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43
243
일도가 왼쪽 어깨에 꽂히더니 오른쪽 허리 어림까지 쭉 그어졌다. 곧이어 전개된 공격은 반대로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리까지 그어 내렸다.
승려의 온갖 장기가 쏟아져 나왔다.
콘은 무너지는 승려를 차디찬 눈길로 노려보며 천천히 미간 한가운데로 소도를 밀어 넣었다.
그는 혈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당화.”
서군봉이 한결 차분해진 음성으로 불렀다.
사천제일룡은 침묵했다.
“한 번만 더 엉뚱한 짓 벌이면…….”
서군봉은 사천제일룡을 노려보았다.
“수를 죽일 거야.”
사천제일룡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수를 데리고 도주하면, 그 순간부터 난 콘의 적이 돼. 넌 수를 데리고 도주할 것이고, 수가 죽었다고 생각한 콘은 내 뒤만 쫓겠지.”
“무슨 말씀을. 콘은 금제를…….”
서군봉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어서 사천제일룡의 말문을 막았다.
“난 이런 싸움에는 능숙해. 당화, 너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같은 사람은 권각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이렇게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싸움을 즐겨. 인정하자고. 변명 같은 것은 하지 말고. 치사하잖아.”
사천제일룡은 다시 침묵했다.
현재 상태만 놓고 볼 때, 서군봉은 콘을 완전히 제압했다. 그녀가 심어놓은 금제는 신이 아닌 이상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데 절대 금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서군봉은 모르겠지만 혈무파천공의 혈무는 상당히 강력한 독이다. 콘이 아직까지 살아서 움직이는 게 솔직히 불가사의다.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 움직인다.
덕분에 서군봉이 펼쳐 놓았던 금제 중에 하나가 무력해졌다.
경혈 속에 틀어박히면 죽을 때까지 빠지지 않는다는 단정침이 독기에 녹아버렸다. 단정침이 없는데 단정폐맥술인들 소용있을까.
콘을 통제할 수단은 백일몽과 월로초뿐이다.
이건 상당히 위험하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월로초가 떨어지거나 백일몽의 한계를 극복해 내면…… 그 순간이 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죽어도 곱게 죽지 못한다.
사천제일룡은 콘에게서 벗어나려면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콘에게서 멀어질 방도를 찾아야만 했다.
다른 욕심도 있었다.
서군봉의 말처럼 콘을 등진 채 이 자리를 벗어났다면 콘은 월로초와 수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서군봉을 쫓았을 게다.
그때 서군봉을 콘의 먹이로 내준다.
콘만 없다면 서군봉쯤이야 제압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힘들게 권각을 움직일 필요도 없다.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도 없다. 몸에 닿는 것도 있다. 무엇이든 만지기만 하면 끝장을 낼 수 있는 방도가 수천 가지다.
서군봉과 산주를 중독시켜 먹이로 내주고, 자신은 수를 데리고 사라진다. 물론 의사표시를 할 수 없게끔 단단히 조처를 취해놓아야 하겠지만.
수와 살 수 있다.
자신과만 살을 섞으면서 살 수 있다.
서군봉이 조금만 미련했다면, 조금만 눈치가 없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는데.
‘우린 언젠가는…… 콘에게 죽을 거야.’
사천제일룡은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이번 한 번만 경고하는 거야. 앞으로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면 꼭 수를 죽이고 말겠어.”
“다시는…… 앞으로는 절대 충성하겠습니다.”
사천제일룡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걸어오는 혈인, 콘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두 번째 공격은 혈무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싶을 즈음 머리 위에서 벼락같이 떨어져 내렸다.
꾸와와왁!
도끼로 쳐오는데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린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사천제일룡이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공격해 오는 자는 난쟁이다. 키가 보통 사람의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데 사용하는 무기는 대부(大斧)다. 그것도 도끼날만 사람 몸통만 한 엄청난 병기다.
콘도 맞받지 못하고 물러섰다.
승려가 철퇴로 공격해 올 때만 해도 여유있게 빈틈을 찾아냈는데, 대부 앞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물러서기만 한다.
꾸르르릉! 꾸와왁!
난쟁이사내는 역사(力士)도 간신히 들어 올릴 대부를 장난감처럼 휘둘렀다.
“엄청난 패도(覇道)!”
산주가 감탄을 토해냈다.
엄청난 신력(神力) 앞에서는 입이 쩍 벌어진다. 단지 쇠붙이를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니다. 도끼에 엄청난 힘을 싣고 정교한 초식을 펼쳐 낸다.
적이지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만수…… 탈…… 부(萬首奪斧).”
서군봉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최소한 만 명의 머리를 쳐내야 일성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부법이라고 해서 만수탈부라고 한다. 그러니 난쟁이처럼 팔성 이상의 성취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이 얼마나 사라졌겠는가.
“음! 하나같이 절세마공들만 튀어나오는군.”
사천제일룡이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콘에게 일 대 일의 승부를 걸어오는 사람이 이토록 많을 줄은 정녕 몰랐다.
첫 사내는 콘을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 그러나 뒤이어 달려드는 자들은 콘을 정확히 헤아렸다. 그러고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 달려드는 게다.
이들이 이런데 주공이란 자가 나타나면 그땐 어쩔 것인가.
새삼 무신들의 무공이 높아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콘은 도끼의 그늘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난쟁이가 다가오는 만큼 물러섰고, 좁은 산길인지라 서군봉 등도 함께 물러서야만 했다.
“꾸와왁……!”
난쟁이가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도끼를 쳐냈다.
이때다. 콘이 바람처럼 스며들며 왼손으로 난쟁이의 왼 팔꿈치를 잡았다. 오른손에 들려 있는 소도는 목덜미를 내리찍고 있었다.
푸욱!
“끼익!”
난쟁이는 비명 소리도 요상했다. 토끼가 깜짝 놀랐을 때처럼 괴성을 토해냈다.
쫘아악!
콘은 소도를 내리그었다.
핏줄기가 목덜미에서 척추를 따라 쭈욱 뿜어져 나왔다.
“크크큭! 마야!”
콘은 난쟁이가 죽는 순간에도 마야만 찾았다.
“혈무파천공에 만수탈부. 이놈들 정말 엄청난 놈들이네.”
“그만한 무공을 지녔으니 콘을 잡겠다고 나섰지.”
“잡을 만한 자격이 있잖아?”
“있지. 콘이 더 강해서 탈이지만.”
마도와 수검은 눈을 빛내며 말을 주고받았다.
강한 무공을 보면 승부욕이 생긴다. 강한 무인을 봐도 승부를 결해보고 싶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무공도 절정에 이르면 승부욕을 키우는 대신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정신을 함양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마도나 수검은 천성이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죽는 날까지 강한 무공을 찾아다니는 불나방으로 태어났다.
콘과도 싸워보고 싶다. 마야만 아니었으면 벌써 한 번쯤 겨뤄봤을 게다. 질 게 분명하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또 진다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이긴다. 이길 수 있다.
언제 누구를 보아도 싸울 상대로만 보이는 그들에게 혈무파천공과 만수탈부는 아주 강렬한 유혹덩어리였다.
“이대로 지켜만 볼 건가요?”
다담선자가 물어왔다.
그녀는 마야를 칭칭 묶었던 철사를 한쪽 팔에 감고 있었다.
철사에는 가느다랗게 움푹 파인 선이 있었다. 그곳으로 진기를 흘려 넣으면 순식간에 말랑말랑해진다.
기병이다.
콘이 어떻게 이런 기병을 가질 수 있었을까? 사천제일룡의 수중에서 흘러나온 물건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녀는 철사를 팔목에 감아 작은 방패로 사용했다. 추명반과 더불어 이대기병이 그녀의 몸에 간직된 셈이다.
“우린 가만히 있는 게 좋지 않아요? 서군봉도 싫고 유계도 싫은데 둘이 싸우다 한쪽이 나가떨어지라고 하죠 뭐.”
일령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얼굴 표정을 보니 정말 싫은 듯했다.
“은마, 길을 어디까지 뚫어놨소?”
“산 너머까지는 따라갈 수 있을 거네.”
마야는 심사숙고했다.
유계는 자신있으니까 사람들을 보낸 거다.
유계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은 확실히 콘이 우위에 있다. 하지만 열세로 치몰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콘이 찰나에 상대를 꺾어버리듯이 그 또한 찰나에 꺾일 것이다.
콘의 무공을 잘 저울질해야 한다.
‘당분간 공격이 없을 거고…….’
유계에서 두 명이 죽었다. 상당히 강해 보이던 자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그걸 보고도 유계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는 볼 수 없다. 일 대 일의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가는 길에 이 대 일로 싸울 만한 곳은 어디오?”
“조금 넓적한 바위가 있지. 인근 사람들은 두꺼비바위라고 부르더만, 두꺼비 같지는 않고. 그곳이라면…… 한 놈은 정면에서 공격하고, 다른 놈은 비스듬히 경사진 두꺼비바위를 디딤돌 삼아 공격하고…… 그럭저럭 공격은 가능할 걸세.”
콘이 두 명을 상대할 수 있을까? 혈무파천공과 만수탈부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마야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상대할 수 있다.
콘은 자신처럼 독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서군봉이 펼쳐 놓은 단정폐맥술이 콘의 경맥을 단단한 쇳덩이로 만들어놨다.
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혈무파천공을 깨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다.
그다음은 일 대 일의 승부.
두꺼비바위에서 이 대 일의 승부를 벌인다고 해도 콘의 빠름이라면 상대의 약점을 단숨에 파악해 낼 수 있으리라.
유계 마인들을 상대로 삼 대 일까지는 가능하다.
“그럼 세 명이 공격할 만한 곳은 어디오?”
“세 명? 정상.”
언장은마는 너무 쉽게 대답했다.
정상에 드잡이질을 할 만한 공간이 있는 게다. 여러 사람이 뛰어도 될 만큼 널찍한 공간이리라.
서군봉 일행은 그곳에서 결단난다.
서군봉이 그런 사실을 모를까? 알고 있다. 미리 도주로까지 살펴놓은 여자이니 어디에 무슨 위험이 있는지 먼저 생각하고 있으리라.
그녀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마야는 생각할 것도 없이 말했다.
“은마! 정상에 봉우리 하나 정도는 완전히 함몰시킬 만한 화약이 매설되어 있소. 가서…….”
“제거하지.”
언장은마의 음성이 가느다랗게 들렸다.
가라는 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는 벌써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 말이 들린 곳은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진 땅속이다.
“도주, 절혼. 서군봉이 정상에 올라서는 즉시 나포해.”
“쳇! 너무 무시하는 것 아냐? 서군봉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말이야.”
천멸도주가 못마땅해했다. 그렇다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말 한마디로 서로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서군봉에게 두 사람이나 붙인 것은 만에 하나 있을 실수조차도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이다.
마야도 부언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일령, 자하(紫霞). 수를 잡아.”
일령과 금연화에게 한 말이다.
금연화는 별호가 없다. 그렇다고 마궁 궁주 입장에서 궁도에게 ‘소저’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그녀의 무공인 자하쌍구검의 앞 자를 따서 자하신녀(紫霞神女)라는 무명을 만들어냈다.
“알았어요!”
“네.”
일령과 금연화가 일어서려고 했다.
마야는 그녀들을 제지하며 행동방침을 일러주었다.
“수를 잡는 시기는 제일 마지막이야. 서군봉, 산주, 사천제일룡, 콘이 잡히고 난 다음에 수를 잡아. 제일 늦게 행동하느니만치 유계와 직접 부딪칠 위험이 있어. 빨리 잡고 빨리 물러서. 빠를수록 좋아. 아니면 곤란해져.”
“알았어요.”
금연화가 싱그럽게 웃었다.
“다담, 사천제일룡을 잡아. 서군봉이 쓰러지는 즉시 추명반을 써.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염려 말아요.”
다담선자도 몸을 일으켰다.
명을 받은 사람들은 곧바로 산 정상으로 향할 것이다. 급습하기 좋은 곳에 매복할 것이다.
“마도는 산주.”
“후후! 고맙소.”
마도가 수검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남은 사람은 산주와 콘뿐이다. 콘은 분명히 마야가 상대할 터이고, 그럼 산주만 남는다.
몸도 근질거리는데 산주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 명이 자신에게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협공으로 잡는 것도 아니고 단신으로 잡는다. 수검과 함께 갈 줄 알았는데. 하기는 산주 같은 자를 잡는 데 수검과 손을 쓴다는 건 소 잡는 칼로 쥐를 잡는 격이다.
마도는 수검이 아니라 자신이 나선다는 게 재미있다.
그때, 마도의 인상을 구겨지게 만든 말이, 수검에게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말이 마야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수검은 나와 함께 콘을 잡도록 하자고.”
수검이 마도를 쳐다보며 입을 쩍 벌리며 웃었다.
“크크크! 하하하!”
2
모두 떠났다.
마야는 떠나지 못했다.
이대로 간다면 서군봉 일행은 유계 마인들에게 잡힌다. 산 정상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지만, 삼 대 일이나 사 대 일로 싸울 수 있는 장소는 수없이 많다.
결국 잡힌다. 콘이 유계의 주공에게 넘겨진다.
콘을 감시할 수 없을뿐더러 여차하면 죽인다는 계획도 무산된다. 콘이 주공과 손을 맞잡고 다시 무림에 나설 때는 그 누구도 제압하지 못할 살성(煞星)이 되어 있으리라.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일단 제압하고 빠져나간다. 빠져나가지 못할 경우에는 콘만이라도 죽인다. 누가 멸신구관을 세웠는지, 멸신구관으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그놈, 혈귀대주의 복수가 미궁에 빠져도 좋다. 콘을 이대로 놓아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