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58
258
“글쎄……?”
“내숭덩어리 다담을 깨끗이 떼어놨고, 몸뚱이가 불덩이인지 늪인지 모를 언니도 떨어뜨렸고. 호호호! 나 혼자서 널 차지했는데 재수 좋지 안 좋아?”
그녀는 말을 하면서 검을 뽑았다.
그녀가 평생 애용한 병기는 길이 삼 척의 벽추검(碧秋劍)이었는데, 지금 손에 든 것은 일 척 정도 되는 검 두 자루다. 장검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단검도 아니고…… 그녀만의 독특한 검이다.
천멸도주는 이 쌍검을 무정자오검(無情子午劍)이라고 불렀다.
실수가 없으니 요행을 바랄 수 없고, 정이 담겨 있으니 용서를 구할 수 없으며, 검 하나가 공격을 하면 다른 검은 수비를 하니 자오(子午)의 성격을 지녔다는 뜻으로 지은 검명이다.
기실, 천멸도주가 벽추검을 등으로 옮기고 무정자오검이라는 기형검을 만들어낸 데는 콘의 영향이 컸다.
콘과 마야의 싸움은 호채마들에게는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싸움을 지켜보는 동안, 혹은 싸움이 끝난 후에 자신의 무공과 비교하여 우열(優劣)을 가려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천멸도주는 무당십삼세를 그녀만의 절학으로 재탄생시켰다.
천멸도의 절학과 무당십삼세와 새로 얻은 심득을 바탕으로 공전절후(空前絶後)한 검학을 완성했다.
물론 일견후즉파가 등 뒤에 버티고 서서 장애가 생길 때마다 시원하게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녀의 검학은 전적으로 그녀가 창안해 냈다.
“무정자오검. 살심(殺心)을 크게 열겠다는 뜻이군.”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잖아?”
마야는 입술을 살짝 비틀어 옅게 웃었다.
웬만한 자들 같으면 신법으로 따돌릴 수 있었는데…… 도인(道人)도 있고, 속인(俗人)도 있지만 병기를 잡은 모습은 한 문파의 문도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마야와 천멸도주는 장강 쪽만 제외하고 삼면을 포위, 압박해 들어오는 무인들의 정체를 알아봤다.
종남파(終南派) 무인들이다.
종남파는 장강 수비에 분타(分舵) 두 개를 내놨는데, 하필이면 그들이 경계 서는 쪽으로 올라선 것이다.
“내게 해줄 말 없어?”
천멸도주가 사방을 휘휘 돌아보며 말했다.
“전면에 펼쳐진 것은 쇄월검진(碎月劍陣)이라 부수려면 애 좀 먹을 거야. 왼쪽은 칠성취회진(七星聚會陣), 오른쪽은 북두대천강검진(北斗大天|劍陣)이야. 종남파 삼대절진을 한곳에서 보기도 힘든데 안복(眼福)은 있군.”
“또.”
“숙련도는…… 흠! 오성에서 육성. 그나마 다행이지?”
“또.”
“수인(手印)을 염두에 둬. 검이 흐른 다음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뢰인(五雷印)이 뒤따를 거야.”
“또.”
“……?”
마야는 의아한 눈길로 천멸도주를 쳐다봤다.
종남파 무인 백여 명을 맞이한 것은 대단히 재수없다.
왜? 그들은 엄밀한 진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신법으로 뚫고 나갈 수 없다. 해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다. 처음부터 죽여야 하기 때문에 재수없는 것이다. 종남파 무인들이 무섭다거나 위협이 되어서 재수없는 게 아니다. 특히 천멸도주의 무당검법십삼세는 정도 무공 중에서도 최상으로 인정받은 절공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은신술의 대가, 천멸도주가 무당검법십삼세를 펼치는데 이제 육, 칠성가량밖에 본 문 무공을 수련해 내지 못한 무인들이 어떻게 막겠나.
애초에 조언이 필요치 않은 상태였다.
천멸도주는 무슨 말을 듣고자 하는 것인가?
“풋! 사람을 부리려면 대가를 줘야지. 나한텐 뭘 줄 건데?”
“뭐, 뭣!”
“좋아. 이번에는 외상이야. 다음부터는 뭘 줘야 할지 생각해 놔.”
천멸도주는 곧장 쇄월검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쒜엑! 쒜에엑!
하늘과 땅이 일시에 검막(劍幕)으로 둘러쳐졌다.
종남파 무학은 광대무변하며 심오하다. 검법의 종류만 해도 이십여 가지가 넘고 내공심법 또한 열을 훌쩍 넘어선다.
하나같이 절학이라고 인정받은 무공들만 헤아렸을 경우가 그렇고, 증명되지 않은 무학까지 논한다면 헤아린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다듬고 다듬은 무학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천멸도주는 달려오던 기세를 급히 죽이며 쌍검을 휘둘렀다.
깡! 까앙! 까아앙!
몇 번의 부딪침이 일어나고,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검막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음!”
종남파 무인들 사이에서 답답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달려오는 것을 보고 검을 휘둘렀는데, 검진을 펼쳤는데 귀신이 땅속으로 꺼지듯 느닷없이 사라져 버렸으니 신음밖에 더 흘리랴. 이럴 경우, 십중팔구는 위험이 지척에 있는 것인데 어디에 있는지 느낌조차 없으니 소름이 돋을 수밖에.
그것이 신호였을까?
스으읏!
난데없이 발밑에서 실바람이 일어났다. 그리고 핏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멀쩡히 서 있던 무인들 중에 두 명이 배를 움켜쥐며 쓰러진 것과 같은 순간이었다.
“은신술이닷!”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쓰으읏! 스읏!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검만 살아서 움직였다.
“크윽!”
답답한 비명이 어김없이 새어 나왔다.
천멸도 살수들의 은신술은 호채마도 속절없이 당한 전례가 있다.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이라는 소리를 오래전부터 들어온 터이니 살인 솜씨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스읏! 쓰으읏!
검은 거침없이 휘둘러졌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이 있으면 옆이나 앞뒤에 있는 사람은 바짝 긴장하게 된다. 조금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누가 당했는지 알고자 잠시라도 눈길을 돌린다.
천멸도주는 그 순간조차 놓치지 않고 죽음을 만들어냈다.
“저놈! 저놈부터 죽엿!”
천멸도주의 종적을 잡아내지 못하자 화살이 마야에게 돌려졌다.
종남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제일 먼저 움직인 쪽은 공격을 받고 있는 쇄월검진 무인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자리를 고수하고, 다른 일부는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마야 쪽을 가로막았다.
마야와 천멸도주를 분리시킨 것이다.
천멸도주의 공격은 계속될 테고, 그들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전멸을 각오한 행동이다.
왼쪽의 칠성취회진과 오른쪽의 북두대천강검진은 속도에 최우선을 두고 달려들었다.
스으읏! 스으으읏!
천멸도주의 검이 더욱 활기를 띠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 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순간, 오 장이나 떨어진 곳에 있던 무인이 검을 맞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사람이 움직이려면 기척이 있어야 한다. 아니, 기척이 아니라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무리 은신술의 대가라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은포(隱包)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지척에 오면 검을 쳐낸다?
이런 경우는 얼마든지 납득한다. 하지만 천멸도주처럼 단 한 사람이 쾌속한 신법을 펼치며 공격을 가하는데 옷자락 하나 보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벽운천강(碧雲天|)!”
우렁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타앗!”
살아남은 쇄월검진 무인들은 일제히 검을 쳐냈다.
일부는 하늘로 곧추세웠고, 일부는 가로 그었으며, 수직으로 내리긋는 자도 있었다.
그들의 검식이 하나로 모여 물샐틈없는 검막을 그려냈다.
까앙!
처음으로 반응이 왔다. 천멸도주가 육신을 베지 못하고 검과 부딪쳤다.
“천궁파월(天宮破月)!”
진식은 제대로 펼쳐졌다. 질서를 되찾은 쇄월검진은 정해진 순서대로 핑핑 돌아갔다.
둥그렇게 포위한 검막이 일시에 좁혀들었다.
무인들이 한 걸음씩 내딛으며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천멸도주의 행동반경은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응명쇄월(鷹鳴碎月)!”
세 번째 고함이 터졌을 때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크윽!”
“컥!”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대여섯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쇄월검진은 무적에 가깝다.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구치지 않는 한 빠져나오기가 난감하다.
빙 둘러 펼쳐진 철벽이 조금씩 안으로 줄어드니 움직임에 제약을 받다가 끝내는 검을 맞아야 한다.
눈에 보이건 천멸도주처럼 보이지 않건 간에 원 안에 갇힌 자를 죽이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정적인 허점을 보였다.
아직 미숙하다는 증거인데…… 검진을 펼치면서 진서(陣序)를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 고함을 내지른다는 것은 검식과 검식 사이에 단락이 생김을 의미한다. 아무리 빨라도 검서를 토해내는 순간만큼은 검이 멈춰진다.
천멸도주 같은 사람이 그 틈을 놓칠 리 없다.
일 검에 오륙 명이나 베어낸 그녀의 검은 곧바로 다른 자들을 베어갔다.
쒜엑!
종남파 무인들은 응명쇄월을 펼치려고 했다. 하나 검초가 절반도 펼쳐지기 전에 대여섯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또다시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천멸도의 은신술은 신법을 기반으로 한다.
어느 문파나 처음 수련은 신체의 골격을 다듬는 기본공(基本功)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천멸도는 다르다. 기고, 걷고, 뛰고, 나는 수련부터 한다. 그리하여 삼백육십 중의 신법에 능통했을 때, 비로소 검을 쥐게 한다.
빠름이 느림을 제압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나 느림으로 빠름을 제압할 수도 있다.
천멸도주는 빠름과 느림을 적절히 조합하여 환각을 이끌어낸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데도 볼 수 없는 건 잔상(殘像)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은신술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무당검법십삼세라는 절학은 단신으로 한 문파를 멸문시킬 수 있는 가공할 힘을 준다.
이들은 천멸도주의 상대가 아니다.
마야는 완숙해질 대로 완숙해진 천멸도주의 무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진정한 강자와 부딪친다고 해도 목숨을 보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도주는 됐고…… 이제는 자신을 확인할 차례다.
자신에게도 이들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들 정도의 무인이라면 백 명이 아니라 이백 명이 떼로 몰려들어도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게다.
그래도 시험해 볼 것이 있다.
콘과 싸우면서 자신이 펼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상의 무공을 창안해 냈다. 콘을 제압하고 비밀 도주로로 탈출해 나올 때는 창안한 무공을 정리하고 다듬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녔던 특이 능력과 머릿속에 담긴 무공들을 모두 모은 정화(精華) 중에 정화다.
이게 과연 어떤 위력을 선보일지…….
쒜엑!
검광(劍光)이 쏟아져 들어왔다.
‘북두질주(北斗疾走)’, ‘성화산폭(星火散爆)’이라는 고함도 들렸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호오!”
마야의 입에서 감탄한 듯, 혹은 크게 한숨을 쉬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야는 거침없이 북두대천강검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진세를 갖췄다. 진에 맞춰서 검을 휘두른다. 일부는 암기인 봉황침(鳳凰針)을 움켜잡았다. 성화산폭이라는 진형(陣形)에 암기를 던지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암기도 던진다. 성화산폭은 검과 암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서 마치 불덩이가 공중에서 폭발하여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마야는 북두대천강검진에 대해서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안다. 쇄월검진도 칠성취회진도 세부적인 도해(圖解)가 머릿속에 들어 있다.
비급을 통해 보기도 했고, 무림을 방랑하면서 눈으로 목도하기도 했다.
일견후즉파!
종남파의 진법은 오랜 세월 동안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아직도 큰 허점이 있다. 숙련도가 떨어져서 진서를 말한 다음에 진세를 전개하는 식의 허점이 아니라 진 자체에 허점이 있다.
북두대천강검진은 일곱 명이 한 조를 이루며 일곱 조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대진(大陣)이다.
북두진을 칠성(七星)의 위치에 놓으니 큰 원 안에 작은 원이 빼곡히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진세가 되었다.
특히 북두진은 원과는 다르게 각(角)이 져 있다. 각은 곧 충(衝), 원의 유연함을 지니면서도 살상력을 매우 높였다. 반면에 운용 면에서는 원으로 구성된 진보다 원활하지 못하다.
거대한 힘이 잘 맞춰진 조각처럼 짜임새있게 돌아가니 위압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빗장 하나만 어긋나도 삐걱거리는 진인 것이다.
북두대천강검진을 완벽하게 깨기 위해서는 북두진을 이끄는 조장 일곱 명을 죽이면 된다. 진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라면 조장 중 한 명만 죽여도 된다.
종남파도 그런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장은 도산검림(刀山劍林) 안에 숨겨두었다. 하나 북두대천강검진을 꿰뚫어 보고 있는 마야가 어찌 그들을 찾지 못하랴.
마야는 벌써 일곱 명의 면면을 샅샅이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일곱 명 중에서도 가장 선배(先輩)가 누구인지도 찾아냈다.
종남파 무인들이 북두대천강검진을 고집한다면 패배만 있을 뿐이다.
불행 중 다행일까? 마야는 자신이 알고 있는 파해법(破解法)을 써먹지 않았다.
“하아!”
힘든 것을 들어 올릴 때 자신도 모르게 토해내는 음성.
“휴우!”
무거운 것을 내려놓으면서 가볍게 몰아쉬는 숨.
마야의 입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숨소리가 연속으로 새어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않고 숨을 내쉰 자신만 느낄 수 있는 소리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목숨을 건 싸움에 임하는 마당, 숨소리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산멸(散滅)! 척(剔)!”
일곱 조장 중 한 명이 거센 고함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