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28
228
다담선자는 금연화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하늘에 떠 있는 솔개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유유히 맴도는 모습에서 강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땅에는 병아리가 되었든 토끼가 되었든 먹잇감이 있을 게다. 그러니 하늘을 날고 있겠지.
내리꽂힌다.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며 벼락 치듯 곤두박질친다.
솔개는 다담선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나 다담선자는 여전히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림에 우뚝 솟은 거산(巨山)들…… 구파일방 이야말로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무공을 지니고도 숨죽이고 있으니까요.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언니가 저 정도인데 수십 년 갈고닦은 무공이라면 어떻겠어요.”
금연화의 말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솔개가 왠지 낯익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삶과 세상과 무공, 어느 쪽과 꿰맞춰도 어울리는 모습이다. 솔개의 움직임이 삶이며, 세상이며, 무공이다.
‘솔개…… 솔개보다 더 큰 새라면…… 봉황(鳳凰).’
아니다. 봉황은 너무 우아하다. 화려한 맛은 있지만 솔개처럼 강단있거나 매섭지는 않다.
‘불을 먹고 사는 불사조(不死鳥). 그래, 불사조!’
온몸에 뜨거운 불을 붙이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모습이 무공에 어울린다.
솔개…… 불사조, 어디서 많이 봤다.
‘이주회첨진(二柱回尖陣)!’
솔개의 모습에서 이주회첨진이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솔개와 이주회첨진이 어디가 닮았단 말인가.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일까?
이주회첨진은 마야가 가르쳐 주었다. 그가 자오법신의 저주에 걸려서 움직일 수 없을 때, 그를 보호하기 위해 펼쳤던 진법이 이주회첨진이다.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주회첨진을 사용한 적은 극히 드물다.
당시 시마가 마차 위에서 상주(上柱) 역할을 했다. 그녀는 마야 곁에서 중주(中柱)를 맡았고. 절혼마녀와 일령은 상주와 중주 사이에 끼어져 있는 첨인(尖刃)이 되었다.
마야에게 옳게 펼쳤는지 물어볼 틈이 없었다. 마야도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남만에서도 이주회첨진을 펼쳤지만 마야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해주지 않았다.
잘못 펼쳤다. 아주 크게 잘못했다. 그건 이주회첨진을 펼친 것이 아니라 장난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진이 잘못되었으면 고쳐 주었어야지 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이주회첨진은 솔개를 닮았다. 솔개처럼 움직여야 한다. 불사조처럼 타올라야 한다.
‘아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주(二柱)…… 기둥이 두 개. 괜히 이주라는 말을 붙여놓은 게 아니라면…… 비익조(比翼鳥)?’
눈과 날개를 하나밖에 가지지 못했단다. 해서 반대쪽 눈과 날개를 가진 짝을 찾지 못하면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새다.
암수가 어울려서 하나가 된다. 실제로는 두 마리이나 하늘을 날 때는 한 마리다. 머리가 둘인 새다.
‘상주와 중주가 아니라 기둥이 둘이었다면…….’
다담선자는 즉시 눈길을 돌렸다.
천멸도주가 움직인다. 절혼마녀가 피해내고, 일령이 역공을 가한다.
싸움은 급변하여 절혼마녀와 일령이 천멸도주를 합공하는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우주만상을 포용한 검법, 무당검법십삼세. 같은 무리를 추구하는 검법, 백형검법. 도주와 연화가 중심을 맡았어야 해.’
생각을 거듭해 봐도 천멸도주와 금연화 외에는 기둥을 맡을 사람이 없다.
그녀들은 최강자다. 최소한 여인들 중에서는 최강자다.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자신만 해도 누구에게 뒤진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마도 사상 가장 빨랐다는 십족신마의 천와류를 펼치면 누가 따라잡을까. 거기에 빛보다 빠르다는 추명반을 쏘아낸다면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천멸도주? 막아내지 못한다. 금연화? 못 막아낸다. 이것만은 자신한다. 그 누구도 막아내지 못한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천멸도주나 금연화에게 물어보면 가장 강한 사람으로 다담선자라는 별호를 들먹일지도 모른다.
하나 아니다. 앞으로의 발전도는 열외로 하고, 현재의 모습만 가지고 분석할 때도 최강자는 천멸도주와 금연화다.
그녀들의 무공은 끝을 모르고 나아간다. 현재 이 순간에도 진보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오늘 보여준 검과 내일 펼쳐질 검이 확실히 다르다는 거다.
‘몸통이 만들어졌으면 두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날개는…….’
말할 것도 없다. 신법의 귀재들인 절혼마녀와 일령이다. 두 여인이 날개가 되어 버텨주어야 한다.
남은 것은 부리와 발톱이다.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공격 무기 역할을 해줘야 한다.
누가 적합할까?
‘나야. 내가 부리가 되었어야 해.’
자, 이제 비익조이니 두 개로 나눠야 한다.
금연화 쪽에 날개로 일령을 붙이고, 부리로는 자신을 덧붙인다. 천멸도주 쪽에는 절혼마녀를 날개로 삼는다. 부리로는…… 평생을 할아버지로, 종복으로 따라다닌 시마가 적합할 듯하다. 그의 녹혈마공이라면 부리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이것이 진정한 이주회첨진이었다.
‘그랬어. 그랬는데…… 그랬는데…… 말을 해주지 않았어. 말을 하지 않았어.’
마야를 떠올렸다. 이주회첨진의 오류를 지적해 주지 않은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이유를 짐작하고 눈물이 팽 돌았다.
그녀는 기쁜 마음을 가득 담고 웃었다.
“호호호! 호호호호호!”
금연화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비무를 하던 세 여인도 검을 멈추고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호호호호! 호호호호호!”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랬다. 그래서 마야는 이주회첨진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세 여인이 있다.
천멸도주, 절혼마녀, 다담선자.
천멸도주는 제외해야 한다. 그 당시, 자오법신에 빠져들었을 때는 두 여인만 그의 곁에 있었다. 천멸도주가 가까이 있기는 했지만 천형에서 벗어나지 않은 상태라 부부지연을 맺을 수는 없는 몸이었다.
절혼마녀도 불리한 입장인 것이 사실이다.
마야가 그녀를 취한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육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석신(石身)을 뒤흔들 음기를 취할 목적으로 품에 안았고, 절혼마녀도 그런 점을 알면서 몸을 내줬다.
마야에게는 미안한 입장이고, 절혼마녀에게는 희생이었다.
창기의 몸이니 괜찮다고, 수백 번도 더 해본 정사를 한 번 더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창기에게도 정조가 있고, 희생이 있다. 그렇기에 마야는 절혼마녀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하나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마야가 곁에 두고 싶었던 사람은 다담선자다.
내색한 적은 없다. 말로 한 적도 없다. 티끌만큼이라도 눈치를 보인 적 또한 없다.
그에게 모든 여인은 공평했다. 선후(先後)의 차이는 있지만 그의 부인이 된 여인에게는 똑같은 사랑을 내줬다. 그런 줄 알았고, 그렇게 알아왔다.
아니다. 아니었다. 그는 다담선자가 옆에 있기를 바랐다.
이주회첨진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려면 진의 형태를 수정해야 한다. 천멸도주와 금연화를 안으로 끌어들이고, 다담선자를 가장 바깥쪽으로 내보내야 한다.
다담선자의 무공은 지키는 쪽이 아니라 공격하는 쪽에 적합하다.
마야는 그게 싫어서 진을 고치지 않은 것이다. 본인 스스로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겠지만, 진을 수정하여 다담선자를 바깥으로 보내느니 수정하지 않고 곁에 두는 편을 택했다.
마야의 마음은 이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오직 한 여인만 택해야 한다면? 딱 한 여인과만 살아야 한다면?
‘나야. 나…… 고마워, 가가.’
다담선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호호호호호! 호호호!”
저녁은 모두 함께 먹는다.
찬이 있을 때도 함께 먹고, 없을 때도 함께 먹는다. 들판에서 쥐를 잡아먹어야 할 만큼 곤궁해도 함께 먹는다.
오늘은 찬이 좋다. 야채도 풍성하고 밥도 기름지다. 고기도 있고 생선도 놓였다.
모두들 부지런히 저금을 놀리고 있을 때, 다담선자가 불쑥 말했다.
“호법이 있어야겠어요.”
모두들 무슨 소리냐는 듯이 다담선자를 쳐다봤다.
“마궁 궁주라는 사람이 호법조차 없으면 되겠어요? 웬만한 일은 직접 손을 쓰지 않아도 해결해 줄 사람이 있어야죠. 아무나 건드릴 수 있다면 마궁 궁주 체면이 안 서잖아요.”
“…….”
마야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짐작한 듯 웃음기 담긴 눈길로 다담선자를 쳐다볼 뿐이다.
다담선자는 마야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 개나 소나 껄떡대면 곤란하지. 말해.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말을 꺼냈을 거 아냐.”
천멸도주가 시금치를 듬뿍 집으며 말했다.
“도주, 마야를 따라붙어 줘. 평생. 눈을 뜨고 있을 때나, 잠을 자고 있을 때나. 호법의 위치에서.”
밥을 떠먹던 도주의 손길이 뚝 멎었다.
“나보고…… 응응 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란 말이야!”
“험! 거참!”
“거 좋은 말 놔두고 응응이라니.”
말한 천멸도주보다 사내들이 고개를 숙이며 눈길을 피했다.
“도주가 싫으면…….”
“누가 싫대! 됐어! 내가 하지. 들었지? 흐흐! 이제 평생 귀신 하나 따라붙는 거야.”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면서 생색은 나지 않는 일인데도 천멸도주는 흔쾌히 승낙했다.
“큰언니, 언니는 도주가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위치에 있어줘요.”
“평생?”
절혼마녀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어디 갈 데도 없잖아요.”
“끙! 큰언니까지 붙일 필요는 없잖아. 호법은 나 혼자도…….”
“나도 붙을 건데요?”
“뭐!”
“마야의 분신은 도주.”
이주회첨진의 기둥이다.
“도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에 큰언니.”
날개 한쪽이다. 빠른 날갯짓으로 도주도 돕고 부리도 도와야 한다.
“큰언니 앞에 나.”
두말할 것도 없이 부리다.
이로써 이주회첨진 중 한쪽은 완성되었다.
이제 다른 짝을 찾아야 한다. 하나 그럴 수 없다. 금연화가 있고 일령이 있지만 그녀들에게 천멸도주나 절혼마녀와 같은 일을 맡길 수는 없다.
그녀들은 마야의 여인이 아니다. 마야의 여인도 아닌데 잠자리까지 지켜달라는 것은 무리다.
마야의 여인은 당연히 해야 한다. 평생 그의 곁에서 같이 살며, 같이 숨 쉬고, 같이 웃는다. 죽을 일이 생긴다면 같이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한쪽까지 완성되어 완벽한 이주회첨진이 운용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만, 한쪽만으로도 충분하다. ‘평생’이라는 말속에는 어려울 때 공명정대하지 않더라도 동의없이 합공을 취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그것이면 된다. 언제든지 손을 쓸 수 있는 위치에 포진해 있으면 되는 거다.
“이게 우리 위치예요. 나는 항상 드러나 있고, 큰언니는 반은 숨고 반은 나타나고, 도주는…….”
“항상 숨어 있어라?”
“우린 마야의 여인, 늘 붙어 다녀요.”
다담선자는 금연화와 일령을 제외시킨 이유를 둘러서 말했다. 사내들이 빠진 이유도 설명되었다. 일반적인 호법의 개념이 아니라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 한 몸으로 움직이겠다는 뜻이다.
금연화는 담담했다. 어떤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일령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일그러졌다.
양중양(陽中陽)의 위치에 있는 다담선자는 마야와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음반양(陰反陽)의 절혼마녀도 마야 옆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 음중음(陰中陰)인 천멸도주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이주회첨진을 이해했군.”
차를 마시는 내내 침묵하던 마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완전히 이해했어요. 비록 반쪽뿐이지만 우리 셋, 마야 곁에 있으면 되리라 싶고요. 그리고…… 고마워요.”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마.”
“후회요? 왜요?”
“새로운 이주회첨진, 아주 마음에 들지도 몰라.”
마야의 마음 깊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던 여인, 천멸도주. 그녀가 곁에 있으니 싫을 리 없다. 천형으로 얼굴과 체형은 망가졌지만 사람은 옛사람 그대로다.
다담선자는 웃었다.
“괜찮아요. 마음에 들어야죠.”
“다담.”
“됐어요. 아무 소리 마세요. 전 오늘 천하를 얻은 기분이에요. 하늘을 훨훨 나는 기분, 아세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이 기분을 상하게는 하지 못해요. 호호호!”
다담선자는 티없이 맑게 웃으며 일어섰다.
“오늘부터 교대로. 안쪽에서부터. 무슨 말인지 알죠?”
다담선자가 절혼마녀를 보며 눈을 찡긋거리자 절혼마녀도 찻잔을 놓고 일어섰다.
“뭐가 고맙다는 소리고, 뭣 때문에 천하를 얻은 기분인지는 모르지만 기분들 좋다니 나도 좋네. 동생, 내일은 먼 길 떠나야 하니까 오늘은 그냥 잠만 자. 알았지?”
“흥! 내일 진 빼먹으려고!”
어둠 속에서 코웃음 소리가 냉랭하게 들려왔다.
제2장 료불도(料不到) ― 뜻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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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찾는다는 표현도 옳지 않다.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으니 찾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 콘을 제압했다.
상관할 일이 아니다. 콘이 죽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추적, 감시하라는 것뿐이니 생사 여부에는 간여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