역할만 할 거야. 나도 좋아. 강에서 패했으니 강에서 설욕해야지.”
“청호방과 천비대를 합하면 천 명이 넘습니다. 차라리 천비대만 나서는 것이…….”
“부족해. 이건 무공이나 인원수 싸움이 아냐. 찰나의 틈을 노리는 머리 싸움이지. 천비대주께 전해. 양쪽 강안에 인위산고(因爲山高: 산이 높아서), 소이안야불능일출(所以雁也不能溢出: 기러기도 넘지 못한다)이라는 금문혼진(禁門混陣)을 펼치고, 장강과 합류하는 곳에는 밀적산진(密迹山陣)을 네 겹으로 깔아놓아야 한다고. 천비십조도 가담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까지!”
“그자를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해? 조금도 넘치지 않아.”
“금문혼진과 밀적산진을 펼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둘 건 없어. 내일 아침까지만 완성되면 되니까. 그자가 강으로 도주하면 우리는 뒤를 봉쇄해야 돼. 난검진(亂劍陣)이 딱 적당하겠어. 수련은 잘되어 있지?”
“걱정 마십시오. 눈 감고도 펼칠 수 있습니다. 금문혼진, 밀적산진, 난검진. 공기마저 가둘 수 있겠군요.”
“가두는 건 중요하지 않아. 잡는 게 중요하지.”
만박선생은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
상소(上所).
고루쌍마는 적혈구를 지척에 둔 작은 마을에서 배를 멈췄다.
이대로 반 시진만 내달리면 적혈구다.
장타수와 장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이만 오천 리 장강을 끼고 발달된 주요 도읍이 목전에 있다.
“반각밖에 시간이 없다면서 왜 멈춰?”
금연화가 직강 마을처럼 몇 호 되지 않는 촌락을 훑어보며 말했다.
“이대로 가면 살아날 길이 없다. 방금 전에는 장강 수비 무인들과 천비대 간에 명령 체제가 수립되지 않아서 일사불란한 대응을 못했지만, 적혈구는 사정이 달라. 완벽한 포위망이 구축되어 있을 테니 어쭙잖은 공격은 통하지 않아.”
“훗! 본 듯이 말하네.”
절혼마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걸어가려고? 걸어가면 더 위험할 텐데.”
금연화는 절혼마녀의 말을 귓가로 흘리며 물었다.
“배를 탄다. 그전에 할 일이 있지.”
소립파는 마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정말 고루쌍마 맞아요?”
절혼마녀는 소립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고루쌍마가 소립파의 뒤를 바짝 따르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고루쌍마는 소립파의 수하로 생각되는 사람, 그들과 말을 하다 보면 소립파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될 것이다.
“흐흐흐! 계집…… 왜? 안겨보고 싶냐?”
“호호호! 전 창기예요. 몰랐어요? 가격만 맞으면 누구 품인들 못 안길까.”
“관둬라, 관둬. 독초를 모르고 먹는 놈도 병신이지만, 알면서도 먹는 놈은 더 병신이야.”
“제가 독초란 말씀이신데…… 왜 그렇죠? 전 돈밖에 원하는 게 없는데.”
“절혼마녀가 돈밖에 모르는 여자라면 세상이 뒤집어지지.”
절혼마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녀는 어떻게든 고루쌍마의 흉심을 끌어내 보려고 노력했다. 세상에 악명을 널리 떨친 고루쌍마라면 이 정도의 입질에도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 것이라 생각했다.
고루쌍마는 일절 흉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건 뭔가? 낙화향 동방을 찾은 손님들 중에서도 점잖은 편에 속하지 않은가.
창기라는 점도 밝혔다. 돈만 주면 안을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래도 욕념을 일으키지 않는다. 절혼마녀라는 명성 따위는 고루쌍마를 위협하지 못한다.
지극히 절제된 자제심.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시마도 그랬어. 그렇게 같이 있으면서도 마두다운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 내가 공격하기 전까지는.’
마두는 흉심을 숨기지 못하는 법인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절혼마녀는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문파 이름이 뭐죠?”
“문파? 뭔 문파?”
“이제는 좋든 싫든 한 배를 탔잖아요. 이젠 우리도 북무림에는 발을 들여놓기 힘들게 됐는데, 그만한 것쯤은 말해줄 수 있지 않나요?”
“글쎄, 뭔 문파냐니까!”
“고루쌍마께서 몸담고 있는 문파요.”
“우리가 몸을 담아? 썩을 년, 보자보자 하니까 우릴 개떡같이 보네. 세상에 어떤 놈이 우릴 거둬. 우리가 거둔다고 거둬질 놈들이야!”
‘아닌가? 아냐, 이 정도 인원이 동원될 정도라면 체계적인 명령 계통이 있어야 돼. 분명히 문파를 형성하고 있어.’
고루쌍마가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계집아, 솔직히 말해봐. 알고 싶은 게 뭐야? 이런 몰골이 좋아서 찰떡같이 붙어 있을 리는 없고. 뭐야? 말해봐.”
“저 사람요. 소립파. 저 사람이 선배들을 거둔 게 아닌가요?”
“크크크!”
“낄낄! 낄낄낄!”
고루쌍마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래서…… 그래서…… 낄낄! 낄낄낄! 그래서 그런 걸 물은 거냐? 문파 명이 뭐냐고?”
“그래요.”
“저놈이 문주고 우린 졸개고? 크크크!”
‘저놈? 이게 도대체…….’
소립파는 고루쌍마에게 하대를 했다. 고루쌍마는 하대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고, 명령대로 행동했다.
그럼 이들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고루쌍마가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었다.
“우린 저놈한테 큰 은혜를 입었어. 우릴 죽이려고 달려드는 놈들이 한둘이어야지. 삼십 년 전만 해도 봄날이었는데…… 무림이 북무림과 남무림으로 양분된 후에도 한동안은 잘 피해 다녔는데, 몰골이 이렇다 보니 눈에도 자주 띄고…… 개떡 같은 놈들이 달려드는 거야.”
“죽다 살았지. 저놈이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황천길로 들어섰을 거야. 완전히 걸레가 됐었으니까.”
“그럼 보은 차원에서……?”
“마도인으로 낙인찍혔어도 신의는 있어. 너무 고마워서 어떤 일이든 딱 한 번 도와준다고 했는데, 저놈이 그걸 써먹은 거야. 빌어먹을 놈. 하필이면 저승길에 동행하자는 건 뭐야.”
“시마도 그런가요?”
“시마뿐이야? 저놈에게 목숨을 건진 작자가 백은 넘지?”
“백이 뭐야? 아까 못 봤어? 족히 이백은 되어 보이던데.”
‘그럼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배를 젓고, 화통을 쏘아 올리고…… 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신호에 따라 불화살을 쏘아대고. 그런 일들이 아귀가 맞아떨어져 오 대 일의 열세를, 그것도 정예 무인들과의 싸움을 이겨낼 수 있다니.
“말씀을 들어보니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 구함을 받은 것 같은데, 그럼 저 사람이 의원인가요?”
“의원? 크크크! 의원은 무슨 의원. 두통에도 술을 먹이고 배가 갈라져 창자가 튀어나와도 술만 먹이는데 그게 의원인가? 크크크!”
절혼마녀는 고루쌍마의 말을 들으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랬어! 시마에게도 술만 먹였어. 그럼 그때 시마도…….’
제9장 불능당(不能?) ― 막을 수 없다
1
세 여인은 소립파를 뒤좇아서 중원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만 마을로 들어섰다. 순간,
스스스…… 파아아……!
마을 곳곳에서 무형의 살기가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평범한 마을은 아니네.”
“주루 하나, 집 한 채, 그리고 동방. 지불한 대가가 만만치 않지만 더 큰 걸 얻었네요. 고마워요.”
“호호호! 뭐가 고마워?”
“동방에 기울인 심혈이 어떤 건지 잘 아는데, 그걸 내놓으셨잖아요.”
“누가 그래? 내놨다고?”
“예?”
“맞아. 지금은 내놨지. 그러니 되찾아야지.”
“예에?”
“저 사람, 내 거라고 그랬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해 볼 생각이야. 성공하면 동방도 되찾고, 동생이 준 주루와 집도 내 것이 되고. 호호호!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되잖아. 안 그래?”
“그, 그런가요? 호호호!”
절혼마녀와 금연화는 전신을 살기 앞에 드러낸 채 마음 편히 웃고 떠들었다.
소립파는 어떤지 몰라도 고루쌍마 정도라면 폐부를 찢어놓을 것 같은 살기를 감지하지 못할 리 없다. 그들이 태연히 걷고 있다는 것은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니 심력을 소모시킬 필요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식이 되었다.
본인의 감각이나 기감으로 판단하지 않고 소립파의 행동에 따라서 반응하게 되었다. 상대가 적이어서 기습이라도 가해오는 날에는 무방비 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데,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소립파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허름한 집으로 들어섰다.
세 여인은 소립파를 따라 들어서려다 우뚝 멈춰 섰다.
느낌이 이상하다. 왠지 집 안으로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당장 목이 잘려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허름한 토담집은 볼품없다. 사십여 평 정도 되는 마당도 아무 이상 없다. 오래전부터 사용되지 않은 돼지 축사가 정면에 있고, 그 옆에는 닭장과 토끼장이 있다.
어디를 살펴봐도 보통 시골집에 불과하다.
‘살수가 숨어 있어!’
‘무서운 자! 일검필살(一劍必殺). 단 일 초에 승부가 판가름 나.’
절혼마녀와 금연화는 진기를 끌어올렸다.
일령은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장기인 은신술을 펼쳐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게다. 누군가가 공격을 가해온다면 그녀의 검부터 물리쳐야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