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29
229
변화는 또 한 번 일어났다.
사천제일룡이 나타났고, 너무도 간단하게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을 제압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지지든 볶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 한 올 곤두서지 않는다. 살아 있어도 좋고 죽은 시신이라도 상관없다. 콘만 추적할 뿐이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그가 은신해 있는 곳에도.
“재미있는 놈이군.”
마야가 귀엽기 짝이 없는 강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강아지는 힘차게 달렸다. 조그마한 다리를 앙증맞게 놀렸지만 속도만큼은 큰 개보다도 빨랐다.
“북검문에도 이런 게 있었죠?”
절혼마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적선서. 하하! 악착같이 따라붙는 통에 고생깨나 했지?”
“그랬어요. 얼마나 냄새를 잘 맡던지.”
“이놈도 적선서 못지않은 것 같은데?”
“그러게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신기한 게 있어요.”
“신기한 것?”
“가가가 얘를 모른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 정말 모르는 거예요,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절혼마녀의 음성에는 약간의 비음이 섞여 있어서 간드러졌다.
“알면 안다고 하지. 정말 몰라. 처음 보는 놈이야.”
마야가 웃었다.
강아지는 만사무불통지가 보내왔다. 종(種)을 알 수 없는 개인데,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아서 뒤만 쫓아가면 콘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강아지는 만사무불통지의 호언장담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듯 조금도 지체치 않고 치달려 나갔다.
보통 강아지는 아니다. 덩치가 작아서 강아지처럼 보이지만, 아마 사납기도 맹수 버금갈 게다. 창끝처럼 뾰족한 이빨과 금강석처럼 단단해 보이는 발톱으로 보아 예사 개는 분명 아니다.
개는 강가에 도착했다.
마야와 콘이 싸우던 곳이다. 아직도 폭발의 잔해가 군데군데 남아 있으며 독에서 풍겨 나온 악취가 가시지 않았다.
“어멋! 정말 콘을 찾아가나 봐.”
개의 능력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던 일령이 깜짝 놀라 말했다.
콘을 찾기 위해서는 콘과 마야가 싸웠던 장소에서부터 찾아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고, 한낱 미물인 개가 정확히 순서를 밟아나가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는 강가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잠시 코를 높이 들고 냄새를 맡는 듯하더니 이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정말 뒤쫓는 것 같은데.”
혈유가 장난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콘을 찾아주는 도구로 개 한 마리가 보내져 왔을 때,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만사무불통지가 보내왔으니 믿어야 하지만 개 한 마리가 드넓은 중원에서 사람 한 명을 찾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콘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그의 정신 상태가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개조되었다. 그의 무공이, 마공이라 불리는 무공이 그의 정신을 삭막하게 탈바꿈시켜 놨다.
그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르면 사건 현장을 찾아가고, 그가 남긴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 이것이 콘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남도문의 막강한 정보력을 활용하는 수도 있다.
추적을 전담하던 추혼단이 모순되게도 호채마에게 몰살당했으니 그들의 힘을 빌릴 수는 없다.
그럼 남도문의 정보력은 대폭 약화된 것인가? 아니다. 추혼단이 사라졌다고 해서 남도문의 정보력이 약화되지는 않는다.
추혼단은 원래 표적 추적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특정한 사안이나 특수 인물에 대한 추적을 전담해 왔다. 광범위하게 널려 있는 정보들을 수집하는 장치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말이다.
그럼 정보 수집은 누가 하는가.
남무림 모든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사람이 나타나면 인근 무가에 연락을 취하고, 무가에서는 정보의 상중하를 즉시 판단하여 금전을 지급한다.
어떠한 정보든 돈이 된다.
지나가는 행인을 말해도 돈이 주어진다.
길거리에 떨어진 돈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정보도 같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돈을 받는다.
무가는 얻은 정보를 곧바로 지역 패주에게 전달하고, 지역 패주는 성(省)을 아우르는 절대 무가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도문 야광의 손에 쥐어진다.
이런 일련의 전달 과정을 진행시키는 동안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들은 걸러진다. 누가 고향을 떠나 객지에 가서 술을 마셨다거나, 바람을 피웠다는 등 일상적인 생활 전반에 걸친 정보들은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성(省)에 전달될 즈음에는 흔적조차 비치지 않는다.
야광에 전달되는 정보는 무림에 관한 사항들이며, 아주 중요한 고급 정보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이러한 정보 수집, 정보 전달 방식은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무가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한은 계속될 게다.
만사무불통지가 남도문의 힘을 빌려준다고 했으니 각종 정보 또한 공유되어야 한다.
콘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듯싶었다.
한데 강아지라니.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으면서 약속은 제대로 지키는 기가 막힌 방법이다.
“저기군. 멀리 가지 않았어.”
마야가 말했다.
힘차게 달리던 강아지가 우뚝 멈춰 섰다. 강 건너, 암석 더미를 노려보면서.
‘혈취(血醉)!’
작은 개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나타났다.
대체로 누구를 주시하라는 명령은 짧아야 서너 달, 길게는 일 년 넘게 소요될 때 하달된다. 하루, 이틀 감시하고 끝나는 일은 말 그대로 ‘감시’하라는 명이 떨어지며, 그만한 일로는 추인(追人)을 부르지도 않는다.
명을 받고 행동에 옮긴 지 이제 겨우 하루.
혈취가 벌써 나타났다.
혈취는 추인의 냄새만 맡는다. 보통 개보다 두세 배는 후각이 예민하며, 수많은 냄새 중에서도 오직 추인의 냄새만 구별해 내도록 훈련되었다.
목표를 쫓는 과정에서 따로 연락을 취하지 못하는 추인의 입장을 고려하여 만들어낸 것이 혈취다.
혈취가 명령을 받은 지 하루 만에 나타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주 잠시. 숨 몇 번 들이쉴 사이만.
그는 이내 안정되었다.
혈취가 나타나든 뭐가 나타나든 신경 쓸 게 없다. 그의 눈은 오직 콘만 보고 있으면 된다.
그는 혈취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피부가 바늘로 쪼인 듯 따끔거린다.
“독입니다.”
선두에 섰던 마도가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강도가…… 극상(極上). 지독한 독이군.”
마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만한 독은 사천당문에만 존재하는데…… 거참, 희한한 일이군. 요즘은 어째 독이 나타났다 하면 모조리 당문 거야. 당문이 거덜난 거 아냐? 그러지 않고서야 당문 독이 이리 흔할 리 있나.”
시마가 코를 킁킁거려 공기 속에 퍼져 있는 독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전진하기는 곤란하다. 독을 비켜내는 능력이 있으니 중독되어 죽지는 않겠지만 일시 마비 증세가 올 수 있다. 심하면 몇 날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한다.
“내가 둘러보지.”
마야가 앞으로 나섰다. 하나 그보다 한 발 앞서서 나선 사람들이 있다.
“고생은 해도 죽지는 않으니까.”
마도가 쏘아나갔다. 수검도 곧바로 뒤를 쫓았다. 독기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망혈인만 뒤로 물러섰다.
앞서 나가던 마도가 휘청거렸다. 다리의 신경이 끊어진 사람처럼 제대로 걷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수로로 독기를 뽑아내고 있지만 몸속 잔류량이 너무 많아서 일시적으로 중독 증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에게는 고비다. 계속 운기를 하여 독기를 뽑아내면 살 수 있지만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황천행이다.
다행히 마도는 우뚝 섰다.
“마도, 됐어. 뒤로 물러섯!”
마야가 재빨리 앞으로 치고 나오며 말했다.
“궁주님, 괜찮…….”
“뒤로 빠져! 수검! 너도 빠지고!”
수검이라고 다를 리 없다. 마도에 이어 수검까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끌끌! 젠장! 이제야 알겠네. 산심독(散心毒)이야. 망할 놈 중에 망할 놈이지.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서 뒈지게 만드는 독인데, 아주 성깔 더러운 놈이야.”
“당문 독 맞죠?”
다담선자가 물었다.
“맞아. 사용이 허가된 독이긴 하지만 금독(禁毒)에 가장 가까운 놈이지. 여기서 선 하나만 넘으면 금독이야.”
“제길! 금독도 이겨냈는데.”
수검이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이를 악물며 버텼다.
“금독이나 다름없다니까! 끌끌! 이놈아, 독이라는 게 약한 독 있고, 독한 독 없는 것이여. 어떤 놈은 설사약에도 뒤지고, 어떤 놈은 비상을 마셔도 쌩쌩해. 독 가지고 우열을 논하는 놈같이 미련한 놈은 없지. 클클.”
시마가 대뜸 핀잔을 주었다.
“이 영감탱이가!”
“끌끌! 궁주, 이 영감탱이도 여기가 한계. 이만 뒤로 빠질라우.”
시마는 자기 할 말만 내뱉고는 훌쩍 뒤로 물러섰다.
일령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금연화도 안색이 파랗게 질리고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저도 안 되겠어요.”
다담선자도 손을 들었다.
모두가 한계다.
절혼마녀와 천멸도주는 그림자가 되어 숨어서 따라왔다. 하기에 피를 토하고 죽는 순간까지도 말은 하지 않는다.
미리 헤아려 주어야만 한다.
“절혼, 도주, 빠져.”
마야는 홀로 나섰다.
다른 사람들이 쩔쩔매는 절독이지만 그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약간 비릿한 냄새가 맡아지고 갈증이 치미는 정도밖에 느끼지 못했다.
사박! 사박!
그는 곱디고운 모래를 밟으며 걸어갔다.
“그를 완벽히 보호할 방법은 없는 모양이네.”
다담선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실망했구나?”
그림자에서 요화로 변신한 절혼마녀가 사뿐사뿐 걸어와 그녀 곁에 섰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실망할 필요 없어. 이런 경우는 예측하지 못했잖아.”
“이런 경우, 저런 경우…… 많은 경우가 있겠죠. 제가 생각한 호법은 어떤 경우든 막아설 수 있어야 하고요.”
“어떤 경우든 막아설 수 있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왜?”
다담선자는 답하지 않았다.
굳이 말해야 아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독에 졌기 때문이다.
“이번만이 아닐 거야. 버텨내지 못할 독이 얼마나 많겠어. 우린 그중 하나를 만난 거지. 독만이 아냐. 암기도 마찬가지야. 암기뿐이겠어? 무신 같은 자가 나타나면 어림없잖아. 어떻게 막아내겠어. 마지막 순간까지 막아내겠다거나 뭐 그런 말 말고 확실하게 막아낼 방도가 있어야 하는데, 없잖아?”
그렇다. 절혼마녀의 말이 맞다. 한 인간을 완벽하게 호위하기 위해서는 천하제일인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천재지변(天災地變)도 이겨낼 수 있는 신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지닌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으면 된 거다.
할 만큼 했다.
“도주는?”
“풋! 나병을 치료한 여자야. 우리에겐 치명적이지만 도주에게는 이까짓 것에 불과할걸?”
“따라갔어요?”
“그림자니까.”
다담선자와 절혼마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물에서 물 몇 바가지 퍼다가 강물에 쏟아 부은들 흔적이 남을 리 없다.
멸신구관에서 흡혈고인과 미염흑매까지 흡수해 버렸던 영매술에게 산심독 정도는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했다.
마야는 서둘지 않고 걸어갔다.
사천제일룡의 모습이 보였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콘이 제일 먼저 눈에 띄고, 강둑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일남일녀도 봤다. 여자는 초면이지만, 사내는 아는 얼굴이다.
‘산주.’
산인들을 이끄는 산주가 콘과 함께 쓰러져 있다.
아는 사람은 또 있다. 복면으로 가린 얼굴, 여인의 몸매…… 콘과 승부를 결하려고 할 때 폭죽을 터뜨리며 강에서 솟구쳤던 여인이다. 잠깐 스쳐 지나간 것이 고작이지만 얼마 전 일이니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마야는 그녀가 누군지 짐작해 냈다.
강변에서는 몰라봤다. 어딘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몸매며 움직임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다. 다담선자나 절혼마녀가 복면을 한 것처럼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아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이제는 안다. 가까이 다가서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육신녀.’
냄새…… 틀림없이 육신녀 서군봉의 체향이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멸신구관에서 살을 맞대다시피 하며 지낸 적이 있는데.
그녀도 쓰러져 있다.
가히 놀랍지는 않다. 사천제일룡과 부딪쳤다면 쓰러져 있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 만나는군.”
마야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뜻밖에도 사천제일룡은 당황해하지 않았다. 철사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손 하나 움직이지 못했던 과거는 깨끗이 잊은 듯했다. 아니, 그런 과거가 아예 존재치 않는 듯 당당했다.
지금 처음 만나는 사람 같다. 마야 정도는 단숨에 꺼꾸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하게 풍긴다.
그동안 기연이라도 만났나? 새로운 독이라도 만들었나?
“이 사람들, 당신 솜씨?”
마야가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사천제일룡은 쉽게 인정했다. 말도 필요없다는 듯 고개만 주욱 끄덕였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볼일이 있다면…… 힘으로 빼앗아야 되나?”
“빼앗아? 하하하! 이봐, 날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냐? 하하하! 하하하하!”
사천제일룡은 자신감에 넘쳐서 대소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