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23
223
숨을 쉴 수가 없을 텐데, 다른 놈들 같으면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는데.
이렇게 돌아온다면 그를 잡기는 틀렸다.
물속에서는 자신이 훨씬 잘 움직인다지만 마야와 검을 맞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휴우! 안 되는군, 안 돼. 정말 죽이기 어려운 자야. 운이 따르나? 그게 그거지.’
흑조편복은 전신에 힘을 딱 풀었다.
일순, 그의 몸이 위로 올라가는 듯했다. 하나 곧 강바닥을 향해 뚝 떨어져 갔다.
수중살행(水中殺行) 쉰두 번째. 실패다.
쉰한 번째까지는 성공했는데, 쉰두 번째에서 어긋났다.
‘마지막 목숨까지도 내놨군.’
마야가 생각해 준 세 번의 기회는 지나갔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그가 공격하지 않아도 마야가 공격해 오리라.
어쩌면 그전에 그들이 제거하러 달려들지도 모르겠고.
‘흑조편복의 전설이 이렇게 끝나는가.’
흑조편복은 강바닥에 큰 대 자로 누웠다.
이대로 오래 있을 수는 없다. 곧 움직여야 한다.
마야는 다시 오지 않을 게다. 세 번의 목숨을 보장했으니 자신을 잡아봤자 죽일 수 없다. 그럴 바에야 뭐 하러 잡는 수고를 할까.
대신 골탕은 먹일 수 있다.
강변을 따라서 수색하다 보면 물밖에 묶어놓은 대나무를 발견하게 될 게다.
그것만 자르면 된다.
한참을 누워 있었다. 숨이 막혀올 때를 생각하며.
숨은 막혀오지 않았다. 마야는 수색도 하지 않았다.
2
만사무불통지는 야트막한 숲속에 앉아 하염없이 강물을 쳐다보며 햇볕을 즐겼다.
“다 갔습니다.”
등 뒤에서 구환자가 공손히 말했다.
“어떻게 봤어?”
“네?”
구환자는 반문했다.
“콘의 무공 말이야. 굉장히 빠르지 않아?”
“전 마야를 주목했습니다. 콘보다는 마야가 무서운 인물이라고.”
“마야는 괜찮아. 놈은 무서운 인물이 아니야, 귀여운 놈이지. 무서운 놈은 콘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됐어. 그나저나 이놈은 왜 이리 안 와?”
“벌써 왔습니다. 여기선 보이지 않는데,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
만사무불통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만사무불통지가 늘 되뇌는 말이다.
멸신구관을 누가 만든지 알았을 때, 멸신구관에 있는 무공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부터 오늘의 싸움은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콘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마야는 어떤지 정확히 알아야만 했다.
이것이 시작이다. 이들의 무공을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마야가 콘을 생포하지 못했으니 걱정입니다.”
“훌훌! 그런가?”
“콘을 생포하지 못했는데…… 괜찮습니까?”
콘은 생포되어서는 안 된다. 죽어서도 안 된다. 그는 멀쩡히 살아서 북무림으로 가야 한다.
“아까 마야가 펼친 무공 중에 복마검법이 있었지?”
“그렇습니까? 너무 빨라서 전 잘…….”
“후후후! 몸보신도 너무 심하면 안 좋아. 소문을 좀 내야겠어. 콘과 싸운 사람이 있는데 복마검법을 쓰더라. 후후! 남무림이고 북무림이고 벌컥 뒤집어지겠군.”
문파의 비기는 절대로 외인에게 전수되지 않는다. 자칫 문파의 존망까지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펼칠 수 있다면 굳이 비기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연유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어느 문파든 외인이 훔쳐 간 비기는 반드시 되찾아오곤 했다.
누군가의 손에서 복마검법이 펼쳐졌다는 소문이 퍼지면 공동파는 참으로 난처할 게다.
제일 먼저 복마검법을 사용한 자가 누구인지 찾을 것이고, 공동파 사람이 아니라는 데 아연할 것이다.
그러면 죽여야 한다. 한데 복마검법을 사용한 사람은 남무림에 있다. 북무림의 공동파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외인이 복마검법을 썼으니 문파의 명예에 먹칠을 당한 꼴인데도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남무림도 기막히다.
자신의 땅에서 북무림 무공이 출현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공 사용자를 찾아서 죽여야 한다. 북무림 무공이므로 철저히 징계해야 한다.
무공 하나 때문에 양쪽 무림이 발칵 뒤집히는 것이다.
“소문을 낼 필요까지는…….”
“하하! 그런 건 자네가 걱정할 게 못 되이.”
“네?”
“후후후! 가지, 여기 일은 끝났어.”
만사무불통지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도 없는 모래밭에 사천제일룡이 남아서 이리저리 모래를 뒤적이고 있었다.
“보고입니다.”
문밖에서 낮게 깔린 음성이 들렸다.
“들어와.”
만사무불통지는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옷을 다 벗고 침상에 누웠던 그는 상반신만 일으켜 세웠다.
“약왕부(藥王府)에서 백일몽의 효과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뭐래?”
“산주가 지닌 백일몽은 진품이며, 콘의 비정상적인 살인 행각도 백일몽의 영향 탓이랍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만사무불통지는 객잔(客棧)이 떠나가라 웃어젖혔다.
“우하하하하! 우하핫! 푸하하하핫!”
보고하던 자는 웃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하하하! 아이고, 배야. 하하! 휴우! 하하!”
만사무불통지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픈 듯 큰 숨까지 들이마셨다.
“이거야말로 천려일실(千慮一失)이로군. 하하! 재미있어, 아주 재미있어.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고, 서군봉 그 계집애가 톡톡히 한몫해 주는군. 하하하! 하하하하!”
“무저부(無底府)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십팔추인(十八追人)이 완성됐다고 합니다.”
“풀어. 여섯씩 세 개로 나눠서 하나는 콘에게 붙여. 하나는 마야를 따르게 하고, 또 하나는 흑조편복을 주시하라고 해.”
“흑…… 조편복 말입니까?”
“잔접(殘蝶)이란 곳이 있지. 아무도 존재를 모르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신들도 잔접의 존재만 알 뿐 실체를 모른다면 말 다한 거지. 흑조편복은 잔접의 명을 받고 있어. 놈은 명령을 받기 전에 나비 그림부터 봤을걸? 그게 잔접의 명령 방식이야. 놈에게 붙여. 이 기회에 잔접도 알아보지.”
“네!”
보고자는 물러갔다.
한데도 만사무불통지는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는 낮에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콘의 무공은 마야의 무공의 상통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분명히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무공이다. 아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콘의 무공은 일반인도 수련할 수 있는 것이고, 마야의 무공은 마야처럼 특수한 능력을 지닌 자만이 수련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도 둘은 비슷한 경지를 이뤄냈다.
‘많이 발전시켰어.’
그는 마군을 떠올렸다.
마군도 마야처럼 특이한 인간이었다. 보통 사람은 지니지 못한 능력이 있어서 어떤 무공이든 쉽게 소화해 냈다.
그런 사람은 후인을 고를 때 상당히 고민한다.
하나는 자신처럼 특이한 능력이 있는 자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런 자를 찾아서 무공을 물려주어 봤자 곧 단맥(斷脈)될 것이라는 우려다.
세상이 넓다지만 특이한 능력을 지닌 자가 어디 많겠나.
결국 두 가지 다 선택한다.
괴인을 찾고, 평범한 자도 수련할 수 있는 무공을 만들고.
마군은 두 가지를 다 이뤄냈다.
마인을 찾아냈고, 마공을 창안해서 탈이지.
멸신구관은 마군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마군은 아직 살아 있다.
만사무불통지는 자신의 확신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남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지만 그들 말보다는 자신의 예감을 믿었다.
그의 생각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곳은 또 있다.
구통부(鳩通府).
제이무신가의 조직 중 하나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조직인만큼 그들이 취합한 정보에는 하자가 없다.
구통부는 정확한 것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군이 죽었다고 전해왔다. 멸신구관과 이약도, 오귀궁의 오귀는 상관없다는 말과 함께.
그들이 몸으로 뛰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확인한 사항들이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
마군이 아니면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없다.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이약도의 재산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오귀궁의 오귀가 잡다한 것들을 수집하고 설치해 주어야 한다.
‘틀림없어. 마군은 살아 있어.’
콘과 마야의 싸움을 통해서 멸신구관의 무공과 마야의 무공이 같은 뿌리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확신은 더욱더 깊어진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마군이 콘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한데 서군봉이 백일몽을 사용했으니, 볼 만해졌다.
이렇게 되면 마군은 콘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한다. 서군봉의 꼭두각시가 된 콘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마군이 살아 있다면 콘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모종의 일을 벌여야 할 것이다.
지켜보면 된다. 차분히.
북검문주는 어느 쪽일까? 마군 쪽일까, 아닐까.
남도문주는 확실히 마군 쪽이다. 그렇기에 마야가 날뛰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삼제, 궁왕 강창도는 중심에서 비켜섰다.
그는 물러나고 싶어 한다. 그토록 무신이라는 지위에 염증을 느낀다면 은거하는 게 좋을 게다.
혈귀대 사건에 나선 것은 그의 뜻이 아니다. 남도문주가 부탁했기에 나선 게다. 자신이 부탁해서 호채마를 몰살시킨 것과 같다.
그의 행동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북검문주, 남도문주, 유계의 주공…….
모두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 발만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한다.
‘내가 왜 만사무불통지인데 알아야 하는데. 미련한 사람들, 가만이나 있었으면…….’
창밖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갔다.
구환자, 참 눈치 없는 놈.
남도문주도 딱하다. 저렇게 눈치 없는 놈을 눈으로 두다니.
만사무불통지는 옅은 웃음을 띠우며 잠자리에 들었다.
***
구환자는 서신 위에 돌멩이를 놓고 잘 묶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내던졌다.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잘 받았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제일무신가에서 나온 사람들은 남도문 무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말이 없고, 신출귀몰(神出鬼沒)했다.
서신은 잘 전해질 게다.
‘훗!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는 일렁이는 촛불을 보며 실소를 지었다.
이렇게 소식을 전하면 감쪽같은데 전서구는 왜 날리라고 하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간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좌우지간 무서운 사람들이야.’
구환자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일어섰다.
남만에 있을 때만 해도 이토록 무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 몰랐다. 소위 야광 총수라는 지위에 있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제일무신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마야를 죽이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을 게다.
조금만 더 일찍 나타나 주었어도 추혼단이 몰살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 일을 벌이기 전에만 만났어도 좋은 말로 사천제일룡을 구슬려 떠나보냈을 텐데.
남무림은 조직 체계가 크게 잘못되었다.
남도문이 중추가 되어야 하는데 무신들이 세운 무신가가 뼈대로 군림한다. 그러면서 표면적인 일은 모두 남도문에서 처리하니, 실체와 허체간에 괴리가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괴리가 자신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행동하게 했다. 그리고 실체의 뜻에 어긋났을 때, 추혼단의 몰살과 같은 아픔이 발생한다.
무신들 간의 관계가 북검문처럼 수하 체계로 갔어야 한다.
원로라는 그럴듯한 감투를 주어서 뒷방에 물려놓으니 얼마나 일하기 편한가.
‘복마검법, 공동파. 그걸 이유 없이 소문낼 리 없지. 어른, 절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시는군요. 후후후! 그런 소문을 내면…… 마야가 곧 북무림으로 가겠군. 북무림으로 갈 수 있게끔 길을 열어둬야겠어.’
구환자는 촛불을 껐다.
제10장 추저동(墜著疼) ― 쥐어짜듯 아프다
1
보름하고 이틀.
십칠 일만 지나면 되는데 그사이를 못 참고 일을 벌이다니.
서군봉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처녀를 빼앗은 사내다. 갑자기 미쳐서 입을 찢고, 코를 베어내고, 귀까지 도려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슴까지 잘라냈다.
그런 놈을 구한다.
“동굴을 찾아봐요.”
급히 산주에게 이르고 콘의 상처를 살폈다.
우월한 싸움을 해놓고, 찌르고 베기는 훨씬 많이 했으면서 치명적인 상처는 더 많이 받았다.
“쿨룩!”
콘이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피!’
기침 속에 피가 섞여 나온다. 피가 식도를 거슬러 역류할 정도로 내상이 깊은가.
서군봉은 콘의 경혈을 짚어가며 내상을 살폈다.
한때는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졌던 사내다. 자신에게 속는 것을 알고도 기꺼이 웃어주었다. 듬직한 몸에 항우같이 힘이 세서 든든한 면도 있었다.
빌어먹을 미친 짓만 하지 않았어도.
몸만 빼앗겼다면 그의 여인이 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분명히 미친개에 물렸다 치고 북무림으로 돌아갔겠지만.
“저쪽에 얕은 동굴이 있는데 몸 하나는 뉠 만하오.”
“산주께서는 민가에 내려가서 약 좀 구해오세요. 아무 약이나 괜찮아요. 지혈할 약하고…….”
“무슨 약을 구해야 하는지는 나도 아오.”
“그럼 부탁해요.”
서군봉은 콘을 안아들고 내달렸다. 그녀의 뒤를 수가 바짝 따르고 있었다.
산주는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잠시 갈등이 생겼다.
콘의 상처가 어느 정도일까? 금창약을 발랐을 때와 바르지 않았을 때 차이가 많이 날까? 별반 차이가 없다면 약을 구해줘야 하고, 많이 차이가 난다면 구해주지 말아야 한다.
콘은 무섭다. 마지막에 봤잖은가. 다 진 결투인데,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마야 한 명만 죽이겠다고 단도를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