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31
231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다른 사람이라면 이해가 불가하겠지만 소립파는 이해한다.
영능(靈能), 심언(心言).
그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있다. 만공심안과 적멸주를 적절히 사용하면 굳이 말을 하지 않고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상대의 머릿속에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콘과 서군봉이 영기(靈氣)로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간단하게 파악된다.
부부간을 흔히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하는데, 콘과 서군봉은 영(靈)과 영(靈)이 상통하니 이보다 완벽한 일심동체는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생긴다.
서군봉에게 의념(意念)을 발산할 만한 능력이 있나?
없다. 물어볼 것도 없이 분명히 없다.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콘이 그러한 능력을 지녔고, 서군봉은 받아먹는 입장이라고 봐야 한다. 콘이 영기를 움직여 서군봉과 상통하되, 지시는 서군봉에게 받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단정폐맥술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백일몽과 합쳐서 상호 보완 작용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서군봉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보완 작용이지만.
서군봉은 몸을 일으키더니 혼절 상태인 사천제일룡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었다.
소립파는 이런 상황을 빤히 보면서도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쉬익!
소도가 날아왔다.
기세가 굉장히 사납다. 몸을 돌리지 않으니 등을 꿰뚫고 들어와 심장을 부숴 버리겠다는 투다.
“빨리! 어서!”
소립파는 다시 소리를 내질렀다.
이번 소리도 음성이 되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아니, 새어 나오기는 했지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푸욱!
소도가 등을 꿰뚫었다.
심장은 피했다. 폐도 피했다. 콘의 공격을 피해낼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만공심안이 제때 효력을 발휘해 주었다.
‘목숨을 건진 것도 다행.’
상식으로는 생각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콘의 소도를 맞은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와 싸운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콘의 진기 운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 일방적으로 내몰리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참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처럼 등을 내주면서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소도를 맞으면서도 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목숨이 경각에 이른 순간에도 타개 방법을 모색했다.
최소한 지금처럼 당하지는 않았다.
콘의 무공이 어떻게 해서 며칠 사이에 이토록 바뀐 것일까. 초식 몇 가지가 바뀌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무공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납득되지가 않는다.
쒜에엑!
마지막 일격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디로 피하든 소도는 지옥 끝까지 따라올 것이다.
‘제길!’
소립파는 툴툴 웃었다.
하필이면 암벽 쪽에 몸을 붙이고 있어서 피할 곳조차 없다니.
재수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동굴도 아니고 약간 움푹 파인 지형에 지나지 않는 곳인데도 하필이면 가장 안쪽, 구석진 곳으로 내몰렸다.
끝이다……
이제 남은 건 콘이 실수를 저질러 요혈을 비껴 찌르기만 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제대로 찔렀더라도 마지막 숨 한 올만은 남겨놓기를 바란다.
영매술이면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 숨만 끊기지 않는다면 혼절해 있는 와중에도 신체 기관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상처 치료에 매진할 것이다. 체액(體液)은 평소보다 수십 배나 더 많이 흘러나와 상처를 도포할 것이며, 극대화된 면역력은 병균이란 병균은 모조리 쓸어버릴 게다.
하나 이것도 부질없는 희망일 뿐이다.
콘은 녹광성초와 왕벌의 봉밀로 두루 덮인 신체를 종이 찢듯이 찢어발겼다.
녹광성초가 무엇인가. 흑살마녀에게 불사(不死)의 신체를 안겨준 천고의 영약이지 않은가. 병기를 든 무인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리는 천고의 갑옷이지 않은가.
소립파는 녹광성초에 흑살마녀의 정성까지 덧씌웠다.
그의 신체는 웬만한 도검은 침범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때는 금강불괴(金剛不壞)라고 자신하기까지 했다.
콘은 그런 신체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실수할 리가 없다. 그의 칼이 몸에 박히는 순간, 그의 혼은 육신을 떠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에 했던 것처럼 극고음과 극저음을 동시에 써서 콘의 몸통을 울려보는 건데. 괜히 왕벌을 불렀나. 왕벌을 부르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았는데.
마지막인데 돌아서서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다. 돌아서는 순간 척추를 뚫을 소도는 심장이나 폐를 뚫게 된다.
소립파가 마지막 웃음을 지어낼 때, 콘의 소도는 등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일말의 실수도 없다.
그는 요혈이고 뭐고 따지지 않는다. 동물을 죽이듯 인간을 죽인다. 가장 쉽고 단순하며 확실한 방법이다. 척추 뼈를 갈라내고 신경을 끊는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몸속에 들어온 소도는 크게 원을 그리며 내장을 조각조각 끊어놓을 게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다.
소립파는 모든 신경을 활짝 열어 영매술이 용이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했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행동이었다.
서군봉은 사천제일룡에게 단약을 복용시켰다.
사천제일룡이 급히 깨어나야 한다. 그가 깨어나지 않으면 마야를 상대할 수 없다.
마야에게 당한 일격은 상당히 깊어서 앞으로도 몇 달간은 요양해야 될 성싶었다. 하나 그녀가 복용시킨 단약이면 당장 일어나서 몇 수 정도는 쏟아낼 수 있으리라.
그녀는 웃었다.
사천제일룡. 독왕(毒王)은 아니라 할지라도 아들이나 손자뻘은 충분할 독의 군주(君主).
그런 자가 눈앞에 쓰러져 있다.
이런 기회는 놓쳐서는 안 된다. 쉽게 찾아오는 기회도 아닌데.
그녀에게는 사천제일룡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서둘지 않았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사천제일룡이라는 무명을 얻으려면 웬만한 독과 암기는 모두 섭렵했을 터이다.
이런 자에게는 백일몽이 소용없다. 중독되도록 백 일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지만 기한이 꽉 차도록 투여해도 중독이 되지 않는다. 그 정도에 무너질 사람이라면 사천제일룡이라는 무명을 얻지 못했을 터다.
단정침이 아주 좋다.
‘조금만 일찍…… 하필이면 콘에게 쓰고 말았어. 콘은 백일몽으로도 충분했는데.’
단정침과 백일몽이 합쳐져 콘을 그녀가 바라던 이상으로 충실한 수하로 만들었다는 점이 뛸 듯이 기쁘지만 사천제일룡까지 얻을 수 있는 입장이 되고 보니 여간 아쉽지 않았다.
‘할 수 없지. 일단은 약간의 제재만…….’
그녀는 사천제일룡의 혈도를 격타했다.
무신 혈일뢰(血一雷) 울건평(鬱建平)의 혈뢰지공(血雷指功)이다.
혈뢰지공에 격중되면 체내 수분이 고갈되기 시작한다. 힘이 없고 나른해지면서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오한이 치민다. 피부에는 작은 반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눈은 충혈되며…… 몸이 허해졌을 때 나타나는 온갖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시작이다.
수분은 계속 고갈되니, 폐인의 과정을 거치고 거치다 죽고 만다.
참으로 고통스런 과정이다.
혈뢰지공이 더욱 무서운 점은 격중을 당하고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아픈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두 눈 멀쩡히 뜬 상태에서 손가락을 똑똑히 보여주며 지공을 전개했다면 모를까, 사천제일룡처럼 혼절 상태에서 당하면 죽어도 알 길이 없다.
‘우선은 이 정도로 해놓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싸움을 봤다.
콘과 마야는 어떻게 싸우고 있을까? 콘이 밀릴 것 같은데…….
그녀는 깜짝 놀랐다.
콘의 무공이 이토록 급진전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급진전 정도가 아니다. 이건 완전히 다른 무공을 선보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온갖 사술로 똘똘 뭉친 마야를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난해한 사람이 마야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손쉽게 제거되고 있다.
마지막이다. 콘이 마지막 소도를 날렸다. 저게 꽂히기만 하면 태산처럼 커 보이던 마야도 무너진다.
그때, 불현듯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콘에 사천제일룡에 마야까지. 이들만 내 사람이 되면!’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갑자기 다급해졌다. 콘의 마지막 일격이 꽂혀서는 안 된다.
그녀는 급히 외쳤다.
“안 돼! 죽이지 마!”
“끄으으윽!”
콘은 짐승이나 흘릴 법한 이상한 기음을 토해냈다.
서군봉의 말이 효과가 있었다. 몸을 뚫고 들어오던 소도가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콘! 말을 들어! 제압하는 것으로 그쳐!”
“끄으으으윽!”
괴성이 고조되었다. 흥분과 분노가 함께 내포된 괴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케 했다.
‘반항? 있을 수 없는 일…….’
콘의 행동은 확실히 상식을 벗어난다.
영혼이 억눌린 자는 지배자의 말을 천명(天命)처럼 받든다.
콘처럼 단정침에 제압당하고 백일몽에 취하면 스스로 자진하라는 신체의 위협까지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
항명이란 있을 수 없다. 벗어날 방법도 없다. 지배자가 아량을 베풀어서 놓아주지 않는 한 영원한 종이 되어 부림을 당하게 된다. 한데 콘은 반항하고 있다. 명령대로라면 소도를 빼내고 혈도를 짚거나 뒤통수를 가격하여 혼절시키거나 사로잡는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괴성만 내지른다.
“콘! 말을…….”
서군봉이 명령을 재촉하려다 뚝 말을 멈췄다.
“끄으으…… 끄으으윽! 끄으윽!”
콘의 괴성이 심상치 않다. 분노가 넘쳐흐른다. 그의 전신에서, 그가 들고 있는 소도에서 살기가 뚝뚝 묻어난다.
마야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강렬하게 상충한다. 이것조차도 말이 안 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있다.
영혼을 지배당하면 철천지원수조차 잊어버리는데, 머릿속에 어떤 내용이 각인되어 있기에 마야를 죽이고자 하는 살심이 이토록 강한 것일까.
서군봉은 명령을 재촉할 수 없었다.
계속 같은 명령을 내린다면 그녀가 가해놓은 제재가 무너진다. 지금 콘의 상태라면 백일몽이 아니라 천일몽이라 할지라도 뚫고 나올 기세다.
“휴우! 그래, 죽여.”
서군봉은 입맛이 썼지만 살명(殺命)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한데 콘의 행동이 이상했다. 얼싸 좋다 하고 소도를 내지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도를 거두고 물러섰다. 굉장히 다급하게, 불에 뎄을 때처럼 화들짝 놀라서 손을 거뒀다.
이유는 그녀도 금방 알았다.
웨에엥! 웨엥! 웨에에엥!
소립파가 부른 왕벌이다. 모든 사람에게 공포의 대상이지만 소립파에게만은 애완동물이나 다름없는 왕벌이 왔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작은 숨 한 번이면 끝날 순간에.
웨에에에엥!
왕벌들의 날갯짓 소리는 강판을 두들기는 듯 요란스러웠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제는 콘이 물러서기 바빴다. 반대로 소립파는 한숨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느긋이 지켜볼 여유까지 생겼다.
“이럴 줄 알았어!”
서군봉은 급히 사천제일룡의 명문혈(命門穴)을 격타했다.
“컥!”
사천제일룡이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다.
하나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내상은 여전했지만 한두 수 정도 손을 쓸 기력은 회복했다.
“왕벌! 왕벌을 죽여요!”
마야의 왕벌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오직 한 명, 사천제일룡뿐이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에게 다가가 단약을 복용시킨 것이다.
사천제일룡이 품속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왕벌들이 거짓말처럼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명 위기에 처했던 마야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제3장 심파료(心破了) ― 마음에 상처를 입다
1
오귀궁의 오귀는 멸신구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멸신구관을 짓는 데 직접 가담했을 수도 있고, 간접 지원만 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간여했다.
흡혈고인, 미염흑매, 적선태로 구성되는 삼충살육진은 독귀의 걸작품이다.
외통수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암로는 논귀의 작품이며, 암귀의 암기술과 뇌귀의 화약도 적절히 버무려졌다. 암로에서 쏟아지던 죽음의 암기 마화정은 암귀의 오대필살암기 중 하나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약도는 어떨까?
그는 시대를 달리 산 인물이다.
오귀가 한 세대를 앞서 산 사람이라면 이약도는 두세 대 정도는 앞섰다고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느 시대에 살았느냐가 아니고 중원을 쩌렁 울리던 그의 재산이 온전히 전해져 왔느냐가 관심사다.
소문에는 천석지기 정도로 몰락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소문일 뿐 믿을 건 못 된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그가 모종의 일에 온 재산을 투입했다고 볼 수는 없나?
가능하다. 전혀 불가능한 말은 아니다.
이약도의 재산에 오귀궁의 절기가 더해졌다.
그러면 누가 이런 대역사를 일궈냈는가.
궁궐을 짓는 것보다 더 큰 역사를 일으켜 놓고 겨우 후인 한 명 양성하자는 겐가? 그것도 반은 미친 자를? 그래서 무엇을 얻고자 한단 말인가.
만사무불통지의 말을 십 할 믿는다 해도 어딘가 모순된 점이 있다.
‘아니, 아니. 멸신구관은 나와 관계가 있어.’
소립파는 생각을 고쳤다.
그의 몸은 저주의 자오법신에 걸리기 딱 좋은 신체였다. 더군다나 그를 자오법신으로 이끌 자오갑마저 지녔다. 자오법신에 걸리면 갈 곳은 딱 한 곳, 멸신구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