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42
242
“쯧! 결국 이곳이 죽을 자리군.”
시마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토굴 입구를 가다듬은 후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계곡 입구를 향해서.
“큭큭큭! 시마! 피부색이 새까맣게 변한 걸 보니 기어이 흑혈마공을 익혔나 보군. 큭큭큭!”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친다. 단지 음성만 들었을 뿐인데, 오금이 저리면서 갈증이 치민다.
“어느 놈이든 한 놈은 데려갈 수 있다네. 누가 같이 가려는가?”
“큭큭큭! 빌어먹을 놈! 흑혈마공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오냐! 나 좀 데려가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왼쪽 풀숲이 들썩였다. 그리고 검은 인영이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죽음을 재촉……!”
시마는 물러서려고 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흑혈마공을 전개할 수 없다. 한낱 마졸(魔卒)과 동반자살하기 위해서 흑혈마공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한데 상대가 만만하게 놓아주지 않았다.
스으으읏!
굉장히 음유한 경풍이 옷깃을 흔든다.
부드럽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캄캄한 밤에 음습한 늪지에서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와 같이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고수!’
보통 고수가 아니다. 적어도 시마 자신과 비교해서 한 수 또는 두어 수 윗길의 고수다. 녹혈마공이든 흑혈마공이든 전개하지 않으면 반격할 기회조차 없다.
‘제길! 누군지도 모르는 놈과…….’
더 이상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시마는 진기를 끌어올렸다.
쓰쓰쓰쓰쓱!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가 순식간에 전신 경락을 휘돈다.
시마는 눈을 감았다.
상대를 볼 필요가 없다. 곧 전신이 터져 나갈 것이고, 사방 십여 장은 죽음의 공간이 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생명은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다.
진기에 집중할 필요도 없다. 단전에 잠들어 있던 진기를 일으킨 것으로 그의 소임은 끝났다.
“끌끌끌! 이놈, 정말 흑혈마공을 일으켰네. 불쌍한 놈. 낄낄! 누가 네놈과 같이 죽겠다더냐?”
시마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흑혈마공을 알아본 놈치고는 너무 자신만만한 음성이지 않은가.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려고, 놈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엇! 저……!”
분명히 일 장 안까지 들어섰던 놈이 어느새 뒤로 빠져나갔다. 흑혈마공의 살상 범위인 십여 장보다 훨씬 뒤로 물러섰다. 얼핏 보기에도 십이삼사 장 정도는 물러선 것 같다.
인간이 이토록 빠를 수도 있나? 혹, 사술을 본 건 아닌가?
그때 시마의 머릿속에 퍼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호, 혹시! 시, 십족신마의 천와류(天渦流)!”
마도 사상 가장 빨랐다는 십족신마의 독문신법, 다담선자가 익힌 신법이다.
다담선자가 펼치는 것을 많이 봤다. 너무 빨라서 축지(縮地)를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상대가 펼친 신법이 다담선자의 신법과 무척 흡사하다.
“큭큭큭! 이제야 알아보냐? 잘 가기나 해.”
실수다! 십족신마가 마인인만큼 그의 신법 또한 유계에 흘러갔을 것을 생각했어야 한다. 어쩐지 흑혈마공을 알아보고도 미친놈처럼 달려들더라니.
쏴아아아아!
진기가 무서운 속도로 전신을 휘돌았다.
정신이 없다. 혈관 속에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처럼 온몸이 화끈거린다. 진기 도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뇌압(腦壓)까지 상승시켰다. 숨을 쉴 수 없어서 뇌압이 높아진 것일까?
시마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시력을 비롯해 모든 감각이 상실되었다. 심장이, 심장이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꽈앙!
엄청난 소리가 귓전을 두드림과 동시에 전신을 옥죄던 모든 억압이 일시에 사라졌다.
시원했다. 몸에 불이 붙어 팔짝팔짝 뛰다가 크나큰 폭포수를 만나 풍덩 뛰어들었을 때처럼 몸도 마음도 상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것이 죽음…….’
한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는 자신이 미처 깨닫기 전에 상대가 알려주었다.
“큭큭큭! 일견후즉파라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군. 늙은이가 어린놈을 졸졸 따라다닌다 싶더니 기어이 한 수 얻어 배웠어.”
‘마야?’
시마는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꿰뚫어졌다.
마야가 녹혈마공을 손댔다.
녹혈마공은 시신 만 구에서 시기(屍氣)를 뽑아낸 다음, 동남(童男) 백 명의 순양지기(純陽之氣)를 흡취해야 완성된다.
마야는 동남의 순양지기를 흡취하지 않아도 완성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다. 그때 이미 흑혈마공의 폭사 부분도 손대놓았다.
전신이 갈가리 찢어지는 대신 시기만 일시에 빠져나가도록 조정했다. 조정? 조정이란 말이 맞다. 전신이 폭사할 때까지 진기가 휘돌아야 하는데,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 진기가 멈췄다. 덕분에 시기를 방사하고도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녹혈마공에서 흑혈마공으로 들어선 만큼 시기는 열 배 이상 강해졌다. 열 배가 무언가? 스무 배, 서른 배 이상 강해졌다. 시신 만 구에서 뽑아낸 시기가 일시에 뿜어져 나갔으니 사방 십여 장이 죽음의 땅이란 말은 허언이 아니다.
죽지 않고도 이만한 위력을 선보였다.
마야가 왜 진작 이런 부분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흑혈마공을 수련한 대가가 바로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독기가 발산되니 혼자 있어야 한다.
팔순 노인에게 이러한 외로움은 그 어떤 고문보다도 괴로움을 안겨줄 게다. 늙어갈수록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그래서…… 그래서…… 앉아 있다가 오라고…… 나중에 따라오라고…… 큭큭큭! 마야, 이놈…….’
시마는 씩 웃었다.
유계에서 왔는지, 지옥에서 왔는지 모를 놈은 무척 신법이 뛰어나다. 인정한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놈들도 대단한 건 마찬가지다. 그것 또한 인정한다. 모두, 모두 인정한다.
하지만 이놈들아, 너흰 시독이 뿌려진 곳에 들어설 수 없다. 너흰 발이 묶인 게야.
자신처럼 시독에 만성이 된 사람이라면 모를까, 앞으로 일이 년 동안은 그 누구도 이 땅에 들어서지 못하리라.
시마는 태연히 등을 돌려 언장은마가 파놓은 토끼 굴로 돌아갔다.
입구를 막을 필요가 없었다. 발각되더라도 시독을 이겨낼 수 없으니 들어설 수 없다.
“큭큭! 시마, 운이 좋군. 큭큭! 이거나 알고 가라. 넌 유계에 찍혔어. 큭큭! 가라! 곧 따라가마.”
십족신마의 신법을 수련한 자는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태연하게, 웃음까지 흘리며 말했다.
제7장 음삼삼(阴森森) ― 으슥하여 무섭다
1
도주로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형지세를 둘러보아 ‘이곳으로 빠져나가면 딱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 대체로 만족할 만한 곳을 찾았다고 봐도 좋다.
얼마나 완벽한 도주로이냐 하는 문제는 이야기가 또 다르다.
얼마나 지형을 자세히 파악했느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 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느냐에 따라서 완벽함에 차이가 난다.
조심성 많은 사람이라면 그러한 도주로를 두 개, 세 개 만들어놓고 상황을 보아가며 가장 안전한 곳을 택할 것이다.
도주로를 차단하는 입장에서도 지형을 보는 눈은 같다.
상대가 어디로 도주할 것이냐를 찾아내어야 하며, 최적의 위치에 매복을 심어놔야 한다.
어디로 도망갈 줄 알고, 잡을 수 있을 만한 자들을 배치해 놓는다면 잡지 못할 사람이 없다.
그것이 안 되기에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서군봉은 산길을 따라 걸었다.
산에서 도주하는 자가 산길을 따라 걷는다는 건 날 잡아달라는 포고나 다름없다.
서군봉은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여유로웠다.
그녀에게는 콘이 있다. 사천제일룡도 있고, 수도 있다. 산주도 그럭저럭 쓸 만하다.
솔직히 이만한 무인들이면 무신이 왔다고 해도 겨뤄볼 만하다.
도주할 이유가 없다.
그녀가 염려하는 것은 적의 의중이다.
저들도 멍청이가 아닌 바에야 승산없는 싸움을 걸어올 리 없다. 화약까지 터뜨리며 공공연하게 쳐들어올 때는 그녀가 가진 모든 걸 샅샅이 파악해 낸 후일 것이다.
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야와 싸워왔다.
저들이라고 그런 광경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자신들처럼 가까이서 보지는 못했지만 무공을 보았다는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상승고수들은 몸을 쓰는 모습만 봐도 무공을 짐작해 낼 수 있다.
콘의 무공까지 고려한 후에 쳐들어온 공격이라면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어디까지? 머물고 있던 모옥을 벗어날 때까지.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은 모옥에서 싸울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전략이 그에 맞춰져 있다. 장소만 약간 바꾸면 저들의 공격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모든 계획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짜여야 한다. 정작 행동으로 옮기고 난 후에는 즉흥적인 임기응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주 간단한 행동, 모옥에서 산길로 장소만 옮긴 행동이지만 칼자루는 저쪽이 아닌 서군봉 자신이 쥐게 되었다.
오라! 얼마든지 받아쳐 주마!
포위 공격을 할 수 없는 지형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만 공격할 수 있는 협소한 길이다. 그리고 그들이 부딪쳐야 할 사람은 무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콘이다.
일 대 일로 콘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거든 공격해 오라.
“호호! 호호호!”
참으려 해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공격해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공격해 왔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승려다. 승복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입었고, 풍기는 인상도 무척 온화하다. 승려답지 않게 쉰 근은 족히 나갈 것 같은 철퇴(鐵槌)를 휘두른다는 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쿠와아악……!
철퇴에서 부엉이가 우는 듯한 괴음이 터져 나왔다.
쒜엑! 쒜에엑! 쓰윽!
콘은 철퇴를 피하며 틈새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야에게 했듯이 승려의 복부를 길게 찢어놓았다.
“크크크크!”
승려는 웃었다.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에 가득 묻힌 후 입에 대고 쭉쭉 빨아먹었다.
“오랜만이야. 이 맛…… 정말 오랜만이야. 크크크!”
이거 미친놈 아닌가. 배가 갈렸는데, 무척 고통스러울 텐데, 자신의 피를 빨아먹으며 맛있다고 낄낄거리다니.
어지간한 광경은 모두 보아온 서군봉이지만 승려의 행동에서는 기가 질렸다.
이런 자들과 오래 있고 싶지 않다.
“죽엿!”
서군봉이 새삼 명령할 필요도 없었다.
콘은 이미 달려들고 있었다.
승려의 행동에 자극받았을까? 아니다. 콘은 마야를 봤을 때만 자극받는다. 그 외에는 뱀을 만지는 것처럼 차다.
콘이 달려든 것은 감히 자신을 공격한 자를 죽이기 위해서다. 자신의 뜻에 거슬린 자, 앞을 가로막는 자, 무엇보다 죽이고 싶은 자는 반드시 죽는다.
“크큭!”
승려가 웃었다. 순간,
쒜엑!
소도가 허공을 가르더니 승려의 목을 반이나 베어냈다.
피가 솟구친다. 분수처럼 화려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때, 사천제일룡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피햇!”
늦었다. 붉은 피분수는 어느덧 붉은 운무가 되어 넓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운무 한가운데 콘이 있었다.
“저게 뭔데 그래?”
“혈무파천공(血霧破天功).”
사천제일룡은 음성까지 가늘게 떨었다.
“혈무파천공이 뭔데 사색이 되어서…….”
“흑혈마공하고 쌍벽을 이루는 전설상의 마공입니다.”
“흑혈…… 쌍벽? 그럼 저 운무가?”
“혈무에 갇힌 자, 전신이 피고름으로 녹아 죽으리라.”
“해독 방법은 없어?”
“후후후! 저건 인독(人毒)입니다. 인독. 인간이 제 목숨을 끊어가며 내뿜은 독기란 말입니다. 저걸 무슨 수로 해독합니까. 인간의 독기를 무슨 수로 막습니까.”
그가 한 말은 사실이다. 혈무파천공을 피할 수 있다면 흑혈마공과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없다.
흑혈마공이 시기와 동남의 순양지기를 흡취하여 완성해 나간다면, 혈무파천공은 인간을 중독시켜 죽인 후에 중독사한 시신을 뜯어먹으며 완성해 나가는 마공 중의 마공이다.
독기를 그대로 흡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정화체(淨化體) 삼아서 한 번 정제한 다음에 복용하는 방식이다.
잔인하지만 독인이 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혈무파천공은 인간에게 독을 얼마만큼 먹여서 죽이느냐가 큰 관건이다. 인간이 독을 소화시켜도 곤란하고, 너무 많이 먹여서 독기에 완전히 노출시켜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천당문은 혈무파천공을 알지 못한다. 이론만 알 뿐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계는 한다. 수십, 수백 번의 시행착오쯤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콘이 위험에 처했다.
서군봉으로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사단이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사천제일룡이 서군봉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미련이 많이 남지만 어쩔 수 없다. 혈무가 몰려오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 한다. 사천제일룡이 이토록 펄쩍 뛸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독이 아니다.
서군봉은 물러서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하!”
서군봉은 움직이려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묘한 비음을 토해냈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을 때 토해내는 콧소리다.
그녀는 몸을 다시 돌렸다.
피윳! 쒜에엑!
콘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있었다.
승려는 두 번째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하나 혈무를 피워낸 죄로 세 번의 칼질을 더 당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