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49
249
“넌 나하고 가야겠다. 후후! 요행인 줄 알아라. 두 번째 검에서 귀수가 펼쳐지지 않았다면 넌 지금쯤 죽어 있을 거야. 다행히 귀수가 나오더군. 완벽하지는 않지만.”
절혼마녀는 노려보기만 했다.
“누구나 정도 차이는 있는 게지. 중요한 건, 마야가 정말 일견후즉파의 능력을 지녔냐 하는 건데, 귀수를 보니 알겠더군. 마야에게 그런 능력이 실재한다는 걸. 후후! 마야가 말 안 들을 때를 대비해서…… 너 하나쯤 데려가는 것도 괜찮겠지.”
혈일뢰가 씩 웃었다.
마야는 절혼마녀를 보고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눈짓 한 번 주지 않았다.
“미안해요.”
“멍청하기는…… 짐이나 되지 말아야지.”
절혼마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야를 쳐다봤다.
마야가 달콤한 말을 해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폭언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물며 지금은 그가 불러서 왔거늘.
절혼마녀는 마야의 얼굴에서 뭇 사내들이 달라붙는 창기를 버릴 때 보이는 싸늘함을 보았다.
“마, 마야!”
“내게서 떨어져. 설마 낙화향의 창기가 정말 좋아서 붙어 다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죽든 살든…… 알아서 처신해.”
‘이게 무슨……?’
마야가 이럴 사람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던 건가? 한편으로는 미심쩍기도 하다. 말을 들어보면 장난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 있는데, 마야는 진담이다.
“어, 어떻게 제게…….”
“무림이니까. 조석(朝夕) 간에 생사가 뒤바뀌는데 그깟 애정쯤이야. 난 내 살길을 찾아갈 테니, 넌 네 갈 길로 가.”
마야의 말이 너무 단호하고 냉혹해서 말을 붙일 수조차 없었다.
마야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그녀를 버리고 수에게로 다가갔다.
수 곁에는 콘이 있다. 가까이 오는 사내에게는 무조건 적의부터 드러낸다. 하물며 마야임에야.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소도를 뽑아 찔러왔을 게다.
콘은 살기만 뿜어냈다.
마야에게 소도를 찔러 넣기 위해서는 혈일뢰라는 거산부터 넘어서야 한다.
마야는 콘의 살기를 무시하고 수와 일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리고 혼탁해진 눈으로 수만 쳐다봤다.
‘이건 꿈이야!’
절혼마녀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야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게다. 그게 무엇인가?
절혼마녀는 마야의 행동을 되새겨 봤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 생각은 접고 다른 생각에 몰두했다.
그러고 보니 마야와 함께 지내면서 이별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낙화향에서 뭇 사내들을 만날 때는 본색이 언제 드러날지, 욕구가 채워진 다음에는 어떻게 변할까부터 생각했는데 용케도 마야와 지낼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절혼마녀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야가 말을 건네왔다.
“아까는 미안. 이렇게 해도 삼원로의 눈이야 속일 수 있겠어? 하지만 콘은 속이겠지. 후후! 봐. 지금 콘은 나만 경계하고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을……?”
대뜸 대꾸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마야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넋 잃은 표정으로 수를 쳐다보고 있다.
‘마령음!’
절혼마녀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그가 마령음으로 말을 건네왔기 때문이 아니다. 먼저 한 행동이 눈속임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눈속임인 줄도 알고 있었다. 그를 의심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다. 눈속임일망정 차디찬 말은 싫다.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웃어주면 좋다. 그가 멀리하면 죽고 싶다.
절혼마녀는 자신에게 마야가 어떤 존재인지 절실히 느꼈다.
“사방에 적이 있어. 포위하고 있는데, 곧 공격이 시작될 것 같군.”
‘누가요? 설마 다담이?’
묻고 싶다. 하나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말에 대꾸할 방도가 없다.
“흠! 발걸음이 분주해. 진을 펼치고 있군.”
다담은 아니다. 다담선자도 진법을 알고 있고, 마야를 보호하기 위해 이주회첨진을 항시 펼치고 있었지만 호채마 전체를 동원한 진법을 시전할 줄 모른다.
‘남도문?’
“절혼, 도주가 따라와 있는 건 알아?”
‘천멸도주가요?’
“공격이 시작되면 삼원로는 손발이 묶일 거야. 진법이란 게 처음 본 사람은 항상 생각할 시간을 빼앗기거든. 도주가 도와줄 거야. 수를 제압해서 탈출해.”
‘수를요?’
너무 답답해서 묻고 싶다. 홀몸으로 탈출하는 것도 벅찬 판에 수까지 데려가라니 말이 되나. 수 옆에는 콘이 떡 버티고 있는데.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따라올 생각 하지 말고 제이성으로 가. 제이성에 가면 왜 가라고 했는지 알게 될 테니까. 난 당분간 삼원로와 함께 행동할 테니 그리 알고.”
정말 묻고 싶은 게 많다.
절혼마녀는 주위 눈치를 살피며 마야를 주시했다.
마야는 계속 입을 움직였다. 혼잣말을 하듯이.
‘천멸도주에게 말하고 있어.’
절혼마녀는 마음 편히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마야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유달리 하늘이 높고 푸르다.
제10장 유유처(悠悠處) ― 머나먼 곳
1
공격은 없었다.
포위망을 구축한 쪽에서 공격해 오지 않았다.
삼원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넓은 공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태연히 밥을 지어 먹었다.
삼원로가 포위된 사실을 모르는 걸까?
그럴 리 없다. 그런 말은 지나가는 개도 믿지 않는다. 포위망이 펼쳐진 것을 알면서도 대응치 않고 있다.
‘기다리고 있어.’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기다린다.
마야는 귀를 기울였다. 아니, 귀보다 더 정확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만공심안을 열었다.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포위망을 구축한 자들이 느닷없이 포위를 풀고 흩어진다. 멀찌감치 물러서고 있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포위망을 펼쳤다가 공격도 해보지 않고 푸는 경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뚜벅!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깃털이 걷는 것처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음걸이다.
마야는 누가 이런 걸음을 지녔는지 안다.
‘만사무불통지!’
그렇다. 삼원로가 있는 곳으로 태연히 걸어오는 사람은 만사무불통지다. 그리고 삼원로가 기다리던 사람도 바로 그다.
그는 공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절 눈을 맞추지 않았다. 콘도 알고, 사천제일룡도 알고, 마야도 알지만 마치 사람이 없는 듯 쳐다보지 않았다.
“오랜만이오.”
자의성검이 먼저 말을 건넸다.
“멸신구관에서 나온 후…… 아직 돌아가지 않은 게요?”
만사무불통지가 물었다.
“갔었지요. 갔다 다시 왔으니 우리도 무척 바쁘게 뛰어다녔다오. 이 늙어서 무슨 짓인지.”
“용건만 말하리다. 마야를 건네주시오.”
자의성검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남무림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우리 세 사람을 막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우리끼리니까 툭 터놓고 말해봅시다. 우리 같은 사람이야 사라지고 싶으면 사라지고 나타나고 싶으면 나타나는 것 아니오?”
종횡무진, 거칠 것 없다는 뜻이다. 남무림에 있다고 압박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저 아이들, 꽤나 민첩하던데. 무불통지께서 기른 아이들이오?”
통천서패가 숲 안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수작을 모두 알고 있으니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괜히 나섰다가 무고한 생명만 죽일 수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비웃음이다.
만사무불통지는 조용히 웃었다.
“우리끼리 말한다? 좋은 말이오. 우리끼리 말하는 건 돌려 말하지 않아서 좋지. 좋소. 내 탁 까놓고 말하리라. 우리 아이들 말이오, 누굴 겨냥해서 만들었는지 아시오? 대형(大兄)이외다.”
“남도문주!”
“나도 언젠가는 태산북두 한 번 되어봐야 되지 않겠소. 내 장담하리다. 저 아이들이 비록 대형을 죽이지는 못한다 해도 팔다리는 능히 꺾어놓을 수 있소. 해보겠소이까?”
“…….”
자의성검은 대답하지 못했다.
만사무불통지의 말을 십 할 믿을 수는 없다. 자신들을 어찌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하나 제이무신가에 백절진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고, 그 위력이 경천동지하다는 사실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마야를 넘겨달라는 제안이 껄끄러운 것 같은데, 그럼 좋소. 제안을 바꾸리다. 내가 보는 앞에서…… 마야를 죽입시다.”
만사무불통지의 말에 절혼마녀는 얼어붙었다. 그녀는 황급히 마야를 쳐다봤다.
마야는 피식 웃고 있었다.
“죽이자?”
“분명히 말하리다. 마야를 죽이지 않고는…… 누구도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최소한!”
만사무불통지는 그답지 않고 노성을 내지르며 삼원로의 얼굴을 일일이 쳐다봤다.
“나와 내 아이들을 몰살시키지 않고는 말이오. 내 분명한 의지는 전했소. 이제 답을 주시오.”
삼원로는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만사무불통지의 말은 단순한 공갈이 아니다. 말을 길게 이어갈 생각도 없다. 지금 물음에도 예전처럼 반대를 말하면 즉각 피바람이 분다. 그의 말대로 제이무신가를 몰살시키지 않는 한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몰살시키고 빠져나가도 문제가 벌어진다. 삼원로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아주 중차대한 문제가 일어난다.
삼원로가 남무림에 와서 만사무불통지를 비롯해 제이무신가 무인들을 몰살시켰다고 하면 장강이라는 절충선은 단번에 무너진다.
남무림 무인들이 홍수처럼 밀려들 게다. 북무림 무인들도 앉아서 죽을 수 없으니 맞싸울 게다.
중원천지가 피바람에 휘말린다.
많은 무인들이 죽을 것이고, 많은 문파가 멸문하리라. 수많은 기공, 절공들이 사라질 것이며, 온갖 비급과 영단이 불타 없어지리라.
무림은 최소한 백 년은 퇴보한다.
“반각만…… 반각만 시간을 주시오.”
자의성검이 힘들게 말했다.
자의성검은 힘들게 얻은 반각이란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대답? 대답은 이미 끝났다. 만사무불통지에게 반각이란 시간을 벌기 전부터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야를 죽인다.
그럼에도 반각이란 시간을 번 것은 마야를 죽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의성검은 수에게 걸어갔다.
“수.”
“흥! 뭘 말하려고요?”
“콘에게 싸움을 시켜야겠다.”
“저 할아버지와 싸우라고요? 좋아요. 싸우면 뭘 줄 건데요?”
수는 만사무불통지가 사라진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의성검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 사람과 싸우는 게 아니다. 마야와 싸워야겠어. 너도 들었으니 알겠지만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좋아요!”
마야와 싸우라는 말에 수는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마야와는 숱하게 싸웠다. 그리고 대부분 콘이 우세했다. 마야가 따라붙기는 했지만 항상 공격의 주도권은 콘이 쥐었다.
마야와 싸우는 건 어렵지 않다.
“마야를 죽이면 뭘 줄 건데요?”
자의성검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널 감정(鑑井)으로 데려가마.”
“싫어요. 풀어줘요. 그럼 싸우라고 할게요.”
“허허허! 감정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감정은 거울 우물이란 뜻으로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뛰어난 미남, 미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감정에 가면 네가 원하는 사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게다. 아! 물론 콘도 같이 가는 거고.”
“호호호! 좋아요.”
수의 눈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색정(色情)이 무서운 속도로 치밀어 오르고 있다. 단지 마음에 드는 사내를 얼마든지 품을 수 있다는 말만 듣고도.
“언장은마!”
투툭! 투투툭!
“도주!”
바삭!
마야는 마지막으로 절혼마녀를 향해 마령음을 전했다.
“콘이 공격해 오는 순간 수를. 탈출로는 내 등 뒤 풀숲. 언장은마가 준비를 마쳤으니 가장 신속하게. 뒤는 도주가 맡아줄 것이니 아무 염려 말고.”
모든 준비는 끝났다.
“콘, 마야를 죽여줘!”
콘은 일고여덟 살 어린아이의 지능밖에 지니지 못했다. 단정침과 백일몽의 영향이 의외로 심각한 뇌 손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하기에는 충분하다.
“크크크! 크크큭!”
콘은 괴소를 흘리며 일어섰다.
콘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수 곁으로 가지 말라는 소리이고, 그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마야를 죽이라는 말이다.
파앗!
콘은 다짜고짜 마야를 향해 짓쳐 왔다. 그 순간,
파앗!
또 한곳에서 신형이 번뜩였다.
절혼마녀는 삼원로의 무공을 두려워한다. 직접 몸으로 겪어봤기 때문에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 것보다 어렵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했다. 옷자락이 바람에 쓸리는 것조차 막으려고 온 신경을 귀적무에 쏟았다.
그녀는 소리없이 사라졌다.
푹!
그녀가 싸움 구경에 온 정신을 집중한 여인의 혼혈(昏穴)을 짚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절혼마녀는 수가 고개를 떨어뜨리자마자 그녀를 껴안고 마야가 일러준 숲으로 뛰어들었다.
언장은마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암굴 안에서 동경으로 빛을 반사시켜 왔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꽈앙!
그녀가 뛰어든 암굴 입구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