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13
213
하나 추혼단이 몰살당했다면…… 그들을 죽인 호채마와 손을 잡은 만사무불통지의 입장은 어떻게 되나. 남도문주의 결단 여하에 따라서는, 아니, 남무림 무인들이 공론으로 몰아붙이면 만사무불통지는 마인으로 낙인찍혀 내처질 수 있다.
“내가 잡혀올 때, 수하들과 추혼단이 한판 붙었소.”
“추혼단이 몰살당했네. 호채마는 염려 말게. 한 명도 상하지 않았으니까. 손에 잡았던 시마와 언장은마까지 놓치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개망신당했지.”
그럴 줄 알았다. 수하들을 믿었는데, 잘 해냈다. 사천제일룡이 걱정이었는데 정말 잘했다.
“그런데도 저와…….”
“마군이 아니라도 좋네. 누군가 일을 꾸몄고, 그 일은 자네나 콘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것일세. 무림에 파란을 일으키는 자네들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거지. 알겠나? 일의 중대성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이 무림이 무너지고 말걸세. 허허허! 난들 좋아서 자네와 손을 잡겠나.”
마야는 씩 웃었다.
만사무불통지에게서 기감(氣感)을 느꼈다.
살기와 따뜻한 온기가 요동친다. 한편으로 끌어들이자는 마음과 지금 당장 제거해야 한다는 마음이 반반이다.
온화해 보이지만,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 죽음이 내려진다. 호채마를 죽이겠다는 말을 단순한 위협으로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만사무불통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호승심(好勝心)이 치밀지만 모험인 것만은 틀림없다.
머릿속에 떠오른 무공들…… 잡혀 오면서 참오를 거듭한 무공들…… 자신의 모든 능력을 하나로 귀일시킨 무봉(無峯)의 절학을 수련해야 한다.
지금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호채마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여 마인의 개념을 다시 정해야 한다. 무공이 강렬하다고, 살기가 지나치다고 무조건 마인으로 낙인찍히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천멸도 역시 재도약을 해야 한다.
“살아서 누명을 벗지 못하시더니 한 줌 재가 되어 허공에 흩뿌려진 후에도 그놈의 누명은 여전히 따라붙는군요. 참 불쌍하신 분입니다. 좋습니다. 제가 선사의 누명을 벗겨드리죠. 그러나 선사의 누명이 벗겨진 후에라도 혈귀대주의 목숨 값은 반드시 받겠습니다.”
“좋도록 하게.”
만사무불통지와 마야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2
봉(封).
굳게 닫힌 철문과 봉문(封門)을 알리는 큼지막한 글자는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려준다.
강성했었다. 무적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활짝 펼쳐진 대로를 걷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나 지금은 봉문을 한 채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재기를 기약한다.
“열어.”
“네?”
“…….”
“저, 이곳은 봉문을 해서…….”
“열어.”
산주는 철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요즘 콘은 많이 참고 있다.
수가 있기 전에는 두 번 말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는데, 이제는 몇 마디까지는 용서해 준다.
철대문은 웅장했다. 우마차가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모두 현철(玄鐵)이다.
‘두께가 두 뼘을 넘는 것 같군. 이걸 무슨 수로 열라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열어야 한다. 문을 열지 못하면 콘의 칼이 그의 배를 쑤신다.
철문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느낌이 온다. 완력으로는 열 수 없다. 쇠를 무 자르듯 잘라대는 보검을 지니고 있어도 현철로 주조된 철문만은 열지 못한다.
문 열라고 소리쳐 볼까? 어림도 없다. 봉문이 어린아이 장난도 아니고 고함 몇 번에 열릴 리 없다.
산주는 철문 옆 담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문을 열 수 없으면 담이라도 넘어야 한다.
“음……!”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담은 수월히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높이는 상당하지만 벽돌을 쌓아서 만든 담이라 발 디딜 곳이 많다. 대체로 이런 담은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서 쌓아놓은 곳이지 도둑이나 침입자를 막기 위해 쌓은 담이 아니다.
담은 넘기 쉽다. 하나 담장 너머에 있는 자들은 상대하기 어렵다.
상처입은 호랑이, 철사문도(鐵獅門徒).
현음철갑(玄陰鐵甲)으로 전신을 감쌌고, 빠른 말로 기동력까지 갖춘 자들과 싸우는 건 상당히 힘들다.
하나 망설인다고 문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는 법.
‘항상 이런 식이야.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고. 아무래도 남만으로 고이 돌아가기는 틀렸어.’
산주는 몸을 띄워 벽에 매달렸다.
쒜에엑! 까앙!
다짜고짜 날아온 언월도(偃月刀)가 벽을 후려치며 파란 불똥을 튀겨냈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게 머리를 숙였다면 머리 잃은 몸뚱이만 걸어다닐 뻔했다.
쒜엑! 쒜에엑!
언월도 한 자루가 다리를 휩쓸어 온다. 다른 언월도는 등 뒤에서 허리를 후려친다.
산주는 신형을 앞으로 튕겨냈다.
언월도가 바지 아랫단을 잘라냈다. 등 뒤의 언월도는 짜릿한 전율을 안겨주었다.
‘스무 명!’
어림짐작이다. 독 안의 쥐처럼 담벼락에 몰아세워 놓고 사방에서 언월도를 후려치는 무인이 거의 이십여 명쯤 된다.
빠져나갈 길이 막막하다.
산주의 검은 현음철갑을 뚫지 못했다. 불똥은 일으키는 데 흠집조차 남지 않는다.
지독히 단단한 갑옷이다.
이걸 어떻게 뚫어야 하나.
유일한 구멍이 보여 검을 찔러 넣었다. 눈이다. 눈구멍이다. 하나 검이 들어가지 않는다. 너무 작다.
쒜에엑! 까앙! 쒜웩! 까앙!
언월도가 광풍폭우처럼 몰아쳤다.
‘이런 놈들을 단신으로 무너뜨렸다는 거야? 기막힌 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다.
여몽(呂蒙)이 한 말로, 무릇 선비란 사흘이 지나면 다시 만났을 때는 눈을 비비고 대면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야가 그렇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남만에서 만났을 때와 지금의 마야는 천양지차다. 당시에도 강했지만 지금은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산주는 이를 악물었다.
남만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람이 이 무슨 꼴인가. 죽은 산인들이 이 꼴을 본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타앗!”
산주는 우렁찬 고함을 터뜨린 후, 맹렬히 검을 떨쳐 냈다.
팔방풍우(八方風雨)!
삼류무인도 펼칠 수 있는 초식이다. 별다른 기교도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펼치느냐에 따라서 위력은 천양지차가 난다.
타앙! 팡!
삼 척 장검은 막 공격을 해오던 언월도 두 자루를 쳐냈고,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멈칫거리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때다!
쉬익!
몸을 빼낸 산주는 안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철사문도의 예상과는 달리 담을 타고 철문 앞으로 치달렸다.
“막앗!”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신경 쓸 것 없다. 철사문도는 말을 타고 공격하는 기마 무인과 땅에서 싸우는 지상무인으로 구분된다.
지상무인의 경우, 무거운 철갑 때문에 신법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진법이 뚫리면 쫓을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진법을 펼친 상태도 아니었고, 단순히 많은 인원으로 합공을 펼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산주는 빗장을 잡고 힘을 주어 밀었다.
“엇!”
이번에도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빗장 역시 현철로 주조되었다. 두껍고 크다. 무게도 엄청나서 어림짐작으로 족히 장정 열 사람 무게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미치겠네!’
“타아앗!”
전신 진기를 두 손에 모아 힘껏 밀쳐 냈다.
철사문도가 공격해 온다면? 막을 길이 없다. 몸도 마음도 올곧이 빗장을 여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미약한 공격조차도 막을 정신이 없다.
철사문도가 뒤뚱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크크크! 크크크크……!”
만족한 웃음이다.
상대가 싱겁지 않다. 칼을 씀에 재미가 있다.
쒜엑! 파앗!
콘은 펄펄 날았다. 철사문도의 어깨 높이로 뛰어올라 안면을 걷어찼다. 그리고 그 순간, 믿기지 않게도 철벽같던 현음철갑에 허점이 드러났다.
철사문도는 일격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 자는 피하지 못하고 타격을 당했다.
어느 쪽이든 허점은 노출되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목 밑에 철갑이 들썩였고, 눈으로 식별하기 힘든 틈이 열렸다.
콘이 칼을 번뜩였다.
전광석화(電光石火)! 푸른 뇌전(雷電)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콘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터졌다.
“크윽!”
“아니, 아니. 이걸로는 안 돼.”
칼이 목을 찢으며 위로 올라갔다.
“으아아악!”
“그래, 그래. 그거야, 그거.”
칼이 턱뼈를 갈라 버리고 입천장을 뚫었다.
비명은 처절했다. 철사문을 벗어나 하늘에 닿을 만큼 모든 힘을 쥐어짜 고함질렀다.
콘이 칼을 빼내고, 발길로 배를 걷어찰 때까지 비명은 계속되었다.
“그래, 됐어. 크크크! 크크크크!”
콘의 눈이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사위를 훑었다.
무적의 기마군단, 철사문도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사십여 명이나 되는 철사문도가 땅에 누웠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지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너무 빠르다. 너무 잔혹하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막을 길이 없다. 언월도는 장식용이나 마찬가지다. 무거운 현음철갑은 오히려 도주하는 데 방해가 된다.
놈의 눈길이 한 사람에게 고정되었을 때, 그 사람이 바랄 수 있는 희망은 최대한 빨리 죽는 것이다.
“아, 악마!”
누군가 중얼거렸다.
콘은 그 말에 바로 반응했다. 자신도 모르게 음성을 흘린 자, 네 차례야.
“크크크크!”
두두두두……!
드디어 오늘의 철사문을 있게 만든 기마무인들이 도착했다.
기마무인들은 싸울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봉문한 문파인데 말을 타고 싸울 일이 있을까. 그들은 싸움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비명 소리를 들었고, 불청객이 무자비하게 철사문도를 도륙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부랴부랴 갑옷을 입는다, 말을 준비시킨다 부산을 떨었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평소 연무장으로 쓰던 광장은 철사문도의 시신이 가득 차 있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기마무인들에게는 참으로 곤란한 문제다.
죽은 무인들은 하나같이 현음철갑을 착용하고 있다. 즉, 커다란 쇳덩이가 누워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말을 타고 질주해야 하는 기마무인들을 같은 철사문도가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크크크크!”
콘이 웃었다.
지치지 않는 살육의 광기가 기마무인들을 향했다.
말이 모두 쓰러졌다. 단 한 마리도 요행을 바라지 못했다. 기마무인도 쓰러졌다. 애절한 비명을 토해내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죽임을 당했다.
철사문주와 노문주는 마지막 문도가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마무인들이 나설 때, 그들도 나섰다. 기마무인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
싸움은 싱거웠다. 철사문도가 이토록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는 날이 있을 줄은 정녕 몰랐다.
마야와의 싸움은 완벽한 패배였다. 한데 낯선 자와의 싸움은 그보다 더한 패배다.
두 사람은 철사문의 몰락을 예감했다.
살아남아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라.
살아남아 봤자 낯을 들고 무림을 거닐기는 틀렸다.
마인에게 패해 봉문당한 문파를 어디다 내세울까. 단 한 명에게 떼몰살을 당한 문파 출신이라고 입이나 벙긋할 수 있을까.
죽어라. 차라리 죽어라.
마지막 기마무인이 쓰러지자, 철사문주가 땅에 떨어진 언월도를 집어 들었다.
“철사문주 체면상 일 초는 버텨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편하게, 편하게.”
“일 초를 버티는 것도 희망입니까?”
“모든 게 미망(迷妄)이지. 무심의 마음으로 편하게.”
노문주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했다.
철사문주는 아버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일 초만 버텼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힘들단다.
아버지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사실 승부가 일 초 만에 결정될 것이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쯤은 읽을 줄 안다.
이방인의 무공은 초식이 없다. 날랜 맹수가 달려드는 것처럼 단순하다. 한데 당해낼 수 없다. 사내가 토끼라면 이쪽은 거북이다. 속도 차이가 그만큼 현저하게 벌어진다.
당해낼 수 없다. 패도(覇刀)? 소용없다. 언월도에 태산을 실어도 맞출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환도(幻刀)? 이 역시 헛손질에 불과할 뿐이다. 귀신조차 속이는 현란한 변화도 사내의 빠름은 잡지 못한다.
쾌도(快刀)? 후후후!
이방인보다 빠른 사람은 누굴까?
궁왕 강창도의 화살이라면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남도문주의 패왕도법이라면 상대할 수 있다. 남도문주가 도에 진기를 실으면 삼 장 이내로는 접근조차 하기 힘드니까.
무신들이 나서야 상대할 수 있는 자다.
“하하하! 그래도 혹시 압니까? 일 초는 견뎌낼지.”
철사문주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철사문주답게 언월도에 무거운 기세를 담고 쳐나갔다.
“후후후! 후후후후!”
철사문주는 웃었다.
예상대로 언월도는 허공을 후렸다. 이방인은 틈을 파고들었고, 피로 물든 칼이 목젖을 뚫고 들어왔다.
말 못할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미친놈이 틀림없는 이방인은 비명을 들으며 즐거워한다.
놈이 즐겁게 해줄 수는 없다.
“아프지 않아?”
“후후후! 후후후……!”
칼이 방향을 틀었다. 목에 있는 동맥을 끊고 귀 밑으로 기어 올라갔다.
“쿠쿠! 후후! 쿠쿠쿠!”
웃으려고 했는데 소리가 흩어진다. 자신이 들어도 알아듣지 못할 소리다.
그는 쓰러졌다.
노문주는 자식의 최후를 지켜봤다.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