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36
236
‘좌우지간 못 말린다니까.’
동방천마는 씩 웃었다.
장사꾼들은 칠부령 정상에서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장사꾼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정상을 밟는 순간 쉬고 싶은 생각부터 나는 게 정상이다.
그들이 쉴 때 처리한다.
그녀에게는 아홉 번째 고양이였다.
연을 날렸다.
명절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니지만 띄운다. 서로의 소식을 확인하는 데는 연처럼 좋은 것도 없다.
연은 바람을 타고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한데 응답이 없다. 연을 올리는 즉시 응답하는 연이 날아올라야 마땅한데 전혀 소식이 없다.
연락 시간을 잘못 알았나? 연이 잘못되었나? 실이라도 끊어진 것일까? 아니면 연을 띄울 수 없는 사정이 생긴 것일까?
연이 오르지 못한 데 대한 이유는 많다.
동방천마는 처음부터 딱 하나만 생각했다.
‘일이 생겼어!’
맙소사! 서방천마와 남방천마를 동시에 해치울 수 있는 자가 있다니. 그들이 어떤 자들인데.
동방천마는 즉시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상대를 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해 놓아야 한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쳐 복수를 한다는 식의 허황된 말은 믿지 않는 편이 좋다.
서방천마와 남방천마가 제거되었다면 자신 역시 무사할 수 없다.
하나, 둘, 셋!
주위는 이상 없다. 인기척도 없다. 매복 또한 없는 것 같다.
신경과민인가? 아니다. 연락해야 할 사람이 연락을 하지 않는 건 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뭇가지 밟는 소리조차 유의하며 칠부령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데,
‘헉!’
그녀의 눈에 질리도록 많은 벌 떼가 보였다.
크기가 손가락만 한 놈들, 왕벌이다.
왕벌은 그녀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숲 속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옮겨 다녔다.
우연인가? 천만에! 그럴 리 없다. 마야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놈들이 괜히 칠부령에 깔려 있겠는가.
빠져나갈 길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당한다. 서방천마와 남방천마가 무너졌다면 자신 역시 무너진다고 봐야 한다.
혈유만 죽이지 않았으면 타협이라도 해보련만, 수족이나 다름없는 자를 죽였으니 대화로 해결하기는 글렀다.
‘난 살 거야. 어떻게 해서든.’
그녀는 도망 대신 좌정(坐定)을 택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녀 앞에 나타난 사람은 수검이었다.
옛날, 그 역시 패할 뻔한 기억이 있다. 동방천마의 욕금진기는 정말 무서웠다.
병기를 들고 서로의 목숨을 빼앗자고 마주 섰다. 한데 상대에게 욕정이 생긴다. 초식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상대를 안고 싶은 욕망밖에 없다.
자,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충고를 할 것인가.
백이면 백, 차라리 뒈지라고 말할 것이다.
동방천마와 싸울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몸으로 겪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때 가르지 못한 승부를 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동방천마, 일어서.”
“…….”
동방천마는 말이 없었다. 좌정한 상태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개(半開)한 눈조차 그대로다.
“동방천마, 일어서지 않아도 넌 죽어. 기왕 죽을 것, 무인답게 죽어라. 그래야 죽이는 나도 마음이 편할 거고.”
“기다려.”
“뭐?”
“마야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기다릴 수 없거든 죽이고. 괜찮아. 무방비라도. 다 이해해.”
동방천마는 반개한 눈조차 아예 감아버렸다.
수검은 검을 쳐낼 수 없었다.
그로부터 마야가 모습을 보인 것은 두 시진이나 지나 저녁노을이 물들 무렵이었다.
“쯧! 벌써 끝냈어야지.”
마야는 대뜸 핀잔부터 주었다.
“죄송합니다. 궁주님께 드릴 말이 있다고 해서. 말만 끝나면 바로 처단하겠습니다.”
수검은 ‘처단’이라는 말에 특히 힘을 실어 말했다.
혈유를 죽인 사방천마는 어떤 이유에서든 살려두면 안 되는 철천지원수였다.
“궁주님께서 왔다. 말해.”
수검은 진흙이 잔뜩 묻은 발로 동방천마의 무릎을 꾹 눌렀다.
그런데도 동방천마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욕을 당한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표정을 자연스럽게 지어냈다. 조용하고 태연했으며 요염한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곧 한솥밥 먹을 처지에 너무하는 것 아냐?”
“뭐! 너,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수검은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나 싶었다.
동방천마는 마야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열 여자 싫다는 사내 못 봤어요. 난 어때요?”
“나중에 개나 돼지를 키울 때 생각해 보지.”
동방천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모욕을 가하면 가할수록 음성에 더 힘이 실렸다.
“몸으로는 안 되겠네요. 그렇죠?”
“수검, 죽여.”
“그럼 이건 어때요? 저희 주공께서 왜 유계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무림 최대의 의문 중에 하나다.
북검문주, 남도문주와 버금가는 무공을 지녔다는 그가 무림에는 왜 나서지 않는 것일까?
꿰어 맞춘 말은 많다. 정확한 것은 유계의 주공밖에 모른다는 말이 가장 맞는 말이겠지만.
“유계의 주공.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냐.”
“유계가 곧 열려요. 주공이 양성해 놓은 마인들은 폭발 직전이고요. 그들이 풀려나면 정말 보기 좋을 거예요.”
“관심없어. 보아하니 목숨 대신 다른 걸 주겠다는 것 같은데 마음이 확 끌리는 뭐 그런 것 없나?”
“참 까다로운 사람이군요. 대충 하나 골라잡으면 감자넝쿨처럼 전부 딸려 나올 텐데. 좋아요. 남도문에 대해서는 칠팔 할 가량 파악해 놨어요. 그걸 주죠.”
마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없어요.”
“죽어야겠군.”
“절 얻으면 유계를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할 거예요. 많이는 원하지 않아요. 딱 일 년만. 그 정도면 제 머릿속에 든 것, 모두 빼갔을 테니 이용가치도 없을 거고요.”
동방천마는 자신만만했다.
그녀의 말이 모두 맞다. 그녀를 얻으면 유계에 대해서 소상히 알 수 있다. 그녀는 주공의 직속 종복이니 중원무림인 대다수가 모르는 비밀도 알고 있을 게다.
이를 잘 이용하면 유계를 엎을 수도 있고 이용할 수도 있다.
확실히 머리 하나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이해타산에서 앞서는 제안이다.
죽이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이용할 대로 실컷 이용한 다음에 죽여도 된다. 유계를 이용하거나 뒤집어엎은 다음에 제거해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을 게다.
백번 천 번 고쳐 생각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마야가 말했다.
“죽여.”
동방천마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설마 마야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가장 값어치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알았어야 한다. 형제의 죽음에 연관된 것들은 타협불가 대상이라는 점을. 남도문이나 북검문 같은 곳에서는 주요 인물을 죽여놓고도 타협을 할 수 있지만, 마야는 아니었다.
칠부령에 오를 때부터 죽일 것을 작심했다.
동방천마는 마야를 너무 몰랐다.
“클클! 냄새가 나는군. 아주 익숙한 냄새야.”
시마가 코를 킁킁거리며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내 익숙하기 이를 데 없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그년 참 독하네. 이 사람들 이거 제이무신가 사람들 맞지?”
마도와 사망혈인이 시마를 쫓아갔다.
진원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그만 웅덩이, 빼곡히 누워 있는 시신들, 그리고 시신을 파먹는 구더기들.
시신 썩는 냄새는 시마에게는 이 세상 어떤 냄새보다도 익숙한 냄새였다.
“휴우! 지독하네. 한 방 날려야겠군요.”
“날리긴 뭘 날려. 그냥 덮어주기나 하자고.”
화약을 꺼내려던 사망혈인이 살며시 인상을 썼다.
화약으로 처리하면 손 몇 번 놀리면 되는데, 일일이 흙을 떠서 덮으려면 족히 한 시진은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사망혈인은 순순히 말을 들었다.
시마, 마도, 수검, 언장은마……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이다.
수검의 무공은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마도의 경우에는 확실히 봤다.
능히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자신이 보기에는 정말 뛰어났다.
그런 사람들을 몰라보고 불퉁거리기도 하고, 쏘아대기도 했다. 잠자는 호랑이 수염을 건드리는 줄도 모르고.
누구든 까불면 화약 맛을 톡톡히 보여준다고 건방을 떨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 행위였다.
그가 묵묵히 흙을 덮고 있을 때 시마가 마야에게 가 말했다.
“제이무신가 무인들 같아. 모두 아홉 명. 가만히 보니까 이것들이 우리와 제이무신가의 연락망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어.”
“제이무신가가 모를 리 없죠.”
“그렇겠지.”
“언장은마.”
“알았네. 제이무신가에 다녀오라는 소리지? 내 후딱 다녀옴세.”
숲 속 깊은 곳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마인들이 정보를 필요로 할 때는 대부분 하오문에서 산다.
필요한 것을 말하면서 대가를 지불하면 언제까지 알아다 준다는 식이다.
그렇게 얻어들은 정보도 정확성이 오 할을 넘지 못한다.
하오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광명정대한 것도 아니고, 돈이라고 하면 친자식까지도 팔아넘기는 사람들이니 거짓 정보를 얻으면서 돈만 뺏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나지만 분풀이는 할 수 없다.
그들이 앙갚음으로 정도문파에 고자질이라도 하는 날에는 목숨 걸고 도주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마인들은 알아서 잘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지만 옳은 정보였으면 고맙고, 거짓 정보면 속았구나 하고 넘어가야 한다.
마야 같은 경우는 하오문주와의 유대 관계 덕분에 알차고 정확한 고급 정보만 얻는다.
그를 속이는 사람은 없다.
그는 하오문을 애용했고, 하오문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마도, 하오문주를 찾아. 지금 동정호(洞庭湖)에 있을 텐데, 최대한 빨리 가서 만나. 지금 하는 일 모두 접고 하오문의 모든 정보를 콘에게 집중시켜 달라고 해.”
“그럴 필요가 있나? 콘의 움직임이래야 겨우 살인 좀 많이 한다는 건데, 그 정도로 하오문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기에는…… 한 개 분타만 움직여도 될 것 같은데.”
“내 느낌이 틀리길 바라지만…… 조금만 지나면 전 무림이 들썩일 거야. 콘 때문에. 하오문이 전력을 기울여도 따라잡기 힘들 거야. 단지 느낌일 뿐이지만.”
동방천마가 죽으면서 한 말, 유계의 마인들이 곧 풀려난다는 말은 가슴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마인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정도무림과의 한판 승부를 말한다.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마야는 유계와 콘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콘의 정신 상태나 행동은 딱 유계가 바라는 마인이다. 유계에서 정통 수련한 마인 중에 한 명이라고 하면 의심할 사람이 없다.
유계가 콘을 내버려 둘 리 없다.
만약 콘이 유계의 수중에 떨어진다면, 수와 산주까지 유계에 합류한다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
“하오문주에게 내 뜻을 전하고 도와달라고 부탁드려.”
“필요한 정보는 제이무신가에서 얻을 수 있지 않아요?”
다담선자가 말했다.
“하오문의 정보와 제이무신가의 정보를 교차 확인할 거야.”
“콘과는 앞으로도 계속 싸우실 거예요?”
“싸워야지.”
마야의 대답은 확고했다.
콘의 무공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을 엇비슷하게 보면 큰 오산이다. 그는 늘 새롭게 변모한다.
다른 사람들의 염려처럼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싸울 필요는 없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이 상태로 발전한다면 앞으로 일 년이면 무신도 상대할 수 있다. 어쩌면 북검문주나 남도문주와도 자웅을 결할지 모른다.
일 년…… 너무 길다.
기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콘은 마야만 보면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살기와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러한 분노를 드러낸 다음에는 또 다른 무공의 경지를 이뤄낸다.
콘 앞에 모습을 보여서 그의 성질을 촉발시킬 경우, 콘이 무신의 경지에 이르는 기간은 앞으로 한 달이면 족할 것으로 생각된다.
참 일이 묘하게 꼬였다.
혈귀대주의 복수만 하려고 했는데, 무림사에 간여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놈의 복수를 하자면 궁왕을 죽여야 한다. 놈의 가슴에 화살을 꽂아 넣었으니 반드시 목숨으로 대가를 받아야 한다.
그 외에 단문협 참사에 가담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상조문이 멸문했고, 독조림이 초토화되었다. 철사문은 뿌리를 남겨두었건만, 멸문할 운이었던지 콘과 부딪쳤다.
궁왕만 남았다.
아니다. 또 남았다. 단문협 사건은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음모의 희생자다.
혈귀대는 음모에 휘말려 단문협에 들어섰다. 궁왕이나 남도문 무인들도 음모가 가리키는 대로 단문협에 갔다.
음모란 혈귀대주를 죽임으로써 마야를 무림에 끌어낸다는 것이다.
끌어내서 무엇을 하려고?
처음에는 일견후즉파라는 능력을 이용하여 무공을 보완하려는 줄 알았다. 무신에게도 보완해야 할 부분은 있고, 상승무공일수록 보완 작업이 어려우니까. 이런 작업은 짧게 잡아야 몇 년, 길게 잡으면 평생이 걸리는 대단히 난해한 일이다.
그런 일을 마야가 단시일에 끝내줄 수 있다니 끌어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