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44
244
계획대로라면 콘은 잡힌다. 자신과 수검이 합공을 펼친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떠나지 못했다. 무엇인가 묵직한 것이 뒷덜미를 짓누른다.
마야는 콘을 주시했다.
콘은 난쟁이를 죽인 후에도 살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에게는 적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눈앞에 나타나는 자는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여 죽인다. 실제로 그럴지, 아니면 적아를 구분해 낼지 알 수 없지만 사나운 눈빛만 보고는 그 앞에 설 사람이 없었다.
“후웁!”
콘이 큰 한숨을 들이켰다. 질주하는 심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살기를 억누르기 위해서.
“후웁! 후웁!”
콘의 큰 숨 쉬기는 두 번, 세 번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콘과 가장 많은 나날을 함께 지내온 산주에게도 낯선 광경이었다.
콘이 이렇게 큰 숨을 쉰 적은 없다.
잠시 숨을 고르는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다.
콘은 우두커니 서서 약 일다경 가까운 시간을 호흡 조절하는 데 보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산주나 사천제일룡 정도만 되어도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는 데 이토록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짧게는 두세 호흡, 넉넉잡아도 열 호흡 이내에서 마음을 추스른다. 육체적인 호흡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먼 거리를 뛰어왔어도 잔잔한 상태로 되돌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는 않다.
콘이 오랜 시간 호흡에 치중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다행히 큰 숨 쉬기가 효과 있었는지 눈에 띄게 살기가 누그러졌다.
‘비정상.’
사천제일룡은 미간을 찡그렸다.
콘은 무뇌아(無腦兒)나 마찬가지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감정을 숨기지도 못한다. 멀쩡한 사람처럼 호흡을 고르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 그렇게 숨이 거칠지도 않지만, 설혹 그렇다면 털썩 주저앉아 헉헉거리며 숨을 쉬는 것이 콘다운 행동이다.
콘은 이상행동을 하고 있다.
‘금제가, 금제가 풀렸어!’
서군봉은 당황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이처럼 당황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크게 놀라서 대비책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단정침을 몸에 박고 사는 자들은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고, 심장이 크게 뛴다는 느낌도 없다.
경락이 마비되면서 안겨준 부작용이다.
콘이 스스로 호흡을 챙겼다는 것은 단정침이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빠져나갈 리는 없다. 아직도 몸에 박혀 있다. 하면 콘의 행동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녹아 없어졌다면…… 혈무! 혈무다! 혈무 때문에 단정침이 녹아버렸다.
백일몽만 가지고 콘을 조종할 수 있을까?
월로초는 쾌락을 준다. 수도 쾌락을 준다. 월로초와 수 중에 어느 쪽이 더 강렬한 쾌락을 줄까? 월로초라면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수라면 지금 당장 피해야 한다.
서군봉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콘이 다가온다.
무섭다. 두렵다. 이번처럼 콘이 크게 보인 적도 없다.
쒜엑!
일 장 앞에 이르렀을 때, 콘은 비호(飛虎)가 되어 달려들었다.
“엇!”
콘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사천제일룡이 헛바람을 토해냈다.
콘이 비정상인 줄은 짐작했지만 이토록 빨리 적으로 돌변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다. 그도 무인이다. 사천에서는 제일 용이라는 소리까지 듣는 사람이다.
독! 암기!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다. 무엇으로 상대해야 하나.
독은 포기했다. 혈무파천공으로도 죽일 수 없는 작자를 무슨 독으로 죽이랴.
‘암기!’
생각과 동시에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십지환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혼절에서 깨어났을 때, 열 손가락이 밋밋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십지환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생각할 것도 없다. 여우 같은 서군봉이 십지환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십지환이 모이면 무신 한 명이 나타난 것과 다름없다는 가공할 암기를 고이 놔둘 여자가 아니다.
사천제일룡은 십지환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철구(鐵球) 두 개를 던졌다.
파팟! 파파파파팟!
철구는 손을 떠나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쏟아진다. 세우(細雨)가 쏟아져 내린다. 콘의 전신이 솜털로 가득 뒤덮인다.
평소 같으면 죽음을 확신하련만, 상대가 콘이니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다.
과연!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콘은 솜털을 전신 가득 뒤집어쓰고도 거침없이 달려왔다.
사천제일룡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 세상은 음과 양으로 이뤄져 있다. 우주만물 모두가 음양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공도 이와 같다. 최강의 무공이라고 자부했던 무공도 상대적인 무공은 존재한다. 음의 무공이었다면 양이, 양의 무공이었다면 음이 있다.
극성의 무공이 자신보다 강할 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손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자신처럼.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콘은 독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독지체(無毒之體)인 데다가 암기조차도 아랑곳하지 않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이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쒜엑!
소도가 관자놀이를 꿰뚫어왔다.
손속에 사정이 담겨 있지 않다. 인정이라고는 한 올도 찾아볼 수 없고 살기만이 가득하다. 진짜 죽일 셈이다.
‘꼼짝없이 죽었군.’
사천제일룡은 삶을 포기했다.
발버둥 쳐도 살 수 없을 바에는 추한 모습이나마 보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소도를 피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목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콘이 느닷없이 살기를 거두고 그를 밀쳐 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살기의 방향이 그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눈 깜빡할 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포기하고 다른 자를 죽이기 위해 달려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콘이 한 행동이 그런 것이다.
어쨌든 그는 지옥 문턱에서 살아 나왔다.
“휴우!”
절로 가쁜 숨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콘의 살기가 누구에게로 향했는지 궁금해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 콘을 바라봤을 때, 콘의 몸은 땅에 붙박여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가 검을 뽑아 목에 대고 있다.
그것뿐이다.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미한 움직임만 보여도 사단이 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리지 못한다. 현재 여기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수뿐이다.
수가 말했다.
“나…… 죽고 싶어.”
“그, 그러…… 그러지 마.”
말 없던 콘이 말을 했다. 그의 모습은 버림받은 소년처럼 애처로움과 불안함이 뒤섞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콘.”
“수…….”
“이 계집…… 얼굴을 보고 싶어.”
수의 말은 끝났다. 다음은 콘이 움직일 차례다.
쉬익!
콘은 움직였다. 산주를 밀쳐 내고, 수를 빙글 돌아서 서군봉 앞에 이르렀다.
그를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경우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인지는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쒜엑!
소도만 들려 있지 않을 뿐, 콘의 공격에는 저항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지옥의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찌이익!
서군봉이 쓰고 있던 복면이 찢겨져 나갔다.
코가 베어져 나갔고, 입이 귀까지 찢어졌으며, 양쪽 귀는 잘려져 나가고 없다.
어지간히 비위 좋은 사람도 구역질이 나게 만드는 추녀 중에 추녀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군봉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수모를 감내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얼굴을 바로 그렇게 만든 작자가 벗겨냈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작자, 평생을 노예로 부리려던 작자가 갑자기 미쳐서 날뛴다.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 하는데,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죽어야 하는데 머리가 멀쩡해진 놈처럼 미쳐 날뛴다.
대항할 방법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죽이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인내해야 한다.
서군봉은 숨소리마저 숨겼다.
콘은 서군봉의 복면을 찢어놓은 후, 착한 일을 해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얼굴로 수를 쳐다봤다.
“깔깔깔! 깔깔깔깔!”
수는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그녀는 미쳤다. 백일몽 때문에 뇌가 손상되었고, 구혼음태를 수련한 탓에 백치가 되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유일하게 서군봉을 주인으로 알아볼 뿐이다.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저 여자, 되게 못생겼네. 콘이 저렇게 했어?”
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저렇게 할 거야?”
콘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다리 아파. 누가 나 좀 업었으면 좋겠어.”
콘은 황급히 달려와 등을 내줬다.
수는 바로 업히지 않았다. 목에 댔던 검을 치우고 허리를 살짝 구부려 콘의 귀에 입을 갖다 대며 나지막하게 소곤거렸다.
“마야…….”
“끄으으…….”
콘의 인상이 굳어졌다. 잠시 가라앉았던 살기도 피어난다.
“나, 죽고 싶어.”
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끄덕였다. 무엇인가는 해야 하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니 고개만 끄덕인다는 투였다.
“마야가 있어. 마야에게 가. 난 그냥 죽을래.”
“끄으! 끄으! 끄으으!”
콘은 더욱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통을 호소했다.
“괜찮아. 난 그냥 죽으면 돼.”
그 말이 결정타였다. 콘의 이상한 행동이 갑자기 뚝 그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는 콘이 얌전해지자 그의 등에 업혔다. 콘은 순순히 수를 업었다.
“가.”
콘에게만 한 말이 아니다.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한 말, 아니, 명령이다.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일이!’
사천제일룡은 놀란 눈만 껌뻑였다.
수가 깨어났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조종까지 한다.
혈무가 그녀의 망각을 일깨워 놓은 모양이다.
이것도 이상하다. 그녀를 일깨워 놓을 것은 혈무밖에 없는데, 그녀가 혈무의 영향을 받자면 그녀 앞에 있던 자신과 산주가 먼저 영향을 받았어야 한다.
그럼 그녀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은 게 혈무가 아닌가?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콘이 정신을 차리고 수까지 정신을 찾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직 마지막 수가 남아 있었다. 바로 서군봉에게. 서군봉은 자신에게 남겨진 수를 바로 썼다.
월로초, 백일몽에 중독된 자를 조종할 수 있는 요물 가루.
서군봉은 암암리에 월로초를 뿌렸다. 콘과 수가 바로 맡을 수 있게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살포했다.
한데 반응한 사람은 산주뿐이다.
“크윽! 끄으윽!”
산주가 쾌락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고통을 참지 못해 몸을 비비 꼬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 그와 함께 반응을 보여야 할 콘과 수는 태연하기만 했다.
이들은 단정침과 구혼음태의 제약뿐만이 아니라 백일몽에서도 벗어났다.
이제 콘과 수를 제어할 수단이 없다.
혈무 때문만은 아니다. 혈무가 지상 최고의 독인 것은 맞다. 최고의 독(毒)은 최고의 약(藥)도 된다. 하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미쳤던 두 사람을 동시에 제정신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그런 이치를 알고 있는 사천제일룡이나 서군봉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쏙 빠져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마치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을 꾸고 있다고나 할까.
‘가’라는 수의 명령이 귓전을 울릴 때까지 두 사람은 현실을 믿지 못했다. 먹이사슬 중 최정상에 있었던 서군봉이 최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유일하게 서군봉을 짓누를 수 있었던 사천제일룡 또한 눈치만 살피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것을.
그들은 걸었다.
‘상황이 틀어졌군.’
마야는 잠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의 나포 계획에 콘과 수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콘은 무공만 높다. 수는 구혼음태만 주의하면 된다.
콘은 자신과 수검이 합공하면 제압할 수 있고, 수는 여인들이 달라붙으면 그만이다. 물론 구혼음태가 구성 이상에 이르면 여인도 색(色)의 환상을 경험하게 되지만 아직 그 정도는 되지 않았다.
산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산주는 가장 위협거리가 아니었다. 호채마 중에서 그보다 무공이 약한 사람은 없다. 또한 그는 백일몽에 중독되어 머리가 둔해졌다. 콘과 수처럼 완벽하게 중독되지는 않았지만 남의 조종을 받아야 하는 정도까지는 중독되었다.
마도가 그를 맡은 것은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포 공격에서 위험 요인을 가진 사람은 제대로 생각을 할 줄 아는 서군봉과 사천제일룡이었다. 그래서 나포 계획도 서군봉이 제일 처음이었고, 이어서 사천제일룡이다.
콘과 수가 제정신을 찾았다면 계획을 달리해야 한다.
콘은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밖에 회복하지 못한 것 같으니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닌가? 수를 목숨보다 아끼게 되었다는 점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더 많아진 건가?
수가 문제다. 그녀의 머리가 어느 정도까지 깨어났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또 원래 얼마나 똑똑했으며, 학문 수준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미지수다. 보통 남만 여자들을 생각하면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만 선천적으로 뛰어난 머리를 타고났다면 이 또한 고려해야 할 요소다.
‘한 번 더 보면 되겠지.’
콘이 절대로 질 수 없는 장소에서 싸움이 일어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