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a RAW novel - Chapter 260
260
마야의 말은 거의 맞다.
유계의 마인들은 유계 밖으로 나가본 사람이 드물다. 하물며 천축이라니. 장강 구경도 이번 나들이 때문에 해봤을 게다.
“두 번째 제안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승려들은 두말하지 않았다.
첫 번째 제안이 거절당하자 즉시 병기를 움켜잡았다. 아니, 병기가 아니다. 기이한 물건들이다.
목궤(木机)는 알아볼 수 있다. 언월도(偃月刀)는 눈에 익다. 나머지 세 개도 많이 보아온 물건들로 순수한 불가용품이다.
목탁, 바라, 염주.
싸움을 하러 온 사람들 맞나?
처어엉!
놋쇠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바라다. 그러자,
“후웁!”
천멸도주가 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마야를 쳐다봤다. 가면에 가려져 표정이 읽히지 않는다. 하나 마야는 그녀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의 몸짓, 흔들리는 눈동자, 고슴도치처럼 빳빳이 세운 신경 등만 살펴보아도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방금 전에 그녀는 낭패를 보았다.
바라의 공격에 뒤로 물러서기까지 할 만큼 놀람이 컸다.
어떤 공격이었을까? 뜻밖에도 음공(音功)이다. 소리로 타격을 가한다. 육신을 치는 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경맥(經脈)을 두들겨 진기를 끊어놓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마야은 선천적 능력으로 기파(氣波)를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다. 타고난 능력이 없다면 기파로 공격한다는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못했을 게다.
하기는 마야 이전에 마령음이 있었고, 적멸주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었으니 이들이라고 음공을 시전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바라의 공격은 귀머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라의 음공은 자신의 음공과는 조금 다르다.
자신은 직접 피부를 뚫고 들어가서 경맥을 치는데, 바라는 청각부터 건드린다.
청각에서 뇌로, 뇌에서 혼란을 일으키게 하고, 혼란은 순행하던 경맥을 순간적으로 뒤틀어놓는다.
아이가 깜짝 놀라서 경기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자신의 음공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지만 음공을 접해본 적이 없는 무인이라면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다.
천멸도주는 음공을 많이 접해봤다. 운공조식을 취할 때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런 그녀마저 낭패를 당해 인상을 찡그릴 정도라면 공격 수준이야 어쨌든 경시해서는 안 된다.
‘봉청(封聽).’
마야는 천멸도주에게 의념을 전했다.
음공 공격은 쉽게 막아낼 수 있다. 귀만 막으면 된다. 단지 귀를 막은 상태에서 다섯 명의 합공을 어떤 식으로 맞이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쩌엉!
바라가 또 울렸다.
이번에는 천멸도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데 바라를 든 승려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동시에 다른 승려들도 쾌속하게 움직여 마야와 천멸도주를 에워쌌다.
그중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이는 승려가 있었다. 염주를 든 승려다. 그의 신법은 다른 사 인에 비해 세 배는 빨라 보였다. 네 명의 승려가 마야와 천멸도주를 에워쌌을 때는 벌써 원을 두 바퀴나 돌고 난 후였다.
툭! 툭! 툭!
염주가 풀려 나왔다. 염주를 꿰고 있던 끈이 툭 끊어지면서 염주들이 알알이 흩어졌다.
무작위로 흩어진 건 아니다. 너무 빨리 움직여서 던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철저하게 계산되어진 곳에 조심스럽게 놓여졌다.
“뭐야?”
천멸도주가 말했다. 마야에게 묻는 말이다.
“조금 더 보자고.”
마야는 포위망이 좁혀오는 데도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급할 건 없었다. 다섯 승려의 기도는 먼저 죽은 사내보다도 못했다. 사나움도 약했고, 강함도 부족했으며, 그렇다고 부드러움이 넘쳐 나지도 않았다.
파락호처럼 사납고 건들거리지만 무인의 강함은 엿보이지 않는다.
첫인상처럼 무공 또한 독특하리라.
쩌엉! 쩌엉!
바라가 울려댈 때, 목탁도 딱! 딱! 따라락! 딱! 아름다운 음률을 흘려냈다.
“후후! 이제 알겠군.”
마야가 고개를 옆으로 숙이며 피식 웃었다.
천멸도주가 마야의 행동을 보고 물어왔다.
“생각난 게 있어?”
그녀는 봉청을 한 상태다. 의념으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포달랍궁(布達拉宮) 호불신공(護佛神功)을 변형시켰군.”
“호불신공?”
“오수색명(五手索命). 다섯 명이 하나가 되면 어떤 생명도 끊을 수 있다는 절정신공으로, 아직까지 패배를 모르는 전승(全勝)의 무공이기도 해.”
“전승이란 말이지.”
천멸도주가 피식 웃었다.
세상에 전승의 무공이 어디 있던가. 그저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 강할 뿐이다.
마야가 천멸도주의 내심을 읽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무시할 수 없는 무공이야. 실제로 전승이니까. 아직까지 한 번도 꺾인 적 없어.”
“그럼 우린 최강의 무공과 만난 건가?”
“아니.”
“……?”
“포달랍궁의 오수색명은 최강인데…… 이들의 오수색명은 허점이 많아. 오수색명의 진가를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만 가져온 거야. 알맹이는 다 빠졌어.”
“알맹이라면…… 어떤 종류?”
“내공. 오수색명이 강했던 이유는 오수(五手) 개개인의 내공이 천하에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야. 후후! 그 정도의 내공이라면 굳이 절정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다섯 명이 합공하지 않아도 당할 사람이 드물어. 포달랍궁은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오수색명이란 걸 만들어 겉포장을 했는데…… 이들이 그걸 가져왔군.”
“뭐! 호호호! 호호호호!”
천멸도주는 너무 기가 막혀서 적이 앞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도 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야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신경 쓸 게 없다.
‘천하에 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내공’을 가질 정도라면 적어도 일파의 장문인쯤은 되어 있어야 한다. 작은 문파의 장문인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구파일방 정도 되는 대문파의 장문인을 말하는 게다.
현 무림에서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무공을 겨룰 자도 별로 없거니와 그런 사람이 다섯 명이나 합공한다면 당해낼 사람은 정말 드물다.
오수색명이 아니라 삼류무공을 펼쳐도 당해낼 수 없다.
포달랍궁의 호불신공 오수색명은 무공이 아니라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 내공을 지닌 사람이 바라를 쳤다면 고막이 터졌으리라. 언월도를 쳐왔다면 피하기에 급급했으리라.
“염주는 독무(毒霧)를 피워낼 거야.”
“독무 정도는.”
사천당문의 독도 이겨낸 몸이다. 몸에 마야의 피가 흐르기에 절반쯤은 독인(毒人)이 되어 있다.
“검은 운무도 함께 피어나. 바라로 귀를 막게 하고, 흑무(黑霧)로 눈을 가리고. 저 목궤. 목궤는 암기 상자야. 세침(細針)이 백 개씩 들어 있는 침통이 이백 개. 용수철 장치가 되어 있어서 뚜껑을 여는 순간 이만 개의 세침이 쏟아져 나와.”
“무섭네.”
전혀 무섭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겨우 그것뿐이냐는 비웃음이었다.
“세침이 쏟아지는 순간 언월도와 목탁이 달려들 거야. 저 목탁은 원래 쇠로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변형시켰군. 안에 뭔가를 넣는 것으로 바꿔놨어.”
“결국 잔수…….”
천멸도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염주에서 검은 운무가 뭉글뭉글 피어났다.
동시에 목궤도 열렸다.
쒜에에엑!
세침 이만 개가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가까이 이르기도 전에 한기(寒氣)가 스며들어 솜털을 곤두세운다. 더군다나 흑무로 완전히 시야가 가려져서 느낌만으로 피해내야 한다.
천멸도주는 손에 검 대신 채대(彩帶)를 들고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무섭게 돌았다. 돌풍(突風)을 일으키며 맴돌았다. 사막의 용권풍(龍捲風)이 이곳에서 생겨났다.
파라라락! 타타타탁!
이만여 개의 세침은 천멸도주가 만든 풍막(風幕)을 뚫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검은 운무도 가공할 흡입력에 휘말려 안으로 빨려들었다가 하늘로 던져졌다.
이제 언월도와 목탁이 공격해 올 차례다.
공격? 그런 걸 기다릴 필요가 있나? 먼저 공격해서 숨통을 끊어놓으면 되는 것 아닌가?
천멸도주는 숨조차 돌리지 않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안 돼!”
마야의 음성이 머리를 때렸다.
그것뿐이다. 말 한마디, 한데 머릿속을 울린 말 한마디가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다. 온몸이 싸늘하게 경직되어 온다. 순식간에 온몸이 얼어붙는다.
“비상망월(飛上望月)!”
마야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생각할 짬이 없다. 마야는 의심없이 행동하라고 한다. 그의 음성이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쉬익!
천멸도주의 신형이 달을 바라보며 날아오르는 학같이 고고하게 솟구쳐 올랐다. 사실 고고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독수리가 날아오르듯 광폭했으며 빨랐다.
“야조비공(夜鳥飛功)!”
느닷없는 외침!
비상망월은 하늘로 솟구치는 신법이지만 야조비공은 수평으로 나는 신법이다.
비상망월에 이어 야조비공을 펼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숱하게 반복 수련하여 몸에 익을 대로 익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느닷없이 외쳐 대는 대로 따라 하는 건 정말 고역이다.
천멸도주는 급히 위로 향하던 신형을 틀어 옆으로 쏘아냈다.
“하!”
커다란 고함이 그녀를 덮쳤다.
경맥이 크게 요동쳤다. 단전이 시원해지며 몸이 가뿐하다. 운기조식을 도와줄 때처럼 진기를 북돋아줬다.
이건 무슨 말인가? 최선을 다해 벗어나라는 뜻이 아닌가? 왜?
그녀의 신형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순간,
꽈앙! 꽝! 꽈아앙!
천번지복(天飜地覆)이 이러할까?
등 뒤에서 일어난 폭발은 뜨겁기 이를 데 없는 화염(火焰)을 쏟아내며 그녀를 덮쳤다.
뜨겁다. 온몸이 유황불 속에 던져진 느낌이다. 팔팔 끓는 기름을 뒤집어쓴 것 같다.
‘끄윽!’
천멸도주는 쏟아지는 신음을 간신히 참았다.
살수는 죽는 순간에도 비명을 안으로 삼켜야 한다. 하물며 살수들의 하늘인 도주가 신음 소리를 흘린 데서야 말이 되나.
그녀는 허공에서 세 번이나 제비를 넘은 후에야 간신히 균형을 잡고 내려섰다.
‘마야!’
천멸도주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의 폭발이라면! 자신은 빠져나왔는데, 마야는? 먼저 몸을 피한 자신이 이토록 정신없는데, 마야는?
보인다. 잠시 잠을 청하던 평상은 온데간데없다. 누군가의 보금자리였을 집도 폭삭 주저앉았다.
마야는 보이지 않았다.
2
그들은 유계에서 왔다.
아무리 시원찮게 보이는 인물이라도 유계와 연관이 있다면 당연히 경계를 했어야 한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은 기본 중에 기본인데 이토록 쉽게 넘어가다니!
차라리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면 방심이라도 하지 않았으련만, 사람 좀 볼 줄 안다고 어설프게 예단(豫斷)하고 말았으니 지금 당한 일격은 당연한 거다.
승려들은 애초부터 살 생각이 없었다.
포달랍궁의 오수색명을 모르지도 않았고, 몇 가지 잔재주로 막강한 내력을 보충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껍데기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가져온 척을 했을 뿐이다.
오수색명을 전개하면 일단은 눈과 귀를 가릴 수 있다. 목궤에 든 암기까지 발사하면 장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사람은 멀리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도 급급해진다. 암기 공격을 막았으니 이제 또 어떤 놈이 공격해 올까 하는 생각에만 매달리게 된다.
꽝!
공격은 다섯 명 살과 뼈와 피로 이뤄진다.
등에서 터진 화약은 인간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놓을 뿐 아니라 앞으로 쏘아내는 역할까지 한다.
마야가 서 있던 자리는 벼락이라도 내리꽂힌 듯 움푹 파였다.
큰 구덩이다. 다섯 승려가 서 있던 다섯 방위가 구덩이의 시발점이다. 염라대왕이 커다란 삽으로 땅을 한 삽 퍼낸 것 같다.
“마야!”
천멸도주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르며 구덩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묘한 비린내도 풍기고 살을 태울 때 맡을 수 있는 노린내도 훅 다가온다.
아침 먹은 것까지 게워내게 만드는 역겨운 냄새들이다.
천멸도주는 정신없이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어 이곳저곳을 뒤졌다.
마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분쇄한 승려들과 함께 저승고혼이 된 것일까? 그때,
“거기서 뭐 해?”
구덩이 밖에서 한 번만 들어도 결코 잊지 못할 음성이 들려왔다.
“마…… 야?”
고개를 홱 돌리자 마야가 보였다. 그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뒷짐을 지고 빙그레 웃기까지 한다.
“마야! 너!”
“나오기나 해. 쯧! 천하의 천멸도주가 이토록 얕은 수에 당해서야 말이 되나. 내 이번 일은 입 다물어줄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지만, 어쩌겠어? 내 마누라 낯 깎는 일은 하지 말아야지.”
“마야!”
천멸도주는 소리를 꽥 질렀다.
염력으로 인간의 행동을 어디까지 조종할 수 있을까?
답이 나왔다. 원하는 만큼 조종할 수 있다.
다섯 승려가 자신들이 원할 때 폭사(暴死)했다면 이토록 멀쩡히 빠져나오기는 힘들었을 게다.
폭사하고자 하는 의지와 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상충했고, 잠깐의 머뭇거림은 마야로 하여금 유유히 함정을 빠져나오게 해주었다.
두 마음이 오랫동안 상충할 필요도 없었다. 함정을 빠져나오는 순간, 두 마음은 반대로 바뀌었다. 폭사하려는 의지는 폭사를 멈추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