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21
221
만사무불통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다담선자의 말도 한 귀로 흘려버렸다. 하나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라는 생각이 소록소록 떠오른다.
‘이대로는 당할 수밖에 없다.’
특단의 결정이 필요했다.
쒜엑!
그가 온다.
마야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마지막 움직임을 놓쳐 버리는 눈, 뜨고 있으면 뭐 하나. 큰마음먹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만공심안을 활짝 열어 세상의 움직임을 읽었다.
영매술도 활용했다.
몸이 상처투성이다. 외부로부터 상처 치료에 필요한 요소를 끌어들인다.
그러다 보면, 영매술로 공기의 흐름을 느끼다 보면 콘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을까.
썩!
복부에서 둔중한 통증이 일어났다.
허리가 푹 숙여진다. 입에서는 비명이 새어 나온다. 미간은 찌푸려지고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너무 아프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만공심안보다 빠르고, 영매술로도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이 존재하는가. 콘도 사람일진대, 어떻게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까.
더욱이 그는 공격을 가할수록 강해져 가는 것 같다.
자신을 상대로 무공 수련을 하나? 일도에 심장을 찌르지 않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살덩이만 베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이러다가 흥미를 잃는 순간 심장을 쑤시겠지?
쒜엑! 썩!
어깻죽지에 일도가 떨어졌다.
승부는 끝났다. 콘은 마음대로 움직였다. 하고 싶은 대로 단도를 휘둘렀고, 그때마다 마야는 극심한 통증에 휘청거렸다.
“크크크! 마야!”
저 소리도 지겹다. 도대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는 건가.
모든 게 지겹다. 고통도, 싸움도…… 어찌할 수 없다면 빨리 끝내는 게 도리이거늘.
그 순간, 마야의 머릿속에 하얀 섬광이 번뜩였다.
고통? 고통? 고통이라니!
―뇌에서 일어나 육신을 지배하니 뇌천력(腦天力).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아니라 육신만을 제어할 뿐이니 암력(暗力). 진기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이루어지니 염력(念力). 육신이 천참만륙(千斬萬戮) 짓이겨져도 고통을 망각시키고 밝은 신지를 유지할 수 있으니 명뇌인(明腦引).
현재 명뇌인을 펼치고 있다. 한데 고통을 느낀다. 그것도 너무 아파서 오만상이 찡그러진다. 왜?
뇌력(腦力)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만공심안도 제대로 열리지 않고, 영매술도 시늉만 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콘 앞에서는 모든 게 축 늘어진다.
맞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불행 중 다행으로 시험해 볼 방도가 있다.
‘불은 양(陽)의 생(生). 열과 근원이 같고, 열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 열이 점차 뜨거움을 더해가니, 불이 열의 궁극이다.’
머릿속에 뇌력금황기의 구결이 스쳐 갔다.
뇌력금황기를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위력은 따라올 게 없다. 열화진기를 일시에 폭발시키니, 그 힘은 능히 철뢰를 터뜨리는 것과 같다.
하나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일시에 진기가 모두 쏟아져 나간 관계로 텅 빈 고목에 살가죽만 얹어놓은 꼴이 된다.
다행히 영매술이 있어서 회복 속도는 빠르지만, 지금과 같은 실전에서 진기를 잃으면 어떻게 되겠나. 불 보듯 뻔하다.
일격필살(一擊必殺)은 좀처럼 사용해서는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쓰게 생겼다.
파아아앗!
진기가 운집되기 시작했다.
몸에 깃든 음양이기(陰陽二氣) 중 음기는 주로(走路)로 흐르게 하고, 양기는 수로(壽路)로 끌어들였다.
음양이기의 분리다.
수로로 들어선 양기는 전신을 휘돌아 장심(掌心)에 운집되었다.
우우우우……!
검이 운다. 진하디진한 울음을 토해낸다.
“크크…… 크? 크큭! 마야, 죽는다!”
콘의 표정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매섭기는 했어도 악귀의 형상은 띠지 않았는데, 얼굴 근육이 마구 뒤틀리니 악마가 따로 없다.
검명(劍鳴)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쒜엑!
그가 왔다.
동시에 마야도 검을 휘둘렀다. 어디로? 모른다. 그를 노리고 쳐내지는 않았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가는 곳으로 열화진기를 줄줄이 뿜어냈다.
타앙!
처음으로 검과 도가 부딪쳤다.
폭죽처럼 터져 나간 열기는 장검을 통해 도에 전달되었고, 콘의 육신으로 파고들었다.
“카악!”
콘이 괴성을 토해내며 뒤로 빠져나갔다.
‘이럴 수가!’
마야는 경악했다. 너무 놀라서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콘의 무공은 마야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마야의 능력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하나 꿰맞춰 만들었다.
확신한다.
검을 통해 열화진기를 쏟아 부었을 때, 콘은 자신의 진기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단지 열화진기가 너무 극강했던 터라 물러섰지, 조금만 약했더라도 버텼을 게다.
믿을 수 없지만 영매술이다.
콘이 영매술을 알고 있다. 숙련도는 자신보다 뛰어나다. 자신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영매술을 쓰지만, 콘은 소모된 진기를 보충하는 데 쓴다.
그는 지치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싸워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빠르다. 어쩌면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진기가 끊임없이 보충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때는 넘칠 경우도 있으니까.
콘이 정말 영매술을 아는지, 아니면 영매술과 비슷한 다른 기공인지는 모르지만 영매술과 같은 효능을 지닌 것만은 틀림없다.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지녔다면 어떤 공격을 펼쳤을까?
분명히 일격에 전신진기를 모두 실었을 게다. 한꺼번에 모두 쏟아내고 다시 받아들이면 되니까.
그가 말도 안 되게 빨랐던 이유, 이것이었다.
만공심안이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이유도 같다.
자신의 이성은 콘이 외기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무의식은 콘과 마주치는 순간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불안했고, 불안감은 고요해야 할 마음에 파랑(波浪)을 일으켰다.
절대 무심, 절대 고요가 깨진 거다.
마음속에 독무(毒霧)가 깔렸다고 할까? 그런 상태였으니 명뇌인인들 제대로 펼쳐질 리 없다.
아직은 많이 미숙하다.
하기는 평생 동안 마음 수련을 한 고승도 ‘이제 문을 열고 들어섰거늘’하며 눈을 감았다 하니 청심(淸心)의 어려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나저나 이제 참으로 난처하게 되었다.
진기를 잃었다. 둑을 허물어 물을 쏟아냈으니 다시 고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영매술이 외기를 흡수하고 있지만 다음 공격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콘은 금방 진기를 회복한다. 자신처럼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니 곧바로 다시 공격을 가해올 수 있는 게다.
자신도 콘과 같다면 뇌력금황기를 연속으로 쏘아낼 수 있다.
꿈만 같은 일이다.
“크크크! 마야.”
지치지 않는 괴물, 콘이 다가섰다.
‘마지막 방법.’
마야는 검을 들어 올렸다.
뇌력금황기로 양기를 쏟아냈다. 이제 똑같은 방법으로 주로에 있는 음기를 쏟아낸다.
결과는 외통수가 되리라.
콘은 방금 전과 같은 방법으로 물러서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은 음기와 양기가 모두 빠져나가 그야말로 진공 상태가 된다. 갓난아기도 죽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장기 같으면 졌다고 손을 들어버리며 되지만 싸움이니 그럴 수도 없다.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일부러 사람들 쪽은 보지 않았다.
그들을 보면 눈치 빠른 그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어떻게든 싸움에 끼어들게다.
결과는 비참하다. 그들 모두 죽는다. 콘은 그들 모두를 죽이고도 힘이 남아 펄펄 날게다.
콘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만사무불통지가 일부러 정보를 빼돌린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콘의 무공을 알아보기 위해 마야를 던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면 호채마의 몰살까지 위장할 필요는 없었다.
만사무불통지도 콘의 무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파아아앗!
진기가 모여든다. 더불어서 구토도 치민다.
생명을 유지시키던 음기가 요동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쒜엑! 쓰윽!
단도가 가슴에 꽂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이다. 베는 공격에서 찌르는 공격으로 전환했다. 뿐만 아니라 공격 부위도 달라져서 생명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기가 공격당했다.
콘이 노린 것은 심장일 터, 요행히 몸의 반응이 빨라 심장만은 피해냈다.
“크크큭!”
콘이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며 웃었다.
틀렸다. 피한 것이 아니라 피해서 찔렀다.
쉽게 죽이기 싫은 것이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는 게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마야…… 마야…….”
그가 나직이 속삭였다. 동시에 가슴을 찌른 단도가 살을 찢으며 움직였다.
“마야…… 비명을…… 비명을 질러. 마야…….”
단도가 점점 움직여 심장을 노린다. 순간,
“강금산, 불쌍하구나.”
마야는 환히 웃었다. 환희마소와 적멸주!
“하찮은 무공을 믿고 주인을 넘보다니!”
음성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낄낄낄! 귀로 듣지는 못하지만 소름이 오싹 끼치겠지. 신음소리만 내도 듣는 놈은 천둥소리처럼 느낄 거야. 악마가 내는 소리, 마령음처럼. 낄낄!
소리에 미쳐 평생을 보낸 사람이 죽으면서 한 말이다. 마령음!
“이제 내가 널 징치할지니.”
마야는 적멸주와 마령음을 번갈아 시전했다.
빈 허공을 휩쓰는 바람 소리라도 좋다. 한 번은 높아지고, 한 번은 낮아지고…… 높고 낮음이 반복되다 보면 신경이 쓰이리라. 빈 항아리라 할지라도 텅텅 울릴 터이니.
“크크크! 마야!”
단도에 힘이 들어갔다. 억세게 잡는 게 뚜렷이 느껴진다.
“갈(喝)! 어리석은! 물러서지 못할까!”
장검을 통해 쏟아내려던 음기를 음성에 담았다. 창룡후(蒼龍吼)!
귀에 바짝 대고 창룡후를 터뜨렸으니 고막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게다.
쒜엑!
콘은 공격할 때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물러섰다.
가슴에서 단도가 빠져나가며 핏줄기가 솟구친다.
‘마음은 고통을 망각시키고…….’
명뇌인이 통증을 망각시킨다.
마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양기에 이어 음기까지 빠져나가자 그의 몸은 돼지 오줌보처럼 바람으로 가득 찼다.
이제 그만 주저앉고 싶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다리가 약했나? 상반신이 무거웠나?
그때였다. 마야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스스스스! 파아아앗!
묘한 기분이다. 전신 경략이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듯한 느낌, 뱀이 몸속을 기어가는 느낌…… 뭐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힘이 넘친다.
‘진기!’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진기가 고이다니! 적어도 반각은 지나야 고일 줄 알았는데.
“크크크! 마야!”
쒜엑!
마야는 망설임없이 뇌력금황기를 끌어올렸다. 음기라고 놔둘 필요가 없다. 주로를 흐르던 음기는 두 발로 쏟아져 내려가서 부풍약영을 일으켰다.
쒜엑! 까앙!
마야의 신형도 빛이 되어 흘렀다. 그리고 검과 단도가 부딪치며 불똥을 일으켰다.
“그큭!”
콘이 처음으로 뒤뚱거리며 물러섰다.
병기의 싸움에서 단도를 취한 그가 졌다. 단도로는 장검으로 내려치는 힘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진기의 우열이 사라졌을 때, 병기가 주는 이점은 컸다.
스스스슷!
진기가 고인다. 고인 것을 모두 쏟아냈는데, 또 고인다. 졸졸졸졸 흘러서 고이는 것이 아니라 종지를 바닷물에 풍덩 담근 것처럼 일시에 가득 찬다.
“미망을 떨쳐라! 부질없는 세상이다!”
적멸주가 쏟아져 나가고 곧이어 마령음이 뒤를 받쳤다.
느껴진다. 콘이 충격을 받았다. 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신경이 돌아간 것은 확실하다.
쒜엑! 파앗!
부풍약영을 바탕으로 한 복마검법(伏魔劍法).
공동파의 절학이지만 마야의 손에서 새로운 무학으로 탈바꿈했다.
슈욱! 검이 떨어져 내리고, 파앗! 추켜올려져 턱을 노린다. 피잇! 방향을 꺾어 목을 치고, 사아악! 검을 반대 손으로 바꿔 잡으며 되돌려 친다.
콘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반격의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가 단도를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허점이 드러났고, 삼 척 장검은 어김없이 파고들어 왔다.
“크크크큭! 크큭! 마야!”
그의 빠름이 마야를 압도했을 때는 그가 내뱉는 소리도 악귀의 울부짖음이었다. 하나 일방적으로 물러서는 입장에서 내뱉는 말에서는 어떤 울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평화가 올지니,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콘이 한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그는 두 손으로 막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도를 든 손으로는 검을 막아야 한다.
“저항하지 마라. 받아들여라. 편안함을 받아들여라.”
마야는 끊임없이 말을 하며 검을 쳐냈다.
이번에 펼친 것은 색혼검법(索魂劍法)이다.
피류류륫!
장검이 빙그르르 회전을 일으키며 쏘아든다.
탕! 타탕! 탕!
콘은 궁지에 몰렸다. 그는 연신 물러섰다. 한 손으로는 귀를 막고,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도를 쳐냈다.
마야의 압도적인 우세다.
그러나 이 순간, 마야가 보지 못한 게 있다.
콘의 눈빛이다. 흰자위가 붉게 물들어간다. 화가 나거나 열기가 솟구치고 있다는 뜻인데…… 격하게 싸우다 보면 핏발 선 눈은 자주 보게 되니 무시해도 된다.
아니다. 콘의 눈빛만은 무시하지 말았어야 한다.
“카악!”
콘이 느닷없이 괴성을 토해냈다. 그리고 쏟아지는 검빛 아래로 뛰어들었다.
푹! 푹!
검이 육신을 찔렀다. 도도 육신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