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56
256
마야가 기대한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호법? 그에게 호법은 필요없었다.
무신이 공격해 온다면…… 생각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삼원로가 동시에 공격해 온다면 세 여인이 아무리 철저한 방어막을 짜놨다고 해도 막지 못하리라.
마야는 막을 자신이 있었다. 세 명을 물리칠 수는 없지만 몸뚱이 하나 정도는 전장에서 빼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 상황이 도래한다면 세 여인은 오히려 짐이 된다.
하나 마야는 씩 웃는 것으로 다담선자의 뜻을 받아들였다.
세상에 독불장군이 어디 있으랴.
두 명이 한 명보다 낫고, 세 명이 두 명보다 낫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가. 바로 뒤따라갈게.”
“바로 뒤는 아녜요. 제가 뒤를 이을 테니, 제 뒤나 잘 따라와요.”
절혼마녀가 말을 받을 때 다담선자는 찰랑이는 물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마야는 천천히 헤엄쳤다.
바다처럼 넓은 강은 강심으로 갈수록 유속(流速)이 빨라져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철썩! 쏴아아아……!
파도 소리도 들려오고, 폭포수 소리도 들리고, 깊은 계곡에서 들을 수 있는 작은 개울물 소리도 들린다.
강은 온갖 소리를 내며 흐른다.
보이는 것은 오직 물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탓도 있지만 잠시 고개만 들어보면 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 있는데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니, 정신이 없다는 편이 맞다.
하지만 마야는 누가 어디에 있는지 환히 꿰뚫어 봤다.
제일 앞서 나간 시마가 어디쯤 가고 있으며, 땅속에만 틀어박혀 있던 언장은마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대낮에 높은 곳에서 지켜보듯 소상히 파악했다.
가장 염려스러운 사람은 사망혈인이다.
한 달 기한을 주고 만멸폭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왔다.
하오문도가 찾아갔을 게고, 자신이 다시 연락할 때까지 하오문도와 고락을 같이하겠지만…….
그는 환히 드러났다. 자신과 같이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르는 형편이 되었다.
그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면 괜찮다. 주목하는 사람이 있으니 문제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만사무불통지가 지켜보고 있으니 결단코 무사할 수 없을 것 같다. 만멸폭을 만들어냈다면…… 만들어낸 순간이 바로 그의 목숨이 떨어지는 순간이 될 게다.
염려는 되지만 마야가 해줄 일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버텨줘야 하는데…….’
지척에 네 여인이 있다.
앞에 세 명, 뒤에 한 명.
앞서 나가야 할 일령이 계속 처지더니 강심에 이르렀을 때는 다담선자보다도 뒤처지고 말았다.
“가아…… 가아아아…… 가아아…….”
마야는 마령음을 토해냈다.
얼핏 들으면 벌레 소리 같고, 또 얼핏 들으면 새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소리가 밤길을 걷다가 낙엽을 밟았을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보다도 작아서 신경을 끌어당길 리는 전혀 없다.
일령이 힘을 얻어 힘차게 헤엄쳐 나갔다.
일령의 내공이라면 장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왕복을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한데도 뒤처지는 것은 물과 어둠, 그리고 혼자라는 고독감이 안겨준 공포심 때문이리라.
마령음은 실제로 내공을 북돋아준다. 하나 그보다는 혼자가 아니라 옆에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심어준 게 큰 힘이 되었을 게다.
일반인 같으면 목숨을 걸어도 건널 수 없는 게 장강이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장강을 소리없이 건넌다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마야가 강기슭에 올라섰다. 그리고 잠시 후, 마지막으로 천멸도주가 올라왔다. 천멸도주는 마야와 부딪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올라서는 세밀함을 보였다.
날이 밝아온다.
어둠이 깃든 후에 강을 건너기 시작해서 꼬박 밤을 밝혀 버렸다.
피곤하다. 잠시라도 쉬고 싶다. 하나 찰나에 불과한 시간도 쉬어서는 안 된다. 특히 사방이 환히 트인 강변에서는 가능한 빨리 몸을 숨겨야 한다.
시마가 열어놓은 길로 급히 따라가야 한다.
마야는 따라가지 않았다. 시마가 숨어 있고, 마도와 수검이 숨어 있다. 언장은마는 땅속에 스며들었고, 일령과 금연화도 시마 곁으로 달려갔다. 혈도가 제압되어 병자처럼 축 늘어져 있는 콘과 수도 강둑을 넘어갔다.
다담선자도 움직이려고 했다. 그것이 예정된 행동이다. 하지만 마야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녀도 움직이지 못했다.
“왜?”
“다담,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야겠어.”
마야의 음성은 진중했다. 무겁고 단호했다.
“무슨……?”
“다담, 절혼, 도주. 지금부터 절대 입을 열지 말고 내가 하는 말만 들어. 이유 같은 건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줘.”
마야는 말을 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머리에서 머리로 전달되는 영능(靈能)이다.
‘누군가 있어!’
다담선자는 즉시 사태를 깨달았다.
북무림 장강 수비무인들에게 발각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시마가 뚫고 나온 길은 도저히 인간이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 짐승들도 피해 다니는 길이었다. 오죽했으면 무공으로 단련된 무인들이 지치기까지 했겠는가.
지금까지 지나온 경로는 제이성의 은밀함에 견주어볼 때 수십, 수백 번에 걸쳐서 탐사하여 만에 하나 있을 경우까지 제거한 그야말로 완벽한 비밀 도주로다.
북검문의 경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가정해도 들킬 염려는 없다. 혹여 있을지 모를 경계까지 고려하여 최대한 조심을 거듭하며 수영했다.
실제로 시마 등은 강변에 올라서기 무섭게 몸을 감췄다.
북검문 무인은 아니다. 그럼 누군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마야가 영능으로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긴장을 해야 할 상대다.
절혼마녀와 천멸도주도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터이다.
마야가 자신만 거론한 것이 아니라 절혼과 도주까지 들먹였으니 세 여인에게 동시에 말을 전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담선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강을 건너와 호흡이 가쁜 것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호흡을 골랐다. 그때, 마야의 다음 말이 머릿속을 울렸다.
“지금 바로 시마와 합류한 후, 제이성으로 가. 뒤돌아보지 말고. 제이성에 가면 콘은 삼실(三室)에, 수는 사실(四室)에 가둬둬. 삼실과 사실은 가보면 알 테고…….”
다담선자는 마야 쪽으로 한 발을 옮겼다.
가지 않으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이다.
“내 사람…… 내 사람들 아닌가. 내 아내들 아닌가. 믿을 땐 믿어줘야지. 믿고 가도록 해. 바로 뒤따라갈 테니.”
다담선자는 손을 들어 목에 댔다.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냐는 물음이다.
“후후후! 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어. 내 무공이 그만큼 강해서가 아니라, 날 필요로 하는 한 날 죽일 수 없지. 남무림, 북무림, 유계…… 그 어느 곳이 되었든 난 필요한 존재지 죽일 존재가 아냐. 그러니 안심하고 가.”
다담선자는 마야의 말을 믿는다.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혼자만 버려두고 갈 수는 없다.
“하나.”
마야가 수를 헤아렸다.
“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남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떠나야 하나.
“셋!”
“내 아내들 아닌가. 믿을 땐 믿어줘야지.”
다담선자는 단숨에 강둑을 넘어 시마가 은신한 곳으로 뛰어들었다.
제3장 뉴불과(扭不過) ― 반대할 수 없다
1
처음으로 아내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부부라는 인연으로 얽매인 다음에는 거짓을 몰랐다.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는 거짓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는 믿음을 내세워 거짓을 말했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다.
흔적 또한 발각되지 않았다.
남무림 무인들은 호채마가 아직도 남무림 땅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생각할 게다. 북무림 무인들도 마찬가지다. 마야를 비롯한 마인들이 장강을 넘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게다.
제이성으로 가는 비밀 도주로는 수십 년 동안 보존되어 왔다.
차후, 다시 사용할 길도 아니다. 이미 써버린 길은 비밀로로써의 가치를 잃는다. 이후에 또다시 남무림에서 제이성으로 가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 왔던 길은 끝자락조차 밟지 않을 것이다.
역시 제이성으로 가는 길은 안전했다.
이대로라면 넉넉잡아 십여 일이면 제이성에 도착하리라.
그러면 피곤함을 달랠 수가 있다. 콘과 수의 모든 것을 샅샅이 파악할 수 있는 시간도 얻는다. 거기에 하오문의 정보망을 조금만 이용하면 혈귀대주가 단문협에서 죽을 당시부터 자신이 제이성에 발을 들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하면 누가 이번 계획을 주도했고, 무엇을 노리는지도 알게 되리라.
소립파는 장강을 넘을 때까지 줄곧 그것만 생각했다.
모든 열쇠는 시간에 달렸다.
콘이 완전한 마인이 될 때까지, 수가 구혼음태를 십이성 수련하여 어떤 영향력을 펼칠 때까지, 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여 콘과 수에게 대응해 나갈지…….
지금은 싹이 발아하여 푸른 줄기를 내뻗는 단계다.
세월이 흐르면 보리가 되든 쌀이 되든 결과를 내놓게 될 것이다.
제이성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강을 건너는 도중에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콘이 무공을 최극상으로 익혀도 살인마 수준을 벗어나진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있건 없건, 무신에 버금갈 정도로 강해졌건 아니건 간에 그는 무공을 사용하게 되어 있고,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 된다.
그는 마인이다.
마인이라기보다는 무공을 지닌 정신병자다.
수 역시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무공 때문이든 백일몽 때문이든 어떤 영향에서든 그녀의 머리는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났다.
콘이 살인마라면 수는 색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자가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도구로 보이리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누군가가 무엇을 원해서 멸신구관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이루어줄 사람은 자신이라는 거다.
콘을 통해서 무공을 완성시켜라. 철저한 살인무공을 배워라. 잔악한 심성까지 이어받아라.
수와 관계를 가져라.
구혼음태는 음(淫)의 골짜기다. 면벽 십 년에 깨달음을 얻은 고승일지라도 치마폭에 휘감기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옥구덩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독(毒)을 약(藥)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멸신구관을 당당히 뚫고 나온 마야가 아니겠는가.
수와 관계를 가지고 그녀가 지닌 음을 빨아들여라.
흡혈고인, 미염흑매, 적선태…… 멸신구관의 삼충살육진을 흡수해 버린 영매술로 수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그럼 어떻게 될까?
그는 원래 경맥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희귀병을 지닌 몸이었지 않은가. 멸신구관에서 천참만륙(千斬萬戮)을 겪은 끝에 새로운 육신을 얻었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딱딱한 명태를 노골노골하게 두들겨 놓은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더 이상 경맥은 굳어지지 않는다.
진기를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나 평생 굳어지기만 했던 경맥이 완전히 자유롭게 풀리려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수의 음기는 질긴 경맥을 살살 어루만져 줄 것이며 확장할 수 있는 만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영매술로 수의 음기만 취한다면 단숨에 무신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무공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으며, 좀 더 강하고 신선한 무공들이 계속 창안, 사용될 것이다.
누가 일견후즉파의 앞을 가로막을 것인가.
그렇다. 콘과 수는 그를 위해 준비된 인간 기연(奇緣)이다.
콘과 수를 창조해 낸 사람은 그들을 살인자나 색녀로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마야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게다.
미지의 인물은 마야가 정상적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마야가 최고의 무인이 되도록 준비해 놨다.
마도의 부활을 원하는가?
아니다. 그가 정녕 마야를 잘 알고 있다면 마도의 부활 같은 건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게다.
마도가 부활하려면 정도와 영역 다툼을 해야 한다.
시신이 산이 되어 쌓이고, 피가 강물이 되어 흘러야 한다.
마야는 마도를 포기할망정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않을 성품이다.
어쩌면 마야는 정도인으로 태어났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마도의 부활도 아니라면 미지의 인물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마야가 최상의 무인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혼란이다. 무림의 멸망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견후즉파라는 능력 때문에 질시의 눈총을 무수히 받아왔다. 거기에 무공까지 남다르면, 무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마야라면, 이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가장 다급한 사람들은 무신일 게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북무림에 네 명의 무신이 존재하고, 남무림에 세 명이 있어야 한다.
현재 상태는 매우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어느 한쪽도 과감히 모험을 할 수가 없다.
힘의 균형이 무림의 평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현 상태는 전시(戰時)다. 장강을 두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은 꼭 싸움이 벌어진다.
마야가 천하제일인이 되면 이러한 균형이 깨진다.
마야가 무신 중 누구라도 죽이는 날에는 중원 전 대륙이 싸움터로 변할 건 자명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