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40
240
보기만 해도 안고 싶어진다. 안으면, 그녀를 탐닉하면 그 순간부터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알지만 벗어날 수 없다. 모든 걸 다 알면서 그녀 곁을 떠날 수 없다.
왜? 그녀는 이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이니까.
육신녀가 웃고 있는 줄 안다. 입가에 조롱을 담고 있는 줄도 안다. 노예보다도 더 하찮게 대우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떠날 수 없다. 수가 없는 곳은 지옥이다.
사천제일룡은 일어섰다. 그리고 허우적거리며 걸어갔다.
“끄으으으윽!”
콘이 눈을 부릅뜬 채 비명을 토해냈다.
“단칼에 심장을 찔러. 알았어! 심장을 찌르지 못하겠거든 머리라도 베어내. 무조건…… 죽이던가 병신을 만들어.”
서군봉은 말을 하면서 월로초 가루를 허공에 뿌렸다.
“끄으으으윽!”
콘이 코를 벌름거리며 고통에 젖은 비명을 토해냈다.
미칠 것이다. 월로초 가루가 백일몽을 자극하여 지상 최고의 흥분을 불러냈으리라.
이와 같은 가상의 쾌락은 사천제일룡이 경험하고 있을 육체적인 쾌락보다 훨씬 강렬한 자극을 준다. 체력 소모가 거의 없으면서 감각을 육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 한계치까지 자신 스스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정사는 쾌락만 추구하는 게 아니다. 서로 간의 교감을 통한 정신적 쾌락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나 미친놈에게는 정신적인 부분을 기대할 수 없다. 백치 역시 그런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시간을 주면 안 돼. 놈은 여우새끼 같아서 조금의 틈만 있어도 빠져나가. 이젠 안 돼. 반드시 죽여! 알았어! 죽이지 못하면 네가 죽을 줄 알아! 죽여! 죽여! 죽여!”
서군봉은 악에 받쳐서 소리를 질렀다.
좋게 말해도 될 일이지만, 콘같이 제정신이 아닌 놈한테는 이야기 내용에 걸맞은 감정을 드러내 주어야 효과가 크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니까.
“마야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알아들어! 알아듣냐고!”
월로초 가루를 또 뿌렸다.
분통에는 월로초 가루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사용해도 족히 한 달은 쓰고도 남을 양이다.
아낌없이 쓴다. 한 달치를 하룻밤 사이에 다 쓴다. 오늘 밤새도록 콘을 담금질한다. 아침이 되어도, 싸움이 벌어져도 월로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머릿속에는 오직 마야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하게 만든다.
밤은 깊어갔다.
마야는 아침 산책을 즐긴다.
아주 나쁜 습관이다. 시쳇말로 죽으려고 환장한 게다.
무인은 취미도 갖지 못한다. 도박이나 술을 즐기는 인간이 있는데, 그런 인간치고 오래 산 인간이 드물다. 하물며 습관이라니. 매복해 있다가 기습해 달라는 소리가 아니고 뭔가.
마야에게는 호법이 있다. 마야 곁에 항상 붙어사는 여자는 한 명이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두 여인이 더 숨어 있다.
그들 세 명은 마야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잠을 청할 때도, 싸움을 할 때도 그녀들의 눈은 마야만을 쫓는다.
“당화.”
굳이 그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당화는 마야와 다담선자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모닥불에 독낭(毒囊)을 집어넣었다.
독낭은 활활 타올랐다.
하독(下毒)은 한 겐가? 아무 냄새가 없다. 독분 같은 게 날리지도 않는다.
“남은 시간은 일다경입니다.”
“일다경이 지나면?”
“다 죽습니다.”
당화는 손을 활짝 펴서 서군봉 앞에 디밀었다.
손바닥 위에 염소똥만 한 단환이 올려져 있다.
서군봉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단환 한 알을 집어 입속에 집어넣었다.
“금독(禁毒)인가?”
“금독은 독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쓰는 독입니다. 무조건 독하고 강하면 되는 줄 알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가장 잘 맞는 독을 쓰는 게 요체인데.”
“금독은 아니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가장 적절한 독이다, 이거지?”
“화분(花粉)입니다.”
서군봉은 무슨 꽃가루냐고 묻지 않았다.
사천제일룡의 말투로 미루어보면 크게 대단한 독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이름을 들으면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믿음은 간다. 사천제일룡이 하독한 독이니 믿어도 좋다. 대단한 독은 아니지만 마야와 그를 따르는 여인들 정도는 충분히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게다.
서군봉은 화제를 돌렸다.
“수는 외롭지 않았어?”
“…….”
“구혼음태는 누구나 익힐 수 있어. 밀실에 가둬놓고 구혼음태를 전수하면 누가 알겠어? 뼈가 녹도록 구혼음태 맛을 즐길 수 있지. 하지만 천락지궁을 가진 여자는 평생 찾아도 찾지 못할 거야. 이 세상을 샅샅이 뒤져도.”
“압니다.”
“수를 안고 싶을 때는 말해. 언제든지.”
사천제일룡은 듣기만 했다.
서군봉은 그런 그를 힐끔 쳐다본 후 다시 마야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가서 콘을 풀어.”
끼이익!
모옥 문이 열렸다.
봉두난발을 한 사내가 흐물거리며 걸어나왔다. 해초가 물결에 흔들리는 것처럼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간신히 걸음만 떼어놓았다.
밤새도록 월로초에 시달린 콘이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광기 어린 눈빛이 빛났다.
그가 마야를 봤다.
“마…… 야! 마야! 마얏!”
쒜에엑!
콘이 튀어나갔다. 술독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힘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나갔다.
다담선자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림자처럼 따르던 두 여인도 물러섰다.
그녀들도 콘이 비정상이라는 건 안다. 콘과 마야의 싸움도 안다. 콘의 기세가 무섭지만 마야를 죽일 수 없으며, 콘과 싸울수록 마야가 강해진다는 것도 눈치 챘을 게다.
그녀들로서는 막아설 이유가 없다.
“마얏!”
번쩍 허공으로 솟구친 콘이 대갈을 내지르며 선풍각(旋風脚)을 내질렀다.
콘이 애용하는 병기는 소도다. 권각(拳脚)이 아니다.
‘또 바뀌었어!’
감탄할 틈도 없었다. 마야가 선풍각을 피해내자 어느새 이기각(二起脚)이 튀어나와 안면을 노렸다.
쒜엑! 쒜엑! 쒜엑!
오른발, 왼발, 혹은 양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각법(脚法)을 보다 보면 어제만 해도 소도를 놓지 않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는 각법의 달인이었다. 아마도 중원에서 가장 발을 잘 쓰는 무인이 아닐까 싶다.
콘도 콘이지만 화살보다 빠르게 내리꽂히는 발길질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는 마야의 몸놀림도 입이 쩍 벌어진다.
두 사람의 공방은 순식간에 사십여 초를 넘겼다. 그때,
“마얏!”
콘이 다시금 대갈을 내질렀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격이 느닷없이 뿜어져 나왔다.
파라라랑!
순식간에 십여 장을 광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철사(鐵絲), 철사 끝에 매달린 원추(圓錐).
촤라라락!
철사는 손쓸 틈도 주지 않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원추가 팽그르르 돌며 마야를 포박해 버렸다.
두 손이 자유를 잃었다. 이어서 두 다리마저 칭칭 엮였다.
“위험!”
다담선자가 일갈을 내지르며 전장에 뛰어들려고 했다. 아니, 그전에 팔을 쭉 뻗어 추명반을 쏘아내려고 했다.
다른 두 여인도 마찬가지다. 소리는 내지르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그것뿐이다. 세 여인은 누구도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다담선자의 추명반도 허공을 날지 못했다.
“음!”
다담선자가 옅은 비음을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다른 두 여인도 움직임만 보였을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당한 곤란에 직면한 것 같다.
역시 사천제일룡이다. 남은 시간이 일다경이라더니 아주 절묘한 시기에 독효(毒效)가 나타났다.
“마얏!”
세 번째 대갈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쒜엑! 푹!
콘의 일격에 실수가 있을 리 없다. 그가 아니더라도 무인이라는 사람치고 동아줄로 칭칭 묶어놓은 사람 하나 정확히 찌르지 못하는 멍청이는 없다.
어느새 뽑아 든 소도가 정확히 심장을 꿰뚫었다.
피는 옷을 물들이는 정도만 흘러나왔다. 소도를 뽑으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겠지만 아직까지는 눈물을 흘리는 정도만 흘러내렸다.
죽음과 입맞춤하고도 남을 일격이다.
“노, 놀라운…… 회오리에 갇히는 것을 느꼈는데…… 빠져나오지 못했어.”
마야가 힘겹게 말했다.
“크크크! 크크크큭! 마야!”
콘은 소도를 밑으로 쭉 내리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야를 잡을 때 일조를 한 철사가 걸림돌이 되었다. 그의 소도는 철사에 가로막혀 밑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쒜엑! 빠악!
마야가 반격을 개시했다. 완벽한 포로에게 죽음의 일격을 날리고 희희낙락한 콘의 머리를 이마로 박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충격은 있었다. 콘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지 연신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
콘의 눈두덩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마야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콘은 물러서면서도 소도를 놓지 않았다.
소도가 뽑히며 피가 쭉 뿜어져 나왔다.
“크크크! 마야!”
정신을 차린 콘이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다가섰다.
마야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담선자는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만 보고 있다. 달려올 수 있었으면 진작 달려왔을 그녀다. 지금은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마도와 수검은 싸움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있다. 마야와 콘의 싸움은 일상사가 되어 경각심이 많이 누그러졌다. 더군다나 으레 싸움을 한낮에 벌여왔기 때문에 아침 시간에는 자신들의 연공 수련에만 전념한다.
콘은 그야말로 기막힌 시간대에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마얏!”
콘이 소도를 고쳐 잡았다. 노리는 부위는 정수리, 소도를 내리꽂아 머리를 으깨놓을 요량이다. 그때,
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디붉은 동녘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왕벌이다. 그동안 두 배, 세 배 늘어나 대식구가 된 왕벌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콘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유일하게 어찌할 수 없는 대상이 나타났으니 반가울 리 없다.
콘은 무의식중에 서군봉을 쳐다보았고, 서군봉은 사천제일룡에게 눈짓을 했다.
사천제일룡이 손을 들어 품에 찔러 넣었다.
서군봉의 입가에 의미 깊은 미소가 걸렸다. 미소를 본 콘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그들은 서로가 물고 물리는 관계다. 결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다.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마야를 제거하는 일처럼 중차대한 일을 벌일 때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들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지목하라면 그들은 서로를 택할 게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그들에게도 있다. 곤란한 일에 직면했을 때 해결해 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면에서는 추종을 불허하니 보통 유대 관계가 아니다.
한데 사천제일룡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마혈(麻穴)을 제압당한 사람처럼 손을 품에 찔러 넣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화!”
서군봉이 재촉했지만 사천제일룡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비로소 이상함을 눈치 챈 서군봉이 사천제일룡을 향해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
서군봉은 자신도 모르게 기묘한 탄성을 토해냈다.
놀람도 아니고 감탄도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아무 의미 없이 토해내는 단순한 소리처럼 들렸다.
서군봉은 사천제일룡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한 걸음도 떼어놓지 못하고 목석이 되어 붙박였다.
그녀에게 살아남은 것은 오직 눈빛뿐이다. 담이 약한 사람은 마주 볼 수도 없는 광기를 담고 마야를 노려보는데, 어둠 속에서 귀신을 만난 것보다 더한 공포심을 안겨주었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지 마라. 일보즉사(一步卽死). 한 걸음만 움직이면 죽음이 찾아올 것이니, 절대 움직이지 마라.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너의 금제는 다섯 호흡 안에 풀릴 것이니 잠시만 참아라. 잠시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머릿속을 울리는 경종이 사실처럼 들린다. 마치 혈도라도 제압된 것처럼 느껴진다. 귀신에게 무슨 수작을 당한 것 같다. 아니, 언제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당했다.
한편으로는 마야가 수작을 부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야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다. 마령음이라는 것인데, 뇌를 자극하여 가상의 명령을 내리면 현실처럼 인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사술이다.
마야다. 마야가 마령음을 토해내고 있다.
사리판단은 정확할 것이다. 마야가 마령음을 전개했고, 꼼짝달싹 못하는 건 마령음 영향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했다면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움직이지 못했다. 마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각인된 소리가 너무 강력해서 감히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한 걸음만 떼어놓으면 화타가 와도 살릴 수 없는 지경에 처해질 것 같았다.
한 호흡, 두 호흡, 세 호흡……
사천제일룡과 서군봉이 호흡을 세고 있을 때,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왕벌은 콘을 에워쌌다.
치이익! 쒸익! 쒜에엑!
콘은 정신없이 소도를 휘두르며 물러섰다. 마야를 노릴 틈은 없었다. 왕벌에게 한 방이라도 쏘이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극통이 치민다. 두 방, 세 방 연이어 쏘이면 죽음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