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18
218
“이십사수매화(二十四手梅花)…… 아니, 사일검법(射日劍法)!”
손 하나, 검 하나. 그러나 펼쳐진 초식은 화산파(華山派)의 절기인 이십사수매화검법과 점창파(點蒼派)의 절기인 사일검법이었다.
두 검법이 섞여 있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는 듯하다가 사일검법으로 흘렀다.
두 검법은 특성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일검에 매화 문양을 그려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하면서도 빠른 환검(幻劍)을 요구한다. 반면에 사일검법은 해를 쏜다는 말처럼 극쾌(極快)를 추구한다.
두 검법이 섞일 수는 없다.
타앙! 탕탕탕! 까앙! 까아앙……!
후 십방진도 곤욕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검 하나에 일 검씩, 마야는 정확히 십 검을 쳐냈다.
눈으로 보면서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검법이다. 천멸도 살수가 일 검을 쳐낼 때, 그는 십 검을 쳐내다니. 또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
어떻게 이토록 빠른 것일까?
이건 싸우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토록 실력 차이가 현격히 벌어지는데 검을 들 의욕이나 생길까.
“나, 나는 안 되겠어.”
시마는 공격을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그의 녹혈마공이 천멸도 살수들의 뒤를 바짝 쫓아야 한다. 하나 마야의 몸놀림을 지켜보느라고 공격할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
시마 같은 고수에게는 좀처럼 일어날 수 없는 실수다.
“나는 해봐야겠어!”
마도가 절규하듯 고함을 내지르며 일도를 뻗어냈다.
혈염도법, 초식이 없고 오직 감각으로만 도의 흐름을 이어가는 도법. 수련 방법은 오직 하나, 철저히 실전을 통해 깨달아가야 하는 살인도법.
파아아아!
혈염도가 곧장 정수리를 찍어왔다.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서 제이의 공격을 시작한다.
한데, 마야는 도를 내려치던 중에 마야의 웃음을 보았다.
터엉!
엄청난 충격이 그의 뇌리를 쳤다.
저렇게 맑은 웃음이 있을까? 어린아이의 웃음이 순진하다고 하나 마야의 웃음처럼 순진하지는 않다. 미녀의 웃음이 매혹적이나 마야처럼 심혼을 끌어당기지는 않는다.
살심(殺心)이 무너진다. 손에 쥐고 있는 혈염도가 무겁게 느껴진다.
혈염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밑으로 내려치는, 그야말로 숨 한 번도 들이쉬지 못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는데 마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잡념이 휘젓고 다녔다.
타앙!
혈염도와 검이 부딪쳤다.
마야가 반응을 보였으니 이제 그가 변화해야 한다. 아니, 실제로 변화는 마야가 혈염도를 막기 위해 검을 올리려고 어깨를 들썩일 때 일어났어야 한다.
마도는 변화의 기회를 놓쳤다. 더욱이 도와 검이 부딪치는 얼토당토않은 실수까지 저질렀다.
그래도 마도는 계속 일도양단을 이어갔다.
도가 검에 막혀서 더 내려가지 않는데, 미처 깨닫지 못한 듯했다.
“마도!”
보다 못해 수검이 소리쳤다.
그제야 마도는 쇠망치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정신을 수습했다.
싸우는 중이다. 서로 병기를 부딪쳤고, 목숨을 노리는 중이다.
그런 사람이 잡념에 휘말려 정신을 놓았다면 목숨이 열 개 있으니 몇 개 가져가란 소리밖에 더 되랴.
“이, 이게, 이게 도대체…….”
마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추태다. 무인에게는 죽어서도 되새김질 하고 싶은 치욕이다.
“세상에! 환희마소를 이런 식으로!”
절혼마녀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녀의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녀가 환희마소라는 말을 꺼내자 비로소 마도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도 한 자루를 들고 무림에 나섰다. 마야와 합류하기 전까지 그의 전적은 백이십칠전 전승이다. 산사람은 없다. 백이십칠 명이 저승 고혼이 되었다.
그래서 마도에게 붙여진 또 다른 별호가 무적도다.
마야는 무적도를 단숨에 제압했다.
무공이든 무공이 아니든 상관없다.
사술도 좋고 도깨비장난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실전에 응용할 수 있고, 지금처럼 최강의 위력을 보여준다면 이게 바로 무공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왜 날 공격한 거야? 그것도 한꺼번에.”
마야는 농담조로 말했다.
하나 지금 그의 말에 웃는 사람은 없다. 같이 농으로 맞장구치지도 않는다.
천멸도 살수들을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노는 빠름을 지녔다. 천하 각파의 무공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 수련으로는 결코 펼칠 수 없는 기학(奇學)까지 펼친다.
사람인가, 괴물인가.
“무, 무공 이름이 뭐야?”
호갈 못지않은 배짱을 지닌 천멸도주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명칭이 뭐 필요 있나? 누구에게 자랑할 것도 아니고. 아직 많이 미숙한데…….”
“미숙?”
“미숙!”
이 정도가 미숙이라면 다른 사람은 뭐란 말인가.
사람들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2
“여기가 놈들이 목격된 마지막 장소예요.”
“마인들에게는 마인들만 다니는 산길이 있다고 들었소. 그럼 여기서부터는 산길을 택했을 텐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생각보다 아둔하군요.”
“…….”
“호채마가 제삼무신가에서 몰살당했다는 소문도 못 들었어요?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이 시점에서 제삼무신가를 찾아갈 리도 없고. 마야는 살아 있어요.”
“찾을 길이 있소?”
“제게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이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있죠.”
“누구요?”
“생각해 보면 너무 간단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군요. 생각해 봐요. 제삼무신가가 호채마를 감싸줬다는 건 뭐를 뜻하겠어요?”
“연수(聯手)?”
“여기가 그들이 사라진 마지막 장소,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사람.”
“정파군. 마야가 정파와 손잡았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거야말로 물과 기름이 섞였잖아?”
“무림이 원래 그런 곳이에요. 물과 기름도 섞일 수 있는 곳. 물과 불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무림이잖아요. 누굴 찾아야 하는지는 알죠? 그럼 가보세요.”
산주와 서군봉은 밀담을 끝냈다.
서군봉은 영리한 여인이다.
그녀가 있었기에 호채마의 뒤를 쫓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인들만 이용하는 산길을 찾아냈다. 또 어디서 구하는지 소문도 잘 주워왔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더 이상 손써볼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활로를 찾아주었다.
서군봉이 따라붙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콘을 감당하지 못했을 게다. 어쩌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
콘은 살인에 미친 살인마다.
무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사람 탈을 썼으면 무조건 죽이고 본다. 그는 정말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난 살귀다.
한데 묘하게도 마야 이야기만 나오면 살인을 멈춘다. 마야를 쫓아가는 중이라고 하면 언제 살인했냐 싶게 얌전히 따라온다.
물론 그에게 마야 뒤를 쫓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마야가 철사문을 들렸다. 그래서 철사문을 찾았다. 호채마가 대숲에서 추혼단을 몰살시켰단다. 당연히 대숲도 들렸고, 콘은 죽일 사람이 없어서인지 신경질적으로 불을 질렀다.
그래도 다른 때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다.
마야를 쫓지 않을 때는 눈에 띄는 대로 죽였으니까.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게.
콘에게 돌아가는 산주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오늘부로 인근에 있는 정도인들 중 몇몇은 죽어야 한다.
호채마가 간 곳을 아는 자가 빨리 나타난다면 한 명이라도 덜 죽을 것이고, 늦게 나타난다면 살육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어쩌면 피비린내가 내일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콘이 움직이는 일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이것이 가장 희생을 적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빨리 백 일이 지나야 한다. 제발 백일몽이 제 역할을 다해줘야 한다. 그래야 콘을 죽일 수 있다.
‘누구부터 해야 되나.’
인근에 있는 정파무인들, 그들은 자신들에게 검은 회오리가 닥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끄윽! 끄으윽! 제, 제발, 제발! 끄으으윽!”
육전(陸?)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는 삐져나오는 비명을 참아내지 못했다.
“아는 게 있으면 말해. 말하면 여기서 그치지만 말하지 않으면 다 죽어.”
새빨간 거짓말이다. 말해도 몰살은 피할 수 없다. 콘이 피맛을 보았는데 여기서 그칠까.
사내는 난도분시(亂刀分屍)되어 있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육검걸(陸劍傑).
만사무불통지를 만난 후, 훼손된 가전무공을 완성시킨 희대의 풍운아다.
그가 죽었다. 사지가 찢겨서.
“항포. 항포로 가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언제?”
“구월 닷새.”
구월 닷새라면 이십여 일쯤 지났다.
마야는 항포에 있어야 한다. 항포를 벗어났더라도 그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항포에 피바람이 분다.
‘하필이면 그런 곳으로…… 촌구석으로 갔으면 좋을 텐데.’
산주는 재빨리 사내의 숨을 끊으려고 했다. 하나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콘이 자리를 밀치고 들어섰다.
“항포?”
“네, 네. 항포로 갔습니다.”
“후후! 사내자식이 그렇게 입이 싸가지고 어디다 쓰나.”
콘의 칼이 사내의 입 안을 쑤셨다.
시작되었다. 혈풍(血風)이.
콘은 바보가 아니다. 수도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탐닉 대상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모습은 머리가 잘못된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산주는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한데,
‘저, 저거…… 저거…….’
너무 기가 막혀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콘은 죽은 사람의 목을 베고 또 베어냈다. 숨이 벌써 끊어진 사람인데 잘린 부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몇 번이고 칼질을 했다.
‘정신이 이상해졌어. 분명해. 저건 정신 이상 징조야.’
마공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제어하지 못하는 살심도 마공 탓이지만, 지금은 정도를 지나쳐서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무공을 모른다. 오직 콘을 만족시킬 수 있는 비궁(秘宮)으로 그의 욕망을 해소하는 일이 그녀가 하는 일이었다.
한데 그녀의 인성도 변해서 콘을 닮아가고 있다.
비궁에 천하제일염을 심었다는 말은 들었다. 콘이 만족하는 것도 보았다. 콘이 욕망을 풀고도 죽이지 않은 여자는 현재까지 수가 유일하다.
서군봉이 심었다는 천하제일염이 무엇일까?
그녀가 수를 데려왔을 때, 수는 환락산에 취해 있었다.
천하제일염을 심었을지언정 사내를 받아들일 준비는 안 되어 있었다는 뜻이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다. 수의 교태는 타고난 요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자극이 깊다.
도대체 서군봉이 수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수는 백치가 되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콘과 잠자리를 하는 것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콘이 죽는 날, 수도 죽어야 한다.
산주는 노천 육가의 모든 식솔이 몰살당할 때까지 먼 하늘만 바라봤다.
항포(?浦) 십 리(十里).
목적지를 알려주는 팻말이 보였다.
십 리 남았다면 다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데 반갑지 않다. 반가워야 하는데 오히려 착잡하다.
마야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콘의 갈증을 무엇으로 풀어주어야 하나. 희생양으로 적당한 무림문파 하나 고를까? 그러다가 마야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하면 더욱 미쳐서 날뛸 텐데.
묘한 일이다. 다른 것에는 일절 반응하지 않으면서 마야만은 죽자 사자 따라붙는 이유가 뭔지.
‘어떻게든 마야를 찾아야 돼.’
산주가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볼 때, 그의 눈에 붉은 새 한 마리가 보였다.
‘천홍조(?紅鳥)!’
서군봉이 이토록 반갑기는 처음이다.
산주는 콘에게 말했다.
“소변 좀 누고 오겠습니다.”
“마야에게는 왕벌이 있어요. 알죠?”
“아오.”
“분명히 할 게 있어요. 콘이 죽길 바라요, 마야가 죽길 바라요?”
“콘.”
산주는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나도 콘이에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인의 몸과 얼굴을 완전히 짓이겨 놓았으니 그 원한이야 말로 다하지 못할 게다.
“그럼 콘을 항포로 가게 해선 안 돼요. 콘은 단도(短刀)를 쓰기 때문에 근접전이 용이한 곳은 무조건 배제시켜야 돼요.”
“하지만 항포로 가지 않으면…….”
“항포 인근에 좋은 백사장이 있어요. 그곳은…….”
서군봉은 지도를 꺼내 산주가 가야 할 곳을 일러줬다.
“이곳이라면 마야가 왕벌을 부릴 수 있을 거예요. 콘의 승산이 그만큼 떨어지는 거죠.”
“항포에 마야가 있소?”
“있어요. 걱정 마세요.”
산주는 비로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다. 또 애꿎은 사람들을 죽일 뻔했지 않은가.
마야와 콘이 싸운다면…… 어쩌면 마야가 이길 수도 있다. 왕벌을 잘만 부린다면…… 콘이 아무리 빨라도 왕벌만큼이야 빠르겠는가. 정말로 잘하면 백 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이곳으로 마야를 유인할 수는 없겠소?”
“그러잖아도 그럴 거예요. 콘을 도읍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잖아요.”
산주는 안심했다. 그와 서군봉의 생각은 같았다.
‘콘이 죽으면 안 되지. 백일몽이 그를 내게 데려올 텐데.’
서군봉은 산굽이를 돌아가는 콘 일행을 보며 하얗게 웃었다.
복수란 죽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옆에 두고 평생토록 노예로 부려먹는 것도 큰 복수다. 콘처럼 가공할 무위를 지닌 자라면 아주 크게 쓸모있으리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하에서.
‘마야는 만만치 않은 상대. 싸움은 길어질 거고, 콘의 마성(魔性)이 급격히 팽창할 거야. 호호호! 이 싸움은 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싸움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