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50
250
“빨리 가! 저놈들이 쫓아오는 날에는 꼼짝없이 잡혀!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
“어른은?”
“난 할 일이 있어! 내 걱정 말고 어여 가!”
절혼마녀는 언장은마에게 일별을 고한 후 정신없이 질주했다.
그 순간, 암굴 입구를 폭파한 천멸도주는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바위가 되었다.
중원에는 귀식대법이 있다. 천멸도에는 귀식대법 같은 것은 어린아이 취급하는 혼혼대법(昏魂大法)이 있다. 생기(生氣)를 끊고 완전한 사자(死者)가 되는 대법이다.
혼혼대법은 칠 주야간 지속되었다가 깨어난다.
천멸도 살수들은 사자가 되는 기간을 조정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기간 조정을 못한다.
이 부분, 언젠가는 마야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하찮은 것 같아서 묻지 못했다.
아쉽다. 하루, 이틀만 사자가 되어 있으면 되는 것을 꼬박 칠 주야간이나 죽어 있어야 하다니.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을 게다. 마야도, 삼원로도, 제이무신가 사람들도.
그녀는 혼자서 제이성을 찾아가야 한다.
‘저런!’
절혼마녀가 수를 빼돌리고 있지만, 만사무불통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한눈을 팔 틈이 없다. 마야가 확실하게 죽는 모습을 봐야 한다. 사실, 마야만 죽으면 그깟 호채마쯤은 신경 쓸 것도 없다. 수나 콘 같은 것들은 한 손으로도 쓸어버릴 수 있다.
삼원로도 절혼마녀의 움직임을 읽었다. 하나 그들 역시 만사무불통지처럼 마야에게 눈길을 고정시킨 채 움직이지 못했다.
마야와 콘의 움직임에 무신들의 비밀이 숨어 있다.
한쪽은 남도문 무신들의 무공을 관통하고, 콘은 북검문 무신들의 무공을 파해한다.
만사무불통지가 마야를 죽이고자 하는 건 백번 이해한다. 같은 이유로 삼원로 역시 콘을 반드시 죽이고자 한다. 북검문으로 데려갈 수 없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놓치면 큰 사단이다.
간사한 만사무불통지가 어떤 수를 쓸지 모르니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한다.
절혼마녀는 아주 절묘한 기회에 탈출을 시도했고,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파앗! 파파팟! 파파파팟!
콘은 쫓았다. 마야는 물러섰다.
쫓고 쫓기고…… 그들은 긴 호흡 두어 번 내뱉을 시간에 좁은 공지를 대여섯 바퀴나 맴돌았다.
“콘!”
마령음으로 콘, 아니, 강금산의 정신을 일깨웠다. 강한 음파로 뇌를 두들겼다.
파앗! 쒜에엑! 파아앗!
소도가 휘둘러졌다. 일수십팔변(一手十八變), 순식간에 그어진 도선(刀線)은 마야의 상반신을 핏물로 물들였다.
콘의 소도 앞에는 녹광성초의 금강불괴도 소용이 없다. 녹광성초뿐인가. 왕벌들이 그의 전신을 침으로 안마해 놨는데, 자그마한 소도가 철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린다.
“콘! 수가 없다!”
콘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마야의 말은 주효했다. 콘의 공격이 거짓말처럼 멈추더니 수가 앉아 있던 곳을 돌아봤다.
“끄으으으……!”
성난 맹수가 으르렁거린다. 분노를 안으로 삼키며 주위를 돌아본다. ‘누가 수를 데려갔어! 내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콘! 나를 따라와! 수가 저기 가고 있어!”
마야는 모험을 시도했다.
콘의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되어 있는 생각은 마야를 죽인다는 것이다. 누가 심어놨는지 모르지만 세상에 종말이 온다 해도 마야만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콘이 마야를 죽일 것인가, 수를 따라 움직일 것인가.
마야는 구혼음태의 강렬함에 판돈을 걸었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생각은 거의 매일 치른 결전 덕분에 많이 희석되었다. 또 거의 매일 벌인 수와의 정사는 콘의 육신에 구혼음태의 색기를 깊이깊이 물들여 놓았다.
나중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각인된 기억보다 눈앞의 쾌락이 크게 보일 게다.
“끄으으!”
콘이 동요했다.
“따라와!”
마령음으로 또 한 번 콘의 뇌리를 강타시켰다. 그리고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절혼마녀가 사라진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2
마야와 콘은 곧 제지되었다. 무신들이 눈앞에서 도주하는 그들을 놓치겠는가. 무신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형을 날려 두 사람을 에워쌌다.
마야도 예상했던 일이다.
세상에 누가 도주하는 사람을 내버려 두겠나. 능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죽이겠다고 작심한 터인데.
마야는 도주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귀식대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서군봉을 노렸다.
그녀는 산주가 업고 있다. 산주는 혈일뢰에게 붙잡힌 이후부터 서군봉을 업었고 한시도 내려놓지 못했다.
쒜엑!
경풍이 일었다 싶은 순간, 산주는 저만큼 나가떨어졌다.
마령음으로 산주의 전신 경혈을 격타하고, 부풍약영을 펼쳐 서군봉을 낚아챘으며, 휘도는 순간을 이용해 산주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마야의 행동은 한순간에 이뤄졌다.
의아한 것은 산주다. 산주의 무공이 마야에게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멀리 있던 마야가 달려와 등에 업고 있는 여인을 빼앗고 발길질을 할 때까지 멍청히 서 있었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고맙소.”
마야는 산주에게 마령음을 전했다.
만약 산주가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면 오늘의 탈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게다. 다행히 산주가 응해주었기에 과감히 탈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산주는 남만인이다. 중원인들보다 마야를 더 믿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아이를 인질로 삼을 셈인가?”
자의성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천만에! 무신 정도의 위치에 서려면 대의(大義)와 소의(少義)의 구분쯤은 여반장(如反掌)처럼 해야 한다.
서군봉이 아니라 칠성군(七星君) 모두를 인질로 삼았어도 삼원로는 그들의 목숨보다 마야의 목숨을 원했을 게다. 하물며 이 자리에는 서군봉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만사무불통지까지 있다.
그녀는 인질이 되지 못한다.
마야는 태연히 서군봉의 앞섶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런 파렴치한!”
통천서패가 불같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막 손을 쓰려고 할 때, 마야의 손이 앞섶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반지 열 개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십! 십지환!”
“호오! 십지환!”
사천당문의 무가지보가 마야의 손에 들렸다.
마야는 무신들이 보는 앞에서 반지 열 개를 하나씩, 하나씩 손가락에 끼었다.
“후후! 이제야 나도 말 좀 하겠군.”
마야는 무신들을 태연히 쳐다봤다.
그는 두 손을 축 늘어뜨렸다. 당연히 손가락은 땅을 향했다. 누구든 가까이 다가오면 땅을 향해 십지환을 쏠 것이고, 반지 하나당 이십여 장을 초토화시키는 화력이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무신이라 한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기 하나 합시다.”
“무슨 말이냐!”
자의성검이 가당치도 않다는 투로 말했다.
“내가 당신들 손에서 벗어나면 앞으로 무신이란 이름을 버리시오.”
“뭐라? 벗어나? 우리에게서? 허허허! 배포 한 번 두둑하구나. 그래, 잡히면 어쩔 테냐?”
“콘! 따라와!”
마령음이 콘의 뇌리를 강타했다. 콘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하나 콘은 미련하게도 마야의 말에 곧바로 반응한다.
마야는 콘이 반응을 보이기 전에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그런 건 없어!”
쒸익! 꽈아아아앙!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섬광이 번뜩이더니 지면을 두들겼다. 그리고 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이 뒤집혔다.
동쪽, 자의성검과 통천서패가 서 있는 곳이다.
쉬익! 쉬이익!
콘과 마야는 폭음 사이로 사라졌다.
만사무불통지도, 혈일뢰도, 폭음 한가운데 서 있던 자의성검과 통천서패도 따라서 움직였다.
반경 이십여 장을 초토화시킨다는 십지환이지만 무신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하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꽈앙! 꽈아앙! 꽈앙!
마야는 십지환을 모두 쓸 작정인지 연신 반지를 내던졌다.
반지가 나아가는 속도는 추명반과 버금간다. 눈앞에서 번쩍! 하고 섬광이 터졌다 싶으면 어느새 몸을 관통해 버린다.
십지환을 피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신법이 필요하다. 하물며 천번지복(天飜地覆)하는 폭발에서 벗어나기는 무척 어렵다. 뿐만 아니라 도주하는 자를 뒤쫓아야 한다.
사천당문은 자신있게 말한다. 십지환이 모두 모이면 무신 한 명이 왕림한 것과 다름없다고.
폭음이 그쳤다.
뿌옇게 피어났던 흙먼지도 가라앉았다.
십지환이 만들어놓은 풍경을 보자면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땅이 움푹 패이고, 거목들이 부러져 나가고…… 전화(戰禍)가 휩쓸고 간 전쟁터라 한들 이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허허! 허허허!”
자의성검은 낭패한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삼원로가 화약에 그을리는 것을 감수해 가며 뒤쫓았건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마야가 준비한 것은 십지환뿐이 아니다. 다른 것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감쪽같이 사라질 수가 없다.
마야를 잡은 지 두 시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언제 이런 준비를 했단 말인가.
“무불통지, 일이 이렇게 됐으니…….”
만사무불통지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가라는 손짓만 했다.
마야도 없어지고 콘도 없어졌다. 수도 없다. 남은 것은 쭉쟁이에 불과한 산주와 사천제일룡뿐이다.
서군봉을 안아 들고 가는 삼원로의 등에 대고 만사무불통지가 말했다.
“두 번 다시…… 남무림 땅에서 당신들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소.”
“약속하리다.”
만사무불통지는 자의성검의 약속에 피식 웃었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子)라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부지자다. 약속을 어기고,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건 인간이 지닌 본성이다.
삼원로는 또다시 남무림 땅을 밟을 것이다.
‘그때는 꼭 죽여주지, 꼭.’
죽여야 할 사람은 또 있다.
그는 폭풍우가 휩쓸고 간 듯한 숲에서 조그마한 흙더미를 찾아냈다. 삼원로가 망연자실하니 서 있을 때, 그는 이미 흔적을 찾아내고 있었다.
땅속의 두더지.
‘언장은마…… 두더지를 잡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또 벌어질 터.’
언장은마를 잡는 건 마야의 두 다리를 자르는 것이다.
만사무불통지는 명을 내렸다.
“모든 눈과 귀를 동원하여 언장은마를 찾아라. 놈이 있는 곳에 마야도 있을 게다. 놈을 찾거든 언장은마부터 죽여라. 마야가 없어도 놈을 죽여라.”
***
콘과 수가 만날 때 공격 기회가 생긴다.
콘을 죽일 수 있는 방도는 있다. 제압만 하는 방도는 없다. 콘의 혈도를 짚는 건 소용없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의 신체는 녹광성초를 바른 것처럼 단단하다.
쓸 독도 없지만 독을 써도 제압되지 않는다.
마야는 수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그만.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목을 비틀어 버릴 거야.”
콘의 눈에서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났다. 그렇다고 염려했던 발광은 하지 않았다. 노려보기만 할 뿐이다.
‘됐어.’
마야는 수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먼 길을 가야 한다. 장강을 넘어 제이성까지 간다.
언제든 공격이 있을 수 있다. 콘의 정신 상태는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호채마를 멀찍이 떼어놓았다.
콘 앞에 드러난 사람은 마야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숨어서 은밀히 따른다.
중간에 잠도 자야 한다. 음식도 먹어야 한다. 수의 목을 움켜쥐지 못할 경우도 많이 발생할 게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미남계(美男計)다.
콘의 살기를 받으며 수를 묵묵히 쳐다봄으로써 수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수는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잡은 손에서 이성의 쾌감을 느끼고 있을 게다. 살기가 아니라 애정이 깃들인 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수가 콘과 그의 사이를 중재해 줘야 한다.
자신이 가는 길을 따라오면서 콘을 다독여 사고없이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모든 건 수에게 달렸다.
하루, 이틀……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뜨고 있을 때 수가 나직이 속삭여 왔다.
“괴롭지?”
“괴로워.”
“날 안고 싶지? 잘 참았어. 콘은 질투가 심해. 콘이 보는 앞에서 날 안으면…… 알지? 당장 때려죽일 거야.”
“그래.”
“조금 자. 난 콘하고 볼일이 있어. 질투하지 않지? 질투하면 안 돼. 그럼 내 곁에 못 있어.”
됐다. 생각했던 대로 수의 정신 상태도 온전치 못했다. 제정신을 찾기는 했지만 손상된 부위는 꾸준히 이성적인 생각을 저해한다.
수는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받아들인다.
그녀는 자신이 인질로 잡혀 있건만, 자신이 마야를 색의 노예로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수를 믿어도 된다. 이 정도면 무방비 상태로 있어도 콘의 소도에서 지켜줄 것이다.
“절혼!”
마령음이 허공을 쳤다.
바삭!
절혼마녀가 낙엽을 밟아 기척을 알려왔다. 만일까지 대비해 절혼마녀까지 보초를 세웠다. 이제 아무 근심 없이 눈을 붙여도 될 것 같다.
“하악!”
“헉헉!”
콘과 수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벌건 대낮에 정사를 벌였다. 그럴 것 같아서 인적 드문 산길을 택하긴 했지만.
수는 며칠 동안이나 색기(色氣)를 억눌러 왔다.
이제 봇물이 터졌으니 그녀의 욕구가 채워지려면 꼬박 반나절은 지나야 할 게다.
‘제이성에만 가면…… 제이성…….’
마야는 혼곤히 쏟아지는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